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4.끝)
주님이 십자가로 가시기 전날 밤, 하늘의 가치를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선생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하늘의 가치로 살아가는 삶만이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능력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혈통이나 육정으로 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삶을 따라 나아갈 수 있습니다. 거듭남은 새 생명 가운데 살아감을 뜻합니다.
주님은 산헤드린 공회원이며 랍비였던 니고데모에게도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는 구경도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는 거듭남의 의미를 이해하지도 못했습니다.
거듭남은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내 죽음이 되도록 나의 존재가 복음 앞에 부딪혀서 완전한 절망에 이르도록 그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거룩한 진리 앞에 서면 인간의 내면 안에 깊숙이 감추어져 있던 실체가 드러나게 됩니다.
진리로 거룩하게 된다는 말은 진리 앞에 선다는 말입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3)”는 말씀과 같이 거듭남을 위해서는 진리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복음을 제대로 들을 기회도 없고, ‘거듭남’이라는 주제를 대충 넘어가고 “영접기도 하라고 해서 했는데, 잘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복음을 정확하게 들어야 합니다. 진리의 말씀,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믿어 죄가 무엇인지, 내가 왜 죄인인지, 왜 행위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는지 정직한 영혼으로 부딪혀야 합니다.
우리가 당면한 한국교회의 위기에 해답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해답은 분명히 있으며, 가까이에 있습니다.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복음의 핵심, 그 중심을 알고 그 앞에 서며 부딪혀 볼 때 우리 안에 개혁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문둥병에 걸린 나아만 장군에게 필요했던 것은 계급장을 떼고, 자존심을 내려놓고 어린아이와 같이 요단강에 몸을 씻는 ‘순종’뿐이었습니다. 소망 없는 죄인의 모습으로 처절하게 망가진 우리가 주님의 추적하심 앞에 정직하게 서서 십자가 앞에 털썩 주저앉아 두 손을 들 때, 그때에야 은혜를 붙들 수 있습니다.
죄인에게 그제야 ‘십자가’ 이것이 복음으로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허망한 야욕, 이생의 자랑, 육신의 자랑을 아낌없이 죽음에 넘기고 예수 생명에 믿음으로 화합하여 나아갈 때 거듭남이 실제되고 구원이 임하게 됩니다. “내가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죽고 내안에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이라…”는 고백이 실제 되는 것입니다.
거룩하게 산다는 것은 세상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삶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세상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살아가게 됩니다. 누구의 말을 듣고 움직이는가를 보면 누구에게 속한 자인지를 알게 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완전한 지침인 성경을 주셨는데 성경에 귀 기울이지 않고 직통계시를 기다리고 눈에 보이는 이적을 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면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내 계명을 지키는 자는 내 사랑을 입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경험하고 싶다면 성경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주님이 벅찬 감격으로 진리로 이들을 거룩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실 때 십자가의 죽음이 가려질 만큼 사모하고 바라신 말씀이 우리가 읽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리셨던 하나님 아버지와의 연합과 교제, 사랑과 하나됨이 성경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으로도 만족할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으로 살고, 위로받고, 구원을 얻게 됩니다. 진리는 우리의 역사를 바꿀 능력입니다. 진리와 운명을 같이 합시다. 복음의 영광을 누렸으면 복음과 같이 고난도 받읍시다. 주님 곧 오십니다.(2013.8)
<순회선교단 대표> 메시지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