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기독교(11)
2013년 10월 부산에서 개최될 세계교회협의회(WCC)[1] 제10차 총회를 앞두고 한국 교계는 커다란 진통을 겪었다. 1959년 대한예수교장로회가 합동측과 통합측으로 분열될 당시 WCC 탈퇴 찬반 여부가 그 핵심 이슈였는데,[2] 이제 50여년이 지난 후 다시 보수의 반대와 진보의 찬성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거친 논쟁을 하고 있다. 논쟁의 핵심은 WCC가 과연 종교다원주의인가[3] 하는 점이다. 보수 측은 그렇다는 입장이고 진보 측은 그렇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진보 측 입장에서 아무리 옹호를 하여도 WCC가 종교다원주의를 지향한다는 점은 결코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소위 WCC ‘초혼제(招魂祭)’ 사건을 예로 들어 보자.
1991년 호주 캔버라에서 열린 WCC 7차 총회에서 한국 이화여대의 조직신학 교수 정현경이[4] “성령이여 오소서! 온누리를 새롭게 하소서!”라는 주제 강연을 했다. 정 교수는 강연 중 한(恨)을 안고 죽어간 영혼들의 이름이 적힌 창호지에 불을 붙여 하늘에 재로 날리는 퍼포먼스를 했다.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착취당하고 버림받은 애굽인 하갈의 영혼이여 오소서.” “2차 대전시 일본군의 정신대로 끌려가 죽은 한국인의 영혼이여 오소서.” “광주, 천안문, 리쿠니아에서 탱크에 떠밀려 죽은 자들의 영혼이여 오소서.” 정 교수는 무당 살풀이를 통해서 성령을 불러내는 신성모독을 범했다. 정 교수의 연설에 총회 참가자 대다수가 기립박수를 보냈다는데 우리는 경악을 금치 못한다.[5]
당시에 참가했던 우리나라 기독교 대표들도 기립박수를 했는지가 궁금하다. 이 일은 강신(降神, 신내림)을 성령강림과 구분하지 않는 정 교수의 신학과 그것에 박수를 보내준 참가자들의 영성이 드러난 사건이었다. 어떤 사람은 ‘초혼제’ 사건은 우발적인 해프닝일 뿐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WCC가 혼합주의 영성으로 변질된 것을 증명하는 사례들은 더 많이 있다.
WCC 제5차 나이로비 총회는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유대교 지도자들이 옵저버(observer, 참관인) 자격으로 참가하도록했고, 다음 6차 총회부터는 아예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유대교, 시크교 지도자들이 정회원으로 참가하도록 했다. 그뿐 아니라 인디언 토템(totem) 주상을 총회 중에 세워놓고, 총회 임원진이 이교(異敎) 예배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WCC의 신학적 위험성은 단순히 행사 내용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WCC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선언문을 살펴보면 그들의 신학과 사상이 잘 드러나는데, 예를 들어 1990년 바르선언문(Baar Statement)의 내용 일부를 살펴보자.[6]
우리는 모든 나라와 민족들 가운데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임재가 항상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스도인들로서 언제나 우리의 증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경험한 그 구원에 대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능력을 제한할 수는 없다.’
만물의 창조주로서 하나님께서 종교들의 다원성 속에 임재하시고 활동하신다는 확신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활동이 어떤 하나의 대륙이나 문화적 유형, 혹은 민족들의 집단들에 제한될 수 있다는 가능성조차 생각하지 못하도록 한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기독교적인 신앙은 우리로 하여금 종교적인 다원성의 전 영역을 진지하게 취급하도록 요청한다.
우리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아는 하나님을 다른 신앙을 가진 우리 이웃의 인생 가운데서도 만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개방’을 천명해야 한다.
양식(良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선언 문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길게 말했을 뿐이지 실제로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도 온 인류를 구원하신다’라는 것이다. WCC는 드러나는 양상으로나 자신들의 선언으로나 한결같이 종교다원주의를 지지하고 있다. 이것은 사람의 생각으로 하나님을 각색하며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신을 만들려는 인본주의의 한 모습이다.[7]
1989년에 발표된 산 안토니오 선교대회에서도 앞의 바르선언문 첫 번째 항목과 유사한 내용이 발표됐다. “우리는 예수님 외에 구원에 이르는 다른 길을 가리키지 않는다.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제한할 수 없다.” 이 문구에 대해서 장로회신학대학교 한국일 교수는 다음과 같이 우호적으로 말한다.
이 둘 사이에 아직 해결되지 않은 긴장이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두 진술은 서로 모순되는 것 같이 보이지만 그 의미를 주목해 보면 구원의 계시를 하나님의 주권의 맥락에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을 가리킨다. (중략) 논리적으로 말하면 후자의 진술은 전자의 진술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포괄하는 관계다.[8]
결국 하나님의 능력은 예수 외에 구원의 길을 내실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이 문구를 보수 신앙에 위배되지 않는 듯이 해석하는 것은 솔직히 억지다. 마치 종교다원주의를 인정하면서도 그렇지 않다는 듯이 궤변을 늘어놓는 랍 벨 목사와[9] 비슷한 인상을 풍긴다. 물론 WCC에도 긍정적인 요소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본적으로 신학적인 왜곡과 오류가 매우 심한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지지하고 거기에 동참하는 것은 현명한 판단이 아니다.
이와 관련해,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일동은 다음과 같이 WCC의 신학적 오류와 위험성에 대해서 성명서를 발표 한 바가 있다.[10]
1. WCC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부인한다.
2. WCC는 정통 삼위일체론,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교리를 거부한다.
3. WCC는 성경에 계시된 유일신론을 이탈하고 있다.
4. WCC는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구원의 중보자로 여기지 않는다.
5. WCC는 성령을 타 종교의 영적 현상과 혼동하고 있다.(하략)
그런데 세계적인 행사인 WCC 총회가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것을 무작정 반대하기에는 좀 꺼림칙했는지, 2013년 1월, 보수 교계 연합체인 한기총은[11] 조건부로 WCC 총회를 찬성하고 나섰다. 그 조건이란, WCC가 ‘종교다원주의 배격, 공산주의·인본주의 반대, 개종·전도금지주의 반대, 성경이 신앙·행위의 절대 표준’이라는 신앙고백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다. WCC가 정말로 이렇게 탈바꿈한다면 당연히 모든 교회는 연합의 기치를 높이 올려야 한다. 그런데 진보 진영과 보수 진영의 이 공동 선언문을 두고 진보 진영 내에서 극심한 반대가 일어나 결국은 진보 측에 의해 선언문이 파기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것은 충분히 예견됐던 일인데, 혼합 신앙을 배척하는 보수 진영의 입장을 진보 진영이 수용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1] WCC(World Council of Churches) 는 1948년 암스테르담 1차 총회 이후 지금까지 매7년마다 총회를 개최하고 있다. 전 세계 110여 개국 정교회, 성공회, 장로교, 감리교, 루터교, 개혁교회, 오순절교회 등 340여개의 교회 교파 교단들이 가입해 있으며 5억 6천만 기독교인들의 연합기관이지만, 좌경화(폭력 정당화)와 다원주의적 색채로 인해 끊임없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2] 탈퇴 찬성이 합동측, 반대가 통합측이 됐다.
[3] 多元主義, pluralism
[4] 현재, 미국 유니온 신학교 교수
[5] 권성수, 「기독신문」, ‘기독논단’, 2009년 10월 13일
[6] 2010년 4월 3일 한국복음주의 역사신학회가 주최한 정기학술발표회에서 황대우 박사가 발표한 내용 중 발췌
[7] 물론 종교다원주의를 반대하는 것이 곧 종교 간의 대화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화의 필요성이 곧 통합의 필요성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8] 「목회와신학」, 2010년 4월호, 64쪽
[9] 랍 벨은 『사랑이 이긴다』에서 종교다원주의 외에 제한적 멸절론과 만인구원론을 교묘하게 주장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육적인 부활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신앙을 드러냈다.
[10] 「기독신문」 2010년 5월 4일一성명서의 각 항에 대한 구체적인 증명은 다음의 책에 잘 나타나 있다. 문병호, 『교회의 ‘하나됨’과 교리의 ‘하나임’』, 지평서원
[11] 한국기독교총연합회,2012년 한기총에서 한교연(한국교회연합)이 분리됐다.
[복음기도신문]
*이 칼럼은 필자의 저서 <눈먼 기독교>에서 저자의 허락을 받아 발췌, 게재합니다.
박태양 목사 | 중앙대 졸. LG애드에서 5년 근무. 총신신대원(목회학), 풀러신대원(선교학 석사) 졸업. 충현교회 전도사, 사랑의교회 부목사, 개명교회 담임목사로 총 18년간 목회를 했다. 현재는 (사)복음과도시 사무총장으로서 소속 단체인 TGC코리아 대표와 공동체성경읽기 교회연합회 대표로 겸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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