귓가에 살며시 다가와 묻는다. ‘그럼, 혹시 조총련이세요?’
또 들었다. 그래서 싫으냐고? 아니, 사실은 기분이 좋았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일본 땅에 있는 재일 조선인들의 세월과 삶을 나누게 되면 종종 듣는 말이다.
우리(조선)학교에 왔다가 우리 부부의 모습을 보고 ‘혹…스파이?’하며 의심스레 묻는 사람들도 더러 있곤 하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이제야 그들의 삶에 내 삶이 조금 녹여진 것 같아 좋다. 내가 이 땅에서 싸우는 싸움은 조총련이냐, 스파이냐가 아닌 걸 안다.
내 글을 읽고 있는 한 자매가 어쩜 그리 에피소드가 많으냐며 물은 적이 있다. 이만큼 세상을 살면서 알아진 것이 있다면 진짜 부자는 돈이 많아서 부자가 아니라 스토리가 많은 삶이 더 풍성하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일본 땅에서 우리 조선인들과 함께 하는 삶은 하나님이 만들어주는 부자 이야기이다.
한국에 오면 서울과 지방을 왔다 갔다 하느라 서울역을 자주 가게 된다. 조금 시간이 있어서 카카오 매장을 들어가 보았다. 귀엽고 이쁜 문구들을 보니까 사다 주고픈 우리(조선)학교 아이가 생각난다. 남편에게 흘러온 양말 포장을 뜯으려는 딸아이 손을 막았다. 눈에 아른거리는 우리학교 선생님이 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른다. 좋은 것, 맛있는 것을 보면 우리(조선)학교 아이들에게 주고 싶고 우리 선생님들 주고 싶고 우리 엄마들하고 먹고 싶다. 그들이 귀찮다만 하지 않으면 매일 함께 놀고 싶다. 나의 투박한 삶을 이렇게나 풍성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우리가 흔히 달력이나 사진으로 보는 그림이 있다. 큰 나무 아래 앉아 계시는 예수님과 함께 놀며 이야기하는 어린아이들의 모습이다.
“어린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막지 말아라 천국은 이런 어린이들의 것이다”(막 10:14)
어린아이들처럼 순수하면 괜찮다는 것일까? 성경 그 당시에는 아이들은 숫자에도 들어가지 않는 무가치한 존재였다. 아무 존재감 없는 아이들로 천국을 비유하셨다. 우리가 중히 여기는 모든 행위, 율법, 사상, 정사, 주권, 권세를 파하시는 것. 그저 무가치한 존재라도 주님으로 충분한 어린아이 심령이면 된다고 하신다.
창조되지 않은 ‘전부’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여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율법, 모든 행위, 모든 정사, 모든 권세, 주권, 사상,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가져가셨다. 그리고 오직 명한 것은 하나, 그저 주님만 사랑하라는 것이다. 모든 것은 이미 십자가로 다 이루셨다고. 그래서 이 땅에서의 나의 사명은 나의 모든 것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주님이 사랑하는 것들을 나도 사랑하며 사는 것.
얼마 전 만남을 한 어느 교회 성도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저희 교회가 선교사님과 만났다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 주세요‘ 또 하나 에피소드가 생겼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사랑하기를 배우고 있다. 신랑을 향한 신부의 여정은 힘을 다해 사랑할 것인가의 싸움이구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여라”(막 12:30) [복음기도신문]
고정희 선교사 | 2011년 4월 동일본 대지진 이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가족이 일본으로 떠나 2014년 일본 속에 있는 재일 조선인 다음세대를 양육하는 우리학교 아이들을 처음 만나, 이들을 섬기고 있다. 저서로 재일 조선인 선교 간증인 ‘주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싶었다'(도서출판 나침반, 2020), 사랑은 여기 있으니(나침반, 2023)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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