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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하 칼럼] “당신들 때문에 여신께서 강림하지 않아요”

사진 : 원정하 제공

최근 우리 마히마교회는 한 주간 일정으로 두 곳에 단기선교를 다녀왔습니다. 공숙자 목사님과 약 스무 명의 성도들은 ‘쏠라뿌르’라는 지역에서 복음을 전했고, 저희 가정 네 명은 북동부 ‘마니푸르’에서 내전 및 수해로 고통받는 사람들과 사역하고 왔습니다.

그리고 주일에 함께 만나서 서로의 무용담(?)을 나누는데, 한도 끝도 없었습니다. 저희는 마니푸르에서 전기도 수도도 없이 사이클론 속에서 사역한 이야기들, 정부군과 내전 반군 양쪽을 다니며 복음을 전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팀에서는 비 한 방울 안 오는 41도의 무더위 속에서 복음을 전하며 마을 마을 다니던 것, 일행이 탑승했던 버스가 트럭과의 충돌로 큰 사고를 겪었는데 사람이 하나도 다치지 않고 일정을 무사히 마무리한 것 등 여러 간증들이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특별히 저희 단기팀이 ‘고다 탄다’라는 곳에서 격은 일을 나누고 싶습니다. 비록 이번에는 제가 그곳에 없었지만, 그래도 이 은혜는 꼭 나누어야 할 것 같네요.

먼저 우리 마히마교회 단기선교팀의 사역은 주로 이렇게 진행됩니다. 보통 버스를 타고, 아무 연고도 없는 시골 마을에 들어갑니다. 아는 사람도 하나 없고, 아무 약속도 잡히지 않은 마을입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그 마을에 교회가 보이면 바로 돌아서 나옵니다. 그리고 교회가 보이지 않는 마을에서 우물가나 신전 마당, (성벽이 있는 마을의 경우) 성문 앞에 앉아있는 장로나 족장 분들을 찾아갑니다. 그분들께 인사를 드리고, 우리가 한두시간 짜리 프로그램과 공연을 할 건데 혹시 마을 광장을 쓸 수 있는지 문의합니다. 그러면 너무나 지루한 시골이니 지금까지 경험상 100% 고맙다고 하며 우리 일행을 받아들입니다.

그러면 한번 더 쐐기를 박듯이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 기독교인들이고, 복음을 전할 것이고, 원하는 사람들과는 기도도 함께 할 것이다. 그래도 되겠냐고 물어봅니다. 이쯤 되면, 애초에 박해할 가능성이 있는 마을같으면 바로 거절을 합니다. 그리고 그래도 괜찮다는 마을이 있으면 동네 읍사무소(빤자야트), 즉 정부 파견 사무소에서 허가증을 정식으로 받습니다. 그리고 온 마을 주민들을 모아서 공연을 시작합니다.

가장 많이 허락되는 장소는 ‘힌두교 신전 앞마당’입니다. 보통 그곳이 마을에서 제일 넓고 대리석 타일이 깔리고 그늘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로서는 썩 내키지 않는 장소지만, 마을에서 준 장소니 잘 활용하곤 합니다. 가끔 마을의 학교 운동장이나 우물가, 큰 나무 밑에서 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약 두 시간에 걸친 여러 프로그램 후에, 당당하게 복음제시 및 영접기도까지 이루어지고, 성경과 만화 전도책자들이 온 마을에 배포되고, 그리고 저희는 다음 마을로 이동합니다. 많을 때에는 하루에 세 곳 까지 사역을 하지요.

그런데, 이번 전도여행 중에는 어쩌다가, 이전에도 방문한 적이 있는 마을에 들르게 됐습니다. 그런 일은 극히 드물거든요. 이전에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던 신전 장소였습니다. 그래도 주어진 기회라 열심히 사역을 하려는데 몇몇 사람들이 와서 난리를 쳤답니다.

“당신들이 이전에 이곳에서 메시지를 전한 후부터, 여신(데비)께서 내려오지 않으신다!”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굿이나 제사 같은 것을 할 때 신내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러면서 팀에게 떠나라고 했답니다. 그러나 더 많은 마을 사람들이 “보기 싫은 사람들이 안 보면 그만이지!”라며 팀이 계속 사역을 하게 했습니다. 그들은 그 신전의 우상들을 작년과는 다르게, 보따리로 덮어 두더군요. 나름 영안이 있는 사람들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이 보고를 들으며 간절하게 생각나는 추억이 있었습니다.

제가 신학교에 다닐 때 일입니다. 당시 타 종교에 아주 관용적이면서 기독교에 비판적인 한 교수님의 힌두교 관련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분은 일본 소설가 엔도 슈사쿠(遠藤周作)의 ’깊은 강‘이라는 책을 인용하며, ’깔리‘나 ’차문다‘ 여신을 성모마리아에 비유했습니다. 그리고 힌두교의 좋은 점과 기독교의 나쁜 점을 이야기하고, ’종교간의 평화 없이는 세계의 평화가 없다!‘고 강의했습니다.

그 당시 이미 인도 전도여행을 수도없이 다닌 학생이었던 저는, 힌두교 브라만의 아들이면서 예수님을 믿고 함께 수업을 듣던 네팔인 신학생과 함께 너무너무 괴로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떻게 발언할 기회가 있어서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했을 때 떠나가는 신을 섬기는 사제들과 우리가 무슨 대화를 할 수 있겠습니까?”

강의실에는 폭탄이 떨어진 분위기였습니다. 그리고 여러 학문적인 이야기들이 등장했습니다. 사실 엔도 슈사쿠의 ‘깊은 강’은 배경만 인도지 인도인이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직 타자인 일본인의 시선으로 보는 신비화된 힌두교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는 교수님이 비판하던 ‘오리엔탈리즘’적인 시선과 유사했습니다. 사실 인도에 경험이 있는 저에게 힌두교 옹호는 카스트제도에 의한 사회적 약자 및 여성들에 대한 모독이라고 여겨졌습니다. 해당 저서에서 성모로까지 높여진 깔리 여신 신전에서 지금까지 인신공양 및 신전매춘이 진행중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저는 힌두교와의 대화가 아니라, 제 인생 중에 힌두교의 악한 영향력이 사라지고 모든 신전이 텅텅 비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인도 선교사가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입생들은 박수를 쳤고, 교수님은 고함을 질렀습니다. 그 교수님은 같은 감리교 목회자인 저희 아버지(원성웅 목사님)에게까지 항의 전화를 했습니다. 또 제가 속했던 공동체를 학교에서 내보내자는 안건을 교수 회의에서 발의했다고까지 들었습니다. 벌써 이십여 년 전 이야기입니다.

그때 제 옆에 함께 있던 네팔인 신학생은 현재 네팔 감리교단의 감독(Bishop)이자, ‘땅에쓰신글씨’의 네팔 대표로 함께 동역하고 있는 수먼 고우덤 선교사입니다. 그리고 저는 주님의 은혜로 인도에서 13년차 선교사로 있으면서 수 많은 신전들 앞에서 실제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올해 저는 저에게 성경을 배우고 빈민가 전도를 함께 한 청년들의 승전보를 들었습니다. 수백 년, 수천 년간 한 여신을 섬겨오던 신전이 영적인 영향력을 잃었고, 우상이 보자기로 덮여 있었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인도의 시골 지역까지 전진합니다. 그리고 내전 지역과 수해 지역에서도 놀랍게 역사합니다. 몰론, 이 사랑스러운 뭄바이를 비롯, 대도시들에서도 전진합니다. 주께서 무너뜨리신 성읍을 헤아릴 수 없고, 주께서 정복하신 나라들을 감히 셀 수 없습니다. 계속해서 용맹 정진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복음기도신문]

원정하 | 기독교 대한감리회 소속 목사. 인도 선교사. 블로그 [원정하 목사 이야기]를 통해 복음의 진리를 전하며 열방을 섬기는 다양한 현장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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