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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리아로 좌절된 시간, 그러니 지금 찬양하라

사진: 김봄

[선교 통신]

말라리아를 앓았다.

몇 번의 시행착오와 사건·사고 속에서 마침내 확정된 공연이 이틀 앞으로 다가온 상황이었다.

‘안 돼요!!! 왜 하필 지금. 나 지금 아프면 안 돼요!!’

‘안 된다고, 아프더라도 지금 말고 나중에’ 라며 용을 써보았지만, 결국 하나님은 지금 말라리아로 아플 때라고 하셨다.

지금. 중요한 시점. 내가 계획하고 소망했던 사역의 열매를 맺기 직전. 나의 기쁨과 보람이 될 무언가가 이루어질 것 같은 지금. 꼼짝 못 하도록 아파야 하는 시점이라고.

현지 선교사님이 2달 동안 선교지를 비운 상황이라 병원에 데리고 갈 사람도, 약을 사다 줄 사람도 없었다. 함께 생활하는 현지인이 있었지만 무엇을 도와달라고 해야 할지,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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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봄

본격적인 아프리카 여름은 시작되었고, 일주일에 4일은 정전이었다. 물론 자가 발전기 같은 것은 없었다. 열은 40도 가까이 올랐고, 복통과 설사마저 동반되었다. 그나마 감사한 것은 시에라리온에서 겪었던 말라리아보다는 증상이 가벼웠다는 것이다. 장티푸스까지 겹쳤던 그때는 장례까지 준비했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말라리아는 말라리아다. 눈물이 나올 만큼 아팠다. 그런 와중 말라리아 때문에 부득이하게 공연을 연기해야겠다는 나의 연락에 학교 측의 답변이 왔다. 전 학년 진학 시험을 앞둔 11월부터 외부 강사의 수업은 일절 하지 않기로 했으며 어떤 외부 행사도 하지 않기로 했으니 더 이상 인형극에 관련된 강의와 공연은 할 수 없게 되었다고.

순간, 지난 6개월 동안 학교 측의 온갖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연습에 참여했던 아이들이 떠올랐다. 얼마나 실망했을까?

하지만 아이들 생각에 슬퍼할 힘도, 이러는 법이 어디 있어요? 라고 화를 낼 힘도 없었다.

탄자니아 사역 중 가장 기대하며 준비했던 공연이었는데, 결국에는 공연의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었다.

몸과 함께 마음도 무너졌다. 열이 조금씩 떨어지자 그제야 슬프고 화가 났다.

‘나는 지금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되는 일이 하나도 없잖아!!’ 라는 자괴감도 밀려왔고, ‘나는 왜 하필이면, 이렇게 첩첩산중 선교지에 와서 말라리아에 걸려도 병원도 못가고 혼자 아파해야 하는가?’라는 절망은 덤이었다.

계획하고 준비했던 사역은 예상하지 못했던 현지의 상황에 부딪혀 제대로 시도도 하지 못하고 접어야 했고, 전도의 열매는 맺히지 않았고, 사람들의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주중에 유치원에서 예배를 드리고 찬양을 부르던 아이들이 금요일 오후에는 히잡을 쓰고 모스크로 가는 모습을 볼 때 무너지는 가슴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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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봄

물론 머리로는 알고 있다. 선교는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나는 그저 결과에 상관하지 않고 듣든지 듣지 않든지 복음을 전하며 영혼들을 사랑하면 된다는 것을.

누군가 지금 나와 같은 상황에 마음의 어려움을 하소연한다면, 나는 성경 말씀과 선교의 이론적 지식을 동원해서 지당한 말로 그에게 조언을 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내가 3자가 아닌 절망의 당사자가 되어 보니, 그 어떤 조언도, 성경 말씀도, 지식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뭔가 근사하고 좋아 보이고 눈에 보이는 결과들이 있는 사역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말로는 아니라고 하면서.

탄자니아에서 작정한 일 년 동안 모양새 나게 사역을 하고 마무리하고 싶었던 게 분명해 보인다. 겉으로 표 내지 않았지만.

하지만 정작 하루하루 선교지에서 살아내는 것만으로 벅찬 요즘이다. 선교지에서의 나의 하루가 너무 작고 보잘것없어 보일 때도 있다. 마치 남의 일을 대신 해주고 있는 삯꾼 종처럼 하루하루 겨우 버티고 있을 때도 있다. 연약한 육신은 마음을 끝 간 데 없이 떨어트렸다.

하지만 감사하게 아직 나에게는 아버지를 찾을 실오라기 같은 힘이 남아 있었다.

‘아버지. 날 이곳으로 보내신 목적을 담으세요.’

하나님의 목적은 사역이 아니었다. 열매도 아니었다. 먼저는 관계였다. 인간의 인간 된 가장 큰 보상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인격과 만나는 것인데 선교와 사역과 열매에 집중하느라 정작 본질을 놓쳐버렸다.

이스라엘 광야 40년. 40년 동안 그들은 무엇을 했는가?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죽어 나가는 동안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정하고 존재하게 하셨다.

그저, 하루를 살아가는 것만이 전부인 그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시고,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지키셨다. 그렇게 40년의 하루하루를 하나님으로 채우게 하셨다.

아무것도 아닌 하루하루가 하나님 일하심의 역사였다.

억울하게 죄수 된 요셉의 비명과 절망 속에서 인간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총리가 되는일을 담아내신 하나님. 온몸을 꼼짝달싹 못 하게 묶어놓고 온 세상을 구원하시는 일을 신실하게 해나가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모세와 요셉의 인생을 기록한 말씀을 통해 나에게 말씀하신다. 비록, 선교지에서의 하루가 나의 의지와 계획과 상관없이 묶여 있더라도 묵묵하게 살라고. 하나님이 택하시고 부르신 나의 존재와 가능성을, 지금의 상황을 나의 보잘것없는 상상력으로 제한하지 말라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사소하고 작고도 연약한 오늘의 인생이 성경이 증언하는 요셉과 모세가 간 길이라는 것을.

그러니 지금. 말라리아와 좌절된 계획과 묶여 있는 하루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많은 백성에게 들리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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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봄

탄자니아=김봄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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