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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K 칼럼] 진리가 무엇이냐?

Unsplash의 alex-shute

우리는 “이상한 신세계”에 살고 있다. 지난 파리 올림픽에서 알제리 출신 이마네 칼리프가 여자 복싱 66kg급 경기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땄다. 문제는 의료 보고서에 따르면 그가 생물학적인 남자라는 것이다. 남자가 여자 경기에 출전하는 것은 공정한 것일까? 스스로 여자라고 주장하면 그걸로 여자가 되는 걸까? 성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야기, 과연 진리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하고 싶다. 십 년 전으로만 거슬러 올라가도 남녀를 구분하는 것은 생물학적인 사실이었다. 남자인가 여자인가라는 판단을 객관적인 사실(reality)을 근거로 내렸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객관적인 사실은 완전히 무시된다. 주관적인 의견(opinion) 또는 감정(feeling)이 무엇이 진리인지를 말해주는 가장 강력한 기준이 됐다. “진리가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하여 과거엔 객관적 사실을 찾으려고 함께 연구하고 토론했다면, 이제는 각자가 생각하는 바를 주장하면서 가장 감성적으로 대중을 자극하고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려고 노력한다. 왜 이런 생각의 전환이 일어난 것일까?

1. 진리가 무엇인지 탐구하는 과정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

인기 있는 밈 같은 것이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가면서 유행을 만들어내듯이, 시대마다 작게는 개인의 생각하는 방식과 전제를 변화시키고 크게는 세계관을 새롭게 형성하게 만든 천재적인 사상가들이 있었다. 가령 찰스 다윈은 사실 과학자이기 전에 철학자라고 부를 수 있는데, 그는 만물이 저절로 우연에 의하여 생겨났다는 믿음을 인류에게 심어주는 데 성공했다. 그러면 진리를 탐구하는 방식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사상가는 누구일까? 우리는 칸트와 헤겔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칸트는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인 생각을 구분하고 후자에 조금 더 권위를 실어야 한다고 주장한 철학가다. 예를 들어 보겠다. 눈앞에 어떤 관찰 대상이 있다. 관찰자들은 그것을 보고 듣고 만져보고 느껴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에 관하여 각자 이성적으로 판단한다. 그러면 ‘진실’은 눈앞에 있는 대상이 가지고 있는 객관적 사실인가 아니면 그것을 관찰한 결과를 바탕으로 각자가 내린 이성적 판단인가? 칸트는 후자라고 본다. 우리는 근현대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가지고 칸트의 생각을 지지할 수 있다.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또 얼마나 확신할 수 있는가? 무엇을 근거로? 우리가 유일하게 그리고 절대적으로 확신할 수 있는 존재는 바로 나 자신이다. 내가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은 객관적인 사실에 두면 안 된다. 그보다 더 확실한 나의 이성에 두어야 한다. 이마네 칼리프는 객관적인 사실(생물학적 정보)로 보면 확실히 남성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권위를 갖는 이성이 ‘여성’이라고 판결하는 순간, 객관적인 사실은 즉시 부정되고 진리는 ‘그는 여성이다’가 된다(인본주의).

하지만, 많은 사람은 이성적 판단을 내릴 때 객관적인 사실을 근거로 한다. 그래서 ‘그는 남성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런 말을 하면 안 되는 세상이 된 것일까? 그것이 왜 진리가 아니라 거짓인 것처럼 취급받는 시대가 된 것일까?

칸트가 진리를 규정하는 왕좌에 이성을 앉혔다면, 헤겔은 이성을 끌어내리고 그곳에 사회를 앉혔다. 무슨 말인가? 헤겔은 우리의 이성이 객관성을 가진 판단을 내릴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똑같은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우리가 속한 사회마다, 우리가 겪은 역사적 배경과 문화적 요소의 차이 때문에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본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란 개인의 이성이 규정할 수 없는 것이 된다. 개인이 속한 사회-문화적 배경과 역사의 흐름 안에서 진리는 새롭게 재해석되어야 한다. 헤겔은 객관적인 사실로부터 진리를 더 멀리 떨어뜨리는 데 성공했다. 객관적 사실을 판단하는 이성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이제는 그 이성에 영향을 미친 여러 가지 사회적 요소를 따져보고 진리를 논해야 한다(다원주의, 상대주의). 이후에 등장한 사상가들 가령 마르크스 같은 인물은 사회를 움직이는 (정치-경제적) 기득권이 개인의 이성적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고 봤고, 결국 이마네 칼리프 같은 사람이 남성인지 여성인지를 논할 때, 정통 사회의 기득권이 성별 기준을 정해놓고 차별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이 이성적으로 판단한 것 또한 그 영향을 받아 변질된 것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말을 들어봤는가? 왜 ‘칼리프는 남성이다’라고 말할 수 없는가? 기득권에게 유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당신의 이성이 내린 판결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이 불공평한 사회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칼리프는 여성이다’라는 의견을 지지해야 한다. 그것이 곧 진리다.

칼 트루먼은 오늘날 비판 이론의 뿌리로 칸트, 헤겔, 마르크스 등을 차례로 분석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진리의 보통 기준인 현실과의 부합 여부는 무의미하다. 중요한 것은 그 관념이 현 상태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세상을 혁명 실현으로 기울어지게 하느냐는 것이다”(칼 트루먼, <세상을 바꾸려는 비판 이론> 부흥과개혁사, 2024, 71p).

2. 진리가 무엇이냐는 질문과 무엇이 옳으냐는 질문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진리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답을 찾는 방법을 인식론이라고 하고, 무엇이 옳으냐는 질문에 답하는 학문은 윤리학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진리를 인식하는 방식은 반드시 도덕과 윤리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가령 태아를 언제부터 사람으로 인식하는가는 결국 낙태의 시기와 정당성을 결정하는 윤리적, 도덕적 기준을 제공한다. 태아가 사람이 아니라면 언제든 낙태하더라도 양심의 가책을 받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태아가 사람이라면 낙태하는 것은 살인으로 엄중하게 처벌하는 것이 옳다. 결국 진리가 정의를 결정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마이클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2005년에 서울대에 초청되어 강연한 적도 있는 샌델은 무엇이 옳으냐는 질문에 여러 철학적 접근으로 답변을 시도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주장한 공리주의, 개인의 행복을 최대한으로 만족시키는 것이 옳다고 본 자유 지상주의, 모두가 평등한 것이 옳다고 본 사회주의 등 다양한 답변의 장단점을 분석한 샌델은 결국 무엇이 옳은지에 관한 절대적 기준이 필요하다고 결론 내렸다. 만삭 때까지 마음껏 낙태를 허용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 최대한의 유익을 가져다주면 낙태가 옳은 것인가? 그렇지 않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개인이 가장 큰 행복을 누린다면 낙태는 옳은 것인가? 그렇지 않다. 정의는 그런 기준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정의는 옳고 그름을 나누는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으로 결정된다.

마이클 샌델의 주장은 진리를 탐구하는 인식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개인이 가장 행복하면 그것이 진리가 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 구성원의 최대 다수가 행복하면 그것이 진리가 되는 것도 아니다. 진리는 객관적인 사실과 부합하는 것이고 다른 말로 하면 절대적인 기준을 만족시키는 것이다. 조던 피터슨이나 벤 샤피로 같은 인사들이 기독교인이 아니면서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이와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정신 차리라고 호소한다. 객관적인 사실과 부합하는 진리를 탐구하라고. 그렇게 올바른 방식을 내팽개치고 자기 이성 또는 사회에 절대적인 권한을 내주지 말라고 요청한다. 그것이 오늘날 사회를 도덕적으로 얼마나 이상한 신세계로 만들어버렸는지 알라고 경고한다.

3. 진리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기독교는 어떤 답을 줄 수 있는가?

‘진리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수많은 답이 있을 수 있다. 결국 모든 답변엔 절대적인 기준이 존재한다. 칸트는 이성이, 헤겔은 사회가 그 왕좌에 앉았다. 불가지론자들은 ‘모른다’라는 의견에 절대성을 부여하고, 과학을 맹신하는 자는 과학을, 종교인은 각자 자기 종교를 진리를 판단하는 절대적 기준으로 삼는다. 심지어 절대적인 기준은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다원주의, 상대주의 지지자들은 방금 그들이 주장한 그 명제를 절대적인 원칙으로 삼는다. 요컨대 모두가 가장 밑바닥엔 ‘믿음’이라는 것을 가져야 한다. 무엇이 진리를 탐구하는 기준이 되어야 하는지에 관하여 우리 모두는 신앙심을 갖는다.

성경은 하나님을 절대적인 존재로 믿는다. 성경이 곧 진리를 인식하는 절대적 기준이다. 성경은 우리가 눈으로 보는—절대 스스로 생길 수 없는—복잡한 생명체를 하나님이 만드셨다고 주장한다(창 1:1; 롬 1:20). 만들어진 것이 있다면 만든이가 있다.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사람의 실패는 그 객관적 사실을 자기 이성으로 부정하는 데서 시작됐다.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을 보면서 그 안에 담긴 신성과 능력에 감탄하면서도 ‘와! 그냥 우연히 생긴 이것들을 봐, 참 아름답고 대단해!’라고 말하는 것으로 진리에서 멀어졌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기준대로 진리를 인식하며 옳고 그름을 가늠하는 이들에게 ‘당신은 종교가 주입한 정보로 인하여 이성적 판단이 흐려진 상태야’라고 비방한다. 그런 비판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 다만, 거꾸로 자기 인식과 정의가 어떤 기준으로 규정되는지 스스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은 어떤 (절대적) 기준으로 진리를 인식하고 있는가? 어떤 근거로 ‘정의란 무엇인가?’에 답하고 있는가? 이것은 절대로 무시하거나 가볍게 여길 질문이 아니다. 당신이 믿고 의지하는 절대적 기준은 반드시 당신 개인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당신이 속한 사회를 변화시킨다.

스스로 “내가 곧 진리”라고 말씀하신 분이 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요 14:6). 그는 진리 곧 하나님의 절대 기준을 밝히고 가르치고 보여주고 성취한 분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진리가 무엇이냐?”라는 질문은 사실 빌라도가 죄수의 신분으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십자가형을 내리기 직전에 물었던 질문이다. 안타깝게도 빌라도는 예수님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밖으로 나가버렸다(요 18:38-39). 나는 당신에게 그 대답을 들어볼 것을 요청한다. 지금껏 예수 그리스도의 대답을 듣고 진리를 탐구하며 정의를 실천한 이들이 그들의 삶과 주변 사회를 얼마나 아름답고 선하고 정의롭게 변화시켰는지 입증해 줄 사례가 셀 수 없이 많다. 물론 말로만 예수를 따른다고 하고 불의한 삶을 즐기는 가짜도 많다. 하지만 참 진리를 알고 그 진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들은 다르다. 그들과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라. 그리고 그들이 믿고 따르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를 바란다. 그러면 당신은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확신을 가지고 “진리가 무엇이냐?”에 관하여 담대하게 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복음기도신문]

조정의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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