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1호 / 복음이면 충분합니다
오직! 절대! 전부의 복음! (9)
아브라함은 오직 믿음에 의하여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얻었다. 자기 자신에게 어떤 근거도 두지 않았다. 우리에게 오직 믿음이 되지 못하는 약점을 그도 똑같이 갖고 있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그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다.’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진짜 살아계시고 전능하셔야만 가능한 이야기를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고 그것을 믿으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것은 너의 가능성을 믿으라는 말이 아니다. “너의 가능성을 0.001%도 믿지 말고,
또 다른 가능성을 믿지 말라. 네 믿음은 순도 100%의 오직 믿음이 되어야 된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만을 믿어야 된다. 그가 100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음을 알았고 10살 차이인 사라가 90세 할머니가 됐을 때 임신과 출산은 생리적으로 불가능해졌다. 아무리 인간의 긍정적, 적극적 사고방식을 동원해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애를 낳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너와 네 아내를 통해서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한 지 25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25년이라는 세월만 지나가 할머니가 돼버린 것이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었고 인간의 최선이나 어떤 방법으로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미 죽은 것 같음을 알았다고 말한다. 사라의 태가 이미 죽었고 불가능한 상황인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과 같이 창조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믿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오직 믿음이다. 이것은 극단적인 믿음이다. 이것은 말이 안 되는 믿음이다. 그 믿음에 전부를 걸었고 자기 운명을 다 걸었다. 흔들리는 공격이 올 때에도 절대 믿음이었다. 흔들릴 수가 없었다. 흔들리다가도 언제나 출발할 때 믿었던 그 하나님을 절대로 믿었고 오직 그것밖에 없었다. 아브라함은 뒤로 물러갈 수가 없었다.
그 삶을 시작할 때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났다. 심정적으로 아브라함처럼 외로운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는 고향을 떠나서 계속 죽을 때까지 타향을 떠돌았다. 그의 믿음은 전부였다. 그가 그렇게 떠도는 이유는 고향이 멀어서 못 돌아간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는데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것이다. 아브라함의 일생을 말할 때 ‘오직 믿음, 절대 믿음, 전부된 믿음’ 이것 빼고는 할 말이 없다.
아브라함이 75세에 하란을 떠날 때 그 시대에는 다른 지역에 그냥 들어가면 침략전쟁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부족에서 다른 부족으로 가버리면 그건 전쟁 상태이다. 그런데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아무 보장도 없는데 주님이 ‘가라!’ 그러시면 가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믿는 사람이 대책이 있어야지 상식 있는 거지.’라고 말한다. 그러나 상식보다, 대책보다 ‘하나님의 부르심’ 그 ‘부르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이것을 절대 믿음이라고 안 하고 뭐라고 하겠는가? 이것을 오직 믿음이라고 안 하고 뭐라고 하겠는가? 왜 우리에게 복음의 능력이 안 나타나는가? 왜 하나님의 약속을 경험 못 하는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한 걸음 떼는 시작부터 전부의 믿음이었고, 절대 믿음이었다. (2018년 8월) <계속> [복음기도신문]
김용의
(순회선교사, LOG미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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