하나님의 특별한 은혜, 대한민국
부산으로 향하던 북 특수군 600명 승선한 적함 “격침”
생존자 최영섭 예비역 대령, “하나님의 은혜로 조국 지켜”
기독교세계관 전문지인 월드뷰 10월호는 ‘하나님의 은혜 대한민국’이라는 기획특집을 통해 소개한 한국 근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사의 장면들을 소개했다. 기독 역사가들이 소개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의 현장을 요약했다. <편집자>
6․25전쟁이 시작되자마자 전쟁의 분수령이 될 역사가 바다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월드뷰 10월호는 6․25전쟁이 발발하던 이튿날인 26일 새벽, 600명의 북한 특수군이 승선한 선박이 한국 최초의 전투함 백두산함에 격침되지 않았다면 전쟁의 승패는 달라졌을 수도 있다는 전쟁전문가들의 기록과 함께 당시 상황을 소개했다.
커티스 우츠 미국 국방정보국 역사가는 “북한군에 맞서 싸워 승리를 거둔 백두산함의 전투는 중요한 항구를 한순간에 잃어버리는 것을 막아 유엔군이 한국에서 생존할 수 있는 여건조성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북한은 1950년 6월 25일 38선 전역에서 전면전을 시작하며, 해상으로 인민군 해군 육전대(해병대) 빨치산 특수부대 600명을 부산으로 급파했다. 이들이 탑승한 배가 예정대로 부산항에 도착했다면, 부산은 삽시간에 북한군에 의해 점령됐을 것이다. 그러면 낙동강 방어선을 지킬 연합군도, 군수물자도 들어오지 못해 대한민국은 지도에서 사라졌을 가능성이 컸다는 것이 전쟁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당시 부산은 무방비 상태로 북한군과 싸울 부대가 없었다. 그러나 대한해협에서 북한 특수부대원이 탑승한 함정을 격파하는 바람에 전쟁발발 5일 후인 7월 1일부터 미군과 군수품이 반입될 수 있었다” 백두산함의 생존자 중 한 사람인 최영섭 예비역 대령(90.당시 갑판사관)은 이렇게 증언했다.
북한은 당시 강원도 정동진에 2000명의 해병대를, 삼척에 육군 특공대를 보냈다. 또 외부 물자반입로인 부산에서 교란작전을 벌이기 위해 특수부대를 파견한 상태였다.
이에 대해 미국 해군연구소의 ‘한국전쟁과 미국 해군’이라는 책을 통해 토마스 커틀러는 “부산은 한반도에서 연합군의 최후 보루로 증원 병력과 물자의 주요 도입항이었다. 백두산함의 승리는 그것을 가능하게 했고, 그 전투는 그만큼 중요했다”고 밝혔다.
이렇게 특별한 승리를 가져온 한국의 첫 전투함 백두산함은 많은 사연을 갖고 있다. 구입과정부터가 눈물겹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당시 해군참모총장 손원일 제독은 신생국인 대한민국 정부가 전투함을 사줄 재정능력이 없다는 현실에서 군인들의 월급 10%를 모으자고 했다. 또 군인 가족들은 삯바느질, 고철수입으로 돈을 모았다. 그렇게 모은 돈이 미화 1만 5천 달러. 이 소식을 들은 이승만 대통령이 감격하며 마련해준 돈 4만 5천 달러를 포함해 6만 달러로 해군 관계자들은 미국으로 달려갔다.
한국 해군은 이미 퇴역한 이후 훈련함으로 사용되던 미국의 군함을 구입했다. 한국 해군 장교들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 직접 미국으로 건너가 계약한 배에서 머물며 녹을 제거하고 페인트칠을 했다. 돈이 없어 포탄도 겨우 100발을 구매해 6․25전쟁 발발 2개월 전인 4월 10일에 진해항에 입항했다. 그리고 한 달간의 수리 끝에 6월 12일 첫 출항에 나섰다. 백두산함은 이처럼 전쟁이 일어나기 불과 2주전쯤에 실전에 배치될 수 있었다.
백두산함은 전쟁이 발발한 6월 25일 출항명령을 받고 오후 3시 부산에서 출발해 울산 앞바다까지 갔을 때 수평선에 검은 연기를 발견했다.
“그 순간 가서 어떤 배인지 눈으로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계시였다” 최영섭 예비역 대령의 회고담이다.
가까이 다가가니 선체를 새까맣게 칠하고 국기도, 배 이름도 없었다. 백두산함은 발광신호로 국적, 출발지, 목적지를 밝히라고 했다. 하지만 상대 배는 응답없이 계속 항진했다. 더 가까이 다가가 보니 배에는 대포와 함께 갑판에 무장군인이 가득한 것을 보고 북한군으로 판단하고 그들을 추격했다.
백두산함보다 두 배 정도 큰 배를 향해 처음으로 실제 포탄을 발사했다. 20, 30발을 쐈지만 빗나갔다. 배는 더 가까이 다가갔다. 공격하기 쉽지만, 공격받기도 쉬운 거리였다. 3인치 직사포를 발사한 첫 발이 적함에 명중했다. 적함의 배가 기울면서 발사한 포의 파편이 백두산함에 떨어졌다. 병사 몇 몇이 쓰러졌고, 창자가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면서 숨을 거두었다. 6․25전쟁 개전과 함께 중요한 승리를 거둔 백두산함은 이후에도 해상 곳곳에서 맹활약하며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냈다.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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