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릴 적 동네 친구, 숙경이를 만났다. 오사카 더운 날에 내 친구 정희가 맞냐며 메일이 왔다. 그 어린 시절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벌써 40년이 흘렀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카톡 전화를 했다. 지금 시대는 이렇게나 쉬운 것이 세상이 느리게 가던 그 시절은 이 또한 어려웠다. 그러기에 그때의 졸업식 날에는 그렇게나 눈물이 많이 났나 보다.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아득했으니까. 졸업을 하고 숙경이는 가방도 아닌 보자기에 짐을 꾸려 메고는 학교 운동장에 마중 나온 커다란 어느 회사 버스를 타고 갔다. 세상이 그러했기에 어쩔 수 없다고, 그런가 보다 했다. 그렇게 단짝과 헤어졌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세상을 사느라 이제야 만났다. 만만치 않은 삶 가운데 난 문득문득 숙경이가 생각났다. ‘어떻게 살고 있을까?’ 숙경이 집은 가난한 시절에 더 가난했다. 내 기억에 7남매를 늘 안고 기도하던 숙경이 엄마가 있다. 숙경이가 전화 너머로 대뜸 말한다. ‘우리는 이렇게 지내면 안 되는 거잖아’ 그러고는 내 친구가 선교사가 되었다며 이렇게나 기뻐해 주었다. 숙경이도 권사님이란다. 남편과 세 자녀와 함께 믿음의 풍성한 열매가 가득이다. 난 나의 하나님이 내 친구하고도 이 긴 세월을 함께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좋으신 하나님이 그냥 고마웠다. 만만치 않은 삶이었지만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아 그 선한 힘에 감싸여 살고 있었다. 우린 어디에서 살고 있었든지 같은 하나님 그늘 아래였구나.
한국에 나온 잠시 여정에 숙경이를 만났다. 갑자기 내린 비로 우산도 없이 저 멀리서 서로를 보고 달렸다. 숙경이는 얼굴이 일그러져 울고 있었다.
물어볼 것이 참 많았는데 그저 하나님 안에 살고 있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것으로 내 친구가 너무 아름다웠다.
어릴 적 동네 작은 예배당에 가면 우리 할머니 이야기를 하며 내가 그 손녀라고 기뻐해 주셨던 기억이 있다. 시골에 작고 아담한 교회가 할머니 섬김으로 지어졌단다. 난 그것이 궁금해서 어릴 때 엄마한테 물은 적이 있다. 그때 엄마는 할머니가 몸이 많이 아프셨는데 목사님과 성도들의 기도로 나음을 받았다고 할머니는 하나님께 약속한 대로 교회를 지으셨다고 말씀하셨다.
그 이야기를 하시던 엄마 얼굴이 왠지 편하지 않으셨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때가 이르지 않았기에 나의 부모는 믿음과 상관없이 사셨지만 할머니의 예배는 흘러 내게로 흘렀다. 하나님 안에 더 살아갈수록 난 천국에 계신 할머니가 더 그리웠다. 그리고 왜인지 어릴 적 친구 숙경이를 만나고 온 그날도 할머니의 하나님이 생각나 먹먹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마 12:20)
하나님은 믿음 없어 넘어지고 실패하는 이스라엘이어도 그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셨다. 아무리 타락한 이스라엘이어도 그 심지를 끄지 않으셨다. 바알에게 절하지 않은 엘리야와 남은 자 칠천 명의 기도로 가지를 내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포도나무를 이루게 하신다.
나를 모르거나 처음 가는 자리에서 조선학교 아이들, 재일조선인들의 구원을 나누다 보면 나를 설명해야 할 때가 있다. ‘혹시…’하는 의심을 받을 때도, 검증을 하는 시간도 있다. 나도 이러한데 재일조선인은 어쩌랴! 어느 나눔에서 우리나라와 한국교회가 탈북민한테는 마음을 열고 바라보는 데 아직 재일조선인한테는 그렇지 못하다고 했더니. 탈북민은 완전 탈북을 해서 북을 못가지만 재일조선인들은 아직도 북을 갈 수 있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다고.
그 포도나무를 큰 물가 옥토에 심은 것은 가지를 내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포도나무를 이루게 하려 하였음이라(겔 17:8)
얼마나 다행한 일 아닌가. 우리가 복음 들고 그 땅을 가고 싶지만 그렇게 못한다. 재일조선인들 안에 하나님이 있으면 복음을 들고 저 북녘땅을 갈 수 있다.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아니하는 칠천 명이 그 땅에서 기도할 수 있다. 그 포도나무를 그 땅 큰 물가 옥토 밭에 심을 수 있다. 가지를 내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포도나무숲이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은 이것을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그 어릴 적 시골 예배당에서 나를 보고 기뻐함은 결코 작은 심지도 끄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 작은 자의 예배가 옥토에 심어져 가지를 내고 있음이 감사했던 것.
‘할머니~ 할머니의 예배가 흘러 가지를 내고 열매를 맺어 아름다운 포도나무를 이루고 있어요.’ [복음기도신문]
고정희 선교사 | 2011년 4월 동일본 대지진 이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가족이 일본으로 떠나 2014년 일본 속에 있는 재일 조선인 다음세대를 양육하는 우리학교 아이들을 처음 만나, 이들을 섬기고 있다. 저서로 재일 조선인 선교 간증인 ‘주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싶었다'(도서출판 나침반, 2020), 사랑은 여기 있으니(나침반, 2023)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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