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크나큰 구원을 입은 이스라엘. 그들은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 40년 생활을 합니다. 광야의 척박하고 어려운 상황을 맞닿을 때마다 드러나는 이스라엘의 원망과 불평. 물론, 광야 길은 거칠고 땅은 척박하였습니다. 그러나 고생과 어려움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시간은 어디에서도 누릴 수 없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와 축복이 가득한 현장이었습니다. 죄의 종으로 옛 자아의 노예근성으로 가득한 그들의 마음 가죽을 벗기셨습니다. 그리고 진리로 결론 내리게 하시는 가장 완벽한 성령의 학교가 바로 광야 40년이었습니다. 이렇게 놀라운 기회를 얻고도 깨닫지 못해 그들은 죽어 넘어졌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시 49:20)
보이는 상황 때문에 불평과 원망을 하십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뜻을 바라보며 감사하는 자로 서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왕 다윗은 일평생 이 사실을 굳게 붙들었습니다. 그는 늘 자신이 이스라엘 왕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사실을 기억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영광을 경험 할 때마다 주님이 하셨음을 고백 하였습니다. 왕이 되었을 때에 그는 제일 먼저 진정한 왕이 누구신지를 상징하는 법궤부터 옮겼습니다. 자신의 필요를 위해 사용하며 모독했던 이전 왕과는 달리 모든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24시간 쉬지 않고 감사의 예배를 드리게 했습니다. 이때 감사의 직임을 맡은 자를 따로 세웠습니다. 이 직임이 얼마나 중요했던지 포로 귀환 시 느헤미야도 종교개혁을 하는 동안 이 직임을 회복하게 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삶을 어떻게 구원하셨고, 인도해오셨는지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더욱 바라보는 것입니다. 삶이 바빠서 자칫 은혜를 잊고 사십니까? 감사는 그 은혜를 되찾게 해줍니다. 또 그냥 지나쳤던 모든 것이 다시 살아서 능력이 되고 힘이 되게 해줍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고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라.” (시136편)
그렇다면 삶의 위기를 지날 때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이스라엘의 멸망 이후 이들은 비참하게 매 맞고 굶주리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을 무엇보다 비참하게 만든 것이 있습니다. 다가올 미래에 대한 소망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설상가상 그런 이스라엘에게 어느 날 페르시아의 권력자이자 반유대주의자인 하만이 등장합니다. 그의 궤계로 이스라엘은 아예 멸절당할 위기를 맞습니다. 세상의 권력 앞에 이스라엘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다만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순간을 지나던 에스더는 눈앞에 보이는 현실에 주눅 들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이기는 편에 섰고, 반드시 승리 할 것으로 믿었습니다.
악인은 스스로의 지혜로 악함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은 오직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결국 모든 것이 씨줄과 날줄로 엮어져 하나님의 뜻이 이뤄짐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도 이기는 편에 서 있습니까? 아니라면 영원한 이김의 자리, 십자가의 자리로 피하십시오. 완전한 죽음에서 완전한 새 생명의 자리로 나오십시오. 하나님의 편에 선 자, 이기는 편에 선 자만이 미래를 감사로 맞이할 수 있습니다. 승리가 이미 주어진 사람은 지지하게 사람이나 외부 상황에 놀라지 않습니다. 미래를 담대히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이기는 편에 선 사람입니다. 이 사람만이 감사로 주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진리 편에 서게 하신 이에게 감사합시다. 나 죽고 예수 그리스도로 살게 하신 이에게 감사합시다. 선교완성의 주역에 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합시다. 영광의 그날을 기다리는 신부 되게 하신 분께 감사합시다. “이기는 편에 서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할렐루야! – 메시지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