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은혜의 복음 (5.끝)
하나님의 분명한 명령에 순종하지 못한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가? 왕명을 거역한 것이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왕명으로 받았는가? 아니면 자기감정으로 받았는가? 자기 연민, 우울증, 정욕, 자존심 등 자신의 감정에는 그렇게 민감하면서 왕의 명령은 어떻게 취급했는가?
여전히 자기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을 연약한 믿음이라고 말하지 말라. 이것은 반역일 뿐이다. 진정한 부흥을 위해 이 반역자를 처단해야 한다. 폐위된 왕, 사울의 저주 받은 망령은 십자가에 믿음으로 내던져야 한다.
자기를 포기치 않는 것은 반역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 2:3)”
이 진노의 자식은 반역자에 불과하다. 믿음으로 여지를 끊지 않은 채 여전히 자아를 붙들고 있는 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위기에 빠져 있는지 깨달아야 한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삼상 15:22~23a)” 불순종을 믿음의 연약함으로 치부하지 말라. 듣지 않는 것, 고집 부리는 것은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고, 사술의 죄와 같다.
복음 앞에서 끝까지 버티는 반역자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부흥은 십자가 복음으로 돌아갈 때만 가능하다. ‘나’에 대하여 철저하게 죽어야 한다. 때늦은 후회는 결코 없다. 다만 믿음이 없을 뿐이다. 반역이 얼마나 무서운 줄 안다면, 죄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한다. 몸서리쳐야 한다.
십자가 복음으로 돌아갈 때만 가능한 부흥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가 막힌 기회가 왔을 때, 유혹을 느꼈지만 죽이지 않고 그의 옷자락만 살짝 베었다. 억울함이라도 한 번 밝혀 보고 싶었을 테지만 그는 하나님의 주권을 거역하지 않았다. 사울의 옷자락을 벤 것을 오히려 후회했다.
다윗, 그가 일평생 견제(牽制)하고 있었던 것은 반역죄였다. 그의 삶 안에 잔재해있던 마지막 찌꺼기마저 드러내시려고 허락하신 것이 인구조사였다. 그 사건을 통해 완전한 회개와 용서와 자비가 확인된 자리는 성전 터가 되었다. 끈적거리는 자아 사랑의 여지를 아직 끊지 않고 있다면 속히 돌이켜야 한다.
그리고 전적으로 부어주시는 은혜를 붙들고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삼손과 우편(右便) 강도의 태도는 빗나간 인생의 최후 소망이며 해답이다. 그러므로 때늦은 후회란 결코 없다. 믿음이 없을 뿐이다. 우리 믿음의 마지막 근거는 은혜다.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다.
내가 용서받을 만해서 용서받은 것 아니다.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다. 지금까지 이 민족 교회에게 기회를 주시는 것도 은혜다. 지금까지 에벤에셀의 은혜가 있었다면, 지금은 임마누엘의 은혜가 있고, 미래엔 여호와이레의 은혜로 붙드실 것이다. 이 은혜면 충분하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무서운 자아의 고집을 회개하고 주님 앞에 엎드리자. 우리 세대에 그날의 영광을 보게 하실 것이다. 오, 주님의 나라가 속히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이 우리의 왕이 되어 주시옵소서(2016.5 메시지 정리). [GNPNEWS]
김용의 선교사
(순회선교사.LOG미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