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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선교] “혼란스런 상황에 먼저 엔진 앞에서 모두 어깨동무하고 기도했습니다”

▲ 선박 벽면에 페인트 칠을 하는 모습. 제공: 김시은 선교사

300호 | 청년선교

청년 선교사들의 생생한 좌충우돌 믿음의 순종기를 담은 [청년 선교]. 기독교인 청년을 찾아보기 어려운 지금, 복음과 운명을 같이한 20대 청년 선교사들이 선교 현장 곳곳에서 매주 치열한 믿음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 현장을 소개한다. <편집자>

지난 4월 11일 도착한 남아공 더반(Durban)이라는 도시의 한 항구에서, 드라이독(Dry dock, 배를 육지로 올려 수리, 유지 보수하는 작업)은 한창 진행 중에 있습니다. 절반 이상의 사람이 배를 떠나 세계 곳곳으로 아웃리치를 가고, 지금 이곳에 남은 저희는 정말 몸을 불사르며 일하는 중입니다.

오전 7시에 시작되어 오후 5시에 끝나는 일, 식사 시간과 쉬는 시간을 제외하고도 8시간을 꽉 채워 몸을 쓰는 일을 합니다. 일을 하는 매 순간 액션 영화의 한 장면을 찍고 있는 것 같습니다. 쑤셔 넣고, 끼이고, 높은 곳에 매달리고,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어찌 되었든 시도해보고, ‘가능하긴 하구나.’ 깨닫는 걸 반복했습니다. 주어진 일을 해내야 하고, 해낼 도구와 방법을 찾는 것은 하는 사람 몫이기에 창의력이 요구되기도 했습니다.

지금쯤 오전이 끝나야 되는데… 하고 시간을 보면 여전히 9시도 되지 않았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닐 만큼 일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정말 느리게 흘렀습니다. 에어컨과 환풍구 작업으로 인해 거의 모든 냉방 시스템이 꺼진 배는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날 만큼 덥고, 엔진실은 50도가 넘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일이 끝나면 항상 땀과 온갖 더러운 것들로 뒤덮인 몸을 씻고, 새로운 상처와 멍을 발견합니다. 6시쯤 저녁 식사를 한 후 매일 다른 저녁 일정을 갖습니다. 공동체 활동, 여러 이벤트, 기도회, 예배 등. 그렇게 저녁 일정이 끝나면 곧바로 잠자리로 향합니다. 선택의 여지 없이 9~10시 사이 반드시 취침을 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주 6일 일하는 그 일정을 정말 고통스럽게 버텨내게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자는 와중에도 높은 온도 때문에 땀을 뻘뻘 흘리며 깨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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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고스호프호. 제공: 김시은 선교사

이렇게 일상을 글로 정리해 보니 부정적으로 들리는 것들 투성이입니다. 일반적인 시선으로 봤을 때 돈도 한 푼 받지 않고 이렇게 일하는 것은 미친 짓이 분명합니다. 그걸 떠나 선교사로 이곳에 있다고 해도 정말 쉽게 지칠 수 있는 환경입니다.

한 집안의 가장이 일하는 동기가 자신의 가족이 되듯, 이 배에 있는 사람들도 돈은 벌지 않지만 반드시 다른 어떤 동기가 있기에 이렇게 일할 수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특별한 동기 없이 로고스호프에서 일을 하겠다는 것은 자처해서 노예가 되겠다는 것밖에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함께 일하던 친구 한 명, 그리고 일할 동기를 잃어 지친 친구 한 명이 같은 질문을 해왔습니다. “네가 이곳에서 열심히 일하는 이유는 뭐야?” “나는 내 앞에 주어진 작은 상황 하나, 작은 관계 하나가 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거라고 믿어. 그분의 허락을 벗어나 내게 올 수 있는 건 없으니까. 그리고 나에게 모든 것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시라면, 그 모든 것에서 나는 충성을 다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해.”

그리고 제가 입으로 했던 이 고백을 제대로 시험하시는 날이 있었습니다. 매주 토요일은 ‘하프데이(Half Day)’로 오후 12시까지만 일을 하면 되는 날입니다. 바쁜 주 끝에 저는 이날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을 드디어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매달 말에 작성하는 이 기도편지를 마무리할 완벽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날 ‘스탠바이(24시간 무전기를 가지고 대기 중인 사람)’라는 역할을 맡고 있었지만,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정해진 업무만 하면 되기에 별생각 없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평소와 다르게 계속해서 오는 무전으로 인해 결국 제 일은 저녁 7시가 넘어서야 마치게 되었습니다. 식사도 여유롭게 하지 못할 정도로 이리저리 돌아다녀야 했습니다. 그렇게 한번 어떤 일을 부탁받을 때마다 ‘또? 설마 또?’ 하면서 반드시 해야 했던 제 계획이 무산되는 것을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시간이 없는데 오늘마저 이렇게 날려 버린다고? 어떻게 일이 이렇게 쉬지 않고 있을 수가 있지? 하필이면 딱 오늘?’이라고 생각함도 잠시, 이 일들이 그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앞에 놓으신 것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그 토요일 제 최선의 계획은 내 할 일을 하는 것이었다 해도 하나님 편에서 최선의 계획은 내 계획과는 다른 것이구나 받아들이게 되고 마음을 편하게 놓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이유를 알 수 없이 받아들이기만 했는데, 지금 보니 제가 했던 고백을 삶으로 받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그 하루에 담겨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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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진 부서 동료들과 함께. 제공: 김시은 선교사

그분을 향한 신뢰와 사랑은 매일 아침 저의 눈을 뜨게 하고 열심히 일할 동기가 되어줄 뿐만 아니라, 힘들 수밖에 없는 삶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가득 차게 하기까지 능력이 충분했습니다.

‘살아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 근심 전혀 없네~’ 이곳에서 영어로 참 많이 부르는 찬양입니다. ‘살아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이 부분이 영어로는 ‘Because He lives I can face tomorrow(그가 살아계시기에 나는 내일을 마주할 수 있네)’라고 불립니다. 참된 소망만이 고단한 삶 속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합니다. 로고스호프는 새파란 전쟁터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온 젊은 청년들이 모여 함께 방황하고 예배합니다. 특히 지금 드라이독 중에는 육체적인 싸움이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참된 소망이신 그분이 저뿐만 아니라 이곳에 있는 모든 청년들에게, 매일 아침 힘차게 몸을 일으킬 이유가 되어 주시길 함께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각자 다른 곳에서 같은 싸움을 싸우고 계실 사랑하는 여러분을 위해서도 기도하겠습니다.

드라이독은 사실상 마무리되었고, 이제는 다시 물속으로 들어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물에서도 수리, 유지 보수가 계속될 예정입니다. 지금은 약 63%의 과정이 마무리되었습니다. 배 곳곳에 있는 약 70개의 탱크를 열고 닫고 청소하고… 탱크 청소가 이제는 정말 별로 하고 싶지는 않다 싶을 때쯤 거의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배의 상태와 안전을 외부 사람들로부터 검사받기도 했습니다. 일을 하며 배의 구조와 여러 가지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배 곳곳에 열려 있는 탱크 때문에 지독한 냄새를 견디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높은 파도로 배가 흔들리더니 모든 것이 떨어져

드라이독이 시작되기 전, 영국 런던 동부에서 더반까지의 항해 동안 저는 엔진실을 지킬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얻게 되었습니다. 항해 전 준비해야 모든 과정과 항해할 때 필요한 메인 엔진을 작동시키고 관리하고 정지시키기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그 항로는 평소보다 많이 거칠었습니다. 높은 파도로 인해 배가 많이 흔들렸습니다. 그러나 즐길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엔진 조종실에 앉아 흔들리는 배를 즐기던 중, 조종실 안에 있는 주방에서 그릇이 떨어져 깨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어서 주위에 있던 모든 물건들이 떨어지고 박살 나기 시작했습니다. 제대로 서 있을 수도 없이 배가 많이 흔들렸고 그때까지만 해도 웃을 수 있었습니다. 비록 설탕, 카레 가루, 접시, 여러 펜들, 의자, 키보드, 마우스, 기타, 책상 등 모든 것이 깨지고 떨어지고 섞이고 엉망진창이 되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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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가 흔들려 책들이 다 쏟아진 모습. 제공: 김시은 선교사

배가 비정상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한 것의 원인이 높은 파도 때문만이 아니라 엔진 문제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말할 것도 없이 혼란 그 자체였습니다. 모든 엔지니어분들과 전기기사, 몇몇 엔진 부서 사람들까지 모두 모여 엔진 조종실은 사람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렇게 저희가 모여 했던 첫 번째 행동은 문제가 있는 엔진으로 달려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신 다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기도했습니다. 그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가장 먼저 했던 것이 기도였다는 것이 저에게는 굉장히 인상 깊었습니다. 그 작은 행위 속에 담긴 의미를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처럼 보일지 몰라도,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먼저는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합니다.’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뿐만 아니라 로고스호프가 운영되는 원리가 바로 이것임을, 사역이든 항해든, 결국은 모두 그분의 은혜 아래서 가능할 수 있었던 것임을, 그것을 믿고 겸허히 나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어서임을 감격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했던 일만 봐도 위험한 것들뿐이었는데, 그 많은 가능성 가운데 지금까지 안전하게 살아있음이 기적 아닐까요? 여러 가능성 계산할 필요 없이,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하나의 가능성만 생각해도 되는 간단한 인생임에 감사합니다. 엉망진창이 되었던 배는 우리의 연합으로 약 하루 이틀 만에 다시 원상 복귀되었습니다.

많이 허락되지 않은 시간 탓에 짧게 작성하려 했던 편지가 쓰다 보니 생각보다 길어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역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담기에는 여전히 부족합니다. [복음기도신문]

김시은 선교사(헤브론원형학교 용감한정예병 파송본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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