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땅 끝에서 안식하는 믿음의 삶을 누리고 싶어요”

천사도 흠모하는 하늘가족 염광열·최현희 집사 부부

가족사진과 함께 벽에는 “천사도 흠모하는 하늘가족”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지금도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생각하면 믿어지지 않는다며 인터뷰 내내 여러 번 목이 메였던 염광열·최현희 집사 부부(전주화산교회). 그리고 다섯 명의 자녀들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편집자>

– 어떻게 주님을 만나게 되셨나요?

염광열(이하 염): “유년시절에 어머니를 통해 잠시 교회를 다녔는데, 그때는 예수님이 그냥 좋았어요. 신학을 하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교회에 열심이었어요. 중학교 졸업 무렵 교회에서 학생회 임원을 맡게 됐어요.

그런데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해 교복이 없던 저는 다른 사람의 교복을 입고 사람들 앞에 섰어요. 그런 제가 가식적인 것 같아 마음이 어려웠어요.

그러다 교회를 떠나게 되면서 완전히 하나님을 잊고 오랫동안 살았어요. 세월이 흘러 주님없는 삶을 살며 이혼을 하고, 아이 둘을 데리고 재혼을 하고… 난 죄가 많아서 하나님이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죄책감에 시달렸어요. 그러다 어느 날 주님이 저를 불러주셨죠.”

– 어떤 사건이 있었나요?

염: “아내는 나름대로 아들을 올곧게 키우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아들이 고등학교 때 여자친구 문제로 속을 썩였어요. 그 일로 실망을 했는지 아내가 어느 날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편지를 써놓고 3일 정도 가출을 했어요. 충격이었죠.

문득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내가 돌아오든 돌아오지 않든 이제는 교회에 나가겠습니다.’ 결단하고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어요. 어렸을 때 ‘하나님, 나이 50세 쯤 되었을 때 성공해서 돌아올께요.’라고 기도했던 것 같은데 그때가 제 나이 49세였어요.”

최현희(이하 최): “저는 남편을 만날 때까지 원불교를 믿었어요. 친정이 다 원불교였죠. 그런데 남편이 큰 아이 둘을 데리고 교회에 가서 앉아만 있다가 오라고 했어요. 애들이랑 유치부 예배실에서 진짜 앉아만 있었죠.

어떻게 하면 더 나은 교육을 시킬 수 있을까 토론하듯이 이야기하고, 끝나는 시간 맞춰서 집에 갔죠. 그러다 우연하게 교회 집사님에게 받은 한 선교단체의 기도카드를 보고 남편이 그곳에서 훈련을 받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염: “당시 부동산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었어요. 그때 교회에서 아내를 통해 알게 된 한 집사님의 권유로 신앙훈련을 받을 수 있다는 곳을 소개받았어요. 교회문화를 제대로 경험한 적이 없었으니 성경지식을 얻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원서를 썼는데 떨어졌어요.

뭐 이런 데가 다 있나 싶었죠. 오기가 생겨서 그 단체에서 하는 선교관학교부터 시작했어요. 한 선교사님이 말씀을 전하는데 두렵고 무서웠어요. 죄인의 본성이 그렇잖아요. 빛 앞에 나아가는 것이 두려웠죠.”

– 그런데도 왜 계속 가셨는지 궁금한데요?

염: “말씀을 들을 때마다 마음에 불편함이 있었어요. 무슨 차림새가 저렇게 초라해?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그 복음의 말씀이 또 어찌 그리 힘이 있는지. 오금을 펼 수 없을 정도로 말씀 앞에 엎드리는 시간이었어요. 얼마 후 다시 원서를 쓰고 복음 앞에 서게 됐죠.”

– 복음앞에 서게 됐다는 것이 무슨 말이죠?

“일주일간 진행되는 훈련과정이었는데, 로마서 1장을 듣는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 모든 죄의 모양이 정확히 저였어요. 성경을 전혀 알지 못하지만 ‘염광열 너는 사형’이라고 하시는데, 바로 그 죄인이 나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당시는 내가 십자가를 통과한다는 말이 무엇인지 다 알아듣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강력한 은혜로 단번에 저를 끌고 가셨어요.”

“말씀을 듣는데 오금을 펼 수 없었다”

– 복음 앞에 서신 후 어떤 변화가 있으셨나요?

염: “광열아. 너를 창조하신 이가 이르시되, 너를 지으신 이가 이르시되…. 다 알지 못했지만, 그분이 나를 불렀다는 게 분명했어요.

와, 주님이 나를 그렇게 만드셨는데 나는 주님을 모르고 고아처럼 살았구나! 그리고 저에게 말씀하셨어요. ‘너 잡은 쟁기 놓아라, 그걸 붙잡고는 나를 따라올 수 없다.’ 저의 쟁기는 부동산 중개업이었어요. 말로 설명이 어렵지만 그 일을 중단하게 하시고 주님이 인도하시는 은혜의 자리로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었어요.”

최: “남편이 엄청 은혜를 받고 와서 제게도 훈련을 받으면 좋겠다고 권했어요. 나는 지옥가도 괜찮으니 훈련은 받지 않겠다고 했지만 왠지 안가면 안 될 것 같았어요. 그러다 훈련을 받게 됐고, 복음 앞에 섰어요. 다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자리가 혈과 육으로 살던 저의 삶을 마감하는 죽음의 자리라는 것은 알 수 있었어요.”

– 복음을 들으면서 마음의 태도가 달라진 부분이 있나요?

최: “저는 제가 본처가 아니라는 것 때문에 아이들을 더 바르게 키우고 더 세상에서 성공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그런데 그런 마음의 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껴졌어요.

그래서 아이들 교육에 대한 저의 기준을 내려놓았죠. 또 무슨 맘으로 그랬는지 선교사 콜링을 하는 시간에도 반응하며 일어섰어요. 물론 그 이후에는 두려웠어요. 나를 다 버려야 할 것 같고 기쁨도 없는 그런 막연한 마음이었어요.”

– 그 이후 믿음의 걸음을 어떻게 순종하셨나요?

염: “저는 선교관학교에서 인도로 아웃리치를 가게 됐어요.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더위와 탈진으로 2주의 아웃리치 동안 몸무게가 무려 18kg이나 빠지며 죽음이 무엇인지 경험했죠. 하나님께 계속 물어봤어요.

▶ 넷째 한솔, 다섯째 찬양이와 함께 집 앞 놀이터에서
▶ 넷째 한솔, 다섯째 찬양이와 함께 집 앞 놀이터에서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셨어요. ‘너, 살고 싶지? 그런데 너를 위해 준 내 아들이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 어떠했겠니…’ 살려달라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어요. 어떠한 것이라도 하나님 말씀이면 충분하다는 마음으로 아웃리치를 마치고 돌아왔어요.”

최: “남편이 아웃리치 떠날 때 다시 인도에 가겠다고 하지 않을까 두려웠어요. 그런데, 쓰러질 듯 돌아온 모습을 보고 그런 말은 안하겠구나 안심했어요(웃음). 그 후 제가 선교관학교 훈련을 받으면서 북카프카즈로 아웃리치를 가게 됐어요.

매섭게 추운 날 꽁꽁 언 분수대 앞에서 청년들이 기타를 치며 너무 기쁘게 찬양하는 모습을 봤어요. ‘하나님, 선교가 억지로 코 꿰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저렇게 기쁜 것이면 저 갈게요. 다음에 남편이 인도에 가자고 해도 그때는 기쁨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고백하고 돌아왔는데 남편이 교회에 인도파송에 대해 말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인도로 부르심을 확정하고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어요.”

인도에서 십자가를 경험케 하신 하나님

– 어떻게 인도에 갈 마음을 받으셨나요?

염: “열방을 하루 한 시간씩 기도하는 ‘기도 24.365’에 참여하게 됐어요. 인도네시아를 기도하는데 인도와 너무 똑같은 거예요. 아웃리치 때 보았던 인도를 기억하게 해주셨죠. 같이 갔던 훈련생들은 보지 못했겠지만 저는 봤거든요. 갠지즈 강가 돌계단 옆에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을요. 나병 환자들이었어요.

저희 어머니가 그랬고 저희 아버지가 그랬어요. 세포 하나하나 신경이 마비되어 살이 썩고 떨어져나가도 느끼지 못하는, 성경에 나오는 나병 환자 이야기가 저에게는 실제였거든요.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저의 아픈 가정사였어요. 그냥 이들과 함께 있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때 인도 땅을 다시 밟겠다고 하나님께 약속했어요. 그리고 인도로 갈 준비를 하기 위해 6개월의 공동체훈련을 시작했어요.”

최: “남편이 공동체 훈련을 받는 동안 아이들도 함께 인도를 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셋째 하늘(19)이, 넷째 한솔(17)이를 한 선교사님을 통해 잠시 인도로 보냈어요. 생각보다 재정이 많이 들었지만 그것도 주님이 은혜로 채워주셨죠. 인도는 더러워 싫다고 했던 아이들이 다녀와서는 다시 가고 싶다고 하길래 하나님이 정말 인도로 부르셨음을 확신했어요. 하지만 우리 마음 중심이 인도가 아닌 주님이 되기까지 주님은 계속 일하셨어요.”

“선교사로 파송받기까지 주님이 먼저 가정을 회복시켜 주셨어요.”

– 마음의 중심을 인도에서 주님으로 어떻게 돌려주셨나요?

최: “남편이 6개월의 공동체훈련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 우리를 위한 파송 교회가 정해지고 하나씩 준비가 되어갔어요. 그런데 날짜를 잡아놓고 기다리는데 엘리야에게 보여주셨던 조각구름 하나도 보여주지 않으시는 거예요. 걸음을 멈추라는 주변의 권유도 있었죠.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되니 제 마음에 분노가 일어났어요. 왜 준비 다 되었는데 보내주시지 않을까? 생각해보니 우리 가족의 지난 1~2년의 삶이 전부 인도를 위한 삶이었어요. 인도를 위해 훈련받고 인도를 위해 말씀 보고…. 나의 중심이 하나님께 있지 않고 인도에 있었죠. 주님께 어디든 상관없다는 고백을 드리고, 남편은 열방연합기도팀으로 저는 공동체훈련으로 한걸음을 걷게 됐어요.”

염: “히브리서 12장으로 기도할 때 확증해주시는 시간이 있었어요. 견고한 하나님 나라를 우리 안에 임하게 하셨다는 것. 그래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인도 땅도 아니요 선교사라는 이름도 아닌 내 안에 전부 되신 예수그리스도인 것을요. 그렇지! 내가 사랑하는 것은 인도 땅도 그 땅의 사람들도 아니지.

하나님이고 그분이 전부되는 것이지! 이것은 한 나라가 아닌 그분의 나라지! 이제 어디를 보내셔도 상관없어요. 그런데 열방연합기도팀이 끝나고 7명의 팀원들은 다들 열방으로 나갔는데, 저만 가정으로 파송해주셨어요. 농담인 줄 알았죠. 전 자매도 아닌데. 그로부터 2년 동안 주님이 가정 안에 엄청난 일을 행하셨어요.”

견고한 하나님 나라가 임하여

– 어떤 일들이 있었나요?

염: “아이들이 다섯인데, 제각각 복음에 격렬하게 반응했어요. 작년에 막내 찬양이가 기독교 대안학교인 헤브론원형학교에 지원하면서 다니던 학교를 중퇴했어요. 그런데 면접에서 떨어져 어느 학교에도 다닐 수 없게 됐어요. 살고 있던 아파트 옆에 다니던 학교가 있었어요.

그래서 오고가는 친구들의 모습을 매일 봐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죠. 그토록 붙잡고 있었던 학교와 친구들을 내려놓는 시간 동안 주님이 이 아이의 작은 마음 안에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붙들게 하셨어요. 그리고 드디어 올해 다음세대 선교사를 양성하는 헤브론원형학교에 가도록 인도해주셨어요.”

최: “셋째 하늘이도 많은 혼란과 몸부림이 있었어요. 나중에 복음을 만나서야 고백한 것이지만 학교에서 친구의 자살사건, 왕따를 당하고 또 시키기도 하는 상황에서 많이 힘들었나 봐요. 아이들과 씨름할 때마다 약속의 말씀을 붙들게 하셨어요.

“전에는 네가 버림을 당하며 미움을 당하였으므로 네게로 가는 자가 없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를 영원한 아름다움과 대대의 기쁨이 되게 하겠다(사 60:15).” 그렇게 아이들 하나하나를 정말 주님의 아름다움과 기쁨 가운데 거하는 자로 만들어 가셨어요. 모든 사람들이 가장 안 변할 것 같다고 말하던 아이를 주님이 가장 빠르게 변화시키셔서 주님의 군사가 되게 하셨죠.

이제는 넷째 한솔이와 함께 우리 가정을 L국으로 부르셔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어요. 우리의 존재가 깨어져 진정한 예배자로 서면 열방을 살리시겠다는 말씀이 실제되게 하실 것 기대하게 하셨어요.”

아이들의 작은 마음 안에서 일하신 하나님

– 드디어 그토록 열망하던 열방으로 부르셨군요.

최: “네, L국에 먼저 가 계신 청년 선교사님들과 우리 가정이 함께 공동체로 섬기게 돼요. 그 곳에 한솔이 또래가 있어요. 혼자 여기 남겠다고 했던 한솔이에게도 주님은 준비해두셨구나… 감사해요.”

염: “지난 겨울 많은 대학과 교회의 문을 두드리면서 이 땅이 정말 선교지라는 것을 알았어요. 어디든 상관없다고 했으면서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척박한 이 땅에 하나님이 남게 하실까봐 두려웠어요.

그런데 이 땅을 향해 애통하며 부르짖는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 가운데 부어주셨어요. 그리고 한 사람을 기도자로 세워 가시는 것도 보았죠. 요즘 에스겔서를 보면서 에스겔의 마음 안에 주님만 남아있게 하시는 것을 봐요. 그 존재의 고백이 동일하게 우리의 고백되게 하실 것을 신뢰하게 하셨어요.”

– 마지막으로 기도제목을 나눠주세요.

최: “한 사람을 천하보다 귀히 여기시는 주님의 열심과 사랑이 내 안에 동일하게 있어서 나도 그렇게 한 생명 살리는 그 자리에 있고 싶어요. 열방의 다음세대들이 선교사로 세워지는 데에 협력하고 싶고 그 자리에서 주님의 영광 높이고 싶어요.”

염: “주님의 말씀 안에서, 안전하게 누릴 수 있게 하신 그 곳에서 주님이 주시는 밥도 많이 먹고 은혜를 누려야겠다고 생각해요. 눈에 보이는 열매를 좇지도 않을 거예요. 배웠던 식양대로 이렇게 해야지 저렇게 해야지 하는 것도 아니죠. 나랑 함께 하자, 나랑 있자’라고 하시는 주님과 그냥 있고 싶어요.

말씀 안에서 날마다 풍성히 이루시는 주님 누리며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단순히 주님이 주시는 것에 만족하며 기도하면서 주 안에서 마음껏 안식하고 싶어요. 정말 말씀에 거함이 어떤 것인지, 그 평안함이 어떤 것인지…. 그렇게 주님과 살고 싶어요.” [GNPNEWS]

E.J.

▶ 선교완성을 위해 동역자들과 함께 기도하는 장면
▶ 선교완성을 위해 동역자들과 함께 기도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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