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100만 베트남 성도를 소망하며 전도하고 있어요”_도완 꿕 쭝 장로

불같은 연단은 불같은 믿음을 만들어낸다. 80년대 보트피플로 생사를 건 항해 끝에 홍콩난민수용소의 삶 등 산전수전을 거친 도완 꿕 쭝(40) 장로. 주님의 은혜로 절망의 끝에서 소망 되신 주님을 만나, 이제는 고국 베트남에 돌아와 하나님의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아, 구령의 열정에 사로잡혀 있는 그를 만났다. <편집자>

– 어떻게 예수님을 영접하시게 됐나요?
“저는 12살 무렵부터 홀로 삶을 개척해야 했습니다. 어머니가 저를 해외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라고 보냈기 때문이죠. 그렇게 1989년에 보트피플로 가게 된 곳이 홍콩이었습니다. 도착한 이후, 난민수용소에서 살았어요. 홀로 살면서 나쁜 사람들처럼 막 살았어요. 그곳에서 미국 선교사님을 만났습니다. 주 2회 수용소에 오셔서 말씀도 전해주시고 사랑으로 수용소 사람들을 품어주셨어요. 그분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게 됐어요. 그때가 15살이었어요.”

1975년 베트남전쟁이 끝났다. 그러나 자유를 소망하던 베트남 국민들의 고난은 시작됐다. 1995년까지 20여 년간 80여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공산화 된 베트남을 벗어나기 위해 탈출행렬에 가담했다. 조그만 보트나 선박을 탄 탈출 행렬 가운데 실패한 사람도 많았다. 해적의 공격을 받기도 하고 정원초과와 폭풍우로 배가 침몰하기도 했다. 그러나 살아남은 이들도 많았다. 이들의 걸음은 홍콩,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등으로 이어졌다.

난민수용소에서 예수님 영접

– 수용소 생활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당시 난민수용소에는 2000명 정도가 살았어요. 한 방에 150~200명 정도 있었는데, 두 사람이 침대 하나를 함께 사용했어요. 대부분 가족 단위로 생활을 했는데 저는 부모 없이 혼자 살았어요. 별로 할 일도 없던 터라, 하나님에 대해 말씀하시는 선교사님의 이야기를 계속 들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깨달음이 왔어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어요. 이렇게는 살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제 삶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 당시 상황이 기억나세요?
“정확하게는 기억이 나지 않아요. 분명한 것은 제 삶이 달라졌다는 거예요. 성경을 읽고 싶어졌어요. 매일 오전 7시부터 11시까지 공부를 하는데, 시작할 때 30분 정도는 반드시 성경을 읽었어요. 놀랍게도 성경을 읽으면 마음에 감동이 일어났어요. 정말 성경읽기에 내 삶을 드렸죠.”

– 놀라운 일이네요.
“그때 수용소 안에 있는 학교 교장 선생님이 저를 지켜보시면서 조언도 해주시고 많이 도와주셨어요. 그 선생님의 도움으로 공부도 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삶의 목표가 생겼어요. 그동안에는 제가 제 삶의 군주였지만, 하나님을 만나고 난 이후 주님이 저의 주인이 되어주셨어요. 그렇게 삶의 변화가 나타나면서 저는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어졌어요.”

성경읽기에 온 삶을 바치다

– 그런 마음으로 실천한 일이 있으신가요?
“저는 매일 한 사람에게 하나님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전도자의 삶을 살기 시작한 것이죠. 매일 한 사람에게 제가 정리한 10가지의 내용을 적어주었어요.”

– 난민수용소에는 얼마나 있었나요?
“홍콩에 머문지 7년 만에 다시 베트남에 돌아오게 됐어요. 1996년에 수용소가 없어진다고 모두 본국으로 돌려보냈기 때문이죠. 그때 홍콩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되면서 그런 일이 일어났죠.”

1996년은 아편전쟁 당시 영국으로 조차(租借)된 홍콩이 150년 만에 중국에 반환되던 해다. 홍콩의 중국반환은 19세기의 역사가 마침내 종결되는 사건이었지만, 이처럼 베트남 보트피플에게는 전혀 새로운 삶의 길이 열린 시점이다.

177 5 1 interview2
▶ 하노이의 길거리 풍경

– 수용소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다시 고국에 돌아온 셈이네요.
“그렇죠. 1996년에 홍콩에서 베트남으로 돌아와서 고등학교 2학년에 편입했어요. 저는 학교를 다니며 제 삶을 변화시킨 하나님을 예배할 교회를 찾았어요. 아쉽게도 교회를 찾기 어려웠어요. 당시는 베트남에 교회에 대한 핍박이 심한 시기였기에 공개적으로 교회간판을 걸 수 없었죠. 그러다 주님이 한 분을 만나게 해주셨어요. 가정교회를 이끄는 분이었어요. 그 분을 통해서 지금 제가 소속된 쭈웬자오 교회에서 활동하게 됐어요.”

– 주님이 교회로 인도해주셨군요.
“그 교회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어요. 그리고 2000년에는 하노이대학에 입학했어요. 대학에 다니며 청년들을 신앙으로 돌보기 시작했어요. 대학 졸업을 앞둔 2003년 무렵, 교단에서 전혀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는 소식을 듣게 됐어요. 말레이시아에서 개척사역에 참여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죠. 제가 선뜻 응했어요. 국제관계의 일을 하고 싶던 저에게 적합한 사역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학교를 다니면서 그곳으로 갈 수는 없더군요. 중요한 결단을 해야 했죠. 기도했어요. 어떤 길이 주님의 부르심인지 알고 싶었어요.”

교회 개척에 참여하다

177 5 1 interview3
▶ 교회 2층에 있는 천막으로 지어진 주거공간

– 주님이 어떻게 인도하셨나요?
“갑자기 제 삶 앞에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길들이 펼쳐졌어요. 한 가지는 캐나다에 계시던 어머니의 그곳으로 오라는 제안이었어요. 그런데 기도하면서 두 번째 선택지인 말레이시아행을 주님 뜻으로 분별하게 됐어요. 그래서 캐나다행을 포기했어요. 이 말은 학업도 내려놓는다는 의미였어요. 한 학기만 마치면 되는데, 그것을 포기한 것이죠. 주님 뜻이라고 흔쾌히 결정했어요. 그렇게 저는 제 삶의 중요한 선택을 한 셈인데, 주님 생각은 저의 생각과는 달랐죠. 어느 날 갑자기 말레이시아 사역 자체가 취소됐어요. 저는 마지막 한 학기를 남겨두고 학업을 멈추고 가려고 했는데,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어요. 그래서 캐나다도 못가고, 학교에도 돌아가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어요.”

– 조금 당혹스런 결론이네요.
“그렇게 모든 일이 저의 마음과는 다르게 진행됐지만,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한 걸음씩 순종했어요. 그리고 제 눈 앞에 나타난 사역은 교회 개척이었어요. 그때 참 많은 일이 있었어요. 모든 일정이 취소되고 나서 얼마 후에 결혼을 하게 되고, 교회 전도자로 섬겨야했어요. 당시 이런 저런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했어요. 주님은 그렇게 공동체를 경험하게 하셨어요. 한 집에 25~30명 정도가 살았어요. 놀라운 일들이 많이 일어났어요. 알콜 중독자가 치유되기도 하고, 어려운 사람들이 회복되는 것을 보게 됐어요. 그 중 한 명은 지금 목자가 되어서 교회 책임자로 섬기고 있어요.”

– 그렇게 많은 사람이 살아가려면 재정도 적지 않게 들었을텐데요.
“정말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어요. 주님이 이끄시는 만큼 순종하는 것이죠. 그러나 사역을 위한 재정은 건드리지 않았어요. 교회에 가는데 필요한 교통비나 심방을 위한 재정은 필요한 만큼 채워졌어요. 하지만 주일날 활동하기 위해 차비를 모아야 했어요. 그러면 매끼 밥을 먹지 못하고 죽을 먹기도 했어요. 하지만 큰 어려움 없이 지나갔어요. 물론 아내가 좀 힘들었죠. 그 많은 식구들 식사문제며 여러 가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죠. 지금까지 그 모든 과정을 주님 은혜로 잘 지나왔어요.(웃음)”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빛이 돼야합니다”

– 지금 이 교회는 언제 시작됐나요?
“2004년에 하노이에서 예배를 처음 시작했어요. 초기 성도들은 대부분 하노이에서 30km 떨어진 화락이란 곳에서 왔어요. 그곳을 자전거를 타고 매주 하노이까지 왔어요. 어느 날, 성도 한 사람이 오토바이를 구입해 그 차에 5명이 타고 교회를 찾아오기도 했어요.

덕분에 성도들의 관계가 가족 같이 친밀했어요. 그러다가 화락지역에 거주하는 한 성도님이 가정에서 예배드릴 수 있도록 처소를 제공했어요. 자연스럽게 교회를 화락지역으로 옮기게 됐어요. 그 뒤로 성도들 수가 늘어나 여러 번 예배 처소를 옮기다가 2016년에 화락지역에 거주하는 또 다른 성도님이 교회 건물을 지을 수 있는 땅을 헌물해 주셔서 온 성도들이 1년 동안 직접 건물을 지었어요. 2016년 성탄예배때 첫 예배를 현재 교회 예배당에서 드릴 수 있었고, 지금도 계속해서 어린이 예배실 등 필요한 곳을 계속 짓고 있고 교회 앞 마당을 넓혀가고 있어요.”

– 교회에서 어떤 활동들이 이뤄지고 있나요?
“평일에는 전도하고, 모여서 기도하고 있어요. 현재 출석교인은 165명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빛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를 위해서 먼저 그리스도인의 삶에 변화가 있어야 되죠. 우리 삶이 바뀌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돼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예수를 알게 되고 그의 삶이 바뀌게 되기를 원합니다.”

177 5 1 interview4
▶ 교회 성도들과 함께

– 기도제목을 나눠주시겠어요?
“현재 교회가 있는 지역 근처로 공장도 들어오고, 대학교도 이전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젊은이들이 많이 오게 될 텐데, 이 다음세대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해요. 앞으로 베트남에 100만 성도가 세워질 날을 꿈꾸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위해 기도해주세요.” [복음기도신문]

하노이(베트남)=본지특파원

<저작권자 ⓒ 복음기도신문 > 본지 기사는 열방을 품고 기도하는 분들에게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 출처 [복음기도신문]을 밝히고 사용해주세요. 활용하신 분은 본지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연락처:

Print Friendly, PDF & Email

관련 기사

266_4_1 Interview 1(678)
“집사·장로로 구성된 사역팀이 복음을 선포하며 은혜를 누렸어요”
265_1_2 Interview 1(678)
“좌편향된 한국사회, 성경적 세계관으로 회복돼야”
264_5_1 Interview 1(678)
“중동 이슬람 사회에 성령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263_5_1_Interview 2(678)-min
“언제나 맛있는 케익과 기술을 나누는 기업이 되겠습니다”

최신기사

[GTK 칼럼] 다른 이름(1): 모호한 태도의 지도자들
북 억류된 최춘길 선교사 아들 "결혼식에 아버지 오셨으면"
기독 시민단체들, 기독교 능멸한 김성회.고민정.천하람 의원 사퇴 촉구
美, 민주당 후보 지지 거부하는 주류 언론 늘어나
성경 앱 '유버전', 7억 2700만 회 다운로드
[오늘의 한반도] Z세대 취준생 71% “중소기업 취업 합격해도 대기업 재도전” 외 (11/2)
[오늘의 열방]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박해 중단 위한 ‘어라이즈 아프리카’ 캠페인 외 (11/2)
Search

실시간최신기사

jacob-bentzinger
[GTK 칼럼] 다른 이름(1): 모호한 태도의 지도자들
Choi Chun-gil
북 억류된 최춘길 선교사 아들 "결혼식에 아버지 오셨으면"
20241101_Call for resignation
기독 시민단체들, 기독교 능멸한 김성회.고민정.천하람 의원 사퇴 촉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