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만에 다시 탄자니아로 향하는 경유지인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3시간째 발이 묶여 있다. 연착도 사고도 아닌 잔지바르로 가는 손님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고작 10명이 안 되는 탑승객 때문에 비행기를 띄울 수는 없다며 나를 태울 수 있는, 즉 승객이 충분히 탑승한 빈 좌석이 있는 비행기를 기다리라고 한다.
3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빈 좌석이 있는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예전에도 경험했던 일이라 그러려니 했다. 이곳은 아프리카가 아닌가? 그런데 24시간 전 집에서 출발했을 때부터 총합 100kg에 가까운 5개의 짐가방과 분투를 하느라 이미 지쳐있던 나는 어쩌면 30시간도 될 수 있었던 기다림이 겨우 3시간만 기다릴 수 있었던 상황에 감사해야 하는데 항공사 측의 처사에 이게 벌써 몇 번 째야 라는 마음까지 들어 화가 나기 시작했다. 무자비한 횡포로 느껴졌다.
그러자 이미 감사와 은혜로 덮어진 줄 알았던 탄자니아에서 마음고생 했던 여러 일이 떠올라지면서 급격하게 피곤이 몰려오더니 내 방 침대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며 두 다리 쭉 뻗고 쉬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2년 전 처음 탄자니아로 향했을 때 품었던 ‘탄자니아의 서서평이 되고 싶다’라는 바람은 이미 바래진 지 오래된 것 같았다. 일평생 고아와 나환자를 섬기며 조선인으로 살아간 조선의 작은 예수 서서평 선교사.
낡은 옷 몇 벌과 반쪽이 된 담요. 동전 일곱 전 그리고 강냉이 두 홉을 남기고 영양실조로 삶을 마감했던 그녀의 삶에 크게 감동하여 탄자니아의 서서평이 되고 싶다는 바람으로 탄자니아를 향했었다.
폐병에 몸이 으스러져도 굶주리는 조선인을 위해 자신을 내던지고 고아 14명을 자녀 삼고 오갈 곳 없는 과부와 한집에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 사랑의 실체가 된 그녀처럼 나 역시 탄자니아의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선교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선교지에서 현지인들과 지지고 볶고 살아가면서 나는 절대 그렇게 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서서평은 고사하고 그저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조차도 매일매일 각오를 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했다.
그러면서 서서평이 되지 못하는 나의 인색한 사랑에, 생명이 되지 못하는 복음에, 절망하면서 어쩌면 서서평이라고 해서 사랑만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위안을 하곤 했었다. 외국인에게 무자비할 정도로 횡포를 부린 조선인에게 그녀 역시 화가 나지 않았을까?
밥 먹듯 약속을 어기고 거짓말하고 속이고 틈만 나면 돈을 요구하는 영혼들을 무작정 사랑하고 용납했을까? 서양 마귀라는 놀림을 받았을 때 미운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사랑을 어떻게 지켰을까? 선교지에서 굶어 죽는 그 무모한 사랑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이라는 정답이 나와 있었는지만 알고 있는 정답의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이 쉽기만 했을까?
지난 나의 과정을 돌아보면 오히려 정답을 알고 있는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이 더 어려울 때가 많았다.
언제나 나의 절망은 내 인생의 실체가 되지 못했던 정답.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사랑’이었다.
선교지로 향하는 비행기 안, 여전히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실체가 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면서 절망한다. 그 절망을 뚫고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린도후서 5:15)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라디아서 2:20)
나의 절망을 말씀이 덮는다. 100kg 짐 무게에 쉽게 지치고, 배려 없는 횡포에 화를 내고, 배신과 거짓에 분노하고, 내 마음 같지 않은 마음에 마음을 닫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는. 나는 당연히 절망스러울 수밖에 없는 존재.
그럼에도 서서평 같은 선교사가 되고 싶은 소망을 품을 수 있는 것은 나의 어떠함이 아닌 예수 십자가의 복음. 하나님의 일하심이다.
한국에서 출발한 지 24시간 만에 도착한 탄자니아. 공항 밖으로 나가는 길 역시 만만치 않다. 까다로운 입국 심사를 거쳐 짐을 찾아 겨우 공항을 빠져나오자 여기저기에서 수많은 택시기사가 호객행위를 하며 나를 잡고 끌어당긴다.
“siku nyingine” (다음에요)를 수십 번을 말하고 나니 저 멀리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동역 선교사님이 손을 흔든다. 그가 마치 복음의 불모지에서 함께 복음과 사랑을 전할 나를 기다리고 있는 예수님 같아서 눈물이 핑 돈다. 비로소 나는 활짝 웃는다.
어쩌면 나는 서서평 같은 선교사는 되지 못할 것이다. 먹는 것에 진심인 나는 굶어 죽어도 좋을 사랑은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자주 나의 사랑 없음에 절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나의 연약함과 절망이 하나님으로 일하게 하실 것이다. 그러니. 서서평 같은 선교사가 되고 싶은 소망 따위는 잊어버리고 하나님만 소망하자.
마침내 탄자니아에 왔다!! [복음기도신문]
김봄 | 기록하는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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