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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GTK 칼럼] 그리스도로 충분한 기독교(7): 성령님으로 충분합니다

사진: Unsplash의 Jessica Da Rosa

성경: 요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22 가룟인 아닌 유다가 이르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24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25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웬디 카미너가 쓴 “나는 기능장애이다, 당신은 기능장애이다”라는 책은 현대 심리학의 비법을 폭로한다.[1] 저자는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사실 그녀는 그 자신을 “회의적이고, 세속적인 인도주의자, 유대인, 페미니스트, 지적인 변호사”[2]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종교와 심리학의 결합을 혹평하고 있다. 그녀는 종교와 심리학은 항상 서로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해 왔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제 “단지 휴전하는 정도가 아니라 놀랄 만하게 화합”을 보았다.[3] 불신자인 그녀의 관점에서조차도, 이 화합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전하는 근본적인 메시지를 변형시키는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종교적 저술가들은 종교에 미치는 심리학의 영향을 과소평가하거나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런 영향력이 교리적 변화를 가져오게 하지는 않았다고 강하게 부인하지만, 종교적인 가르침의 색깔이나 포장에 영향을 준 것처럼 보인다…. 텍사스에 있는 미너스-마이어 클리닉에서 출판되는 것과 같은 기독교의 동반 의존에 관련된 책은 특별히 일반 저술가에 의해서 발간된 동반 의존에 대한 책과 별반 차이가 없다. … 종교적 저술가들은 일단의 영원한 진리를 적용했다고 높이며, 심리학에 대한 그들의 의존을 정당화하지만, 그들은 또한 심리학의 일시적인 진리를 마음에 들게 만드는 방법을 발견한 것이다. 한때 종교적 지도자는 그 도덕적 중립성 때문에 정신분석을 비난했다. … 이제 대중적인 종교적 책들은 죄와 질병을 동일시하고 있다.[4]

카미너가 복음주의자에 대해 지적했던 비판의 일부는 근거가 없거나 오도된 것이지만, 이러한 관점에서 그녀는 정곡을 찔렀다. 복음주의가 세상의 인류학, 심리학, 신학에 의해서 적잖은 영향을 받고 있다. 이러한 타협의 결과로 교회는 선포해야 할 메시지를 손상했고 절망적으로 뒤섞어 버렸다.

심리학과 세상의 치료는 일단의 기독교인의 사고에 성화의 역할을 빼앗아갔다. 심리학적인 성화가 성령 충만한 삶을 대신하게 되었다.

그러나 심리치료가 성령님이 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이룰 수 있는가? 세상의 심리치료사가 천상의 위로자보다도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는가? 행동 수정이 성화보다 더 도움을 주는가? 물론 아니다.

위로자

사람의 내적인 필요를 채우시며 활동하시는 성령의 역할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님이 처음 성령을 보내신다고 약속하셨을 때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던 것을 살펴보아야만 한다. 그것은 예수님의 배반당하셨던 날 밤에 일어났다.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것이 가까워져 왔고, 제자들은 두려움과 혼란에 빠져 있었다. 예수님이 떠나가는 것에 대해 그들에게 이야기했을 때, 그들의 마음은 근심했다(요 14:1). 그런 혼란의 시간에 그들은 홀로 남겨진다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그냥 남겨 두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놀랄 만한 약속으로 그들을 위로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 14:16-17)

16절의 “보혜사”는 헬라어 ‘파라클레토스(parakletos)’인데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도움을 청한다는 의미가 있다. 요한일서 2:1은 같은 용어를 예수님에게 적용했다.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파라클레토스)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이 단어는 가끔 영어로 “위로자”로 번역된다.

그것은 영적인 시중을 드는 자를 설명하는 것이고, 그의 역할은 도움, 구조, 지원, 위안, 지지, 안내를 제공하는 것이다. 신자에 대한 하늘 상담자의 사역은 그렇게 많은 사람이 심리 치료요법을 통해서 헛되게 구하고 있는 바로 그것들을 제공하고 있지 않은가!

예수님이 성령과 그분의 사역에 관련해서 제시하신 약속은 그들의 관점에서는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본문의 핵심이 되는 부분들을 살펴보자.

하늘이 내린 돕는 자

“또 다른”(알로스)으로 번역된 단어가 성령의 속성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이다. 헬라어 본문은 즉각적으로 영어로 이해할 수 없는 세밀함을 담고 있다. 영어로 “또 다른”이라고 번역될 수 있지만, “과자가 맛있네요. 더 줄 수 있나요?”할 때의 “같은 종류에서의 또 다른 것”이라는 의미가 있다.

예수님은 성령을 묘사하기 위해 알로스를 사용했다. “[같은 종류의] 또 다른 (알로스) 보혜사.” 그분은 자비로우시고, 사랑이 많으시며 하늘이 내린 위로자인 그분과 같은 돕는 자를 제자들에게 보내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그들은 그들에 대한 예수님의 돌보심에 많이 의존하고 있었다. 그분은 놀라운 모사, 선생님, 지도자, 친구이셨고 그들에게 하늘 아버지를 드러내 주셨다. 그러나 이제부터, 그들은 예수님이 채워 주셨던 같은 필요를 채워 주시는 정확하게 예수님과 같은 또 다른 위로자를 가지게 될 것이다.

여기서 처음으로 예수님은 성령과 그분의 역할에 대한 상세한 가르침을 제자들에게 주신다. 우리 주님은 성령을 영향력, 신비로운 능력, 어떤 신비하고 비인격적이고 실체가 없는 힘이 아니라 인격으로 말씀하고 계신 것에 주목하기 바란다. 성령님은 개인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속성을 가지고 계신다(마음: 롬 8:27, 정서: 엡 4:30, 의지: 히 2:4). 그리고 모든 신적 속성을 가지고 계신다(행 5:3-4). 그분은 정확하게 예수님과 같은 속성을 가지신 또 다른 위로자이시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가 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 돌아가지만, 성령님은 “영원히 함께”(요 14:16 참조) 계신다. 성령님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영원히 함께하도록 은혜롭게 허락하신 변함이 없으시고, 틀림없고, 믿을 수 있고, 하늘에서 내려진 위로자이시다.

진리로 인도

예수님이 성령을 “진리의 영(요 14:7)”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주목할 만하다. 하나님으로서 그분은 진리의 본질이시다. 위로자로서 그분은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는 분이시다. 그것이 그분을 떠나서는 죄인이 어떤 영적인 진리를 알거나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이다.

예수님은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요 14:17)라고 말씀하셨다. 이런 진리를 되풀이하여서 바울은 이렇게 기록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 되기 때문이라”(고전 2:10,12,14)

신자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영적인 진리를 실제로 가르침을 받게 된다(요 6:45 참조). 사실, 성령님의 신자를 위한 사역의 대부분은 그들을 가르치는 것(요 14:26, 고전 2:13, 요일 2:20, 27). 그들을 그리스도의 진리 안으로 인도하는 것(요 16:13-14), 그들을 위해 진리를 조명하는 것(고전 2:12)을 포함한다.

예수님이 천국에 승천하신 후에, 성령의 중요한 사역 중 하나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제자들의 마음에 되새기게 하는 것이었고, 그분이 의도하신 것을 그들에게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다.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 14:15-16)

이것은 성령님께서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하신 정확한 말을 기억할 수 있게 하므로 그들이 성경으로 기록했을 때 그 말들이 완전하고 오류가 없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이것은 복음서 말씀이 오류가 없이 기록되었고, 사도의 가르침이 순수하다는 것을 확실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 주님에 대한 이 약속은 또한 그분이 거하는 자들의 마음에 성령이 거하면서 진리로 도움을 주는 초자연적인 교사로서 성령을 만나게 한다. 성령은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로 우리를 안내한다. 그분은 우리를 가르치고, 진리를 우리 마음속에 확증하고, 우리가 죄를 확신하게 하고, 종종 우리의 삶에 적용되는 특정한 진리와 진술을 마음에 생각나게 한다.

내주하심

요한복음 14장 17절의 하반부의 예수님의 말씀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우리 주님께서는 성령님께서 제자들 안에서 영원하고 방해받지 않고 거주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성령님이 단지 그들과 거하시겠다는 것이 아니다. 더 위대한 진리는 그분이 그들 안에 영원히 거하시리라는 것이다.

이 약속은 그날 밤에 있었던 열한 사도들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성령님은 모든 크리스천에게 내주하신다. 23절에서 예수님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하리라.”고 하셨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 몸은 너희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전 6:19)

따라서 각 신자는 영원한 지속적인 성령의 내주하심을 누린다.

성경적 상담에서 성령님의 역할

새롭게 태어나는 것은 성령의 주권적인 역사이다(요 3:8). 신자의 생활에서 모든 참된 영적 성장은 성경의 진리를 사용하는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다(요 17:17). 그것을 놓친다면 실패, 좌절, 실망을 경험할 것이다.

오직 성령님만이 인간의 마음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모든 효과적인 성경적 상담에 필수적인 대행자이시다. 성경적 진리로 무장한 상담자는 객관적인 지침과 변화를 위한 단계를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피상담자의 마음속에 역사하시지 않는 한, 어떤 눈에 보이는 변화도 착각, 표면적, 또는 일시적이고 똑같은 문제나 더 나쁜 문제가 곧 다시 나타날 것이다.

결론

심리학을 따라 우리들의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우리 자신을 살펴보는 것은 쓸모가 없다. 그리고 자기 자신, 어린 시절의 상처, 상처받는 감정, 정서적 갈망 또는 자기중심적인 자원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어려운 문제에 대한 진정한 해결책을 찾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참된 신자는 자신 안에 거하시는 도우미를 소유하고 있다. 그분은 성령님이시고 그분은 성화 과정에서 성경의 객관적인 진리를 적용한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의 관심을 내적으로, 또는 성령님 자신에게로 이끌지 않으신다. 대신에, 성령님은 우리의 초점을 위로, 즉 그리스도께로 향하게 하신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요 15:26)”라 하셨다.

궁극적으로, 상담자의 초점은 그리스도를 향해야만 한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8)

이것은 성화의 과정이다. 그리고 이것이 모든 진정한 성경적 상담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복음기도신문]


[1] Wendy Kaminer, I’m Dysfunctional, You’re Dysfunctional (Reading, Mass.: Addison-Wesley, 1992).

[2] Ibid., 121.

[3] Ibid., 124.

[4] Ibid., 124-125.

존 맥아더(John MacArthur)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원문: https://www.gty.org/library/blog/B140917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GTK 칼럼] 그리스도로 충분한 기독교(6): 하나님 말씀의 충분성,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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