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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봄 칼럼] 말할 수 없는 비밀-Thank You

사진 : Priscilla Du Preez on Unsplash

마을 주민들이 운영하는 학교에는 유치원이 있다. 한국의 병설 유치원 같은 거다.

초등학교 학생들이 짓다 만 폐건물에서 공부하는 것에 비해 유치원생들은 벽돌로 지은 오래된 성당 건물에서 공부한다.

유치원 담당 교사는 Teacher의 약자인 미스터 티. 툭하면 자리를 비우고 자주 결근하는 초등학교 교사들과 달리 그는 말라리아에 걸리지 않는 한 수업에 빠진 적이 없다고 한다.

(문제는 그가 자주 말라리아를 앓는다는 거고, 이곳에서는 대부분이 몸이 아프면 무조건 말라리아라고 스스로 진단을 내린다.)

처음, 유치원에 방문했을 때, 그는 칠판은 있지만, 분필이 없는 교실에서, 언제 써놓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흐릿하게 보이는 칠판에 쓰인 알파벳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런데 갈 때마다 계속 알파벳만 가르치고 있었다.

교사는 어제도, 그제도, 저번 주에도 한결같이 알파벳만 매일 가르치고 있었고, 아이들은 의자는 있지만, 책상이 없는 교실에서 어제도, 그제도, 저번 주에도 배운 알파벳을 새로 배운 것처럼 따라 읽고 있었다.

보다 못한 나는 ‘왜 알파벳만 가르치냐?’라고 물었다.

그는 ‘다른 것도 가르친다.’라고 당당하게 대답하더니 ‘내일 와 보라’고 했다.

다음날. 그는 ‘바나나는 노랗다.’ 를 가르치고 있었다.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바나나는 노랗다.’만 가르쳤다.

​‘사과는 빨갛다를 가르치면 안 되나? 왜 바나나는 노랗다만 가르치나?’라는 나의 질문에 그는 ‘사과를 먹어보지 못한 아이들이 많아서 사과가 뭔지 모른다.’라고 대답했다.

바나나는 노랗다가 물렸는지, 다음에는 ‘아이 해브 볼’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공을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아이들은 몇 분이 지나지 않아 몸을 들썩이며 장난을 치고, 딴짓하면서 떠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아이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딴짓하는 건 그도 마찬가지다.

그 역시 수업 중간에 과연 통화가 될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오래된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고, 화장실도 다녀오고, 우물가에서 물도 마셨다.

어떤 때는 한참이 지나도 오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그나 아이들에게는 ‘No problem.’이다.

유치원 아이들은 오전 10시에 점심을 먹는다. 30여 명의 유치원 아이 중, 도시락을 갖고 온 아이는 열 명도 되지 않는다.

카사바 튀김, 비스킷, 스파게티, 생선튀김, 완자, 빵 등 다양한 메뉴로 도시락을 갖고 온 아이들이 점심을 먹는 동안 도시락을 갖고 오지 않은 나머지 아이들은 곁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논다.

빈부의 격차나 위화감을 느끼기에 그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나는 이게 뭔가 싶었다. 무엇보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미스터 티가 아이들에게 점심을 얻어먹고 있었다는 거다.

아이들과 함께 밥을 굶는 결식 교사라니.

자신의 도시락을 가난한 제자들에게 나눠주고 자신은 수돗물로 배를 채우는 선생님의 미담 따위는 이곳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고맙다’라는 말 한마디 없이 당연하게 아이들의 점심을 얻어먹고 있는 미스터 티의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아이가 준다고 해도 ‘너희 먹으렴.’ 거절 한 번쯤은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이번에는 도시락을 먹고 있던 아이들이 다 먹지도 않았는데 일어난다.

그러자 곁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 남은 도시락을 먹는다. 미스터 티처럼 너무나 당연하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없이.

목이 메도록 감동을 주는 장면이었지만, 땡큐 한마디 없는 그 현장이 나는 낯설었다. 왜 아무도 감사하지 않지?

오늘의 마지막 양식이 될지 모르는 양식을 나눠주는 제자와 친구에게 당연히 감사를 표현해야 하는 건 아닌가?

자신의 하루치 양식을 나눠준 아이들 역시 당연한 일을 한 것처럼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다.

“You have to say Thank You”

나의 말에 아이들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래, 아무도 감사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았구나.’라고 확신한 나는 아이들에게 감사를 가르쳐주고 싶었다.

아이들의 황당한 점심시간을 목격한 이후, 일주일에 이틀은 점심을 싸 오지 못한 아이들에게 빵을 나누어 주기로 했다.

아이들에게 빵을 나눠주면서 두 손으로 받고 ‘Thanks JESUS’를 말하게 했고, 아이들은 내 말을 따랐다. 그런데, 내 마음에 기쁨이 없었다.

감사를 가르치는데, 왜 나의 마음은 이다지도 불편한가? 사랑과 긍휼의 마음보다 Thanks JESUS를 가르치기 위해 빵을 나눈 나의 마음이 순전하지 않아서였다.

이러다가 아이들이 빵을 얻기 위해 마지못해 Thanks 하는 ‘브레드 크리스천’(Bread Christian)이 될 것 같아 걱정되었다.

어쩌면 이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고 있지 않았을까? 한결같이 자신들 곁을 지키는 미스터 티의 마음을, 가난한 교사에게 아낌없이 빵을 나눠주는 아이들의 마음을.

말도 못 하게 감사해서 말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루치의 생명을 나누어 받은 그 사랑이 너무 커서, 마음에 더 간직하고 싶었는지도.

감사는 무조건 말로 표현해야 하는 나의 감사 방법을 그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그들에게 ‘Thank you’는 마음 깊은 곳에 간직하고 있는 차마 말할 수 없는 사랑일 것이다.

‘사랑은 감사를 목적하지 않으며 강요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가난한 아이들과 결식 교사를 통해 나는 또 배운다. <계속> [복음기도신문]

*이 칼럼은 필자의 저서 <작지만 피어있는 꽃들>에서 저자의 허락을 받아 발췌, 게재합니다.

김봄 | 기록하는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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