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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K 칼럼] 새해에는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싶다

ⓒ 안호성

새해라는 시간은 언제나 새로운 기대와 소망의 시간이다. 우여곡절 많았던 한 해를 떠나보내며 새해에는 더욱 좋은 일이 있기를, 지금껏 이루지 못했던 일들을 성취하기를 우리는 소망한다.

건강에 적신호가 온 이들은 새해에는 꾸준히 운동해서 건강을 되찾겠다 결심한다. 꼭 합격해야 하는 시험이 있는 이들은 새해에는 부지런하게 공부하여 고득점을 하고야 말리라 결심한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시리는 상대가 있는 젊은이는 새해에는 꼭 용기를 내어 고백하겠다고 결심한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2022년을 보낸 사장님들은 새해에는 꼭 성공적으로 사업을 일구겠다 결심한다. 지난해 모든 게 행복하고 좋기만 했던 이들도 더 행복하고 성공적인 새해가 되기를 소망하며 필승을 다짐한다. 이렇게 우리에게 새해는 새로운 결심의 시간이다.

결심은 어떤 면에서 마치 꽃과 같다. 꽃은 눈에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씨앗에서 시작되듯이 결심도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바람 혹은 소원에서 시작이 된다. 그렇기에 결심은 우리의 마음의 소원을 이루게 해주는 도구일 뿐 아니라 마음의 소원을 보여주는 창이기도 하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3일 후의 부활을 믿는 기독교인이다.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새로운 마음을 부여받았으며(겔 36:26; 요3:3-5), 그리스도 안에 존재한다(고후 5:17).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인해 죄의 저주인 영원한 죽음과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해방되었지만(롬 6:22) 여전히 육신과 전쟁 중이며 죄의 존재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롬 7:22-24). 그러므로 우리는 우는 사자처럼 달려드는 사탄의 공격에 맞서(벧전 5:8) 근신하며 깨어서 매일같이 믿음의 전신 갑주를 입어야 하며 전쟁에 임해야 한다(엡 6:10-11).

수시로 드러나는 우리의 죄로 인해 슬프기도 하고 힘에 부치고 우울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오셔서 영원한 왕국을 세우고 다스리실 예수님을 믿으며 확신하며 기다린다. 우리의 삶은 여전히 다양한 질병과 경제적인 그리고 관계적인 문제로 둘러싸여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선하신 계획과 인도를 믿는다. 결국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이 분명하니까(롬 8:31).

이런 믿음을 지닌 우리는 결심한다. “새해에는 더 성경 많이 읽어야지!”, “새해에는 교회 더 열심히 다녀야지!”, “새해에는 더 기도 많이 해야지!”, “새해에는 전도 많이 해야지!”, “새해에는 성도들을 집에 더 자주 초대해서 섬겨야지!”

이러한 결심들은 훌륭하고 칭찬할 만한 것들이지만, 과연 이 구체적인 결심들 저변에 깔린 우리의 바람은 무엇일까? 참되고 애틋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일까? 참되고 애틋한 마음으로 나를 사랑하는 마음일까? 우리는 관계를 통해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하나님도 삼위일체로 존재하시듯,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사람들도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우리는 바닷가 횟집에서 밥을 먹어도, 설악산을 오를 때에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한다. 만약 혼자 하더라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렇기에, 교회 활동도, 성경 공부도 함께하는 혹은 지켜보는 이들의 눈을 의식하기 십상이다.

배우자와 자녀들이 나를 사랑하고, 목사님과 교회 식구들이 나를 인정하고, 직장 동료들이나 친구들이 나를 존경하는 것이 우리의 마음의 갈망이라면, 우리는 새해에 썩은 씨앗을 심는 것이다. 이 씨앗은 절대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꽃을 피우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을 바라고 갈망하는 마음 대신 나의 체면과 성공을 바라는 마음이 앉아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나를 위해 기독교인의 삶을 산다면, 우리는 기독교인의 삶을 성경이라는 교과서와 성경 공부, 기도, 예배, 찬양, 전도라는 기술을 통해 공부하고 익히는 학문으로 혹은 교회라는 집단에서 발전하고 성공하는 기술로 여기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성경을 펴지도 않고 구약의 성막과 제사에 대한 내용을 술술 풀어내거나,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다섯 가지 중심사상에 대해 원만하게 설명하는 사람을 보며 움츠리는지도 모른다. 또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종교 개혁자와 목사, 선교사를 보면서 마치 범접할 수 없는 기독교 고수라도 보듯 부러워하는지도 모른다. 나도 저런 능력을 지니고 명성을 누리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기독교인의 삶이 정말 성경이라는 교과서와 공부와 기도, 예배와 찬양, 전도와 교제라는 기술을 연마하여 고수가 되는 하나의 학문이나 활동이라면, 우리는 서로 경쟁하며 남보다 더 앞서는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 새해를 보내는 것이 옳다.

그러나, 만약 기독교가 단순한 학문도 단순한 활동도 아니라면 어떨까? 남들보다 가장 탁월한 성경 박사가 되어도, 남들보다 놀라울 만큼 많은 시간을 기도에 할애하더라도, 남들보다 더 열정적으로 예배에 임하더라도, 남들보다 더 많은 사람을 전도하더라도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으신다면 어떨까? 하나님께서 실제로 살아 계셔서 우리의 마음의 중심을 살피고 숨은 바람과 갈망을 속속들이 아신다면 어떨까?

우리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은 진정으로 살아 계시고(요 1:18; 출 3:14), 우리의 마음의 중심을 살피시며(역대상 28:9), 마지막 날에 우리의 모든 말과 행동의 중심을 판단하시고 그에 따른 벌과 상을 주실 것이다(렘 17:10). 우리의 믿음이 가짜였다면 우리는 심판의 날 예수님에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 7:23) 라는 말을 들을 것이다. 우리의 믿음이 진실하였지만, 세상에 눈을 빼앗기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겨우 구원만 받게 될 것이다(고전 3:15).

그러나 진정한 기독교인들이 가장 갈망하는 것은 마지막에 하나님에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마 25:23) 라는 말을 듣는 것이다. 나의 배우자와 자녀들, 교회 지체들과 세상의 친구들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고 존경받을지언정, 나의 구원자이며 주인이며 심판자이신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가나안 땅의 우상인 아세라와 바알 신을 섬기며 자신들의 성적 욕망과 물질에 대한 욕망을 채우면서도 여호와의 백성이라 말하며 뻔뻔하게 여호와께 번제를 드렸던 북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께선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 6:6)

다윗의 자손들이 다스렸지만, 북이스라엘과 동일하게 우상을 숭배하며 악을 일삼은 남 유다를 향해서 하나님은 예레미아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9:23-23)

안타깝게도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모두 이러한 하나님의 절절한 말씀에도 우상숭배를 버리지 아니하였고 끝끝내 하나님의 경고 말씀처럼 각각 앗수르와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나라를 잃는 벌을 받게 되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이런 비참한 일이 또 있을까?

그들은 눈이 있었지만 보지 못했고 귀가 있었지만 듣지 못했다(렘 5:21). 이뿐 아니라, 그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욕으로 여기고 즐겨하지 않았다(렘 6:10).

2023년을 맞이하는 우리는 새해에 풍년이 들고 전쟁에 승리하기를 갈망하며 눈에 보이는 신상에 절하고 신당의 사제들과 잠자리를 가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잠시 생각해보자. 과연 우리의 마음의 갈망이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우상 숭배자들과 극명하게 다른가?

우리의 마음의 갈망, 그토록 간절히 바라고 원하는 분이 믿음의 눈으로 보면 볼수록 아름답고, 믿음의 귀로 들으면 들을수록 감동을 자아내는 살아계신 하나님인가? 우리가 가장 염원하는 것이 그분을 더욱 가까이 보고 듣는 것인가? 우리에게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연애편지이며 우리의 기도는 그토록 사랑하는 분에게 하는 고백인가? 우리에게 예배는 우리가 그토록 사랑하는 하나님에게 드리는 사랑의 표현인가? 우리에게 전도는 택하신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여 그분의 잃어버린 양을 찾고자 돌아다니는 사랑의 행동인가?

만약 그렇다면, 우리의 새해 결심은 이렇게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새해에는 하나님을 더욱 친밀하게 알고 사랑할 것이다!” 그리고 성경 공부, 기도, 예배, 찬양, 교제, 전도 모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표현이자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기 위해서 하는 노력이 될 것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한 뜨겁고 진실한 사랑이 우리의 마음속에 불타고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지금 바로 하던 일을 멈추고 무릎을 꿇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바꿀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완전히 감겨 있던 우리의 마음의 눈을 열어 그리스도를 보게 해주셨을 뿐 아니라(고후 4:6), 자꾸 감겨버리는 우리의 마음의 눈을 여셔서 하나님의 놀라우심을 보게 해주신다.(시 119:18; 엡 1:18-19).

겸손하게 무릎 꿇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의 기도를 들으시며 응답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니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모른다. 2023년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또 더욱 사랑하기 위해서 그분에게 의지하며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2023년 말미에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된 것으로 감사하며 자랑하는 우리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 그리고 내일,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보시며 미소 지으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김예준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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