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 중지론자와 은사 지속론자 사이에 여러 가지 논쟁이 있습니다.
특별히 이번에 “그리스도인의 상투적인 말(3): 하나님이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에 대한 반응을 보면서 양 진영의 관점에 따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본적으로 은사 중지론자는 하나님의 직접 계시가 이제 주어지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에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셨다”는 말이 상투적으로 쓰이고 있지만 잘못된 말이라고 생각하고, 은사 지속론자는 하나님이 지금도 직접 말씀하신다고 믿기 때문에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셨다”는 말이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간단하게 입장의 차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님께서 음성이나 환상으로 계시하실 수 있는 분인가?(가능성)
양 진영: 그렇다
2. 하나님께서 음성이나 환상으로 지금도 일반적으로 계시하는가?(현상)
은사 중지론자: 아니다/은사 지속론자: 그렇다
3. 경험한 음성과 환상이 주관적인 느낌이 아니라 분명히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양 진영: 성경을 통해서
은사 중지론자와 지속론자 모두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성경 외에는 다른 방식의 계시를 할 수 없는 분으로 하나님을 제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일반 계시인 만물과 양심을 통해 영광을 드러내고 계시고 역사에 기록되고 있는 하나님의 섭리와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원하기만 하신다면 과거에 그렇게 하신 것처럼 음성이나 환상, 꿈처럼 여러 다른 방식을 통해서도 충분히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십니다.
그러나 두 견해의 차이는 “현재 하나님이 그렇게 일하시는가?”에 있습니다. 은사 중지론자는 ‘그렇지 않다’고 보고 은사 지속론자는 ‘그렇다’고 봅니다. 이 견해의 차이는 글 하나로 좁힐 수 없으니 일단 여기서 다루지 않고 넘어가 봅시다. 제가 다루고 싶은 부분은 세번째 질문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록된 계시가 아닌 다른 방식을 통해 직접 우리에게 계시하고 있다면 그것이 진정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하는가?
은사 중지론자의 입장에서 이런 일은 보통 일어나지 않지만 만일 일어난다는 것을 가정한다면 하나님에게서 온 계시라는 것을 확증하는 방법은 성경입니다. 은사 지속론자는 이런 계시를 인정하지만 역시 그 확증의 방법은 성경이라고 말합니다.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질문이 따라옵니다.
성경으로 검증한다는 것은 정확히 어떤 의미일까요?
가령 어떤 선교사가 일평생 한국에서 삶을 헌신하며 잃어버린 영혼을 섬기다가 암에 걸렸고 간구하는 가운데 하나님으로부터 ‘내가 너를 치유하리라’는 확답을 음성으로 받았다고 생각해봅시다. 어떻게 이 계시를 성경으로 검증할 수 있을까요?
1. 성경 본문은 지금 내 상황에 대한 직접적인 답을 주지 않는다.
성경 본문은 지금 내 상황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아무개야, 네 병이 나을 것이다”라는 식의 구절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설명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문제는 성경 구절을 읽을 때 내가 중립적, 객관적 마음을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고침을 받는다”는 구절도 있지만 동시에 “죽었다”는 구절도 있습니다. 병에서 놓임을 받고 싶은 사람의 눈에는 ‘고침을 받는다’라는 구절이 ‘죽었더라’ 보다는 훨씬 더 감동으로 와닿을 것입니다.
또한, 만일 그가 결국 의사의 말대로 죽게 되었다면 그가 얼마나 크고 확실한 감정을 가졌든지 그가 받은 음성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라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치유하겠다고 약속하시고는 그냥 약속을 어기고 생명을 취하시는 분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마음에 아무리 큰 평안이 있더라도 그 감정이 내가 음성이나 환상으로 받은 계시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라는 확답이 되지 못합니다. 성경으로 그것을 검증할 방법이 없습니다. 성경이 내가 음성이나 환상으로 받은 계시를 직접적으로 확증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2.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은 내 생각의 제약을 받지 않으신다. 다른 말로 하면 성경의 하나님은 모든 일을 자기의 기쁘신 뜻대로 결정하신다(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는 하나님).
어떤 사람은 성경의 하나님을 의인에게 항상 좋은 것만 주시는 분, 특별한 잘못을 하지 않았다면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시는 분으로 제한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통해 이런 확증을 추구합니다.
문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는 것입니다. 모세에게 약속의 땅을 허락하지 않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가시를 제거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한 바울의 요청을 거절한 분도 하나님입니다. 야고보는 초대교회가 태동할 때 순간적으로 순교했고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질병과 핍박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조니 에릭슨 타다는 다이빙 사고로 인해 목 아래로 마비 증상을 앓고 있지만, 아직 하나님은 그녀를 치유해주지 않으십니다. 마스터스 신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교통사고로 즉사한 학생의 이야기, 아이티에서 집회하다가 온 교회가 대형 지진으로 목숨을 잃은 이야기… 우리에게는 많은 다른 이야기가 존재합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아무런 꿈도 환상도 음성도 들려주지 않으신 것일까요?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조금도 들을 자격이 없었던 것일까요? 하나님이 그들은 사랑하지 않으셨을까요?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을 위해서는 죽지 않으셨을까요?
욥의 친구들이 욥에게 “네가 겪고 있는 고통은 네 죄 때문이다!”라고 확신을 하고 말했던 것은 그들의 신학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의인에게 복을, 악인에게는 화를 내리실 수밖에 없는 분이라고 확정 지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욥기의 마지막 부분에 욥에게 나타나셔서 그분의 주권이 보응신학에 제한되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욥의 친구들을 꾸짖으십니다.
하나님은 헤아릴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신비로운 뜻을 가지고 주권적으로 모든 것을 허락하십니다. 질병에 빠진 자에게 은혜를 내려 이 땅에서 연장된 삶을 허락하시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무궁한 은혜로 인해 영혼을 즉시 불러들여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기도 하십니다.
성경이 확증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살리기도 하시고 죽이기도 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이며 그 권한이, 주권이 온전히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이지 ‘이번에 무조건 나를 살리실 것이다’ 혹은 ‘이번에 무조건 나를 죽이실 것이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통해 ‘너를 치유하겠다’는 말을 찾을 수도 없거니와 성경이 증언하는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을 통해 그 말의 신빙성을 확증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과 우리의 선을 위해 무엇이든 자기 뜻대로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나를 고치실 수도 있지만 그리 아니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성경이 확증하는 진리입니다.
3. 내가 들은 음성이나 본 환상이 결국 성취되었더라도 그것을 무조건 하나님의 계시라고 확정 지을 수 없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당신의 뜻대로 결정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엡 1:11). 그래서 내가 들었던 음성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것이 그대로 이루어진 사실(자신의 경험)을 말하면서 이루어진 모든 사실이 하나님의 결정으로 된 것이라고 성경이 증언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받은 계시도 하나님에게서 왔다고 말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로 성경의 확증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취되기 전까지 그 사람을 통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가만히 생각해봅시다.
조니 에릭슨 타다는 하나님께서 병을 고쳐주실 것이라는 약속을 여러 목사들로부터 직접 계시받았습니다. 아직 그녀는 휠체어를 타고 있으며 초반에는 그 모든 약속이 거짓으로 드러나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 분노하고 사람들을 미워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희망과 기대로 사람들에게 헛된 소망과 믿음을 심어주다가 결국 주변 사람들마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녀가 자신의 삶 가운데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을 받아들이고 죽이고 살리는 권한이 하나님께 있으며 지금 자신을 고치지 않으시는 것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 안에 있다고 믿기 시작했을 때 그녀는 이 기회를 통해 섬길 수 있는 형제자매들을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예시로 들었던 선교사님은 저와 인연이 있는 분이셨습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시절 2층에 사셨던 분이었고 같은 교회를 아버지와 함께 섬기셨던 참 인격적이고 신실한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아버지에게 “하나님이 살려주시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고 확신하며 기쁨으로 미국에 돌아가셨지만, 암은 치료되지 않았고 결국 주님 품에 안기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의 문제라고 말하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조니 에릭슨 타다도 에드가 쿤제 선교사 할아버지도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의 삶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병에서 놓임을 받는 것은 믿음의 크기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있습니다.
“치유할 것이다”라는 음성은 결국 그대로 이루어지거나 아니거나 결과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확률게임입니다. 이루어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미래의 일에 대해 지금 하나님께 확답을 받았다고 ‘이루어질 것이다’에 내 삶을 거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것은 믿음이 아니라 도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성격의 믿음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물론 병에서 놓임 받게 해달라고 구할 수 있습니다. 간절히 그것을 바랄 수 있습니다. 다윗이 죽어가는 아들을 살려달라고 구한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이 아버지의 잔을 피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구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이루어질 일에 대해서 다윗도 예수님도 아버지 하나님께 그분의 주권의 자리를 내어드립니다. “그러나 나의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무엇이 진정 믿음의 삶이며 성경이 권장하는 삶의 모습일까요?
이루어질 수도,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는 확률게임 중 내가 들었던 음성이 한쪽에 분명히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것이 그대로 이루어졌을 때 “봤지? 하나님에게서 온 거 맞지?”라고 말하거나 이루어지지 않을 때 “아닌가 보다”라고 말하는 신앙.
아니면 내가 하나님께 바라는 것을 간절히 구하지만, 그 모든 결과를 당신의 기쁘신 뜻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의 손에 온전히 의탁하는 신앙.
무엇이 성경이 확증하는 삶의 모습일까요? 무엇이 그리스도가 이 땅에서 보이신 삶의 본일까요?
물론 성경으로 하나님을 제한할 수 없습니다. 성경 외에도 하나님은 만물과 양심, 그리고 이루시는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혜를 얻게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기록한 이 말의 뜻을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구원의 목적인 온전하게 되는 일, 선한 일을 행하는 일에 필요한 모든 능력은 성경으로 충분합니다. 고통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죽음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지, 어떻게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쉬지 말고 기도할 수 있을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신뢰할지…
성경은 충분히 대답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으로 하나님을 제한하기 위해 성경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려주시기 위해 우리에게 충분하게 제공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성경을 강조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종교와 심지어 이단 속에서도 우리는 “내가 경험해봤다”는 강력한 주장을 듣습니다. 문제는 성경이 그것을 확증하는가? 입니다. 기독교는 성경의 종교입니다. 당신의 경험을 성경은 어떻게 확증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에게서 온 음성이나 환상이라는 것을 성경은 어떻게 증명하고 있습니까? [복음기도신문]
조정의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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