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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는 흑암에서 구원받은 주님의 자녀

▲ 순회선교단 미주지부 동역자들과 함께. 제공: 윤석기 집사

300호 | 믿음의 삶

우리 부부의 인생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흑암에서 건져낸 ‘내 아들, 내 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를 놓치지 않으신 주님의 강인한 그 손길이 있었다.

철없는 어린 시절, 미국 이민 이후 혼돈의 시간 보내고

윤석기 집사(이하 윤): 나는 1971년도에 태어나서 82년도까지 한국에서 살았다. 모태신앙으로 교회 가는 걸 좋아했고 어렸을 때부터 말씀 보는 것도 좋아했다. 학교도 미션스쿨을 다녔다. 어머니는 나를 목회자로 만드시려고 했다. 그러나 부모님이 이혼하시면서 나는 아버지를 따라 남동생과 함께 1982년도에 괌으로 가게 됐다. 엄마가 많이 그리웠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곳에서 나는 말썽을 많이 부렸다. 그러자 1989년 무렵, 아버지는 나를 미국 북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로 보냈다.

아버지가 보내준 돈으로 월세를 내면 없었다. 나머지는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학교 끝나고 골프장에서 공 줍는 일을 하고 밤 늦게 들어왔다. 괌에서 알던 동생들 하나둘 찾아오면서 식구는 동생을 포함 모두 8명까지 늘어났다. 먹을 게 떨어지면 동생들과 잠바를 하나씩 입고 마트에 우루루 들어가서 잠바 주머니에 넣어왔다. 죄의식도 없었다. 그저 한 마리 불나방 같은 삶을 살며, 그저 멋이라고 생각했다.

미국은 마음만 있으면 어디서든 일할 수 있었다. 그래서 19살 때부터 사업을 시작했다. 리커스토어(Liquor Store)라는 구멍가게에서 밤에 일하면서 낮에는 삐삐와 핸드폰을 팔았다. 그러다 20살에 어렵게 대출을 받아 비디오 가게, 이동통신 가게를 했다. 잘 될 때도 있었지만, 결국 빚만 잔뜩 떠안게 됐다.

그러다 1996년 3월에 건축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인 건축회사에 들어갔다. 한 달 만에 현장 반장이 됐고, 석 달 만에 현장 총책임자가 됐다. 그리고 6개월 만에 모든 것을 관리하는 책임을 맡게 됐다. 그러다 우리 회사에 하청을 주던 외국 회사에 스카웃되어 갔다. 함께 일하던 몇 분을 데리고 새로운 회사로 가서 일을 했다. 그곳에서 건축의 모든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미국의 건축은 망치 들고 벽에 못 박는 일은 35%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65%는 서류작업이다. 그때 그런 서류 작업을 배웠다. 그런 서류 작업을 할 수 없는 형님들의 요청으로 동업을 시작하게 됐다. 그렇게 2003년 겨울에 시작된 4명의 동업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한때는 회사도 직원이 70명까지 있고 한인이 운영하는 회사 중에서 가장 큰 규모였는데, 한눈을 파는 바람에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돈을 벌다 보니 술과 유흥에 빠졌기 때문이다. 2010년도에 모든 것을 잃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정신을 못차렸다.

2012년 무렵, 한 동생이 술 마시고 노래 부르던 중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형, 우리가 모태신앙으로서 비록 술은 마시지만 교회는 나가야 되는 거 아냐?” 말도 안되는 상황이지만, 그때부터 교회를 다녔다. 그러다 교회에서 2014년도에 아내를 만나게 되고 복음학교를 가게 되면서 주님은 내 삶을 바꿔놓았다.

깨어진 가정에서 성장한 나, 기적같이 복음을 만나다

최윤정 집사(이하 최): 나는 6학년 때 부모님이 헤어지시면서 친척집을 전전하며 보호자 없이 살았다. 가정이 깨어진 상태에서 엄마의 빈자리, 무능력한 아버지, 무서운 오빠가 있는 집이 싫었다. 청소년과 청년 시기에 방탕한 삶을 살다가 20살에 미국에 계신 어머니의 초청으로 미국으로 왔다. 그러나 세상에서 살면서 결혼을 한 번 실패했다.

나는 내 삶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나의 불행의 원인이 불우한 과정과 나를 지키지 않았던 부모, 무서웠던 오빠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까지 죄를 짓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나는 피해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절망 가운데 미국에서 열리는 복음학교에 가게 됐다. 그곳에서 알게 된 건 내가 존재적 죄인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었다. 죄가 좋았고, 그래서 죄된 삶을 내가 선택했고, 나는 영원히 죽어야 되는 운명이었다. 나는 죽어야 되는구나. 마음에 사형 선고가 내려졌다. 방탕하게 살던 나를 하나님은 인정하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복음학교에 가서 초라한 모습으로 살아도 너는 내 딸이라는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내가 생각했던 게 아니었다는 걸 알았다. ‘내가 뭘 잘해서 사랑하시는 게 아니구나. 나 자체를 사랑하시는구나.’

그리고 나의 죄인 된 모습을 철저히 보게 하셨다. 내게는 너무 힘든 시간이었지만, 비로소 ‘그래서 내가 십자가가 필요한 존재구나. 나는 죽을 수밖에 없었구나. 문제는 나에게 있었구나.’라는 게 인정되는 순간, 진짜 나에게 십자가가 복음이 됐다.

복음 만나 행복한 아내 통해 십자가 복음 앞에 서다

윤: 복음학교에 다녀온 아내가 너무 행복해 보였다. 궁금했다. 무엇이 아내를 이토록 바꿔 놓았을까. 그렇게 2015년도에 복음학교에 참석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총체적인 복음과 함께 그동안 내가 궁금했던 모든 것을 들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 6학년 무렵, 어떤 사람들의 방문으로 얼떨결에 성경공부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그들이 누군지 몰랐다. 4년 정도 그들을 통해 성경공부를 했다. 그들은 착하게 살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행위를 강조했다. 그리고 이 땅에 소망을 두라고 했다.

그러나 복음학교를 통해 나는 지옥 뚜껑을 밟고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 곧 죄, 죄 곧 나.’ 또 성경은 행위로는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행위로는 안 되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복음을 들으면서 깨닫게 됐다.

복음학교에 한 번 참여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었다. 이후 복음학교 섬김이로 계속 참여하면서 진리가 내게 쌓이는 시간을 가졌다. 2015년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복음 앞에서 달리게 하신 게 은혜다. 중간에 한두 번 듣고 떨어져 나갔다면 나는 다시 세상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복음학교를 한 후에도 아내와 1년 정도 별거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예수님이 계시기에 우리는 1년 만에 회개하고 아내와 다시 재결합하게 됐다. 그때부터 우리 가정은 말씀기도에 목숨을 걸었다. ‘일단 말씀 보고 기도하자. 우리 옛 자아로는 안 된다.’ 그동안 신앙 훈련학교를 통해서 배운 것을 적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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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회선교단 미주지부 동역자들과 기도하는 모습. 제공: 윤석기 집사

우리 부부의 변화 이후 주위 모든 사람들의 변화 시작돼

복음학교에서 만나 친하게 지내는 지체들이 문제가 생길 때, 전화를 한다. 그러면 집으로 초청한다. 성경책 갖고 와서 함께 말씀기도한다. 그렇게 우리집에서 기도하고, 다시 회복되어 간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까? 너무 감사하다.

북가주에서 동역자들이 함께 모임을 가질 장소가 없던 우리는 집을 구할 때 ‘주님, 이 집 주시면 주님의 작은 교회로 사용하겠습니다.’라고 기도했다. 정말 이 집은 주님의 집으로 사용되고 있다. 많은 선교사님들이 머물다 가시고 많은 지체들이 우리 집에 와서 기도하고 쉼을 얻었다.

지난 10년 동안 복음학교에 꾸준히 참석하고 둘이서 말씀기도를 한다. 또 아내의 열심으로 느헤미야52기도도 한 달에 한 번, 교회 목사님들과 연합해서 우리 집에서 한다. 또다시 ‘이런 존재로 사는구나.’ 더 알게 된다.

옛날에는 우리 가족들의 모임에는 언제나 술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식탁에는 성경책이 있다. 우리 부부 두 사람 모두 세상을 너무 좋아했는데, 주님은 우리의 그런 옛 모습을 다 털어버리시고 말씀 앞에 서게 하셨다.

우리가 변하면서 우리 가족들이 변하고,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변화가 나타났다. 그리고 불가능할 것은 같은 술을 마시지 않게된 것도 벌써 2년이 넘었다. 사업 때문에 많이는 안 마셔도 한 잔 받아 놓고 했는데, 주님께서 아내의 고백을 통해 술을 끊게 해주셨다. 마가복음 14장 25절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는 말씀을 보게 하셨다. 끊으라는 신호로 받았다. 진짜 술을 끊으니 술 친구들이 다 떨어져나갔다.

세상 친구들을 만나면 여전히 술을 권한다. 그러면 내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사람하고 약속을 했으면 마시겠는데 안타깝게도 주님하고 약속했다. 주님이 보시지 않냐. 사람하고 약속했으면 그 사람 없는 데서 마시면 되는데 주님은 늘 나와 함께 사시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

하루는 아는 동생 하나가 찾아와 말했다. “형님 어떻게 교회를 가요? 저도 형님처럼 변하고 싶습니다.” 그때 나는 “교회나 지각하지 말고 나와라.”고 했지만 쉽게 지켜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동생의 궁금증은 결국 복음학교로 향했다. 그리고 주님은 내게도 그렇게 하신 것처럼 믿음의 삶에 궁금함을 가진 사람들을 주님의 나라로 이끌어 들일 것이다.

내가 술을 마시지 않자, 주님은 내 주위를 변화시키셨다. 동생네 가족, 조카들, 우리 아버지도 많이 바꾸셨다. 고인이 되신 장모님과 아내가 무섭다고 했던 큰 처남도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했다. 복음학교에 참석해 은혜를 많이 받았다. 우리집 거실에는 십자가가 걸려 있고, ‘나와 내 집은 오직 여호와만 섬기리라’는 말씀이 영어로 써있다. 그 앞에서 형님이 새벽마다 무릎 꿇고 기도했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하셨는데, 그 말씀대로 이루어주셨다. 이 모든 걸 우리의 순종이면 주님께서 다 하신다는 것을 아내와 내가 경험했다.

물론 여전히 넘어질 때도 있지만 다시 털고 일어나서 순종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다른 길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더 이상 없다. [복음기도신문]

윤석기, 최윤정 집사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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