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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 칼럼] 안식일은 ‘선교적(missional)’이다

Unsplash의 Ivy Schexnayder

투지와 근성으로 대표되는 문화에서 성취는 성공의 지표이다. 정해진 시간 내에 더 많은 것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지식 작업, 청소년 스포츠, 시민 활동, 심지어 교회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의 모든 측면에서 영향을 미친다. 우리의 성공 여부는 상사를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심지어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성취했느냐에 달려있다.

대학 복음주의 진영에서 사역한 후 전 세계에 교회 개척자와 선교사를 파견하는 교회에서 사역한 나는 수십 년 동안 선교 운동에 발을 담그고 있다. 선교 운동은 복음을 가까이에서뿐 아니라 멀리까지 전파하고 싶은 강한 열망을 내 속에 심었다. 나는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가에 관해서는 많이 배웠지만, 하나님 안에서 쉬는 것에 대해서는 거의 배운 게 없었다. 오로지 주님 안에서 24시간 쉬는 안식일에 관해서 언급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오늘날과 문화 환경 속에서는 심지어 교회에서조차도 휴식이 목적 달성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오해받는다. 회복할 때까지만 잠시 사역을 멈추고, 회복하면 다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고, 선교사를 파견하는 식으로 다시금 사역에 돌입하는 것이다. 이런 루틴은 안식일에 대한 하나님의 설계가 본질적으로 선교적(missional)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놓친 결과이다. 안식은 증언, 저항, 그리고 정의의 행위이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안식할 때, 우리는 사실상 그와 함께 선교에 동참하는 것이다.

증언의 행위

구약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부르셔서 당신의 능력과 사역에 대한 살아있는 증언이 되게 하셨다. 그들은 자신들이 구현한 습관, 리듬, 의식을 통해 하나님을 증언했다. 이스라엘 언약의 중심에 자리 잡은 핵심 관행이 안식일이었다. 엿새 중 하루 이스라엘은 오로지 쉬고, 기뻐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안식일은 이스라엘이 섬기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주변 국가에 증언하는 행위였다. 그들은 그날 일상의 생산적 가치를 짜낼 필요가 없었다. 대신에 엿새 동안 일할 수 있도록 이레 치를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섬겼다.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주일은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에 주어진 선물이다. 왜냐하면 쉼으로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로 그 증인의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집중하지 못하고, 서두르고, 지친 사람의 모습이 아니다. 우리를 압도하는 과중한 일정으로 가득 찬 미친 세상에서 가장 잘 쉬고 그래서 평안으로 가득 찬 사람이 되는 것이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문화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삶의 중심에 놓은 사람은 두드러지기 마련이다. 바로 안식일의 증인이다. 피곤하고 지친 사람들에게 가서 더 많이 성취하기보다는 와서 쉬라고 초대하는 하나님에 대해서 달콤하게 증언하는 사람이다.

저항의 행위

21세기 그리스도인을 위한 관행으로 논의되는 안식일에 대해서 듣기 몇 년 전, 나는 싱어송라이터 조쉬 개럴스(Josh Garrels)의 노래를 들었다. 그리고 가사가 내 마음에 안식일의 씨앗을 심었다.

나의 쉼은 억압에 대항하는 무기,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인간의 강박관념에 대항하는 무기이다.
좋은 사람들이 어떻게 정권의 일부가 되는가?
그들은 저항을 믿지 않는다.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에게 안식일은 신성한 “아니오”에 발을 들여놓도록 하는 기회이다. 월터 브루그먼(Walter Brueggemann)이 묘사했듯이, 그것은 이 시대의 세력과 권세에 도전하는 저항이며, “유일한 참 왕”에 대한 용감한 복종이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에게 당신을 본받기 위해 안식일을 지키라고 지시하신다(출 20:8~11; 창 2:2~3 참조). 하지만 신명기에서 하나님이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한 이유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무엇으로부터 구원하셨는지 일깨우기 위해서였다(신 5:15). 안식일을 지킴으로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더 이상 파라오의 통치 아래 있지 않고 여호와의 통치 아래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나중에 느헤미야에서 우리는 사회적으로 제정된 “저항으로서의 안식일”을 만난다. “이 땅의 백성이 안식일에 물건이나 어떤 곡식을 내다가 팔더라도, 안식일에나 성일에는, 우리가 사지 않는다”(느 10:31). 소비자 불매운동이 유행하기 한참 전부터 이스라엘은 이미 그 관행을 실천하고 있었다. 안식일에 사고팔기를 거부하는 것은 그들이 세상의 탐욕 경제에 얽매이지 않고 하나님의 희년에 얽매여 있음을 보여주었다.

안식일을 지킴으로 교회는 세상을 향해서 우리는 결코 세상 이야기, 세속적 전제 및 파괴적 방식에 사로잡히지 않았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초과 근무 수당을 지급하면서까지 근무를 일요일까지 연장하지 않는다. 주일에 대한 관심을 틱톡이나 메타가 독점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주일 오후에 수능 대비 수업을 끼워 넣어서 아이들의 영혼을 짓밟지 않는다. 대신에 우리는 안식일을 지킴으로 우리가 인간의 왕국에 저항하고 하나님의 왕국에 온전히 복종한다는 사실을 매주 선포할 것이다.

정의의 행위

고대 근동 사회에는 유급 휴가나 초과 근무가 없었다. 이집트의 압제라는 맥락에서 하나님은 조직도의 맨 위에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반문화적 구제책으로 안식일을 제정했다. 하나님은 집안의 모든 사람이 휴식을 취하도록 명령하셨다(신 5:14). 모든 사람(심지어 동물에게까지)에게 안식일의 회복을 통한 샬롬이 주어졌다. 누군가의 쉼을 빼앗는 것은 이제 불의가 되었다.

오늘날 우리 중 가장 작은 사람들까지도 현대의 파라오에 의해 쉼을 빼앗기고 있다. 24시간 연중무휴라는 문화에서, 모든 사람에게는 쉼이 필요하고 따라서 하나님이 명령한 쉼을 누려야 한다고 보장하는 경계는 찾을 수 없다. 기술은 엄청나게 발전했지만, 역설적으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것을 요구받고 있다. 컴퓨터 앞에서 쉬지 않고 이메일을 확인해야 한다. 택배 기사는 더 잠을 줄인다. 설혹 집에 있는 부모라고 해도 자녀 양육에 대한 비현실적인 온라인 속 모습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항상 불안하고 24시간 내내 불이 켜진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안식일이 마치 장애물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안식일은 순종하는 마음으로 일을 멈추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개인과 교회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정의의 회복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교인들이 업무를 중단할 때 그들과 연결된 다른 사람들도 같이 일을 중단하게 된다. 따라서 하나님은 교회와 관련된 기관에까지 당신의 정의를 공급하신다. A. J. 스보보다(A. J. Swoboda)는 “가난한 사람, 불완전 취업자, 그리고 가사 노동하는 엄마를 위한 안식일은 사회의 건강과 정의에 대한 시금석이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위해서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를 구원하고 구속하신 선교의 하나님(The God of mission)은 동시에 안식의 하나님이시다.

당신에게는 근심과 수고에서 한 걸음 물러나서 매주 그가 주시는 쉼을 맛볼 자유가 있다. 그러니 노트북을 닫고, 휴대폰을 끄자. 그리고 설거지도 내일로 미루자. 여유 있게 교회로 가서 그를 예배하자. 낮잠으로 몸에 활력을 주자. 교인들과 함께 맛있는 식사를 즐기자.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일의 쉼에 들어가라. 지금 내가 말한 이런 평범한 일상을 통해서 당신은 쉼의 충만함은 맛볼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아무 일도 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우리와 세상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신다.

선교적(missional)이고 싶은가? 그렇다면 일주일에 하루는 하나님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되라. [복음기도신문]

출처: How the Sabbath Is Missional

니콜라스 웨이렌스 Nicholas J. Weyrens | 니콜라스 웨이렌스(MDiv, The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는 Sojourn Church Carlisle(South End of Louisville, Kentucky)의 목사이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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