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기독교(12)
종교다원주의와 혼합 영성의 발흥은 비단 국외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국내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현재 진보적인 기독교 연합기관의 대표로 자리매김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의 경우 타종교와의 연합이란 명목 하에 기독교의 정체성을 내려놓는 현상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2009년, 4대 종교(개신교, 천주교, 불교, 원불교) 여성 성직자 대표들이 공동 선언문을 다음과 같이 낭독한 바가 있다. “하늘에 계신 하느님, 부처님, 성모 마리아님과 소태산 대종사님의 마음에 연하여 오늘 4대 종단의 종교 여성이 일심으로 간구하오니, 부디 이 땅에서 죽임의 굿판 대신에 신명 나는 살림의 굿판이 벌어지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중략) 받들어 비옵나니,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나무아미타불, 아멘.”[1]
어디 이뿐인가? 2008년에는 각 종교의 대표들이 모여 소위 “국토수호대장정”이라는 연합 행사를 가졌는데, 여기에 참가한 종교인들은 십자가, 부처상, 단군상을 각각 등에 지고 행진을 벌였다. 그들에게 예수와 부처와 단군은 서로 통하는 것이므로 상호 존중하고 인정하면 되는 것이지, 자기 종교만이 진리라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모습인 것이다. 이것이 요즘 많은 종교인들의 인식이며 확신이다.
세계종교회의란 것이 있다. 1893년 미국 상원과 하원의 결의로 처음 열렸던 세계종교회의는 정확히 백년 만인 1993년 8월과 9월에 인도 뱅골과 미국 시카고에서 연이어 열렸다. 개신교, 로마 가톨릭, 불교, 힌두교 등 세계의 종교 지도자들이 모여 종교 간의 벽을 허물고 인류 대화합을 논의했다. 종교 간 대화는 아무 문제없고 또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그 방향이 종교통합으로 흘러가는 것이 문제다. 뱅골대회에서 발표된 ‘지구 윤리’ 선언문은 기존의 기독교 중심의 가치관을 수정하고 동양 종교의 가치관을 포함시켜 작성된 것이다.[2] 종교통합의 거대한 흐름은 종교 지도자들이 앞장서서 조성하고 있지만, 이미 대다수 종교인들 특히 기독인들도 그 흐름에 동참하는 추세다.
기독교 리서치 기관인 바나그룹이[3] 2011년 실시한 설문조사가 그 증거가 될 수 있다.[4] 설문 내용 중 “모든 종교 신앙은 동일한 가르침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당신이 따르고 있는 종교 신념이 (구원 여부에) 중요하지 않다”는 항목에 43퍼센트의 응답자가 ‘동의 한다’고 응답했으며, 54퍼센트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또 “모든 사람들이 종교 신념과 관계없이 사후에 동일한 결과를 경험할 것이다(즉, 구원받는다)”라는 항목에 40퍼센트의 응답자가 ‘그렇다’고 답했으며, 55퍼센트가 ‘그렇지 않다’고 응답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무슨 일을 했든, 인류를 창조하고 모든 이를 (차별 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것이다”라는 항목에는 40퍼센트가 긍정했으며 50퍼센트가 부정했다. 이 설문 내용은 결국 한 가지 결론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은 곧 응답자의 40퍼센트 이상이 종교다원론과 보편구원론(universalism)을[5] 지지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 설문조사가 눈길을 끄는 것은 비종교인이나 비기독교인과는 별도로 기독교인을 대상으로도 설문 조사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회심한 기독교인’이라고[6] 밝힌 응답자 중 25퍼센트가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구원 받는다”고 응답했으며, “모든 종교가 동일한 가르침을 가르치고 있다”는 질문에 26퍼센트가 긍정했다. “기독교인과 무슬림은 각자 다른 이름으로 칭하고 종교적 신념에도 차이가 있지만 결국 같은 신을 섬기는 것이다”라는 항목에 회심한 기독교인은 40퍼센트, 전체적으로는 59퍼센트의 응답자가 동의하였다. 전체 세대 가운데, 18-39세의 젊은 층이 그 윗세대보다 보편구원론과 종교다원주의에 더 긍정적인 응답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비기독교인 보다는 낮지만, 구원의 확신이 있는 기독교인 가운데도 예수 그리스도와 기독교의 절대 구원관이 명확하지 않은 비율이 최소 25퍼센트 이상이 됨을 이 조사는 보여주고 있다. 거듭난 기독교인이 이럴 정도면 다른 사람들의 인식은 과연 어떠하겠는가? 세계 최대의 기독교 국가라고 인정되고 있는 미국이 이럴 정도면 과연 다른 나라는 어떠하겠는가? 바야흐로 세계는 온통 뒤죽박죽 영성으로 통일되고 있는 중이다.
혼합 영성은 기독교의 자업자득(自業自得)
포켓북으로 유명한 미국의 펭귄 서적(Penguin Books)이 수년 전 휴대용 ‘성경’을 출판하였는데, 그 ‘성경’은 힌두교, 불교, 유교, 도교, 조로아스터교, 유대교, 기독교의 모든 경전들로부터 발췌된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문자 그대로, 퓨전 시대(fusion age)에 걸맞는 퓨전 성경이 등장한 것이다. 이 성경책은 당연히 상업적으로 판매에 유리할 것으로 판단한 출판사의 마케팅 전략으로 탄생한 창조물이다. 그 출판사는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간파한 것이다. 이미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르치고 목회자를 양성한다는 신학교 교수까지도 그렇게 퓨전 신학에 마음의 문을 활짝 열었기 때문이다.
교회 성장학과 리더십으로 세계 기독교에 이바지해온 미국 풀러 신학교(Fuller Theological Seminary)가 지금 보수주의의 울타리 밖으로 넘어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최근까지 20년 동안 총장을 지낸 리처드 마우 교수는[7] 힌두교도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의견을 개진(開陳)해서 전 세계적인 이슈 메이커로 떠올랐다. 물론 이 의견은 모든 힌두교 신자들이 천국에 간다는 의미가 아니고 12세 이하의 어린 아이들에게 해당되는 주장이다. 마우 총장이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바로 미국 남침례교의 신앙고백 때문이다. 세계 최대 침례교단인 남침례교는 12세까지의 어린 아이들은 예수를 몰라도 구원받는다는 교리를 가지고 있는데, 그렇다면 힌두교 아이들도 거기에 포함될 수 있는 것이라고 그는 주장하는 것이다.
일견 마우 총장의 의견은 그럴듯해 보인다. 그런데 그는 자기가 논거(論據)로 삼고 있는 남침례교의 교리 자체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남침례교는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예수를 몰라도 어린 아이들은, 특히 12세 이하의 아이들은 천국에 간다고 믿고 있는가? 어른보다 순수한 아이들이 예수 모르고 천국가지 못한다고 하면 왠지 마음이 불편해서 그런 것 아닌가? 그렇다면 예수의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지만 착하고 선량하게 살았던 옛날 사람들과 오늘날의 오지(奧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찌 되는가? 사실 이런 질문과 주장에 대한 답을 주고자 하는 노력으로서 나온 것이 위와 같은 남침례교의 교리이고, 또 로마 가톨릭의 ‘유아·조상 림보(limbo)’교리다.[8]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을 위해 충분한 특별 계시를 전해주고 있지만, 영적 세계에 대한 우리의 궁금증을 모두 답해주지는 않는다. 어린 아이가, 옛날 사람이, 오지의 사람이 어찌되는지는 오직 하나님만이 확실히 알고 계신다.[9] 그것을 왜 사람이 답하려고 하는가? 남침례교와 마우 총장의 ‘오버’는 모두 인본주의적 욕심에 기인한 결과물이다.
인본주의에 입각한 신학 하면,[10]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변선환 교수가 먼저 떠오른다. 이는 감리교단 안에서 신학적 갈등이 표출되어 매스컴을 탔기 때문이다. 감리교 신학대학교 재직 당시 변 교수는 한국 선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발표한 ‘타종교와의 신학’에서 종교적 다원사회 속에서 기독교는 과거 개종을 강조하는 입장을 깨끗이 버리고 타 종교와 동등한 입장을 가지고 타종교가 신학의 주체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이와 비슷하게, 한국신학대학교의 김경재 교수는 『이름 없는 하느님』이라는 책에서 종교다원론을 적대시하거나 비 진리로 규정하는 신학이야말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하나님을 아주 편협하고 공격적이고 무자비하고 인정사정없는 신으로 소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책은 기독교의 유일신 신앙을 본격적으로 반박하는 주장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하나님의 유일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신학교 교수로 목회자 후보생을 가르치는 것이 이 시대의 영성이다.
비단 신학교 교수만이 아니라 대중적으로 유명한 목회자 역시 종교다원주의적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세계 최대의 교회인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는 2004년 5월 12일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에서 70여 명의 스님 및 불자 청중 앞에서 다음과 같은 강연을 했다.
물론 조용기 목사가 자유주의자나 종교다원주의자는 아니다. 그런데 왜 불교도들 앞에서 그렇게 말을 했을까? 그는 정말 기독교의 구원과 원효대사의 구원을 동일하게 보는 걸까? 그는 정말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가 동등하다고 믿는 걸까? 그는 정말 불교 강의를 듣고 기독교 진리를 더 깊이 깨닫는 걸까? 가장 힘 있는 목회자가 그렇게 말을 했으니 그냥 넘어갔지 만약 다른 평범한 목사가 대외적으로 그렇게 말을 했으면 그냥 넘어갈 수 있었을까? 타종교인들에게도 인정받고자 하는 욕심이 그 자리에서 그렇게 말하도록 조 목사를 유혹받게 만든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자신이 종교다원주의자인 것처럼 오해를 받고 있다는 것을 조용기 목사 자신이 인식하고 있었는지 2012년 9월 26일자 주요 일간지에 다음과 같은 제목의 광고가 실렸다. “저의 신앙관을 공개합니다” 그는 이 광고에서 WCC가 종교다원주의, 동성결혼, 공산주의를 포용하며 다양성을 위장하는 혼합종교 성향이지만,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강조하는 성서적 삼위일체 신앙을 전한다고 밝혔다. 또한 그동안 자신의 이러한 소견을 밝히지 못한 것은 전 세계에 있는 친구들과 동역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민했기 때문이라고 솔직하게 고백하였다.
[1] 「국민일보」 2009년 11월 2일一문득 앞에서 나온 WCC 살풀이 초혼제가 떠오르지 않는가?
[2] 이 선언문은 스위스의 로마 가톨릭 신학자 한스 큉 박사가 기초한 것이다. 큉은 종교간 대화를 주창했다.
[3] 바나그룹은 2005년부터 매 년 미국 전역의 18세 이상 성인 천 명 이상을 대상으로 무작위 전화(휴대전화) 인터뷰 조사를 통해 동일한 내용의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4] 「기독신문」 2011년 4월 27일 “미국 기독교인 4명 중 1명 ‘종교 상관없이 천국 간다’”에서 글 전체 인용
[5] 신(神)은 사랑이기 때문에 어떤 조건과 상관 없이 모든 사람에게 영생과 구원을 준다는 반(反)성경적 주장
[6] 설문조사에서 정의된 회심한 기독교인은 자기 스스로를 “오늘 자신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중요하다고 믿고 그에 헌신하고 있다”고 믿으며,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자임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죄를 고백했기 때문에 죽은 후 천국에 간다”고 응답한 기독교인을 뜻한다.
[7] 마우 교수는 기독교 윤리학이 전공인 학자인데 목사가 아닌 사람으로 1993년부터 2013년까지 총장을 역임한 특이한 존재다.
[8] 유아림보는 영세 받지 못하고 죽은 아기들이 가는 곳으로 지옥이나 연옥이 아닌 별도의 회색지대다. 비슷한 이유로 조상림보가 있으며, 이 유아·조상 림보 교리는 로마 가톨릭이 인본주의적으로 만들어낸 교리다.
[9] 물론 나는 내가 속한 교단의 신앙 고백을 따른다. 그러나 정답은 하나님만 아신다.
[10] 인본주의 신학은 다른 말로 자유주의 신학이다. 자유주의는 성경을 인간의 잣대로 재구성한다.
[11] 조영엽, 「교회를 타락시키는 베스트셀러 “목적이 이끄는 삶” “목적이 이끄는 교회”」, 성광문화사, 40-41쪽
[복음기도신문]
*이 칼럼은 필자의 저서 <눈먼 기독교>에서 저자의 허락을 받아 발췌, 게재합니다.
박태양 목사 | 중앙대 졸. LG애드에서 5년 근무. 총신신대원(목회학), 풀러신대원(선교학 석사) 졸업. 충현교회 전도사, 사랑의교회 부목사, 개명교회 담임목사로 총 18년간 목회를 했다. 현재는 (사)복음과도시 사무총장으로서 소속 단체인 TGC코리아 대표와 공동체성경읽기 교회연합회 대표로 겸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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