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와 부활의 복음 (2)
디오드레베, 그는 ‘자기 자신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자’라는 이름을 가진 자였다. 공동체의 지도자가 된 이후부터 그는 항상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싶어했다. 십자가에 정면으로 충돌하여 부서져야 할 강한 지배욕과 허영심을 가진 자였다. 그는 기독교의 복음을 신학적, 지식적으로는 동의했지만 자신의 삶 안에서는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것은 복음이 자신에게 실제(實際)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믿음으로 복음에 참여하지 않았다.
복음은 생명으로 받아야 한다. 생명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존재가 바뀌지 않은 사람은 복음을 도구로 쓰게 되고, 생명을 만난 사람을 보면 견딜 수가 없다. 디오드레베가 그랬다. 믿음이 좋은 척 위장했지만, 지도자의 위치에 오르자 어느새 본색을 드러냈다. 악한 말로 순회복음전도자들을 비방하기 시작했다.
데메드리오 vs 디오드레베
데메드리오, 그는 모든 자들에게 칭찬받는 순회복음전도자였다. 복음이 생명이 된 자였다. ‘나’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는 생명의 증인이었다. 복음에 정면으로 충돌하고 나면 주님이 전부가 된다. 복잡하게 말장난하지 않는다. 멋있고 세련돼 보이는 허탄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진리에 대해 아주 단순하고 분명해 진다. 그리스도의 증인이 된다.
데메드리오와 같은 증인들 앞에서 자신의 거짓이 드러난 디오드레베는 그를 비방하고, 급기야 내쫓았다. 뿐만 아니라 순회복음전도자들을 도우려는 다른 교인들도 억압하였다. 디오드레베의 이러한 행위는 단순한 분파주의의 행태 정도가 아니었다.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 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뵙지 못하였느니라”(요삼 1:11)
그의 악함이 순전한 복음전도자들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 드러났다.
교회는 태생적으로 밖으로는 환란과 시련과 박해를, 안으로는 분열을 겪는다. 음침하고 우울한 소식이 온 세상을 덮어오는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과 축복이 필요하다. 가이오의 복을 빌었던 사도 요한의 메시지를 통해 이 시대를 이기고도 남는 주님의 축복이 충만하게 임하기를 바란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1:2)
이 복을 받은 가이오, 그는 복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요삼 1:3~4) 그는 진리 안에서 행하는 자였다. 복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주신 복이 우리 모두를 비켜가지 않기를 바란다. 축복과 진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반드시 나타나는 것은 믿음의 행함이다. (2015.7 메시지 정리) <계속> [GNPNEWS]
김용의 선교사(순회선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