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시대, 실패한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도 복음은 드러났다. 그 복음은 소망 없는 모습으로 전락한 이스라엘, 바로 그들을 통하여 메시아를 보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었다. 이 하나님의 언약 속에 오실 메시아의 모형인 보아스가 있었다.
실패한 역사 가운데 드러난 복음
그는 멸망당하기로 작정되었던 여리고 성에서 두 명의 이스라엘 정탐꾼을 숨겨줌으로써 구원의 통로가 되었던 여인, ‘기생’ 라합의 아들이었다. 라합은 오직 믿음으로, 은혜로 얻는 구원을 그녀의 존재와 삶으로 생생하게 보여 주는 복음 자체였다.
그의 어미처럼, 보아스 그의 삶도 ‘다 틀렸다.’던 사사시대에 빛나는 복음 자체였다. 그는 ‘주여, 주여’하면서도 완벽하게 타락했던 사사시대의 한복판에서 조금도 시들지 않은 원색적이며 보석 같은 신앙을 가졌다.
밤이 아무리 깊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던가? ‘나만 홀로 남았다.’며 탄식하고 부르짖던 엘리야의 시대에도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았던 칠천 명을 남겨 두셨던 것처럼, 역사의 주인이신 주님은 반드시 남겨두신 사람들, 교회를 통해 언약을 성취하신다.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에서도 주님의 은총 안에 있었던 사람들의 신앙은 역사 한복판에서 더욱 빛났다. 복음을 가진 교회가 넘어진다 해도 교회는 여전히 교회다. 아무리 실망스럽고 형편없는 꼴을 하고 있을지라도 복음을 가진 유일한 곳이 교회다.
주님은 속히 이 땅에 다시 오신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신부를 향한 불붙는 마음에 주님은 지체하실 수가 없다. 주님은 가장 적합한 시간에 지체하시지 않고 언약을 이루신다.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히 10:37) 비록 더딘 것처럼 보이지만 주님은 결코 지체하시지 않고 속히 이루실 것이다.
보아스 속에 보이는 “고엘” 예수 그리스도
“그 사람이 오늘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 하니라”(룻 3:18b) 보아스의 모습 속에서 잠잠하지도, 쉬지도, 머뭇거리지도 아니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본다(사 62:1). 나오미의 잃어버린 기업을 되찾아 주기 전에는 쉬지 않았던 ‘기업 무를 자’(고엘, goel) 보아스처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죄 가운데 박살 나고 황무지처럼 버려진 우리의 ‘고엘’이 되시려고 마리아의 자궁 속에 ‘여자의 후손’(창 3:15)으로, 완벽한 인간이 되어 오셨다. 그리고 십자가 구속을 이루기까지 쉬지 않으셨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바로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 마치 사사시대를 보는 것 같다. 이때 하나님이 세우신 진정한 왕 다윗이 나타나기까지 복음이 생명이 된 보잘것없는 사람, 죽음 외에는 주님과 갈라놓을 수 없는 룻과 같은 사람들을 사용하셨다. 이처럼 개혁의 횃불을 높이 들고, 하나님의 약속에 운명을 건 사람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싶다. 주님과 함께 죽고 ‘내’ 안에 주님이 사시는 경건의 열망을 가진 이 땅의 라합, 룻, 보아스 같은 사람들을 보고 싶은 것이다(2016.4 메시지 정리). <계속> [GNPNEWS]
김용의 선교사(순회선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