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 핵심에 해당하는 리더들이 가장 헌신적일 것이라고 보통 생각한다. 어떤 면에서는 사실이기도 하다. 게다가 그들이 급여까지 받는다면, 비록 운영 방식에 불만이 있어도 계속 머무를 가능성이 더 크다. 하지만 그 경우에는 순전히 생계 문제 때문이다. 그렇기에 떠나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의 마음이 조직에 있다는 건 아니다. 생계 문제를 예외로 칠 때, 건강하지 않은 리더십이 지배하는 사역 현장에서 가장 먼저 떠나는 사람은 리더십을 구성하는 팀의 일원인 경우가 많다. 왜일까? 그들은 리더십을 판단하는 눈을 가지고 있기에 조직의 문제를 가장 먼저 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리더십은 중요한 문제이기에 제대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는 리더를 만날 때 가장 먼저 좌절하기 때문이다.
리더십을 구성하는 팀에 속한 사람이라면 조직을 잘 이끄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안다. 그래서 그들은 어려움을 겪는 팀 리더에게 동정심을 가지기 마련이다. 리더에게 피드백을 제공하고 해결책을 제안하고 싶어 한다. 성숙한 구성원은 호의적인 피드백을 제공하고 실질적인 해결책과 지원까지 제공한다. 하지만 팀 리더가 제대로 경청하지 않는 경우, 결국에 핵심 리더들, 즉 동역자 중 많은 사람이 포기하고 떠날 것이다. 그 결과 귀를 닫은 리더의 경우에 아부꾼들로 구성된 작은 동맹 정도는 꾸려갈 수 있을지 모르나 결코 건강한 리더십에 기반을 둔 팀은 유지할 수 없다.
건전한 리더들이 떠난 자리에 무엇이 남을까? 추종자들만 남는다. 그리고 조직의 성장성은 금세 한계에 도달할 것이다. 당신이 수준 낮은 아첨꾼으로 넘치는 조직에 만족한다면 문제 될 건 없다. 수시로 새로운 리더를 영입해서, 사용하고, 또 소진시키는 악순환이 괜찮다면, 그래서 추종자들로만 넘치는 조직도 괜찮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당신이 정말로 주도권, 현명한 장기적 결정, 건강한 사역 문화가 있는 팀을 원한다면 진정한 동역자들로 구성된 팀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떤 역학관계 때문에 동역자들이 떠나는 걸까?
지나친 리더십 때문에 동역자를 잃을 수 있다
이것은 조직 리더십에 재능이 강한 사람이 받는 유혹이다. 그들은 비전이 있고, 전략적이며, 목적이 있고, 또 의도적이다. 그런 리더십 아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명확하게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지시적 리더십의 강점이 다른 기술 및 가치와 균형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에는 도리어 약점이 된다. 결단력은 완고함이 되고, 권위는 권위주의가 되고, 구조는 억압적으로 바뀌며 격려조차도 조작으로 변질된다.
이런 경우에 무엇이 잘못된 걸까? 그들을 지나치게 강인한 사람으로 만든 하나님의 실수일까? 문제는 그런 리더를 움직이는 동기가 무엇인가이다. 경건한 야망은 좋은 것이다(딤전 3:1). 하지만 불안, 자존심, 통제 및 해결되지 않은 출신, 가족 문제 등이 근저에 깔려있다면, 야망에 대한 동기를 면밀하게 조사하고 처리해야 한다. 자기 속에 잠재된 치명적인 결함을 제대로 직시할 수만 있다면, 그들은 조직 리더십에 꼭 필요한 사람들이 될 수 있다. 자신의 약점, 자기 인식, 그리고 회개로 겸손해질 수만 있다면, 그들은 자신과 다른 다양한 기질과 기술을 가진 사람들의 지혜와 은사에 대해서 더욱 감사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곁에 두신 사람들을 다스리기보다는 동역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부족한 리더십 때문에 동역자를 잃을 수 있다
조직 운영을 비롯해서 세상만사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리더들도 있다. 그들은 타고난 성향이 남에게 간섭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최상의 경우, 그들은 잠재적 동역자들을 키우는 놀라운 리더가 될 수 있다. 성숙함과 재능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누군가의 삶을 충분히 지켜보고, 그들을 동역자로 임명한 후에는 그들이 자신의 주도권, 전략, 재능을 개발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과 시간까지 제공한다. 그들이야말로 인내심을 가지고 동역자를 키우는 지지자인 셈이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에 방임주의 경영 방식은 게으름이 된다. 감독 받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끼기 시작한다. 사업 방향의 명확성, 우선순위 및 협업의 촉진, 그리고 적극적인 멘토링 및 피드백은 누구나 높이 평가한다. 따라서 적극적인 리더십이 실종될 때, 사역에는 구멍이 뚫리기 시작하고 목적과 생산성은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 결과 무목적성과 방치에 좌절한 동역자들은 가장 먼저 침몰하는 배에서 뛰어내릴지도 모른다.
상사의 인내심(자질)이 수동성(문제)이 되어버린다.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한다는 구실로 책임지지 않는 리더가 되어버린다.
당신이 생각하는 게 해결책이 아니다
그럼 간섭하는 게 자연스러운 리더가 덜 간섭하는 게 가능할까? 손을 놓고 있는 게 자연스러운 리더가 일일이 챙기는 게 가능할까?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우리는 나와 반대되는 리더십 스타일을 가진 사람에게서 배울 수 있고 또 배워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다른 사람이 될 수는 없는 법니다.
각 유형의 리더는 대체로 자신이 타고난 강점과 약점을 유지한다. 다른 유형이 되려고 아무리 발버둥 해도 기껏해야 초라한 모방자가 될 뿐이다. 약점을 고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약점이 강점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약점이 조금 개선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결코 정반대의 재능과 기질을 가진 사람의 자연스러운 강점처럼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당신의 약점에 대한 새로운 냉정함과 당신의 강점과 함께 따라오는 유혹에 대한 진지한 경계심, 더불어서 당신과 정반대의 재능과 기질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진정한 감사함에서 시작한다.
태도가 바뀐 후에는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을까? 교회의 관리 구조가 어떠하든, 당신과 반대되는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리더십 균형 유지에 관해서 권한이 부여된 비공식 자리(offsider)에 임명하는 게 하나의 방법이다. 조직도와 관계없이, 그 사람의 관점을 고려하고 또 재능을 활용하는 데 있어서만은 당신이 분명하게 책임을 지는 것이다. 리더십 구조에 관계없이, 달리 말해서 명목상으로는 그 사람이 당신 아래에 있다 하더라도, 그를 파트너로서 대우하는 것이다. 물론 비전과 가치라는 측면에서는 당신과 일치하는 사람이어야만 한다. 하지만 동시에 당신과는 매우 다른 사람이어야만 한다. 그리고 실제적인 권한까지 부여해야 한다. 그리고 당신은 그 사람을 신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 그래서 그가 당신의 리더십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도록 허용해야 한다. 심지어 다른 사람들이 알아차릴 정도로까지 말이다. 특히 당신이 관장하는 자원봉사 동역자들인 경우에는 그 사실을 더 똑똑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이제 당신과 함께 하는 동역자들은 더 이상 과도하거나 부족한 리더십으로 고통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에 탁월한 리더십 아래에 있다고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떠날 계획을 세우는 대신에 교회를 더 사랑하게 될 것이다. [복음기도신문]
로스 보우먼(Ross Bowerman) | 로스 보우먼은 기독교 학교에서 수십 년째 과학을 가르쳤고, 지금은 마케팅 에이전시로 일한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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