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학교에서 일할게 될 일은 없겠지?’ 생각했는데 가까운 고등학교에서 일주일에 2시간 시간 강사로 독서수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지난 월요일, 체육을 진로로 정한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교실에 들어가면 무슨 이야기로 말문을 열까 고민했는데 막상 들어가서는 어렵지 않게 소통할 수 있었어요.
수업 전날 딸과 함께 밤샘작업으로 만든 40개의 문장이 첫 만남에 요긴하게 쓰였습니다. 학생들은 좋아하는 쪽에 동그라미를 쳐주었고, 저는 아이들에게서 받은 종이를 살펴보다가 마음이 그만… 따뜻해지고 말았습니다.
나는 외식보다 집 밥이 좋다. 나는 친구보다 가족이 좋다. 나는 비 대면보다 대면이 좋다. 나는 화장한 얼굴보다 쌩얼이 좋다. 나는 렌즈보다 안경이 좋다. 나는 유행하는 옷보다 편한 옷이 좋다. 나는 혼자 있는 것보다 함께 있는 것이 좋다. 나는 비오는 날보다 해가 쨍쨍한 날이 좋다. 나는 카톡/문자보다 전화가 좋다. 나는 사람의 스펙보다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1교시는 오프닝으로 인생의 봄과 겨울을 이야기했어요.
꿈의학교에서 마음을 열 때 사용하던 툴이 이번에도 통했습니다. 인생에도 사계절이 있고, 굴곡이 있음을 말하자 고개를 숙이고 있던 학생들의 목이 길어지더라구요. 2교시는 동화책 한 권을 돌아가며 읽었는데 마스크로 인해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또박또박 책을 읽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스포츠 지도가 꿈이라는 태권도가 4단인 다영이, 박지성 선수에게 장학금을 받았다며 쑥스러운 듯 웃는 축구선수 동민이, 그리고 동민이를 모태 솔로라며 놀려대던 영환이, 제일 앞자리에서 두 눈 크게 뜨고 경청해준 승훈이, 수업 내내 웃어준 소흔이와 채영이, 아이들 표정 하나하나가 왜 그리 고맙게 느껴지던지…
모자를 쓴 채로 가끔씩 고개를 들어주던 민우는 제 마음에 콕 박혔습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언젠가 남편이 들려준 말이 다시 떠올랐어요.
“여보, 선생을 한자로 풀이하면 먼저 태어난 사람이거든. 먼저 선(先)에 날 생(生)이잖아. 그런데 먼저 태어났다고 다 선생일까? 뒤에 ‘님’자를 붙여서 선생님으로 존경받으려면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할까?”
존경까지는 아니어도 먼저난 사람으로서 학생들에게 어떤 가치를 전해야 할까, 독서수업에서 수많은 책을 읽은들 아이들을 살아 숨 쉬게 하는 역동이 없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싶은 맘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수업이 지식적 동의에서 끝나지 않고, 삶으로 이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이번 수업에서 ‘생명의 가치’를 전해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교실에 들어가기 전에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아이들이 상처도 많고, 열등감도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그래서일까요? 문득 요즘 제가 키우는 고구마와 아이들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습니다. 지난 겨울 물병에 담가둔 창가의 고구마… 멀쩡한 상태가 아니어서 상처 난 부분을 잘라내고 빈병에 물을 붓고 넣어두었는데 놀랍게도 무성한 잎을 피워내더군요. 어디서 그렇게 푸른 이파리들이 나오는지… 물을 갈아줄 때마다 상처 난 고구마의 생명력에 놀라곤 합니다.
영환, 동민, 소흔, 채연, 다영, 민우, 태영, 지용, 민기, 진석, 원섭, 정환, 승훈… 첫 수업에 결석한 아이들까지 제가 물을 주어야할 학생은 열아홉 명입니다. 생명이 있는 것은 반드시 자라나게 되어있는데 끊임없이 자라는 고구마의 이파리처럼 저는 올해 수업에서 이 아이들이 푸르게 피어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복음기도신문]
지소영 | 방송작가로 오랫동안 활동하다 2013년부터 서산에 위치한 꿈의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현재는 학교와 교회를 중심으로 가정예배와 성경적 성교육 강의를 하고 있다. 결혼한 이후 25년간 가족과 함께 드려온 가정예배 이야기를 담은 ‘153가정예배’를 최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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