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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희 칼럼] 다시 주께 힘을 얻고

Unsplash의 Jeremy Goldberg

아까부터 교복 입은 여학생이 걷고 있는 우리 부부 곁을 따라오며 멈칫 멈칫한다. 저 학생이 우리에게 할 말이 있어 저러나 생각했지만 무슨 이유가 있겠지 하며 그냥 걸었다. 가던 길을 멈추고 반환해서 다시 걷는데 그 여학생도 반환해서 또 따라온다. 나하고 눈이 마주쳤다. 아침 등굣길인데 몸이 안 좋아서 다시 집으로 가야 하는데 함께 동행하기를 원했다. 남편은 학생이 멘 무거운 가방을 얼른 뺏어 메고는 집이 어느 쪽이냐고 묻고 셋이서 걸었다. 이름이 ‘유우네‘라고 한다. 걷다 보니 우리 집에 가는 길과 같았다. 가는 길이기에 선교팀이 남겨주고 간 초코파이, 말랑카우, 마스크 팩을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잠시 집에 들렀다. 얼른 종이 가방에 연락처와 함께 담아 준비했다. 우리 집 앞 센토(목욕탕)를 지나 놀이터 골목을 들어서니 가까이 집이 있었다. 역에 갈 때나 마트에 갈 때 지나는 길이다. 오며 가며 만났을 지도 모르는 거리에 살고 있었다.

유우네는 걷는 내내 묻는 말에 대답도 잘하고 친근했다. 외국인 아저씨 아줌마인데 무섭지 않냐는 물음에 미소를 머금으며 그렇지 않다고 했다.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그렇게 되돌아 집으로 오는 데 이 상황은 우리 부부의 마음을 신경 써주신 하나님의 위로란 걸 알았다. 다소 상심하고 있던 우리는 다시 주께 힘을 얻었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시편 84:5

조선인 부부가 하는 가게에 갔었다. 5살부터 만났던 조선 아이는 이젠 5학년이다. 부부는 아이 학교를 우리(조선)학교에서 일본 학교로 바꿨다. 언어부터 모든 부분에서 낯설었던 일본 학교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 궁금도 하고 엄마 아빠도 일부러 만나지 않으면 이젠 우리(조선)학교에서 볼 수도 없고 해서 가기 전 날 전화를 했다. 아이와 부부를 생각하며 준비하여 담아 둔 뭉치들을 나눌 부푼 가슴을 안고 시간에 맞춰서 도착했다. 커피도 가서 함께 마시고 싶어 아침 커피도 굶고 갔다. 간만이라서 할 이야기도 많았다. 그런데 벌써 손님이 있다. 아이 아빠는 다른 일이 있어 가게에 못 나왔단다. 손님이 짬이 없게 바쁘게 바쁘게 한다. 우리 부부는 뜨거운 커피만 말없이 마셨다. 얼굴 보고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겨를이 주어지질 않는다. 시간은 그렇게 유유히 흐르고 가만히 앉아 있는 우리 부부가 신경이 쓰이는 것 같아 그냥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아침이다.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앞 집에 사는 여학생도 등교를 하려고 나온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저 아이가 초등학교 어린아이였는데 저렇게 컸네 했다. 그러고는 남편과 나는 서로 같은 마음을 느꼈다.

앞 집을 보아도 옆집을 보아도 우리 조선을 보아도 괜스레 맥이 빠지고 울적한 아침이었다. 사실 요 며칠 그랬다. 10년을 보고 살고 있는데 어쩜 이럴까?

앞 집 아이와 그 엄마가, 아니 이 땅이 어떻게 해도 친해지지 않는다고 투덜거리고 있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조선 엄마들이 내심 서운한 아침이었다. 이 정도 세월을 같이 살았으면 먼저 연락을 줄 법도 하거늘, 가까워졌다고 생각하고 보면 다시 처음 같다. 아무래도 혼자 사랑인가 보다.

그날 아침에 우리 부부는 그렇게도 마음이 산란해졌다.

등굣길이던 ‘유우네‘는 거리에 사람들 중에 우리 부부에게 다가왔다. 여느 날이었으면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겠지만 그날은 우리 마음을 읽어주신 주님의 가르침이었다.

‘아무 관계없는 지나가는 아이도 내가 필요하면 한단다. 왜 상심하느냐.’

조선 아이 엄마와 함께 커피 마시고 많은 이야기를 했든 못했든 뭐 그리 달라질까? 솔직히 내 만족일 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시편 127:1

사실 가장 나쁜 적은 내 안에 있다. 마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더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고는 스스로 상심하고 스스로 만족하기도 한다. 나쁜 일을 하는 것이 아니기에 하나님은 아무렇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시편 말씀처럼 아무리 내가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어도 하나님이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됨을.

지금 나는 여호수아처럼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요단강을 건너기까지 싸움이 아닌 오직 하나님 약속을 신뢰함으로 기다려야 함을.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이 시온의 순례길을 걷는 것은 참 평안이라.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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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희 선교사 | 2011년 4월 동일본 대지진 이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가족이 일본으로 떠나 2014년 일본 속에 있는 재일 조선인 다음세대를 양육하는 우리학교 아이들을 처음 만나, 이들을 섬기고 있다. 저서로 재일 조선인 선교 간증인 ‘주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싶었다'(도서출판 나침반, 2020), 사랑은 여기 있으니(나침반, 2023)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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