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호 / 나는 기도하리라 (2)]
시대가 암울할 때, ‘소망이 없다. 다 끝났다.’고 말하는 그 때 하나님은 뭘 하고 계실까?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에 있을까?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사사시대는 역사상 가장 참담하고 암울했다. 그러나 다 꺼져가던 등불 같았던 이스라엘의 맥은 이후 왕정시대로 이어진다. 거의 끊어진 역사의 고리를 이었던 자들은 제사장 가문이 아니었다. 마지막 희망일 것 같았던 엘리 제사장의 가문은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더 타락했다. 그와 그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저주를 자청하고, 이스라엘의 마지막 희망마저 꺼버리는 미친 짓을 했다. 레위 지파도, 이스라엘 각 지파마다 존재했던 장로들도 역사의 고리를 이어가지는 못했다. 율법이 규정한 제도(制度)도, 혈통도 그대로였지만 그 속에 생명력은 전혀 없었다.
‘주여, 나만 남았나이다.’라고 탄식했던 엘리야 선지자에게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아니한 7000명을 내가 남겨 놓았다.’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사람들의 눈에 전혀 띄지 않는 일을 행하고 계셨다.
에브라임의 산간지방에 있는 라마다임에 간신히 경건의 명맥을 이어가던 한 집안에, 그것도 그 집안 식구 중에 제일 불행한 주인공이 된 한 여인이 있었다. ‘풍성한 은혜’라는 뜻의 이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한나’라는 이름을 가진 이 여인은 특별한 이유도 없이 아이를 낳지 못했다. 고대(古代) 이스라엘에서 아이를 못 낳는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저주받은 것으로 여겨졌다.
‘풍성한 은혜’라는 의미와 다른 삶을 산 한나
다른 여인들은 기도 안 해도 잘 낳는 아이를, 아무리 기도하고 부르짖어도 한나는 낳을 수 없었다. 한나는 괴로운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가 흐느껴 울면서 기도했다(삼상 1:10). 외롭고, 고통스럽고,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고, 그 누구도 도와줄 수 없었어도 한나는 홀로 가련하게 믿음을 지켰다.
정말 불의한 시대, 그 소망 없던 역사의 한 복판에 어떻게 이런 신앙을 가진 여인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아무리 믿음의 사람이라고 해도 본성적으로 주님만 사랑하는, 본래부터 영적인 사람이 존재할 수 있을까? 결코 없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지도자들이 전부 타락했고,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했던 성막을 모두가 등지고 살던 사사시대 한복판에서 한나가 지니고 있던 신실한 믿음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났다.
그러기에 인간의 모든 절망의 터 위에서 육적인 사람들이 ‘이제 끝났어요, 안돼요, 다 틀렸어요.’라고 말할 때 교회인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다! 교회는 역사의 희망을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인간의 계산과 통념(通念)과 상식이 끝난 자리에서 하나님이 하실 일을 믿는 믿음으로 모든 절망을 이기고 어둠을 뚫어내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바로 교회인 것이다. (2018년 1월) <계속> [복음기도신문]
김용의 선교사
(순회선교사. LOG미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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