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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상황, 가능성을 성경은 믿음이라고 하지 않는다

일러스트= 임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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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갱신 (2)
일러스트= 임이랑

 

병든 자아의 왕국에 갇힌 우리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나라를 세우기 원하신다. 그 일이 베들레헴 소년 다윗에게 있어났다. 그에겐 가능성이나 준비된 그 무엇도 없었다. 주님의 통로라고 하기에는 겨자씨처럼 미약했다. 그에 비해 사울의 왕국은 굳건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사울을 폐위시켰다지만 여전히 사울의 압도적인 권세 앞에서 다윗이 왕이 된다는 이 언약을 누가 믿겠는가.

설상가상으로 다윗은 기름 부음을 받은 후 더욱 비참해졌다. 다윗은 지금 믿음이 필요하다. 어떤 믿음이어야 할까.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는 그 때,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약속하신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믿는 믿음이다.

그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이 전혀 믿어지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말씀하신 주체를 주목하는 것이다. 내 생각, 내 확률, 내 경험, 내 가능성에 빠져 계산기를 두드릴 때가 아니라 오직 언약의 주체이신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 또한 전능하다. 하나님의 전능이 아니고는 해결될 수 없는 상황이기에 전능한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은 절대 믿는 믿음, 곧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이다.

그 믿음은 또한 ‘의로 여겨지는 믿음’이다. 주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완전히 불가능해 질 때까지 기다리셨다. 여지가 완전히 차단될 때까지 기다리셨다. 그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99세였다. 자신도 타인도 모두가 불가능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삭을 주셨다.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롬 4장) 자기에게 가능성이 없음을 알았을 때, 자신의 가능성을 찾지 않고 언약하신 하나님만을 믿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겨주셨다. 주님은 ‘나는 할 수 없고 불가능하지만 이 일을 가능하게 하시는 주님이 계시지!’라는 절대 믿음만을 요구하신다.

이 믿음은 2000년 후 나사렛 처녀 마리아에게서도 발견된다. 처녀가 애를 낳는다는 말은 상식을 벗어난 일이다. 게다가 그 아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피조물의 상식과 계산으로는 정말 불가능한 일이었다. 마리아가 자신의 생각으로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하겠냐?’고 물었을 때 천사는 ‘전능하신 하나님은 능치 못하신 일이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마리아의 고백을 들어보라.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 1:38)’

나의 확률이 0%인 상황 앞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찾아 헤매고 있지 않는가? 우리의 믿음의 끝은 항상 나의 가능성이 아니었는가?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 결코 아니다.

우리의 믿음의 끝은 어디인가?

하나님의 사람들, 믿음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믿음은 바로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이었다. 이는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믿음이다. 현실과 상황을 따지고 나의 가능성을 가늠하는 것을 성경은 결코 믿음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왕국을 믿음 없었던 다윗을 통해 왕국 한복판에서 일으키시는 주님의 승리를 보라. 이 말씀을 믿는다면 ‘하나님 나라의 부흥과 선교완성’, 그리고 ‘우리세대에 주님 다시 오는 그날의 영광’을 보는 것은 오히려 가능하다고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2016년 8월 메시지 정리). <계속> [복음기도신문]

김용의 선교사 (순회선교사. LOG미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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