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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남 칼럼] 대체신학 이슈와 새 예루살렘 연구(2)

Unsplash의KHAWAJA UMER FAROOQ

-통곡의 벽과 세 그룹을 중심으로-

목차

I. 들어가는 말
II. 통곡의 벽과 관련된 세 그룹
1. 이슬람교
2. 유대교
3. 예루살렘 중심적 기독교
III. 새 예루살렘 중심적 기독교
IV. 나가는 말

II. 통곡의 벽과 세 그룹

통곡의 벽으로 대표되는 예루살렘의 옛 성전터의 가치는 세 그룹에게 절대적이다. 그들은 곧 유대교들과 이슬람교도(무슬림)들, 그리고 대예기(대체신학 이슈를 제기하는 예루살렘 중심적 기독교인들)이다.

1. 이슬람교

통곡의 벽으로 대표되는 성전터의 현재 주인은 이슬람교도(무슬림)들이다. 이에 대한 이슬람의 주장을 살펴보고자 한다.[1]

1) 기도의 첫 방향으로서 예루살렘

“끼블라”는 이슬람에서 무슬림들이 기도하는 방향이라는 뜻의 아랍어이다. 이슬람의 첫 끼블라는 예루살렘이었다.[2] 무함마드는 그의 추종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끼블라로 하여 하루에 다섯 번씩 기도하였다. 구약의 선지자 다니엘은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면서 예루살렘을 끼블라로 하여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였다. 무함마드는 그의 추종자들과 더불어 예루살렘을 끼블라로 하여 이슬람 태동 때인 주후 610년부터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는 약 13년 후에 끼블라를 예루살렘에서 메카로 바꾸었다. 그 이유는 이슬람력(“히지라”력)의 탄생과 관련이 깊다. 주후 622년 7월 16일이 이슬람력 원년 1월 1일이다.

“히지라”는 우리 말로 ‘이주’라는 뜻의 아랍어이다. 무함마드는 메카의 우상숭배자들의 위협을 벗어나기 위하여 메디나로 이주하였다. 그는 메디나의 유대인들이 자신을 구약의 선지자들 중의 하나로 받아 줄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1년 반 동안 그들을 설득하고 포섭하려고 노력하였지만 아무런 성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그를 대적하는 유대인들을 무력으로 정복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는 끼블라를 예루살렘에서 아라비아 반도에 위치한 메카의 카으바로 바꾸었다. 그 이유에 대하여 질문하는 자들에게 그는 다음과 같은 궁색한 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너희가 그 전에 향했던 기도의 방향(예루살렘)을 지정했나니, 이는 선지자를 따르는 자와 따르지 않는 자를 구별하자 함이라. 그것은 알라의 인도를 받지 못한 자들에게는 커다란 시험이나 하나님께서 너희의 믿음을 좌절시키지 아니했으니 알라는 실로 온 인류에게 사랑과 자비로 충만한 분이시라(꾸란 2:143하).[3]

이슬람의 하디스[4]에 따르면, 메카에서 한 번 기도하면 다른 곳에서 기도한 것 보다 십 만 배의 효과가 있다. 그리고 메디나에서 기도하면 1천배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기도하면 500배의 효과가 있다.[5] 예루살렘은 이슬람의 3대 성지로서 메카와 메디나 다음으로 여전히 중요한 도시이다.

2)무함마드의 예루살렘까지 밤 여행

이슬람의 전승에 따르면, 알라(Allah)가 무함마드에게 밤에 하늘 여행을 통해 예루살렘에 기적적으로 다녀오도록 하였다. 아랍어로 이 여행을 알이스라(alisra)라고 한다. 이에 관련한 세부 내용들이 무함마드의 언행록인 하디스에 기록되어 있다. 하디스에 따르면, 그는 예루살렘에서 여러 선지자들을 만나 함께 예배를 드렸다. 그의 예루살렘 여행에 대한 간략한 내용이 꾸란 17:1에 기록되어 있다.

알라의 종을 밤중에 하람 사원에서 알아크사 사원으로 밤하늘 여행을 시킨 그분께 영광이 있으소서. 그곳은 알라가 축복을 내린 이웃으로 알라의 일부 표적들을 보여주고자 함이라. 실로 알라는 들으시며 지켜보고 계시니라.[6]

무슬림들은 알아크사 사원이 곧 예루살렘의 성전 터에 세워진 알아크사 사원이라고 믿고 있다. 사실, 무함마드 당시에 그 성전 터에는 유대인의 성전이 파괴되고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하디스에 따르면, 무함마드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아브라함을 비롯한 여러 선지자들과 함께 알아크사 사원에서 알라에게 예배하였다. 그는 예루살렘의 알아크사 사원에서 알라의 표적들을 보여주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의 추종자들로 하여금 그 표적들이 무엇이었을까 궁금히 여기도록 만든다.

3)무함마드의 승천 지점으로서 예루살렘

이슬람 전승에 따르면, 무함마드는 자신이 환상 가운데 예루살렘만 방문한 것이 아니라 하늘까지 방문하여 알라를 만나 보았다(꾸란 53:8-15).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꾸란 53:8-15의 사건을 꾸란 17:1의 사건과 하나로 묶는다.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예루살렘의 알아끄사 사원을 거쳐 천국까지의 여행을 아랍어로 알미으라즈(almi’raj)라고 한다. 이슬람력 7월 27일은 무함마드의 승천 기념일로서 이슬람권의 공휴일이다.

하디스에 따르면, 무함마드를 맞이하기 위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왔던 그 선지자들을 천국에서 다시 만나 보았다고 한다. 첫 번째 하늘에서는 아담을 비롯하여 천국에 들어갈 사람들과 지옥으로 들어갈 사람들을 보았다. 두번째 하늘에서는 야히야(세례 요한)와 이사(예수)를 만났다. 그리고 세 번째 하늘에서부터 여섯 번째 하늘에서는 요셉, 이드리스(에녹), 아론, 모세를 각각 만났다. 그리고 일곱 번째 하늘에서는 아브라함을 먼저 만나고 그의 안내를 받으며 알라까지 만났다. 따라서 무함마드가 예루살렘과 하늘에서 각각 만났던 선지자들은 아브라함을 비롯하여 모세, 이드리스, 요셉, 요한, 예수, 아담 등이다. 특별히, 아브라함은 그에게 예배 방법과 횟수에 대해 지시하였다. 예배의 횟수가 50번이었지만, 무함마드의 탁월한 협상을 통해서 그 횟수를 5번으로 줄였다는 것이다.[7]

4)무슬림들의 신앙고백문(샤하다)

이슬람에 따르면, 무함마드가 예루살렘을 거쳐 하늘까지의 여행을 통해 알라와의 만남을 통해서 그가 이슬람의 최대 사도(메신저)로 확정되었다. 그리하여, 알라 이외는 다른 신은 없고 무함마드는 알라의 메신저(사도)라는 이슬람의 샤하다(신앙고백문)가 탄생되었다. 즉, 이슬람의 태동지는 메카이지만, 이슬람의 샤하다(신앙고백문)의 탄생지는 예루살렘인 셈이다.

5)바위 돔

무함마드가 죽고(주후 632년) 5년 후였다. 제2대 칼리파(후계자) 오마르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정복하였다(주후 637년).[8] 오마르는 예루살렘의 성전터를 직접 방문하였다. 그리고 그는 거기에 있는 바위 하나를 중심으로 건물을 세우도록 명령하였다. 이슬람의 전승에 따르면, 그 바위에서 무함마드가 승천하였으며, 그 바위에 그의 발자국이 남겨져 있다. 현존하는 바위 돔(Dome of Rock) 건물은 오마르가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60년 이상이 지난 후에 건축된 것이다(압둘 말리크, 주후 686-705). 그는 이집트에서 걷은 세금의 7년치에 해당하는 돈을 바위 돔에 배정했다.[9] 이는 이슬람의 건물들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 바위 돔 건물에 대하여 “예루살렘 전기”의 저자 몬티피오리는 이렇게 말한다.

돔 자체는 천국이며 인간의 건축물을 통한 신과의 연결이었다. 황금 돔과 화려한 장식, 빛나는 대리석은 그곳이 새로운 에덴이며 최후 심판의 장소, 즉 압둘 말리크와 우마이야조가 마지막 날에 왕국을 신에게 봉헌할 장소임을 선언했다…. 또한 그 그림들은 에덴의 관능성과 다윗과 솔로몬의 위엄을 결합시켰다… 황금 돔은 이슬람 황제로서 그의 영광을 나타냈다…. 따라서 압둘 말리크는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이슬람의 탁월한 참신함을 경험할 수 있게 했다.[10]

모든 이슬람 사원의 바닥에는 카페트가 깔려 있다. 이는 무슬림들이 엎드려 기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 바위 돔 안에는 카페트는 없고 바위 밖에 없다. 무슬림들은 그 바위에서 무함마드가 승천하였으며, 그 바위에 그의 발자국이 남겨져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 바위 돔은 바위를 모시고 있는 건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건물은 사원이 아니라 사당(祠堂 Shrine)이다. 압바스조의 만수르가 그 돔의 금과 은을 녹여서 이 바위 돔 가까이에 위치한 알아크사 사원 보수 공사를 하였다(A.D. 754~775).[11] 훗날, 압바스조의 마문이 돔의 금을 훔쳤다. 그리고 그는 그 돔에 있는 압둘 말리크의 이름을 지우고 자기 이름을 넣었다(A.D. 831). 그리하여 천년이 넘도록 회색 납빛으로 남았었다.[12] 그 돔에 황금을 다시 입혔던 사람은 현재 요르단 왕국의 왕 압둘라의 부친 후세인 왕이다.[13] 그는 그 비용을 그의 영국에 있는 별장을 매각한 돈으로 마련하였다(A.D. 1960).[14]

6)알아크사 사원

예루살렘 성전 터에는 바위 돔과 더불어 또 하나의 중요한 건물이 있다. 이는 곧 알아크사 사원이다. 바위 돔에서 남쪽으로 40미터 떨어진 곳에 주후 810년경에 세워졌다. 이 사원은 바위 돔과 달리 지금도 무슬림들이 매일 예배하는 곳이다. 무슬림들은 이 사원이 꾸란 17:1절에서 언급된 “알아크사 사원”이라고 믿고 있다.[15] 이 장소는 솔로몬 행각이 있던 곳으로 여겨진다. 이 알아크사 사원이라는 단어는 바위 돔을 포함한 성전 터 전체를 일컫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16] 그리하여, 이 사원은 무슬림들에게 메카와 메디나에 이어 세 번째로 거룩한 지역으로 인식된다. 무슬림 순례자들은 하지 때 행하는 메카의 카으바 주위를 도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바위 돔의 주위를 돌며 순례를 행하기 시작하였다.

유럽의 기독교는 예루살렘 성전터를 탈환하기 위하여 십자군 전쟁을 일으켰다(11세기 말- 13세기까지, 8회). 1099년에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최초로 정복하였다.[17] 십자군은 이슬람의 바위 돔에 십자가를 걸어 놓고 그 용도를 교회당으로 변경하여 사용했다. 그리고 88년이 지난 1187년에 이슬람의 장군 살라딘이 십자군을 물리치고 예루살렘을 탈환하였다.[18] 그리하여 바위 돔 위에 있던 십자가는 사라지고 이슬람의 상징인 초승달이 그 위에 세워졌다.

1948년 5월 14일에 이스라엘이 건국되었다. 이스라엘은 1967년 6월 6일에 시작된 전쟁으로 성전터가 포함된 동 예루살렘 등을 점령했다. 그러나 알아크사 사원과 바위 돔은 요르단 하쉼 왕국에 의하여 여전히 관리되고 있다. 2000년 9월에 이스라엘의 극우 리쿠르당 당수 아리엘 샤론이 예루살렘의 성전 산을 방문하였다. 그리고 그는 2001년 2월에 이스라엘의 수상이 되었다.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에 대한 봉기(인티파다)가 일어났다.[19] 2001년 9월 11일 미국의 심장부를 강타한 9·11 테러사건이 일어났다. 이 테러를 주도하였다고 자처하는 오사마 빈 라덴이 테러를 범하기 약 2년 반 전인 1998년 2월 23일에 자신을 포함한 5명의 이름으로 “유대인과 십자군에 대한 성전을 촉구하는 세계 이슬람 전선 선언”(Jihad Against Jews and Crusaders/World Islamic Front Statement)을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미국과 그 동맹국 사람들 – 군인은 물론 민간인도 포함 – 을 죽이는 것은 이를 이행할 수 있는 국가에 있는 모든 무슬림의 의무로서, 예루살렘의 성전 산에 있는 알아크사 사원을 그들의 지배로부터 해방시키고 그들의 군대를 이슬람의 모든 영토에서 몰아내고 패배시켜 더 이상 무슬림들을 위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20]

9.11 테러 3주년을 맞이하여 쿠웨이트 정보부 장관을 지낸 언론인 사드 빈 테플라 박사가 런던의 아랍어 일간지 알 샤르낄 아우사트에 “우리는 모두 빈 라덴이다”라는 글을 기고하였다. 그의 글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빈 라덴이 전 세계 이슬람교도들에게 준 피해, 특히 서양에 사는 이슬람교도들에게 준 피해가 아주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 라덴의 설교…를 막는 대신에 앞 다투어 그것을 방송했다… ‘우리는 처음부터 빈 라덴이다’라는 인상을 전 세계에 남겼다”[21] 

여기서 우리는 이 시대 통곡의 벽으로 대표되는 예루살렘 성전 산에 있는 바위 돔과 알아크사 사원이 전 세계 무슬림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곳으로 여겨지고 있는지를 엿볼 수가 있다.

7)알라의 최후 심판 날

알라의 최후 심판은 이슬람의 6신(六信) 중 하나이다.[22] 이 심판 날 모든 인류가 알라의 최후 심판을 받는다. 그때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육체적으로 부활한다(6:12; 45:26; 17:13; 19:95; 21:47; 22:17; 23:14-15; 29:25; 32:25; 45:17; 60:3; 75:6). 그리고 이슬람의 최후 심판 시나리오는 예루살렘의 성전 산이 배경이 된다. 이슬람이 예루살렘의 성전 산을 중심으로 한 묵시(아포칼립스) 지리학을 창조했기 때문이다. 이 성전 산이 바로 이슬람의 최후 심판 날에 알라와 인간이 만나는 장소이다. 악의 힘은 예루살렘의 황금 문 앞에서 무너진다. 언약궤가 지켜보는 가운데 유대인들은 이슬람으로 개종한다. 최후 심판 날에 아라비아 반도에 위치하였던 메카의 하람 사원의 카으바가 예루살렘으로 온다. 그런데, 이 카으바는 메카로 순례를 한 적이 있는 모든 무슬림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온다.[23]

이슬람의 경전인 꾸란은 총 11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4장이 곧 아브라함 장이다. 꾸란의 아브라함은 이 14장을 비롯하여 12개의 장에서 소개되고 있다(2,3,4,6,7,9,11,15,21,26,37,87). 그리고 아브라함의 아들 제사에 대한 기사는 37:100-113에서 소개되고 있다. 아브라함의 아들 제사에 대한 성경과 꾸란의 공통점들[24]과 상의점들[25]이 있다. 성경에는 그 아들의 이름이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 이라고 언급되어 있다(창22:2). 한편, 꾸란에는 아들로만 소개되어 있다(꾸란 37:101,102). 꾸란 37장 문맥 연구를 통해 그 아들이 이삭으로 입증되기도 한다.[26] 그러나 이슬람 전승에 따르면 그는 이스마엘이다. 꾸란의 아브라함은 제물의 정체에 관하여 그의 아들과 이렇게 대화하였다.

“내 아들아, 너를 제단에 올리라는 명령을 내가 꿈에서 보았노라. 너의 생각이 어떤지 알고 싶구나”(꾸란 37:102a)

“아버지 당신께서 명령을 받은 대로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인내하는 종으로부터 원하신다면 당신께서 저를 발견할 것입니다”(꾸란 37:102b).

꾸란은 아브라함이 아들 제사에 대한 알라의 명을 받은 직후부터 아들과 함께 의논하였다. 그리고 그들 모두 다 그 명령에 순종하였다. 그리하여 알라의 칭찬을 받았다.

“그 둘이서 알라께 순종하고 그는 그로 하여금 그의 이마를 숙이도록 하였을 때, 알라는 그를 불러 아브라함아 그대는 이미 그 꿈을 이행하였노라. 알라는 이렇듯 선을 행하는 자들에게 보상을 내리니라”(꾸란 37: 103-105).

이렇게 하여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이 최초의 무슬림이 되었다는 것이 이슬람의 주장이다(참조, 꾸란 2:136). 아브라함이 아들 희생제사에 대한 알라의 명령에 대하여 그의 아들과 함께 순종하였다(꾸란 37:103). 이 “순종하였다”라는 동사의 명사형이 “이슬람”이며, 그 동사의 능동분사형이 “무슬림”으로 “순종하는 (자)”이다. 꾸란 3:67에 따르면, 아브라함은 유대인도 기독교인도 아닌 성실한 무슬림이다. 꾸란의 아브라함의 아들도 성경의 이삭처럼 제물이 될 뻔만 하였고 실제로 제물이 되지 않았다. 그것은 알라가 친히 대체제물을 제공하였기 때문이다. 꾸란은 이 대체 제물을 “위대한 제물”이라고 밝히고 있다(꾸란 37:107). 그러나 이 제물의 정체에 대해서 꾸란은 침묵한다. 한 꾸란 주석에는 이 제물이 천국에 있는 한 마리의 양이며, 천국에서 40차례의 가을을 거쳐 길러진 살찐 것이라고 나온다.[27] 다른 주석에는 그 양이 위대한 것은 알라께 두 번에 걸쳐 바쳐졌기 때문이다. 그 바친 자들은 아담의 아벨과 아브라함이라고 나온다.[28] 이 땅에서는 아벨이 제물을 바친 때로부터 아브라함이 제물을 바친 때까지의 아주 긴 세월이지만, 천국에서는 40년밖에 되지 않는 셈이다. 그렇다면, 천국에 있던 그 양이 어떻게 아브라함의 손에까지 전달되었는가? 어느 아랍 민속 이야기가 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답을 한다.

한 천사가 이스마엘을 대신하는 훌륭한 희생제물에 대한 알라의 선포를 듣자마자 아라비아 반도 메카의 제단 위에 올려진 이스마엘을 구하기 위하여 하늘에서 천국에 있는 양을 급히 가지고 날아왔다. 그 배달 속도가 심히 빨라 그 양의 털이 다 빠지고 말았다. 그 빠진 양의 털이 하늘에 휘날려 푸른 하늘 은하수가 되었다.[29]

꾸란에도 아브라함의 아들을 위한 대체 제물이 등장하였다. 그러나 그 대체제물의 정체가 무엇인지 또한 그 실체가 밝혀지지 못한 가운데 일어난 여러 해프닝들이다. 그 정체에 대해서는 이 글의 “통곡의 벽과 유대교”에서, 그 실체에 대해서는 이 글의 “새 예루살렘 중심적 기독교”에서 자세히 다루고자 한다.

이슬람에서 순례 또는 순례자를 아랍어로 “핫즈”라고 한다. 그리고 이슬람력 12월을 아랍어로 “둘 핫즈”(순례의 달)라고 한다. 이슬람의 5주(기둥)’가 있는데, “핫즈”가 그 중에 하나이다. 순례 기간은 이슬람력 12월 8~10일이며 마지막 10일이 희생 제사를 드리는 날이다. 이 날 어린 양을 비롯한 이슬람에서 허용하고 있는 짐승을 알라의 이름으로 희생시켜 알라께 드린다. 이 희생 제사의 기원이 바로 아브라함의 아들 제사이다. 바로 이 제사에서 “에이들 아드하”(희생 축제)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이것이 곧 이슬람의 최대 축제 또는 명절이다. “핫즈”(순례자)가 되어 기도하면, 어느 다른 곳에서 보통 때 기도한 것보다도 10만 배의 효과가 있다는 이슬람 교리가 있다. 메카의 하람 사원이 수용할 수 있는 최대 인원이 250만 명 정도가 되기에, 사우디 아라비아 정부는 국가별로 인원수를 할당하여 준다.

궁극적으로 최후 심판 날에 모든 핫즈(순례자)들이 하람 사원의 카으바와 함께 현재 통곡의 벽으로 대표되는 예루살렘의 성전터로 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통곡의 벽으로 대표되는 이 성전터와 그 터에 자리잡고 있는 바위 돔과 알아끄사 사원은 무슬림들에게는 본질적이며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1] 이 단락은 필자의 『이슬람과 메시아 왕국 이슈』, (서울: CLC, 2009)의 제2장 예루살렘 중심적 이슬람권과 『ACTS 중동연구 2017』에 발표된 “예루살렘 중심적 종교들과 새 예루살렘 중심적 기독교”의 <예루살렘 중심적 이슬람>이 수정되고 보완되었다.

[2] 최영길, 『성 꾸란 의미의 한국어 번역』, (사우디아라비아: 파아드 국왕 꾸란 출판청.1999), 39.

[3] 이 글에 소개되는 꾸란의 구절들은 『성꾸란 의미의 한국어 번역』에 기초하면서, 성경과 구별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알라”로 필자에 의해 수정되었다.

[4] ‘하디스’는 무함마드의 언행을 기록한 것으로 꾸란에 버금가는 권위로 간주되며 이슬람 역사 발전과정에서 중요한 요소가 된다. Chawkat Mocucarry, 『기독교와 이슬람의 대화』, 한국 이슬람 연구소 역 (서울: 예영 커뮤니케이션, 2003), 70-71.

[5] 최영길, 『이슬람 문화』, (서울: 도서출판 알림, 199), 182

[6] 최영길. 『성 꾸란 의미의 한국어 번역』, 502.

[7] Mark A Gabriel, 『기독교 vs 이슬람』, 192; 최영길, 『이슬람 문화』, 70.

[8] Gregory Harms, The Palestine Israel Conflict, Gregory Harms, (London: Pluto Press, 2005), 32-34.

[9] 사이몬 시몬 시백 몬티피오리, 『예루살렘 전기』, 유달승 역, (서울: 시공사, 2012), 316.

[10] 사이몬 시몬 시백 몬티피오리, 『예루살렘 전기』, 318-319.

[11] 사이몬 시몬 시백 몬티피오리, 『예루살렘 전기』, 326.

[12] 사이몬 시몬 시백 몬티피오리, 『예루살렘 전기』, 328.

[13] 요르단이라는 나라의 공식 이름은 The Hashimite Kingdom of Jordan(HKJ)이다. Hashim(하쉼)은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의 증조부다. 요르단 왕가가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부각시키는 가운데, 그 왕권의 정통성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요르단의 왕 압달라는 무함마드의 40대 손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14] 1994년 백악관 잔디밭에서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 이스라엘의 라빈 수상 그리고 요르단의 후세인 왕이 중동평화 회담을 개최하였다. 그 회담이 끝난 후 진행된 기자회견 때, 후세인 왕이 “우리는 다 같은 아브라함의 자손들”라는 말로 그의 연설을 시작하였다. 그 “우리”는 후세인 자신으로 대표되는 아랍인들(더 나아가서, 이슬람권 사람들)과 라빈 수상으로 대표되는 이스라엘인들이었다.

[15] 최영길, 『이슬람 문화』, 182.

[16] 최영길, 『이슬람 문화』, 182.

[17] Gregory Harms, The Palestine Israel Conflict, 36.

[18] Gregory Harms, The Palestine Israel Conflict, 37.

[19] Gregory Harms, The Palestine Israel Conflict, 170.

[20] 이 선언의 영어 전문은 인터넷 www.fas.org/irp/world/par/docs/98023-fatwa.htm에 있다. 영국 런던에서 발행하는 아랍어 신문 알-꾿드스-알아라비아, 1998년 2월 23일자에 실렸다. 여기서 알 꾿드스는 아랍어로서 그 뜻은 예루살렘이다. 그 선언문을 발표한 주인공들은 오사마 빈 라덴을 비롯하여 다음과 같다. Shaykh Usamah Bin-Muhammad Bin-Ladin; Ayman al-Zawahiri, amir of the Jihad Group in Egypt; Abu-Yasir Rifa’i Ahmad Taha, Egyptian Islamic Group; Shaykh Mir Hamzah, secretary of the Jamiat-ul-Ulema-e-Pakistan; Fazlur Rahman, amir of the Jihad Movement in Bangladesh.

[21] 토마스 L. 프리드먼, 『세계는 평평하다』, (서울: 창해, 2006), 696-697.

[22] 꾸란에는 알라의 심판 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날은 보상을 받는 날”(3:185), “지구가 변하고 인간들이 모이는 날”(18:47-49), “인간들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나팔이 울려 퍼지는 날”(18:99-101), “나팔이 울리고 죄인들은 공포에 떠는 날”(20:102-104), “하늘이 두루마리처럼 말아 올려지는 날”(21:104), “거짓 신앙이 폭로되는 날”(25:17-19), “하늘이 갈라지고 천사들이 하강하는 날”(25:25-26; 82:1), “정의가 실현되는 날”(36:51-54), “서로가 이별하는 날”(30:14), “중재가 필요 없는 날”(40:18), “하늘이 용해되어 구리처럼 되는 날”(70:8), “친구의 안부를 물을 수 없는 날”(70:9), “태양이 빛을 상실하는 날”(81:1), “별들이 떨어지는 날”(81:2), “산들이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날”(82:4; 100:9-11), “대지가 산산 조각이 나는 날”(89:21), “지옥이 보이는 날”(89:23), “천국이 보이는 날”(89:30). 최영길. 『성쿠란 의미의 한국어 번역』, 1317-1318.

[23] 사이몬 시몬 시백 몬티피오리, 『예루살렘 전기』,12-13, 321

[24] 아브라함의 아들 제사에 대한 성경과 꾸란의 공통점들: ① 하나님/알라의 시험사건(창22:1a /꾸란37:106), ② 하나님/알라의 명령(창22:1b/꾸란37:102a). ③ 아브라함의 순종(창 22:15-18/꾸란37:103), ④ 대체제물(창 22:11-14/꾸란 37:107), ⑤ 순종하여 복을 받음(성경: 창 22:15-18/꾸란 37:108-111).

[25] 아브라함의 아들 제사에 대한 성경과 꾸란의 상이점들: ① 제물로 드려진 아들, ② 대체제물의 정체와 실체, ③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시험의 의도, ④ 아들을 제물로 바친 장소, ⑤ 아들 제사에 대한 오늘 날의 기념과 염원. 이들에 대해서는 정형남의 “아브라함의 아들 제사에 대한 성경과 꾸란의 비교 연구” 『ACTS 세계선교연구』 2012년 제2호)를 보라.

[26] 신성윤, “유대교와 이슬람교 문헌 비교 연구: 아브라함의 이삭/이스마일 번제 사건 본문 연구를 중심으로” 『한국중동학회논총』 2011, 제31-3호, 149.

[27] 최영길. 『성꾸란 의미의 한국어 번역』, 844.

[28]أبو حيان الأندلسي، محمد بن يوسف, البحر المحيط في التفسير (주석의 넓은 바다), (Beirut, Da:r al-Fikr, 1992), 제9권, 118.

[29] 최영길, 『이슬람 문화』, 174.

[복음기도신문]

정형남 | 전 아신대학교(ACTS) 선교대학원 교수 및 GMS 아랍권 선교사(천안장로교회 파송. since 1989). 그의 책으로 『이슬람과 메시아 왕국』CLC, 2009)과 아랍권 및 이슬람권 선교와 관련된 여러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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