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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남 칼럼] 로잔대회에서 제기된 현대 세계의 불의와 교회의 책임(2)

▲ 전쟁의 공격으로 무너진 가자지구의 한 교회. 유튜브 채널 WSJ News

. 이집트인 앤 자키 박사의 이메일

 아래에 실리는 앤 자키 박사의 첫 이메일은 앞의 글에 대한 피드백이고, 두 번째 이메일은 이번 KMQ에 실리는 원고 초안에 대한 피드백이다.

첫 번째 이메일(10월 11일)

 “나를 이 대화에 포함시켜 주셔서 감사하다. 또한 전체 상황에 대한 정확하고 객관적인 요약을 해주셔서 고맙다. 이런 대화를 이어가면서 우리 중동의 목소리를 살려주고 있는 귀하와 같은 분에게 감사를 표한다.

 금요일 아침 중동 지도자들과 데이비드 베넷의 만남에서, 우리는 세 가지 요청을 했지만, 그중 두 가지만 실행되었다. 우리는 로잔이 월요일 저녁 디부어스트 박사의 원본 발표를 편집 없이 공개한 것에 감사드린다. 그리고 데이비드 베넷이 디부어스트 박사의 공개서한을 모든 대회 참가자에게 보내어 사과 이메일과 동일한 배포 범위를 가진 것에 대해서도 감사하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2023년 10월 7일 이후 중동 교회에 대한 로잔의 태도에 대한 회개의 편지를 기다리고 있다. 이 태도는 다음 두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a) 대회 당일까지 11개월 동안 이스라엘 국가의 불균형적인 보복에 대한 비난의 언급도 없이, 집단 학살 수준의 고통에 대한 완전한 침묵과 무시가 이어졌다. (b) 정의의 가문을 이은 세계적 지도자의 목소리를 억압하여 그녀가 우리를 대신해 로잔의 침묵과 서구 복음주의 교회의 침묵을 폭로한 사건을 죄로 단정하고 침묵하도록 했다. 데이비드 베넷이 보낸 사과 이메일은 11개월의 상처에 모욕을 더하는 일이었다. 또한, 팔레스타인인, 레바논인, 시리아인, 요르단인, 이집트인들이 겪은 수십 년의 상처에 모욕을 더하는 일이었다.

 중동 교회 지도자들은 아직 성명을 발표하지 않았고, 금요일 아침에 우리와 만난 사람들을 존중하기 위해 언론과 대화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는 여전히 로잔 지도부가 요청한 회개의 편지를 기다리면서 그들에게 신뢰를 주고자 한다. 데이비드 베넷이 보낸 두 번째 이메일은 디부어스트 박사의 공개서한을 첨부한 이유를 설명하는 ‘표지 편지’로 더 정확하게 설명될 수 있다.

 귀하의 멋진 글에 피드백을 쓸 수 있도록 나에게 안전한 공간을 마련해 주어 감사하다. 모든 관련 당사자의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최선을 다하여 우리의 대화를 계속 이어가도록 하자.”

두 번째 이메일 (10월 31일)

 “10월 28일 데이비드 베넷이 보낸 이메일은 사과와 관련된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 이메일에서는 사과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고, 마치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다루어졌다. 그 이메일은 단지 디부어스트 박사의 서신을 모든 대회 참가자에게 배포하는 이유에 대한 몇 마디의 소개 및 설명이었다. 그 내용은 단지 “많은 대회 참가자가 공개 서신을 발표해 달라고 요청한 것을 존중하고자 한다.”라는 것뿐이었다. 귀하의 글에서 언급된 “그 사건”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9월 25일 첫 이메일에서는 디부어스트의 발표가 있었다는 사실과 그 발표로 사람들이 상처를 받았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인정하고 기록했다(서신에서는 유대인, 유대인들에게 사역하는 사람들, 그리고 세대주의 신학의 신봉자들이 언급되었다). 그러나 9월 28일 두 번째 이메일에서는 중동 대표단의 고통, 그들과의 후속 회의, 그리고 많은 아시아, 유럽, 라틴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및 아프리카 대표들이 표현한 좌절감, 혼란, 불승인을 인정하고 기록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피했다. 마치 한쪽만 고통을 느끼고 다른 쪽은 고통을 느끼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귀하의 글에서 “로잔의 침묵은 중동 교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 복음주의자들에게도 부정적인 메시지를 보낸다”라고 하였다. 슬프게도 사실인 이 말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전 세계 교회가 인식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로잔과 서방 세계의 침묵이 중동의 복음주의 교회와 서구 선교를 연관시키는 경향이 있는 전 세계 무슬림들에게 부정적인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러한 침묵은 수년간 이 지역에서 무슬림 이웃을 향한 선교 사역을 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사역할 수 있는 우리의 미래를 위협한다는 사실이다.

 귀하께서 L4 이후와 디부어스트 박사의 부름과 우리 모두에게 주신 하나님의 정의를 실천하라는 도전에 대해 계속해서 함께 성찰할 수 있는 이 안전한 공간을 주셔서 감사하다.

. 팔레스타인인 토니 다익의 글

<시온주의의 그림자 속에서의 선교: 로잔 IV에 대한 팔레스타인 기독교 신학자의 성찰>[1]

 나는 팔레스타인인 참가자 네 명 중 한 명으로서… 룻 파디야 디부어스트의 메시지에 대해 팔레스타인 기독교인의 관점에서 글을 발표하도록 권유받았다…[2] 내 목표는 그녀의 발언에 대한 맥락을 제공하고 팔레스타인에 대한 그녀의 발언이 주는 중요성을 확장하는 것이다. 경험 많은 라틴 아메리카 신학자인 디부어스트는 200개 이상의 국가를 대표하는 5,000명 이상의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예언자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 되게 하는 것은 종교적 경건의 피상적인 표현, ‘기독교식’ 용어, 예배송, 혹은 일부 세대주의적 종말론의 가면을 쓴 식민주의적 신학들이 억압을 정당화하고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전쟁과 폭력의 고통을 겪고 있는 모든 사람, 가자 지구의 뿌리 뽑히고 궁지에 몰린 사람들, 이스라엘과 하마스 양쪽에 의해 잡힌 인질들과 그 가족들, 자신들의 영토에서 위협받는 팔레스타인인들,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 애도하는 모든 이들에게 무관심할 여지는 없다. 그들의 고통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우리의 고통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로잔대회에서 일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 바로 이 문장들은 내가 디부어스트의 메시지를 가장 가치 있게 여긴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왜 그렇게 느꼈는지에 대한 두 가지 주요 이유를 공유하려 한다. 먼저, 디부어스트의 발언을 팔레스타인-이스라엘 갈등의 넓은 맥락에 위치시킴으로써, 두 번째로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전쟁에서 복음주의자의 역할을 논의할 것이다.

 디부어스트의 발언의 맥락: 정착민 식민주의, 아파르트헤이트, 그리고 ‘행정 구금’, 팔레스타인-이스라엘 갈등은 현대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갈등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는 대등한 사이의 갈등이 아니라 억압자와 억압받는 자, 식민자와 식민지화된 자 사이의 정착민 식민 투쟁이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유럽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기독교’ 동포들이 미주와 오세아니아에서 따랐던 정착민 식민 패러다임을 모방하고자 했다. 이 유럽 유대인들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언론인 테오도르 헤르츨이 주도한 시온주의 운동을 시작했다. 시온주의의 목표는 헤르츨이 ‘유대인의 국가’라고 부른 국가를 세워 유럽의 뿌리 깊은 반유대주의에 대처하는 것이었다. 서구 열강의 지원을 받아, 시온주의 운동은 유럽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유대인의 대규모 이민을 촉진하고 장려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이민자로서 우리 사이에 살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다. 대신, 다른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땅에 민족국가-유대인만의 민족적으로 독점적인 유대인의 국가를 세우기 위해 왔다.

 시온주의 정착민들은 이를 어떻게 달성했는가? 꽃과 풍선을 가지고 한 것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의 피와 뼈로 이루어졌다. 이는 정착민 식민 사업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의 일환으로, 많은 복음주의자가 “하나님의 신실함의 징표”로 보는 이 사건에서, 시온주의 민병대는 최소 30건의 팔레스타인 학살을 저질렀고, 530개의 팔레스타인 마을을 파괴했으며, 750,000명의 팔레스타인을 집에서 쫓아냈다(이는 이스라엘 국가가 된 지역 인구의 거의 90%에 해당). 그 결과 역사적 팔레스타인의 78%를 정복했다.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이러한 잔학 행위들이 우리의 나크바(재앙)였다. 그러나 저명한 이스라엘 역사가 일란 파페는 이를 “팔레스타인 인종 청소”라고 함으로써 자신들의 행위를 의도적인 계획의 일부로 설명하였다.

 비극적이게도 팔레스타인 나크바는 1948년에 멈추지 않았고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명확한 경계가 없는 나라이며, “최대의 땅, 최소의 팔레스타인인” 정책을 펴는 정착민 식민 국가이다. 지난해 10월 7일 가자에서 발생한 끔찍한 사건을 이스라엘은 정책 실행의 도구로 사용하였다. 그 결과 현재까지 가자에서 진행 중인 불균형한 학살적 전쟁으로 42,800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 그중 16,765명의 어린이가 목숨을 잃었다. 더욱 끔찍한 것은, 로잔 4차 대회에 참석했던 저명한 세대주의 신학자는 최근 이스라엘의 불균형한 전쟁 정책을 “이해할 만하다”라고 묘사한 점이다.

 서안 지구에서는 이스라엘이 정착민 식민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를 사용하여 “최대의 땅, 최소의 팔레스타인인” 정책을 시행 중이다. 이는 지속적인 토지 수탈과 이스라엘 정착지 확장을 가능하게 한다. 이미 서안 지구의 팔레스타인 땅의 60%(소위 ‘C 구역’)가 이스라엘에 몰수되었다. 개인적으로, 내 가족과 나는 현재 이스라엘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 때문에 강제로 추방되어 살아가고 있다.

 물론, 나는 디부어스트의 발표가 이것을 모두 다루었으면 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정의’라는 전체 주제를 다루기 위해 겨우 15분이 주어졌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녀가 이룬 것은 훌륭하다: 그녀는 “뿌리 뽑히고 궁지에 몰린 가자 지구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에 의해 잡힌 인질들”의 고통을 강조했다. 이 후자의 언급이 일부 사람들 사이에서 소란을 일으켰고, 나는 디부어스트가 “이스라엘에 잡힌 인질들”을 언급했을 때, 일부 독일인들이 자리를 박차고 나갈 뻔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떻게 그녀가 “중동의 유일한 민주주의 국가”인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인질을 잡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었는가?

 하지만 디부어스트가 한 일은 예언자적인 용기를 반영한다. 그녀는 이스라엘의 악명 높은 “행정 구금” 시스템하에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잊힌 고통을 강조했다. 이 시스템은 심지어 이스라엘 인권 단체인 B’tselem에 잘 문서화되어 있다. 서안 지구에서 이스라엘의 아파르트헤이트 체제하에서는 이스라엘 군대가 어떠한 혐의나 재판 없이도 팔레스타인을 체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정책은 같은 지역에 살고 있는 유대인 정착민들에게는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내가 웨스트 뱅크의 비르제이트 대학교에서 공부할 때, 어느 날 밤 이스라엘 군인들이 아무 이유 없이 우리 아파트에 난입해 나에게 총을 겨누었다. 나는 운 좋게도 체포되거나 총에 맞지는 않았지만, 친구 중 몇 명은 이스라엘의 ‘행정 구금’에 오랫동안 갇히게 되었다. 2024년 4월, 이스라엘 군인들은 서안 지구에 있는 팔레스타인 성공회 기독교인 라얀 나시르를 총으로 위협하며 집에서 납치했고, 그녀의 부모는 그녀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이스라엘은 저명한 팔레스타인 기독교 학자 나데라 샬후브-케보르키안을 체포하고 끔찍하게 학대했다. 그녀는 소변으로 더럽혀진 장소에 감금되고, 바퀴벌레가 들끓는 환경에서 소리를 지르며 협박을 당하고 수면을 박탈당했으며, 필수 약품에 접근하지 못한 채 지내야 했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전쟁에서 복음주의자들은 크게 세 가지를 강조한다. 첫째, 영적으로, 많은 복음주의자가 이스라엘이 적을 정복하고 물리치기를 기도한다. 나는 서방 선교 단체와 함께 선교사로 일할 때 이러한 기도를 처음 접했으며, 지금도 복음주의자들 사이에서 이러한 기도를 계속 접하고 있다. 최근에는 바로 로잔 IV에서 그러했다! 우리의 슬픔과 고통 속에서, 어떤 이는 로잔대회 기도 제목을 알리는 벽보에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하라. 이스라엘이 적들을 정복하도록!”라고 게시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대량 학살적인 기도이다. 이스라엘의 군사 교리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을 정복하는 것”은 팔레스타인의 민족 청소를 의미하며, 이는 내 조부와 가족이 1948년에 목격한 사건이자, 오늘날 가자에서 벌어지는 대량 학살적인 전쟁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일이기도 하다. 물론 로잔 지도부는 이 끔찍하고 그리스도인답지 않은 기도에 대해 어떤 사과도 하지 않았다.

 둘째, 신학적으로, 2022년 5월 퓨 리서치에 따르면, 미국의 백인 복음주의자 중 70%가 “하나님께서 현재의 이스라엘 땅을 유대인에게 주셨다”라고 믿는다. 이 믿음은 디부어스트가 이번 대회에서 비판한 세대주의 기독교 시온주의의 핵심 교리이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이 미국에서 널리 퍼져 있다고 해서 그 문제가 미국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내가 거주하는 모든 곳, 필리핀, 영국, 볼리비아 등에서 기독교 시온주의를 접한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볼리비아 코차밤바에서 우리 집 옆에 있는 오순절 교회는 기독교 상징물은 전혀 없고 대신 커다란 이스라엘 국기를 내걸고 있다. 아프리카에서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이는 Cynthia Holder Rich가 편집한 책에서도 잘 드러난다. 다수 세계에서 기독교 시온주의가 확산된 주요 이유 중 하나는 세대주의적 신념을 가진 선교사들의 영향이다. 팔레스타인 신학자 미트리 라헤브의 말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이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셨다” 또는 “이스라엘은 이 땅에 신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라는 주장은 이스라엘의 전쟁 기계를 작동시키는 ‘소프트웨어’의 일부에 해당한다. 이 ‘소프트웨어’는 복음과 양립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과 예수님의 복음을 크게 왜곡하는 것이다. 내가 최근 참석한 ‘검문소에서의 그리스도’ 포럼에서 설명했듯이, 기독교 시온주의는 하나님을 공의롭고 선한 분이 아닌 특정 민족이나 인종에게 특혜를 베푸는 부족적이고 인종차별적인 신으로 묘사한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예배하는, 의롭고 선하시며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행 10:34)이 전혀 아니다.

 셋째, 실질적으로, 복음주의의 주요 강조점 중 하나는 David Bebbington이 주장한 바와 같이 ‘행동주의’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적을 물리치기를 기도하고 이스라엘이 역사적 팔레스타인에 신성한 권리를 지닌다고 믿는 시온주의적 복음주의자들이 그들의 신학적, 영적 확신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당연하다. 예를 들어, 한 여성이 “성령님”께서 그녀를 인도해 자국의 이스라엘 대사관에 연락하여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대규모 회의를 조직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것은 고립된 사례가 아니다. CUFI(Christian United for Israel)은 미국 기반의 세대주의 연합체인데, 약 1천만 명의 회원이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신학적으로, 정치적으로 지원하는 데 헌신하고 있다. CUFI 웹사이트를 대략 살펴보면, 이 복음주의자들이 이스라엘에 제공하는 물질적 지원, 정치 로비, 재정 기부, 이스라엘을 방문하는 정치 여행 후원을 통한 “목회자들이 영적 순례자에서 열정적인 시온주의자로 변모하도록 하는” 예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CUFI의 또 다른 특징은 이스라엘 정착지에 대한 지지, 팔레스타인인의 권리 반대, 이스라엘에 더 많은 무기를 보내는 것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간단히 말해 기독교 시온주의는 복음과 정면으로 배치되며, 의롭고 거룩한 그리스도의 신부, 세상의 빛과 소금인 교회에 어떠한 자리도 없어야 한다. 로잔이 “그리스도를 선언하고 나타내다”라는 목표에 진지하다면, 디부어스트와 같은 예언적 목소리를 더욱 증폭시키고 침묵시키거나 비방해서는 안 된다. 더 나아가, 기독교 시온주의 문제는 로잔의 대위임령의 상태 보고서, 대회 자체, 그리고 서울 선언에서 제대로 다루어졌어야 한다. 대 위임령의 상태는 교회의 상태와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성품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신학을 지니는 한,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를 선언하고 나타낼 수 있겠는가? 우리가 세상에 전파하고 있는 복음은 무엇인가? 베드로와 초기 교회는 예수님의 복음을 민족들에게 전하기 전에 그들의 민족 중심적 신학을 제거해야 했다(행 10:33–36). 그렇다면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고 나타내려면, 죽음과 파괴를 정당화하는 인종차별적이고 식민지주의적인 신학을 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Ⅴ. 룻 파디야 디부어스트 박사의 공개 편지

 로잔 프로그램 팀은 나에게 서울에서 하나님의 성품, 복음의 핵심, 그리고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받은 소명에 중심이 되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해달라고 요청했다. 15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정의에 대해 이야기하라는 제안을 받았다. 아마도 이 초대를 수락하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우리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불의의 표현이 존재하기에, 이를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관점에서 철저하고 책임 있게 다루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또한, 몇 달 전 번역을 위해 제출된 원고는 실제 모임 시점에서는 다소 시대착오적인 내용을 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제기된 우려를 고려하여, 몇 가지 요점을 확인하고 두 가지 사항을 명확히 하고자 한다.

 정의를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구별하는 표지이며, 이를 위해서는 고통을 애도하고, 잘못을 명확히 하며, 우리의 연루에 대해 회개하고 성령의 역사에 따라 하나님의 성품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고통받는 사람들의 외침을 들으신다. 하나님의 자비로운 마음을 반영하여 우리는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과 함께 울고, 인종 차별과 모든 형태의 차별 및 학대의 희생자들과 함께 울며, 기후 변화로 강제 이주하는 수백만 명과, 지구와 사라져가는 종(種)들과, 세계 곳곳에서 전쟁으로 고통받는 모든 이들과 함께 울어야 한다. 그들의 고통은 곧 우리의 고통이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세상의 모든 혼란 속에 보내심을 받았다. 현실의 복잡성에도 불구하고 이를 외면하지 않고, 우리의 관점이 경험과 상황에 따라 다르며, 다양한 시각을 겸허히 듣는 것에서 더 넓은 시각을 얻을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동시에 정의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며 세상을 바로잡고자 하는 하나님의 마음에 공감하고 따르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는 내 설교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하나님의 백성을 특징짓는 것은 피상적인 신앙 행위, ‘기독교 용어’, 찬양 노래, 또는 일부 세대주의 종말론의 탈을 쓴 식민주의적 신학이 억압을 정당화하고 자금을 지원하는 식민주의 신학이 아니다.”

 이는 결코 세대주의 신학 전체를 일괄적으로 비판하거나 그 신학을 고수하는 형제자매들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 내 발언이 상처가 되었다면 사과드린다. 내가 문제 삼은 것은 일부 사람들이 특정 사람들에 대해 불의를 지속하기 위해 사용하는 문제적인 신학적 논리이다. 두 번째로, 다음의 발언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폭력으로 고통받는 모든 이들, 가자 지구에서 내쫓기고 억압받는 사람들, 이스라엘과 하마스에 의해 억류된 인질들과 그들의 가족들, 그들의 고통은 곧 우리의 고통이다.”

 먼저, 여기서 내가 이스라엘에 의해 억류된 인질을 언급한 것은 가자 지구 전체가 수년간 인질로 잡혀 모든 주민이 ‘옥외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을 고려한 것이다. 또한,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600명이 넘는 비기소 상태의 억류자들을 수용 중이다.

 비록 “고통받는 모든 이들”과 “애도하는 모든 이들”을 전 세계적으로 언급했지만, 왜 나는 특별히 가자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지목했는가? 그것은 현재 우리가 기독교인으로서 특별히 책임져야 하는 정의의 문제라는 확신에서였다. 작년 하마스의 공격은 끔찍하고 비난받아 마땅했다. 또한 이스라엘에 사는 사람들, 유대인, 팔레스타인인과 그 외 사람들이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들의 고통도 우리의 고통이다. 동시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오랜 고통은 10월 7일 이후 가자 지구에 대한 공격으로 더욱 심화되었으며, 그로 인해 4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그중 다수가 어린이였다. 또한 서안 지구에서는 정착민들의 공격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그들의 고통은 우리의 고통이어야 한다. 하지만 전 세계의 많은 복음주의자들은 무비판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하며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 이러한 불의는 반드시 명확히 밝혀져야 한다.

 내 기도는 앤 자키 박사가 우리에게 명확히 도전한 것처럼, 우리가 용기를 내어 목소리를 높이고 침묵하지 않으며, 우리의 차이점 속에서 겸손하게 존중하며 대화에 참여하여 함께 깨어진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드러낼 수 있기를 바란다.(계속)


[1] 이 글의 영어 버전은 INFEMIT(International Fellowship for Mission as Transformation, 국제 선교 변혁을 위한 펠로우십) 사이트에 10월 30일에 실렸다. https://infemit.org/l4-palestinian-perspective/

[2] 토니 딕에 따르면, 그의 글은 여러 영향력 있는 서구 기독교 매체들로부터 거부당했다고 한다. 한 편집자는 잡지의 시온주의적 편집 방침을 언급하며 제안을 즉시 거부했고, 다른 한 사람은 그의 관점이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또 다른 편집자는 그가 로잔대회 직후에 신속히 기사를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시기상 적절하지 않다며 거절했다.(계속)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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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남 | 전 아신대학교(ACTS) 선교대학원 교수 및 GMS 아랍권 선교사(천안장로교회 파송. since 1989). 그의 책으로 『이슬람과 메시아 왕국』CLC, 2009)과 아랍권 및 이슬람권 선교와 관련된 여러 <논문>이 있다.

[관련기사]

로잔대회에서 제기된 현대 세계의 불의와 교회의 책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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