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8호 / 믿음의 삶
복음을 만난 후 나는 주님 따라가는 삶을 살겠다고 결단했다. 여러 가지 신앙 훈련학교를 마치고 이제는 복음의 증인으로 부르신 자리에서 살겠노라며 세상 한복판에 살았지만 쉽지 않았다. 남편의 건강 문제로 시작된 가정의 어려운 환경에 웃음은 사라지고 각자 자신의 일상을 성실히 살 뿐이었다. 갈수록 더한 남편의 건강 악화로 우리 가정은 다시 복음을 붙잡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두 자녀는 다음세대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아 헤브론원형학교로 가게 됐다. 나는 복음선교관학교를 섬기며 해외로 아웃리치를 가게 됐다. 이곳은 내가 보기에 아프리카 환경보다는 낫고, 선교사님들과의 관계도 너무 좋았고 주님이 부르시면 이곳엔 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주님은 여전히 내가 주인된 삶을 보게 하시고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요 10:27)의 말씀에 순종하게 하셨다.
내가 가고 싶은 곳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포기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게 됐다. 하나님의 은혜로 자녀들이 다니는 헤브론원형학교 교육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았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 나라와 선교완성을 위해 기도하는 이곳에서 다음세대가 믿음으로 세워지는 은혜를 함께 하게 하셨다. 그리고 나에게도 동일한 은혜로 세워 가셨다.
학교에서 나는 주방을 섬기고 있다. 사실 나는 주방일을 많이 해보지 않아, 모든 주방일은 믿음을 필요로 했다. 가장 어려운 것은 칼질이었다. 얇게 썰어야 하는 파는 내 뜻대로 안되었다. 어떤 때는 파를 썰었다고 썰었는데 파끼리 다 이어붙어 있었다. 처음엔 웃음으로 넘기며 나중엔 잘 되겠지 하면서 스스로 위로하며 노력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어느 날 학교에 큰 행사가 있어 평소와 다르게 주방에 많은 분들이 섬기러 오셨다. 한 분이 파를 써는 나에게 웃으며 “파가 이게 뭐예요.”라고 말했다. 처음 들은 말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말은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날은 달랐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들은 말이기에 마음이 어려웠다. 내색은 안했지만 섭섭한 마음과 불편함이 파를 써는 내내 나를 사로잡았다. 그때 마음에서 울리는 차분한 음성이 들렸다. ‘다 잘하고 싶니?’ 나는 단번에 ‘네~’ 하고 대답했지만 주님은 ‘다 잘 안 해도 괜찮아.’라고 대답해 주셨다. 코끝이 찡하며 눈물이 흘러내렸다.
학교에서 만난 많은 교육선교사들의 삶이 참 귀했다. 그리고 닮아가고 싶은 마음이 많았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선생님들, 잘 가르치는 선생님들, 기도로 부르짖는 선생님들, 멋진 재능과 전문성을 가진 선생님들, 묵묵히 섬김의 자리에서 충성을 다하는 선생님들이었다. 나도 내 자리에서 잘 섬기며 잘 하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이것이 믿음이 아닌 나의 노력과 최선임을 보게 하셨다. 나의 약함을 인정하며 매 순간 주님을 믿고 의지할 수밖에 없는 자임을 알게 해주셨다.
지금도 나의 파 써는 실력은 여전하다. 그러나 이제는 “이게 뭐예요.”라는 말을 들을 때 이렇게 대답한다. “네. 더 잘 썰어보겠습니다!” 그러면서 주님께 구한다. ‘주님! 믿음으로 잘 썰게 도와주세요.’ [복음기도신문]
김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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