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에서 기독교 신념을 표현하는 현장에서 받고 있는 공격과 압력에 대해 이 같은 현상은 문화적, 영적 위기의 핵심이라고 짐 데니슨 박사가 데니슨 포럼을 통해 밝혔다. <편집자>
버지니아의 한 고등학교 교사가 학교 관계자로부터 업무용 이메일 메시지의 서명에서 성경 구절을 삭제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녀는 학교에 고용된 이후 처음부터 수년 동안 요한복음 3장 16절을 서명에 포함시켜 왔다.
그러나 해당 학교가 소속된 교육구의 교육감 대행이 그녀가 학교 직원 자격으로 보낸 이메일은 “교육구가 해당 이메일을 지지하는 성격을 띤다”고 주장했다.
교육감 대행은 교육구의 이러한 입장이 정부가 특정 종교를 다른 종교보다 선호하는 것을 금지하는 수정헌법 제1조의 국교금지조항(Establishment Clause)을 위반하지는 않는다고 본다. 그는 교육구의 결정이 “특정 종교적 관점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며 해당 교육구 소속 직원의 이메일 서명에 포함된 “모든 종교적 표현과 관련하여” 이루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기독교 법률 단체인 리버티 카운슬(Liberty Counsel)은 고등학교 풋볼 코치가 풋볼 경기 후 운동장에서 기도하고 학생들과 함께 기도하는 것이 합헌이라는 최근 연방대법원 판결을 언급하며 교육청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리버티 카운슬은 또한 보스턴시가 수백 건의 다른 유형의 국기 게양 요청이 승인된 상황에서 시청 국기 게양대에 기독교 국기를 게양해 달라는 요청을 거부한 것은 위법이라고 판단한 연방대법원의 만장일치 판결을 인용했다.
문제가 된 조항은 미국 수정 헌법 제1조로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연방의회는 국교를 정하거나 또는 자유로운 신앙행위를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
이 경우, 교육청은 직원이 직원 자격으로 보낸 이메일에서 성경 구절을 인용하도록 허용함으로써 종교를 확립할 수 있을까? 아니면 “종교의 자유로운 행사를 금지”하는 것일까?
이 문제는 이메일 서명보다 훨씬 더 큰 문제이다. 사실 이 문제는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문화적, 영적 위기의 핵심과 맞닿아 있다.
“초월에 대한 거대한 세계적 음모”
교육구의 입장은 공적인 영역에서는 조금이라도 종교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오늘날의 사회적 분위기와 전적으로 일치한다. 구시대적인 종교적 미신을 포기하지 않겠다면 적어도 그 신화는 혼자만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세속 사회의 생각이다.
오늘날 “정교 분리”는 “신앙과 국가의 분리”를 의미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이다. 따라서 법정에서 종교의 자유를 위한 연이은 승리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표현은 다른 어떤 표현과도 다르게 취급되어야 하며 대중이 아닌 개인에게 국한되어야 한다는 문화적 합의가 여전히 남아 있다.
왜 그럴까?
오스 기네스는 <초월의 신호: 삶의 메시지에 귀 기울이기(Signals of Transcendence: Listening to the Promptings of Life)>에서 오늘날 “우리가 물질적으로는 최고의 성취를 이루지만 영적으로는 낮은 성취를 이루게 하는” “초월에 대한 거대한 세계적 음모”가 있다고 썼다. 나도 동의한다.
사탄은 이러한 상황에 만족하고 있다. 그는 우리의 행복이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풍성한 생명과 그 너머의 영생을 방해한다면 기꺼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행복해지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는 종교가 초월적인 주님에 대한 우리의 헌신보다는 단지 현세적 행복을 위한 수단이라면 종교에 대해 덜 걱정한다.
비극적으로도 그의 전략은 매우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하버드 정신과 의사 로버트 콜스는 <세속적 마음 (Secular Mind)>에서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가정을 꾸린 한 여성을 알고 있던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말을 인용한다. 윌리엄스에 따르면, 그녀는 “몇 주 전에 이탈리아에 있을 때와 미국에 도착해서 이곳에서 교회에 가는 것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녀는 ‘예전에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저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어떻게 행동하기를 원하시는지 알게 해달라고 기도했지만, 지금은 하나님께 이 문제와 다음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우리의 큰 친구가 되어달라고 기도한다! 예전에는 하나님께 기도할 때 그분과 대화하듯이 기도했지만, 지금은 그저 도와달라고 기도할 뿐이다.’”
하나님이 나의 왕이신지 아는 방법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은 왕이시다. 예수님은 마태복음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 4:17)라는 선포로 사역을 시작하셨다. 예수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라”(마 6:33)고 가르치셨고,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 그의 이름은 “만왕의 왕, 만주의 주”(계 19:16)가 될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많은 사람에게 하나님은 “일을 도와주기 위해” 존재하는 “큰 친구”이다. 어느 쪽이 사실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하나님이 당신의 아버지일 뿐이라면, 당신은 그분께 불순종할 수 있다. 그가 당신의 구세주라면 구원을 위해 그를 믿을 수 있지만 다른 삶의 영역에서는 그의 말씀을 거부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진정으로 당신의 왕이라면, 당신은 그가 말하는 것을 따라야 한다.
사실, 하나님이 당신의 왕인지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당신이 원하지 않을 때 그분이 말씀하신 대로 행하는 정도를 측정하는 것이다. 언제 마지막으로 순전히 예수님에 대한 순종 때문에 하기 싫은 일을 했거나 하고 싶었던 일을 중단했나?
사실 하나님을 우리의 왕으로 모시면 모실수록, 우리는 삶에서 그분의 최고를 더 많이 경험한다. 그리고 우리가 그분의 최고를 더 많이 경험할수록, 우리는 그분의 변화시키는 능력과 은혜로 우리 문화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
“당신이 나를 인도하실 때 나는 스스로를 제어합니다”
우리의 세속 문화는 하나님을 삶과 분리함으로 하나님만이 줄 수 있는 생명을 놓치고 있다. 그들과 함께하기를 거부하자.
척 스윈돌은 얇지만 유익한 자신의 저서인 ‘전능자와의 친밀 (Intimacy with the Almighty)’에서 청교도들의 고백과 헌신을 담은 이 기도를 인용한다:
당신이 나를 인도하실 때 나는 스스로를 제어합니다.
당신이 주권자가 되실 때 나는 스스로를 다스립니다.
당신이 나를 돌보실 때 나는 스스로 돌봅니다.
당신의 공급에 의존해야 할 때 나는 스스로 공급합니다.
당신의 섭리에 따라 복종해야 할 때 나는 내 뜻을 따릅니다.
당신을 공부하고 존경하고 믿어야 할 때 나는 스스로를 섬깁니다.
나는 당신의 법을 잘못 이해하고 고쳐서 나에게 맞게 만듭니다.
주님, 내 마음을 당신께 돌려드리는 것이 내 주된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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