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떠난 지, 32시간 만에 시에라리온에 도착했다.
시에라리온의 유일한 국제공항인 룽기공항은 국제공항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열악했다.
한국의 작은 도시 시외버스 터미널보다 못한 편의시설에 화장실 사용도 쉽지 않았다. 공항 직원들은 무엇을 물어볼 때마다 지폐 세는 흉내를 내면서 팁을 요구했다.
나는 시에라리온에 입국한 모든 외국인이 팁을 주는데 나만 모르고 있는가? 싶어 당황했다. 내가 팁을 주지 않자, 그들은 노골적으로 나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냈다. 사진을 찍지 않았는데도 핸드폰을 압수하려고 해서 핸드폰의 사진첩을 확인시켜주고서야 겨우 핸드폰을 지킬 수 있었다. 나의 핸드폰이 오래된 구형이라서 돌려받을 수 있었지, 최신형이었다면 뺏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명색이 국제공항이 이렇게 무법천지라니.
‘우리나라에 왔으니 우리 말 들어!’ 라는 강요를 당하고 있는 불쾌감 때문에 나는 그만 마음이 상해버리고 말았다. 팁을 거절한 덕분에 나는 이유 없이 기다렸고, 불친절을 감내해야 했다.
그들의 부당함에 단호하게 맞서고 싶었지만, 곳곳에 총을 들고 서 있는 군인들의 위엄에 그만 기가 질려버렸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그들의 총에는 총알이 없었다.)
5달러면 만사가 편할 일이다. 하지만 이미 마음이 상해버린 나는 단 5센트도 주기 싫었다. 여러 나라 다녔지만, 이런 오만한 태도의 현지인들은 처음이었다.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불쾌해진 나는 ‘뭘 믿고 갑질이지? 뭐 대단한 나라라고’라며 그들을 비난하고 싶었다. 그러자 마음은 더 불편해졌다. 그들을 비난하고 싶은 나의 마음 저변에 깔린 지독한 교만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미국이나 중국 같은 강대국에서 팁을 요구했다면, 어쩌면 문화라고 생각하고 팁을 주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부끄러웠고, 미안했다.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나라의 국민이 느끼고 있는 울분을 자신의 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억지와 불법을 자행해서라도 풀고 싶었을까? 좀 잘 산다고 무시하지 말고 시에라리온 왔으면 시에라리온 법을 따르라는, 그들만의 조언이었을까? 어쩌면 시에라리온만의 환영 인사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나 역시 나의 교만을 발견하고, 어깨에 들어간 힘을 뺄 수 있었으니, 이런 경험도 감사로 받기로 했다. 격렬한 환영을 받았다면 나는 나의 편견과 교만을 확인하지 못했을 것이다.
차를 타고 3시간을 달려 숙소에 도착했다. 앞으로 내가 살게 될 동네는 마욜로라는 작은 마을이다. 마을 곳곳에 우물이 있고, 초등학교도 2개나 있으며 중·고등 학교도 있다.
마을 공동체에서 운영하는 초등학교에는 유치원도 있다.
마을 사람들은 부지런히 일하고, 일주일에 하루, 장도 선다.
몇 년 전 선교사님이 세운 교회의 교인들은 혜택을 받기도 한다.
마을 주민 80%가 무슬림이고, 팀니종족이다. 영어와 함께 팀니언어를 사용하며, 무슬림의 영향을 받아 일부다처제고 아이를 많이 낳는다.
카사바 농사를 짓고 고구마, 파, 땅콩 같은 농작물을 재배하며, 일주일에 한 번 열리는 장에서 튀김, 야자열매, 고구마, 바나나, 파인애플 등을 팔면서 생계를 유지한다. 옷을 지어 만드는 재봉사들도 꽤 있다.
오토바이를 타고 10분 정도 가면 ‘마부루카’라는 좀 더 큰 마을은 없는 곳 빼고 다 있다. 배 불리 먹지는 못해도, 풍족하지는 않아도,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아프리카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가난이다. 헐벗고 굶주린 아이들, 아프고 죽어가는 사람들, 그들 곁을 떠나지 않는 파리 떼들. 더러운 물과 가뭄으로 갈라진 땅, 참혹한 내전이 남긴 잔해들. 그런 이미지들이 아프리카를 대변하고 있다.
도움이 필요한 나라, 외면하자니 마음이 불편하고 직면하자니 부담스러운 대륙, 총체적 난국인 아프리카.
하지만 선진국의 모든 이들이 잘 살지 않듯이, 아프리카 모든 이들이 굶주리지는 않는다. 비교하면 가난하지만, 비교하지 않으니 자족하면서 사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가난으로만 치부되기엔 우리는 아프리카에 대해 너무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이곳에 있는 동안 너무 모르는 나라를 배우는 자가 되어야 할 것 같다.
마침내 나는 시에라리온에 도착했다.<계속> [복음기도신문]
*이 칼럼은 필자의 저서 <작지만 피어있는 꽃들>에서 저자의 허락을 받아 발췌, 게재합니다.
김봄 | 기록하는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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