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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이란 Z세대, 베일 벗고 자유 외치며 이슬람 종식 요구

중동 이슬람 사회에서 여성들이 사회활동을 통한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사진: 이정순 제공.

이란 시위로 본 무슬림 여성과 베일(1)

본지는 필자가 <이란 시위로 본 무슬림 여성과 베일>이라는 제목으로 「선교타임즈」  2023년 1월호와 2월호에 발표한 내용을 허락받아, 게재한다. 각주는 생략하고 참고문헌으로 대신한다.<편집자>

I. 들어가는 말

2022년 9월 13일 이란 테헤란 도심에서 베일(아랍어 Hijab,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쿠르드족 여성 마흐사 아미니(Mahsa Amini, 22)가 ‘도덕 경찰(morality police)‘에 끌려간 뒤, 16일 의문사했다. 아미니의 사망에 항의하는 시위가 촉발된 후 석 달째 이어지고 있는 반정부 시위는 2009년 민주화 시위 이후 최대 규모이며 여성이 시위의 주체가 되고 있다.

2022년 11월 10일자 LA타임스(Los Angeles Times) 인터넷판은 54일 동안 시위를 모니터링해 온 이란의 인권 운동가(Human Rights Activists in Iran) 단체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소요로 어린이 포함 최소 328명이 사망하고 1만 4825명이 체포됐다.

반정부 시위에서 이란 여성들이 베일을 불태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2009년 대통령 선거 후 부정선거에 대한 항의 시위는 주요 도시의 중산층이 주도한 것으로 수백만 명이 거리 시위에 참여했다. 2017년에는 경제실정에 대해, 2019년에는 연료 가격 인상에 대한 경제 상황에 항의하며 전국적인 시위가 있었는데, 대부분 노동자 계층 중심으로 발생했다. 그러나 이번 시위는 사회 계층이나 나이의 구분 없이 다양한 시민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일부 지역이 아니라 여러 도시와 마을로 번져나가고 있다. 노동자, 부유층에 유명인들까지 가세하고 있다.

이번 시위는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가장 긴 시위이다. 특히 이란의 Z세대에게 소셜미디어(SNS)가 보급되면서 시위 촉발에 영향을 미쳤다. 현 체제에서는 미래가 보이지 않아 젊은 세대도 용기를 내어 국가의 변화를 외치고 있다. 이전 세대가 이슬람 내부에서 체제를 바꾸고자 노력했지만 실패한 모습을 보면서 Z세대가 방법을 깨우쳤다. 시위대는 주로 평등을 외치며 베일을 벗고 흔드는 걸 넘어서 자유를 외치며 이슬람 공화국의 종식을 요구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이란에서 발생한 반정부 시위 중 가장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다.

21세기는 지구촌 시대이다. 우리가 우리와 다른 나라의 가치와 문화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들을 잘못 판단할 수 있다. 지금의 이란 사태와 관련, 이란 역사 속에서의 베일 착용을 전체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일부 사람의 경우 이란이 시아파 종주국이기 때문에 여성을 샤리아(Shariah, 이슬람 율법)로 압박하고 사회적으로 여성을 보호한다는 미명 하에 격리하며 여성 인권을 묵살하고 있다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2022년 9월부터 이란 여성의 베일 착용으로 발생하는 이란의 시위 현상과 다른 이슬람권 국가나 무슬림 여성들의 베일 착용 현상을 서구의 잣대나 외부자의 관점에서 일반화시켜서는 안된다. 이러한 것은 단편적이며 왜곡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므로 차별화된 시각으로 보아야 한다. 2009년 7월과 2019년 3월 필자는 지역 연구차 두 번에 거쳐 이란의 여러 도시와 마을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이슬람 여성의 ‘베일’ 착용과 이란의 반정부 시위를 분석하고자 한다. 

▲ 이슬람 사회에서 현대식 복장을 한 여성들과 필자. 사진: 이정순 제공

II. 이란 시위의 일반적 이해

이란은 중동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을 세운 민족 중 하나이며, 오래 독자성을 유지한 긴 역사를 지닌 나라이다.

1. 이란의 종교 변천사

현재의 이란은 구약성경의 중심 무대이다. 이란은 튀르키예(터키), 이스라엘처럼 중동의 일부지만 아랍 국가가 아니다. 이슬람 국가이면서도 아랍어권이 아니며, 이란인은 아랍 인이 아닌 인도-유럽어족인 아리안(Aryan)이다. 아랍인은 셈족이므로 이란인과 둘을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이란은 구약성경에서 메대, 바사 그리고 엘람 등으로 표현되어 있는 지역이다.

기원전 6세기경 고대 철학자이자 종교가인 조로아스터(Zoroaster)가 중앙아시아에서 창시한 조로아스터교는 1000년간의 이란의 패권시대에 중동 전체에 강력한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7세기 아랍 무슬림들이 중동을 정복해 이란인에게도 이슬람교가 강제로 도입됐다. 이란은 이슬람을 받아들여 시아파 종주국이 됐다. 시아파는 무함마드의 혈통만이 이슬람의 지도자(칼리프)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무함마드의 사촌동생이며 그의 딸 파티마와 결혼한 사위인 알리(Ali: 656~661)의 추종자들은 시아라고 불렸다. 알리와 그의 부인 파티마의 열두 직계 후손들이 무함마드를 계승했다고 믿는다. 

역사적으로 이란은 다양한 민족과 종교가 공존하며 사상과 시각이 교차하고 때로는 충돌하는 역동적인 나라이다. 이슬람이란 종교, 정치, 문화 등을 포함하는 하나의 문화 공동체이므로 하나로만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복잡한 종교이다. 이슬람 세계는 획일화된 하나의 세계가 아니며, 다양성과 공통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세계이다. 오늘날의 이란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종교와 문화이다. 이란의 전통문화를 제외하고 이슬람이 이란의 모든 것을 조절한다고만 생각하는 것은 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란을 이슬람이라는 종교의 틀로만 평가하기에는 부족하다.
  이란인들에게 종교는 절대적 가치이지만 이란을 이해하기 위하여서는 종교만이 아니라 전통문화를 이해하여야 한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 발생 이전의 이란과 그 이후의 문화를 살펴보아야 한다.

전통 복장의 이슬람 여성들이 거리를 지나고 있다. 사진: 이정순 제공.

  2. 이슬람 혁명으로 군주제 폐지

이란은 약 1400년간 군주제를 유지하였으나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군주제를 폐지했다. 현재 이란의 공식 명칭은 이란 이슬람 공화국(Islamic Republic of Iran)이며 시아파 종주국이다.

페르시아(이란)의 마지막 왕조카자르 왕조의 코사크 부대 사령관이던 레자 칸 팔라비(Reza Khan Pahlavi, 1989~1944, 재위 기간 1925~1941)가 1921년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 그는 1925년 ‘레자 샤(왕. 황제) 팔라비’로 등국하여 제1대 팔레비 왕조가 시작됐다.

레자 샤는 1935년 3월 21일 ‘페르시아’란 이름을 폐기하고 ‘이란(아리아인의 땅)’으로 국명을 변경하였다. 레자 샤는 이슬람의 종교적, 전근대적 사고방식 대신 세속적, 서구적, 합리적, 근대적 국민 의식을 상승시키려 했다. 그는 여성들에게 공공장소에서 베일을 착용하지 말고, 기장이 긴 전통적인 옷 대신 적당한 길이의 스카프를 착용할 것을 권장했다. 그러나 1936년 레자 샤는 베일 착용을 공식적으로 금지했다.

1941년 9월 16일, 팔라비 왕조의 초대 샤에 이어 그의 아들 무함마드 레자 팔레비 (Muhammad Reza Pahlavi 1919~1980, 재위기간 1942~1979)가 팔레비 왕조의 제 2대 샤로 즉위하였다. 무함마드 레자 샤는 1967년 10월 26일부터 ‘샤한샤(왕중왕 또는 황제)를 사용했다. 그는 전제군주였지만 진보적인 정책과 함께 서방의 문화를 선호해 세속적인 성향의 정책을 펼치며 이란의 현대화가 시작됐다. ‘백색혁명’이라는 개혁을 통해 1963년 이란 여성은 선거권 및 참정권을 인정받았다. 소외된 지역의 교육 접근성을 개선하려는 노력, 결혼과 이혼 등을 합한 가족보호법이 통과됐으며 여성의 권리를 확대했다. 가족보호법은 여성의 최저 결혼 연령을 기존의 13세에서 18세로 상향 조정했다. 일부일처제를 명시하여 당시 중동의 다른 국가에 비해 상당히 진보적인 것이었다. 이란은 매우 보수적이고 종교적인 사회였지만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틀을 깨고 여성들이 사회로 나올 수 있게 허용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존재했다. 공적인 영역에서 이란 여성의 역할이 점점 증가하여 사회에 활기를 불어넣어 여성 장관과 판사도 있었다. 그러나 무함마드 레자 샤는 개혁을 밀어붙이기 위해 반대 세력과 언론을 강도 높게 탄압했다. 그와 이슬람 성직자들의 대립은 이슬람 혁명을 촉발한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정치적으로 1979년 이슬람 혁명 발생 전에 이란은 원래 중동의 대표적 친미국가였다. 오늘날 이란의 통치 형태는 신정일치와 중앙집권적이다. 무슬림들은 이슬람이 정치, 경제, 사회, 종교, 군사 분야에까지 모두 포함됐다고 믿는다. 이 때문에 신정일치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슬람 보수파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Ayatollah Ruhollah Khomeini)가 1979년 2월 11일 이슬람 혁명을 일으켰다. 이란 이슬람 공화국 헌법은 전문 제14장 제175조로 구성되어 있다. 헌법 전문에는 ‘이란 이슬람 공화국은 이슬람 원리에 토대를 둔 이란 국민의 문화, 사회, 정치 및 경제의 기초가 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슬람 혁명 이후부터 이란의 정치체제는 이슬람 신정공화제로, 이슬람법에 의해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선거를 통해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선출하고 있으므로 이란의 권력은 둘로 나누어진 대통령 위에 최고 지도자라는 독특한 정치 구조를 갖고 있다. 이란 대통령은 대외적으로 모든 것을 행사하고 주관하지만, 중요 사안에 대한 실질적인 최종 결정은 최고 종교 지도자가 헌법수호위원회를 통해 입법·사법·행정부를 통제하는 국군통수권, 대통령의 임명권, 외교권 등 중요 권한을 가지고 있는 이중성을 지닌 나라이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Ayatollah Ali Khamenei)는 호메이니가 1989년 6월 4일 사망한 이후 종신직인 이란의 최고지도자 자리를 33년째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란은 선거를 치르지만 사실상 종교 우위의 독재 국가에 가깝다. <계속> [복음기도신문]

이정순 박사 | 한국 OM국제선교회 초대 부대표. 백석대학교 선교학 교수 역임. 순회선교사역 및 자역연구차 전 세계 6대주 94개국 방문(1980~2019). 현재 한국OM국제선교회 자문위원, 선교타임즈 편집위원과 아신대학교 중동연구원 수석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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