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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K 칼럼] 말씀을 전파하라(3): 하나님의 진리를 명확하고 확실하게 세우기 때문이다

사진: Brody Childs on unsplash

목회자라 해서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은 아니다. 사실, 하나님의 백성들을 목양하는 일의 중요한 부분은 성급하게 조심성없이 잘못된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하게 바른 답을 찾기 위해서 시간을 들여서 공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회중에게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나는 모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마찬가지로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들은 내가 하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말이다. 이런 위험한 메시지가 오늘날 너무도 많은 강단에서 설교되고 있다. 그들은 말한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의 진정한 뜻을 알 수 없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말씀을 전파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말씀을 주셨다(시편 119:105, 130). 만약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다면, 간단하고 분명하게 이해할 수 없는 성경은 더 이상 우리들의 삶의 객관적인 기준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말씀을 주셨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책임이 있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 말씀의 명확성이 거부된다면, 마찬가지로 그 어떤 교리의 명확성도 모두 거부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성경에서 말하는 그 어떤 것도 무엇을 말하는지 확실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성경의 권위에 근거한 교리의 확실성이 무너진다면, 그들은 그 어떤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각자의 신앙적인 신념 또한 버려야만 한다. 그리고 만일 각 개인의 신앙적 신념들이 사라진다면, 영적인 공동체 또한 사라지게 된다. 왜냐하면, 진정한 교제는 바른 가치와 신념을 같이 나눌 때 시작되기 때문이다.

건강한 교회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사랑하는 것이 동기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서로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정말 잘 이해해야만 한다.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그 사랑은 바로 성경이 진리라는 확신, 절대적이라는 확신, 그 말씀을 이해할 수 있다는 확신을 통해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성경은 확실하다. 이 간단한 진리를 부인한다면 당신은 모든 확신과 신념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근래에 성경 중심에서 벗어난 복음주의적 교회들이 그 어떤 것에도 명확성과 확실성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또한, 신중한 성경 해석과 정확한 교리적 이해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불확실성에 의한 또 하나의 피할 수 없는 사상자(死傷者)이다. 한 보수적인 목회자라고 하는 사람의 충격적인 논평을 읽어 보라.

만약, 기독교 신학의 근거가 있다 한다면 나는 그 근거가 있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그 근거를 교회, 성경, 관습 혹은 문화에서는 찾을 수 없다…. 신학은 “그를 듣기 위한” 겸손한 인간의 시도이지 합리적으로 말씀에 접근하는 것이 아니다.[1]

이는 참 놀라운 말이다. 어이가 없다. 우리가 어떻게 진정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없이 “그의 말씀” 즉 하나님을 들을 수 있을까?  내가 그 어떤 일을 확신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구절을 신중하고, 합리적으로 분별하는 마음으로 정확하게 듣고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을 젖혀 두고 무슨 근거로 그 어떤 진리에 대해 확신을 할 수 있겠는가?

포스트모던적인 회의론과 상대론으로 구체화된 이머징교회 운동의 유명한 작가 중 한 명은 자신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명료하게 요약하였다. “확신을 하는 것은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는 것이다.”[2]

그의 책 중에 한 곳에 그는 “예전에 나는 나의 믿음을 나타내기 위하여 도발적이고, 무모하고, 모호하게 하려고 많은 애를 썼다. 그렇게 하므로 그 명확함은 때로는 과대 포장된 내 생각을 반영하였다. 그리고 그 메시지의 충격적이고, 모호하고, 꾸밈없이 (세심하게 설명하여)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하여 명확성보다 그들이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나의 믿음을 반영했다.”[3] 고 말했다.

이머징 경향에 있는 다른 대표 격인 어떤 목사의 부인도 자신의 모호함을 자랑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성경을 이해한다고 생각하면서 자랐고, 우리는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하지만 나는 지금 대부분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나는 다시 나의 삶이 충만하다고 느낀다. 마치 이전의 나의 삶은 흑백 사진과 같았지만, 지금은 천연색인 것처럼 느낀다.”[4]

그로 인해 우리는 “나는 겸손하기 때문에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리고 성경을 안다고 말하는 것은 교만이다.”라고 말하는 매우 잘못된 새로운 성경 해석학 석학 소위 “겸손한 해석학”에 대해서 자주 듣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도록 말씀하셨다고 주장하는 것보다 더 교만한 말이 어디에 있을까?

내가 설교할 때 항상 나를 가장 즐겁게 만드는  말은 “메시지가 매우 명확하다.”라는 반응이다. 명확함은 매우 중대한 기초이다. 모호함은 치명적이며 아무런 결과를 얻을 수 없다. 진리 그 자체가 모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구원을 위한 방향을 알지 못한다. 성화될 수도 없다. 그들은 평안을 못 찾는다. 모호함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혼란 외에 다른 것이 없다.

명확성은 성경 본문을 잘 이해하려는 욕구의 결과이다. 만일 설교자가 청중에게 명확하게 전달하지 못 한다면, 이것은 아마 설교자 자신도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말은 더 성실한 공부가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내가 사역을 시작했을 때, 나는 스스로 강해 설교(성경만을 설교하는 것)만 하겠다고 헌신하였다. 왜냐하면 나는 그 어떤 말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의 가르침의 진정한 목표는 언제나 나 자신의 견해를 최대한 줄이고 성경 구절의 의미를 바로 파악하여 나의 청중들이 명확하게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목회자들은 항상 첫 시작부터 기억해야만 하는 것은 강단에 설 때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명확하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들 자신의 영리함으로 강한 인상을 주거나 사람의 의견으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명확하다. 그리고 내가 나에게 주어진 사람들에게 이 말씀을 정확하게 설명할 때 그들은 그것을 이해한다. 이러한 이해가 바로 강해 설교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진리를 믿거나 순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사람들은 그들의 삶을 위로부터 온 지혜 위에 세우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명확한 이해는 우리의 삶을 만들고 영적인 진리에 대한 더욱 깊이 있는 애착을 가지도록 인도한다(시편 119:129-31; 19:10). [복음기도신문]


[1] [John Armstrong, “How I Changed My Mind: Theological Method,” Viewpoint (Sep-Oct 2003), 4.]

[2] [Brian McLaren, cited in Greg Warner, “Brian McLaren,” Faith Works (no date). http://www.faithworks.com/archives/brian_mclaren.htm]

[3] [Brian McLaren, A Generous Orthodoxy (Grand Rapids: Youth Specialties, 2004), 23.]

[4] [Kristen Bell, wife of Rob Bell, Cited by Andy Crouch, “The Emergent Mystique,” Christianity Today (November 2004).]

존 맥아더(John MacArthur)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원문: https://www.gty.org/library/blog/B140109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GTK 칼럼] 말씀을 전파하라(1): 나는 왜 아직도 말씀을 전파하는가?
[GTK 칼럼] 말씀을 전파하라(2): 시간을 초월하고 진정으로 강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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