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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맛있는 케익과 기술을 나누는 기업이 되겠습니다”

나눔과 섬김을 실천하는 신귀출 대표(수원원천침례교회·슈케익하우스)

신귀출 대표(수원원천침례교회·슈케익하우스)


‘1만 원의 행복 슈케익’ 슈케익하우스는 전국에 직영점 2개, 19개의 체인점을 가진 제과점이다.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쉽게 따라할 수 없는 제품을 고민하다가 생각해낸 ‘주문형 케익’으로 혜성같이 등장한 기업이다. 맛있는 케익을 나누고 더불어 기술을 나누는 기업을 꿈꾸는 신귀출 대표를 만나, 지나온 과정을 들었다.

– 모태신앙인은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신앙을 갖게 되셨나요?

“아버지 쪽은 불교이고 어머니 쪽은 기독교에요. 그렇다고 친가나 외가가 제게 종교를 강요하지는 않았어요. 친할머니는 저를 불교로 이끌어 주고 싶어 하셔서 어릴 때는 불교학교도 갔어요. 물론 교회에 가자고 하시면 교회도 나갔어요. 뭔지도 잘 모르고 교회에 다니다가 청년이 돼서는 특별히 종교에 의지하지 않고, 내 스스로 잘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무데도 나가진 않았어요. 제가 주님을 3년 전에 만났을 때, 대학에서 한국대학생선교회(CCC) 활동을 했던 친구들이 저보다 더 좋아하던 것이 기억나네요. 그 친구들이 대학 당시에도 늘 좋은 게 있다고 같이 하자고 권유하며 기다려줬어요.”

– 3년 전에는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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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케익하우스에서 만든 케익(슈케익하우스 제공)

“그 때는 사업이 한창 잘 되고 있을 때였어요. 한 기독교대안학교에 교사였던 학군단 선배가 일일교사를 한번 해보지 않겠냐고 물어봤어요. 내 도움이 필요한 친구가 있다면 가겠다고 해서 학교에 갔는데 거기서 한 교수님을 만났어요. 그때 교수님이 신앙생활을 권했는데 완곡하게 거절했죠. 그런데 교수님이 거의 1년을 넘게 부담을 주지 않으시면서 연락을 주셨어요. 처음에는 조금 거부감이 있었어요. 어느 날은 교수님께도 장문의 편지를 보냈죠. 감사하지만 아직은 마음의 준비가 안됐다고요. 그래도 교수님은 안부를 물으시고 식사도 같이 했어요. 그러는 중에 코로나가 터지고 가정에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 가족 전체가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됐어요.”

위기의 순간에 주님을 만나다

– 어려운 시간을 만난 것이 주님을 만난 기회가 된 건가요?

“가정 문제로 인한 어려움과 코로나 사태로 매출이 줄고, 직원을 한꺼번에 내보내야 되는 상황들이 닥치면서 퇴직금 문제라든지 여러 가지가 한꺼번에 압박으로 다가왔어요. 그때 마음을 기댈 곳이 없더군요. 저는 30살부터 사업을 했기 때문에 항상 리더의 자리에서 다른 직원들 상담을 해주고, 군대에서도 병사 친구들 상담해주면서 주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정작 힘들 때는 내 이야기를 할 사람이 없는 거예요. 제가 가업을 이어받도록 권유한 어머니에게도 말을 못했어요. 얼마나 낙담하실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그때 제게 관심을 보여주셨던 교수님에게 연락이 왔는데, 이번에는 제가 교회에 가보고 싶다고 했어요.”

– 그렇게 교회를 나가시게 된 거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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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제품을 연구하는 개발실. ⓒ 복음기도신문

“교수님은 아침 예배를 이미 다녀오셨는데도 저와 함께 또 예배를 드리셨어요. 나를 위해 이렇게 해주시는데 감사한 마음과 부담스러운 마음으로 계속 다니게 됐어요. 처음에는 찬양하는 것도 어색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졌죠. 무엇보다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 기도할 때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느낄 수 있어서 매우 든든했어요. 또 주님의 허락하심으로 당시에 목사님과 믿음의 사람들과의 만남이 허락됐어요. 그들이 어떻게 절망에서 일어섰는지, 어떻게 믿음을 갖게 됐는지 들으면서 제 마음에 믿음이 조금씩 자라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어느 날 하나님이 내 곁에 계시면 좋겠다는 마음의 고백을 하게 됐고, 한 고비를 넘는 일이 있으면서 아직 부족하지만 믿음의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 그렇군요. 갑작스런 질문이긴 하지만, 이름에 사연이 있을 것 같은데요?

“사실 불교도이신 할머님이 받아오신 이름이에요. 할머니 입장에서는 제가 귀한 손주였기에, 귀하게 태어난 아들이라고, 귀할 귀(貴), 날 출(出), 귀출로 하라고 지어줬다고 해요. 어릴 때 이름 때문에 놀림을 받으면서 평범한 이름이 부러웠는데 나중에는 장점도 있더군요. 한번 만나면 특이한 이름이니 잘 기억해주셔서 감사했죠. 또 사업할 때도 도움이 많이 됐어요. 감사한 일이죠.”

위기에 처한 부모님 사업, 동참하다

– 이제는 주님을 만났으니 주님 안에서 귀한 주님의 자녀로 거듭나신거네요. 그런데 케익이라는 아이템을 어떻게 생각하게 되셨나요?

“사실은 부모님이 수원에서 오랫동안 베이커리를 운영하시면서 제게 도움을 요청하셔서 군 장교로 있다가 제대하고 참여하게 됐어요. 그 무렵 지금의 수원 본점 맞은편에 대기업 베이커리가 생긴 이후 부모님 사업이 위기를 맞게 됐어요. 좀 고민하다가 2013년에 전역해서 일을 시작했는데, 처음엔 쉽지 않았어요. 사장 아들이라고 직원들이 호의적이지 않더군요. 어머니의 조언으로 정말 허드렛일부터 차근차근 배워가면서 적응해 갔어요.”

– 그렇게 합류하게 되신 거군요. 그런데 부모님 사업에 참여하면서 위기는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전혀 모르는 분야이지만, 동종업계에서 성공한 가게들을 찾아보게 됐어요. 가게를 찾아가 물었는데, 공통점이 있었어요. ‘대기업 베이커리에서 못하는 게 있다. 그걸 했더니 됐다.’는 이야기였어요. 그러다 당시에 어떤 기업에서 내놓은 ‘만 원’으로 눈길을 끄는 광고를 보게됐어요.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케익 가격을 모두 만 원으로 결정했어요. 당시 적은 사이즈의 케익은 15000~16000원 할 때였죠. 1단은 만 원, 2단은 2만 원. 그렇게 했더니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어요. 또 24시간 영업을 했는데, 기념일에 쓰려고 사람들이 전국에서 오더군요. 그리고 아주대학교 앞에 매장을 냈는데, 장사가 무척 잘 됐어요. 그래서 서울에서도 한번 해 보자 하면서 홍대 앞에서 가게를 시작했어요.”

– 위기에서 다시 기회를 얻으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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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케익하우스에서 만든 케익(슈케익하우스 제공)

“그런데 홍대에서 일을 하는 게 처음부터 쉽지 않았어요. 본사 직원을 설득해서 간신히 매장에 파견을 보냈는데, 기대한 매출의 20~30% 정도밖에 나오지 않았어요. 처음에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본사에서 최고 수준급의 직원들이 왔는데 손님이 없어서 그저 손을 놓고 있으면서 저에게 ‘어떡하냐?’ 안타까워했어요. 당시 출근하는 일이 너무 힘이 들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갑자기 매장 앞에 손님이 줄을 길게 서 있는 거예요. 깜짝 놀랐어요.”

– 무슨 일이 벌어졌나 보군요.

“당시가 크리스마스 2주 전쯤이었는데, 저희 가게 케익을 사 가신 분이 페이스북에 우리 케익에 대한 글을 하나 올려줬어요. ‘케익이 만 원이래요. 어떻게 케익이 만 원일 수 있어요? 그런데 퀄리티가 떨어지지 않아요.’ 그런 내용이었어요. 이 글이 소셜미디어(SNS)에 많이 공유되면서 몇 년 걸릴 입소문이 하루아침에 유명 베이커리가 된 거예요. 얼마나 많은 손님이 몰려오는지 저는 아무것도 못하고 교통정리를 했어요. 엄청난 매출을 올리면서 행복한 비명을 질렀죠.”

SNS에서 고객의 ‘한 줄 평’으로 대반전

– 성공 신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네요.

“위기는 또 오더군요. 우리가 잘 되니까, 우리를 모방한 가게들이 생겨났어요. 우리와 비슷한 이름을 쓰는 업소가 등장하고, 납품하던 거래처들을 모두 빼앗아갔어요. 단가를 올려주고 우리에 대한 납품 정보를 달라고 했던 것이죠. 실망도 컸어요. 그때 어머니의 조언을 해주셨어요. 거래를 끊을 때도 거래처에 손해를 끼치지 말라고 했어요. 나는 손해를 보더라도 누군가에게 피눈물 나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서 과거 거래처들이 ‘자신들이 잘못했다. 다시 거래하자.’고 돌아오는 일들이 벌어지기도 했어요.”

– 그런 과정을 거쳐 프랜차이즈를 하시게 됐군요.

“많은 분들이 프랜차이즈를 요청하셨는데 처음에는 다 거절했어요. 방법도 모르고, 뭔가 정리된 것도 없었어요. 그러나 강력하게 요구하는 분도 있고, 또 직원들에게도 기회를 주고 싶었어요. 그렇게 해서 프랜차이즈가 생겨, 지금은 19개의 체인점이 생겼어요. 그런데 저희는 프랜차이즈를 내도 그들이 함께 잘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중요한 원칙을 지키고 있어요. 자율적으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거죠. 핵심 물류는 우리가 공급하지만, 만약에 다른 물품들을 더 싸게 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사입하라고 했죠. 우리가 사사로운 것까지 공급해도 엄청 큰 부자가 되지는 않겠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물품들을 다 공개하고 열어드렸어요.”

– 대표님에게 하나님이 이런 선한 마음을 주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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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어머니와 남동생과 함께. ⓒ 복음기도신문

“상생하자는 게 제 모토에요. 내 욕심만 챙기는 게 아니라 다 나누고 함께 가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운영을 하다 보니 처음에는 어머니도 확실하게 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말씀하셨는데, 지금은 저를 이해해 주세요. 항상 잘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우리가 이렇게 도움을 드리면 나중에 우리도 도움을 받지 않을까 생각해요. 실제로 코로나로 힘들었을 때, 점주님들이 사업아이템을 제공해 주기도 했어요. 또, 어쩔 수 없이 물가가 올라서 케익시트 단가를 올렸는데, 얼마든지 반발할 수 있는데도 모든 점주님들이 아무 말 없이 다 올려 주셨어요. 믿어주셔서 감사했죠.”

– 서로 신뢰하는 관계라는 게 사업현장에서 이렇게 나타나 보인다는 게 감사하네요. 앞으로 이 기업을 통한 비전이 있나요?

“장애인들과 함께 사업을 하는 방법을 찾고 있어요. 그동안 발달장애 아동들을 단순히 돕기만 했는데, 저희가 운영하는 공장에서 업무를 단순화해서 이들이 작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해요. 그러려면 공장내부를 장애인이 쉽게 오갈 수 있도록 리모델링을 해야 하는데 당장은 비용이 많이 들어서 엄두를 못내고 있지만 방법을 찾아보려고 해요. 또 발달장애인 교육과정에 도움을 주는 것도 한 방법이에요. 또 고아원에 케익을 보내기도 했는데, 허락하는 만큼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으로 이웃과 나누려고 해요.”

– 마지막으로 기도제목을 나눠주세요.

“코로나 때문에 많이 힘들잖아요. 제 주변에도 어려운 친구들이 많고, 사업을 포기한 사장님들도 많아요. 저도 점주님들과 코로나 이후에는 전화 통화를 하면서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드리면 위안을 받으시기도 하세요. 그런데 마음의 병을 얻으신 분들도 많아요. 이분들이 빨리 회복되고 우리 가족들도 주님 안에서 건강하게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복음기도신문]

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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