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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K 칼럼] 그리스도로 충분한 기독교(6): 하나님 말씀의 충분성, 3부

사진 : Brett Jordan on Pexels

청량음료와 심리학의 광고는 직접적으로 일치하는 점이 있다. 이들은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할 뿐 아니라, 진정한 삶의 원천과 에너지 그리고 활력을 더욱 바라도록 만들 뿐이다.

지난 글에서 우리는 시편 19편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하고, 믿을 만하고, 영혼을 소성케 한다. 그것을 믿는 사람들은 변화된 삶과 지혜와 영원한 기쁨을 찾는다. 이제 우리는 성경의 세 가지의 더욱 놀라운 측면과 그것들이 당신의 삶에 어떻게 충분하게 작용하는지 대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성경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한다.

시편 19편 8절은 성경의 충분성의 네 번째 특징을 제시한다.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계명”은 성경의 절대적인 본질을 강조하는 말이다. 성경은 제안을 담은 책이 아니다. 성경의 신적인 명령은 권위가 있고 구속력이 있다. 성경을 가볍게 대하는 사람은 스스로 영원한 멸망의 위험에 처하게 된다. 반면 성경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영원한 축복을 얻는다.

“순결하여”라는 말은 “투명하여”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성경은 마음을 미혹시키거나, 혼동하게 하거나, 풀기 힘든 수수께끼가 아니다. “명백하다”라는 동의어가 가장 적절한 번역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계시, 즉 어둠 속에 있는 것을 밝혀서 영원함을 밝은 초점에 맞추기 위해 진리를 드러내는 것이다. 성경의 내용 중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벧후 3:10). 그러나 전체적으로 성경은 갈피를 못 잡게 하는 책이 아니다.

성경은 그 절대적인 명확성으로 인해 무지가 있는 곳에 지식을, 혼란이 있는 곳에 질서를, 영적이고 도덕적인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비추어 준다. 성경은 눈이 멀어 진리를 분별하거나 바르게 살 능력이 없는 구속 받지 못한 사람들의 혼란스러운 생각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이 결코 볼 수 없는 복되고 소망스러운 진리를 분명히 제시한다.

성경은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른다.

시편 19편 9절에서 다윗은 “경외”라는 말을 하나님 말씀의 동의어로 사용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경외”란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 드리게 하는 하나님에 대한 경건한 두려움을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은 어떻게 하나님께 예배 드려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하나님이 주신 지침서이다.

“정결하여”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불순함, 더러움, 오염 또는 불완전함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성경은 죄나 악이나 부패나 오류가 없다. 그러므로 성경이 담고 있는 진리는 절대적으로 순수하고 흠이 없다. 이러한 진리는 시편 12편 6절에 묘사되어 있는데 이 시편에서 다윗은 말씀이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처럼 ‘순결’하다고 말한다. 성경은 흠이 없으므로 영원까지 이른다(시 19:9). 성경에 어떤 변경이나 수정을 가하는 것은 성경을 불완전하게 만들 뿐이다. 성경은 영원히 변경할 수 없을 만큼 완벽하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막 13:31). 이 말씀은 성경이 영원하고 변하지 않으므로 모든 시대 모든 사람에게 가치가 있음을 보증한다는 말이다. 성경은 과거에도 언제나 충분했고, 앞으로도 늘 충분할 것이다.

사람들이 성경은 시대에 뒤져 있다거나 현대의 교양 있는 사회에 어울릴 만큼 세련되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비방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슬프게 해 드릴 것이 틀림없다. 성경은 어떤 개정이나 편집이나 개량도 필요하지 않다. 당신이 어떤 시대, 어떤 문화 속에서 살고 있든 상관없이 성경은 영원히 적절하다.

그런 면에서 성경은 어떤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성경은 순수하고 순결하며 오류가 없는 진리다. 성경은 영속적이다. 성경은 모든 세대를 위한 하나님의 계시다. 성경은 전지하신 하나님의 영이 기록했다. 하나님의 영은 우리 사회에 대한 성경의 적절함에 대해 감히 판단하려 드는 누구보다도 무한히 더 높은 안목을 지니고 계시며 초등학교의 가장행렬처럼 적절하지 않은 이론을 펼치고 있는 모든 걸출한 철학자들, 분석가들, 심리학자들보다 무한히 지혜로우시다.

성경은 진실하여  의롭다.

9절은 하나님의 부족함 없는 말씀의 마지막 특징과 효과를 제시한다. “여호와의 법은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이 문맥에서 ‘법’ 이란 이 땅을 다스리시는 최고 재판장의 자리에서 선포되는 법령 또는 신적인 판결을 의미한다. 성경은 모든 사람의 생명과 영원한 운명을 판결하기 위한 하나님의 기준이다.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눈이 멀어 있기 때문에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다. 그들은 사탄에게 속아서 영적인 진리를 찾아서 부질없이 헤매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그들은 진정으로 중요한 일들, 즉 인생의 기원과 목적, 도덕, 가치관, 삶, 죽음, 운명, 영원, 천국, 지옥, 참된 사랑, 소망, 안전, 그 밖에 온갖 근본적인 영적 문제에 대한 궁극적인 진리를 찾을 수 없다.

최근에 나는 우울증에 대처하는 법을 다룬 책 한 권을 받았다. 우리 시대의 어느 정신과 의사가 쓴 책이었다. “당신의 의식적인 정신을 재 구성하라”라는 제목이 달린 한 장이 특히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 의사의 첫 번째 제안은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마다 ‘취소!”라 외치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또 수면 조절 프로그램- 수많은 긍정적인 반응을 담고 있는 녹음테이프를 밤새 틀어놓는 치료법-을 추천했다. 그리고 낮에는 긍정적인 음악을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의사는 또 의미 있는 영적인 철학을 계발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녀는 각각 자신에게 잘 맞고 효과적인 신념체계를 찾되 죄와 죄책감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피하라고 말했다. 그녀의 최종적인 요점은 자기 자신 안에서 빛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불행하게도 이것이 인간의 지혜가 짜낼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다.

예수님은 한 무리의 불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면서 인간의 지혜로 진리를 찾으려는 노력이 얼마나 무모하고 가망이 없는지를 잘 보여 주셨다.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는데도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요 8:43-47)

이와는 대조적으로 신자들은 진실로 중요한 모든 것에 대한 진리를 소유하고 있다. 진리의 말씀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엄청난 특권인가!

성경은 참되기 때문에 “다 의롭다.”(시 19:9). 이 구절의 의미는 성경의 견실성이 성경을 받아들이는 이들 속에 포괄적인 의를 낳는다는 것이다. 또한, 성경은 진리와 의의 완전하고 철저한 원천이므로 우리는 성경을 어떤 식으로든 가감하거나 왜곡해서는 안된다(신 4:2, 벧후 3:15-16, 계 22-15-19).

오늘날 많은 사람의 가르침과 반대로 추가적인 계시나 환상이나 예언의 말씀은 전혀 필요가 없다. 이러한 사람들의 온갖 이론과는 달리 하나님의 말씀은 참되며 절대적으로 포괄적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계시 외에 다른 것을 찾기보다는 이미 가지고 있는 말씀을 연구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된다!

  많은 순금보다  사모할 말씀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이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라 결론짓는다(시 19:10). 성경은 이 세상이 줄 수 있는 어떤 것보다도 무한히 더 소중하며 삶의 모든 필요를 채우기에 완벽하게 충분하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 자체의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평가한다.

우리의 영적인 욕구를 만족하게 해 줄 수 있는 성경의 능력에 대해 다윗은 성경이 “꿀과 송이 꿀보다 더 달도다.”라 말한다. 다윗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일이 크나큰 기쁨과 부유함의 원천이었다. 그에게 성경은 인생의 가장 감미로운 것들보다 더 큰 의미를 지녔다.

이 세상이 줄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말씀보다 귀하지는 않다. 나의 한 친구는 희귀한 성경들을 수집한다. 그는 놀라운 소장품들을 소유하고 있는데 그 중에 어떤 성경은 연대가 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은 가장 오래된 인쇄본 성경 중에 하나로 16세기에 영국에서 나온 성경이다. 이 성경의 윗부분의 삼 분의 일은 이 성경의 원주인의 피로 뒤덮여 있다. 내 친구는 내게 이 성경을 만져 볼 기회를 주었다. 그 성경을 뒤적이는 순간 내 눈에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 성경은 어떻게 해서 피로 적셔졌을까? 피의 여왕 메리가 영국을 다스릴 때 수 많은 개신교도를 죽였다. 그녀의 병사들은 개신교인의 피를 흘린 다음 그가 가진 성경을 취해 그 피 속에 깊이 담갔다. 그런 사연을 가진 성경 가운데 몇몇이 보존되어 순교자의 성경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 성경의 종이를 분석해서 내 친구가 가진 성경의 페이지마다 남아 있는 검은 얼룩이 사람의 혈흔이라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나는 이 성경을 페이지마다 자세히 살펴보았다. 어느 대목이 열심히 본 덕분에 아주 낡았는지 알 수 있었다. 눈물 자국인 듯한 물때 자국과 책의 원주인이 특히 좋아해서 닳아서 해진 부분들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 책은 누군가의 가장 소중한 재산이었다. 이 책에 남아 있는 그의 피가 그 사실을 입증해 주고 있었다.

그러나 서글프리만큼 대조적으로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많은 이들이 성경 한 권을 소유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쳤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 성경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오늘날 교회가 과거의 순교자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긴다면, 인본주의적인 이론 전문가에게 달려가 하나님이 자신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완벽한 지혜가 아닌 다른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많은 이들이 성경 이외의 온갖 다양한 치료법에 따르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에 순종하지 않은 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기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성경은 그들을 저버리지 않았다.

성경은 그들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들이 성경을 저버린 것이다. 바울이 골로새서 3장 16절에서 가르쳐 주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말씀이 자신 안에 풍성히 거하게 하는 법을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는 이들이 많다. 그들은 성경을 피상적으로 대했고 한 번도 그 깊이를 헤아려 보지 않았다. 그들은 성경을 무시하는 그들의 죄악 된 태도도 필연적으로 교리적 혼란과 영적 무능력이라는 열매를 맺는다.

그들은 성경적 원리에 따라 살도록 자신을 단련시켜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제 세속적인 대안을 찾아 성경을 버리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신분석에 의지하고 삶의 근원을 설명하기 위해 과학에 의지하며 인생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철학에 의지하고 자신들이 죄를 짓는 이유는 설명하기 위해 사회학에 의지한다. 그래서 교회와 학교와 신학교가 그런 가르침들의 영향에 취해 버렸다.

시편 19편 11절에서 다윗은 성경의 충분성에 대한 찬가를 이렇게 마무리한다. “또 주의 종이 이것(주의 법)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나이다.” 성경의 경고는 우리를 유혹과 죄와 오류와 어리석음과 거짓 선생들과 그 밖에 우리의 영적 건강을 위협하는 온갖 것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준다. 그리고 그런 경고에 주의를 기울이면 큰 상을 얻는다. 그 상은 물질적인 상이 아니다. ‘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현세적인 부유가 아닌 영적인 축복을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에게 찾아오는 것은 바로 흔들림 없는 기쁨과 안식이다.

성경에 대한 순종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우리의 영적인 건강은 하나님의 말씀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고, 진지한 마음으로 그 말씀에 순종하는 데 달려있다. 인간의 조언이나 세상 지혜를 통해서 자신의 영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인간이 처한 딜레마에 대한 가장 소중하고 유일하게 신뢰할 만한 해답의 원천을 상실하게 된다. 이 세상의 우둔함이라는 쓰디쓴 담즙을 얻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감미롭고 만족스러운 것을 내버려 두고 자신을 넘겨주지 말라.

다윗은 이 시편을 다음과 같은 기도로 끝맺었다.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 되기를 원하나이다”(14절).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생각과 묵상이 하나님께서 받을 만하신 것임을 확신할 수 있는가? 여호수아서 1장 8절은 그 해답과 그것의 결과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 율법 책을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안에 기록된 대로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길이 평탄하게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복음기도신문]

존 맥아더(John MacArthur)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원문: https://www.gty.org/library/blog/B140915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GTK 칼럼] 그리스도로 충분한 기독교(4): 하나님 말씀의 충분성, 1부
[GTK 칼럼] 그리스도로 충분한 기독교(5): 하나님 말씀의 충분성,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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