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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선 칼럼] “그 한 번의 새벽기도시간에 주님이 나를 만나주셨다”

사진: Priscilla Du Preez on Unsplash

나는 모태신앙이다. 모든 친척, 친구들이 교회에 다녀서 전도하는 것은 오히려 내게 생소했다. 매주 교회에 출석하며 어릴 적부터 성가대로 반주자로 주일성수는 잘 지키려 했다. 교회를, 예수님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 설교는 매번 지루했다. 설교가 시작되면 ‘아브라함? 요셉!? 또? 나 다 알아요’ 이렇게 생각했다. ‘나도 하나님 만나고 믿음 좋은 사람으로 살고 싶지만 제 인품으론 안되는 거 아시죠?’ 하는 생각이 들고 답답했다.

예수님이 살아계신다고, 천국이 있다고 믿었지만 구원의 확신이 있냐는 질문에 자신이 없었다. 내 내면 깊은 곳에선 ‘죽어봐야 아는 거 아니야? 죽는 게 무섭다. 죽고 난 후에 천국이 없으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들이 나도 모르게 들었다. 하지만 누구에게 이런 고민을 말할 순 없었다.

신앙이 좋으신 분들을 보면 나랑은 너무나 다른 인품을 타고난 것처럼 보였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안될 거 같았다. 간증을 들으면 부럽고 대단해 보이면서도 ‘나는 안 되겠구나’ 하는 무력감이 들었다. 죽기 전에 영접기도만 해도 천국에 간다는데 난 왜 모태신앙으로 태어나서 이런 고생을 어릴 적부터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하나님을 사랑하고 만나고 싶었지만 이 세상의 것도 갖고 싶었던 삶이었던 거 같다. 그게 틀린 거란 생각조차 못 했다. 내가 열심히 노력하고 기도하며 응답받아 잘 되는 것이 주님께 영광이라는 가르침이 내겐 컸다. 하지만 내가 열심히 노력하고 계획해도 실패하는 삶에 낙담했다. 더이상 희망이 안 보였다.

결혼하면 제2의 인생이 열릴 거란 생각도 내 착각이었다. 그렇게 두 아이를 낳고 힘든 시간을 갖던 중 주님은 나를 만나주셨다. 딱 한 번의 새벽기도시간에 주님은 나를 직접 만나주셨다.

그 시간을 통해 난 평생 교회에 다녔지만 잘못된 신앙생활이었음을 세상 가치관으로 살았음을 깨닫게 해주셨다. 충격, 충격이었다. 모든 게 무너지는 거 같았다. 그리고 세상 기준엔 손해보고 잘 되는 거 하나 없는 기도하는 할머니의 삶이 하나님은 가장 기뻐하시는 삶이란 걸 알게 해 주셨다. 그 시간 전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날부터 난 완전히 달라졌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심과 ‘죽으면 정말 천국 지옥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진정한 마침표를 찍었다. ‘어떻게 증명할건데?’ 한다면 내 목숨을 걸만큼 진짜라는 것이다. 이보다 더 확실한 표현은 못 찾겠다. 이제 내가 사는 것은 주를 위해 사는 것이었다.

성경을 보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모태신앙이어도 성경이 하나도 안 읽어졌다. 하지만 하나님이 정말 계시다는데 성경을 안읽을 수가 없었다. 성경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무슨 내용인지 몰라도 그냥 읽었다. 그러다 보니 성경의 한 단어 한 절… 조금씩 말씀이 마음에 와 부딪치기 시작했고 하루 종일 내 맘에 울렸다.

내가 드릴 수 있는 시간은 모두 주님께 드렸다. 예전에는 상상하는 것조차 기분 나빠하던 헌신하는 자리로 매주 갈 수 있는 힘을 주셨다. 이 모든 게 내 생각, 내 힘이 아닌 주님이 가능케 하신다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나를 위해 기도하던 시간에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기적 같은 일들과 응답이 계속되었다. 정말 신났다.

나는 예전부터 아프면 진통제를 먹었다. 그래야 어린아이들과 집안일을 돌볼 수 있기에… 나중엔 아무리 약을 먹어도 나아지질 않아 병원에 가니 한 번 걸리면 나을 수 없다는 류마티스 내과 병인 섬유근통(만성통증)이었다. 나중엔 암환자가 먹는다는 진통제를 먹어도 조금도 나아지질 않았다.

하나님 만나고 나서 최선을 다해 주님 따르고 있던 때였다. 5살, 3살 아이들. 방송 찬양 프로그램을 맡고 있어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을 때였다.

‘하나님 계시다면서? 너의 하나님은 이렇게 헌신하는데도 아프게 하는 하나님이니?’ 조롱의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난 고칠 수 없는 병이라도 주님만이 답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고쳐주지 않으셔도 내가 만난 주님은 진짜였다!

그래서 난 시간만 나면 엎드려 성경을 읽었다. 이상하게 성경만 보면 통증이 덜 느껴졌다. 그렇게 몇 년이 흘러 난 많이 변화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기까지 인도하신 이가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치유해 주실 거란 확신이 들었다. 눈물이 났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깨끗하게 치유되었다. 지금까지 아프지 않다. 오히려 전보다 더 건강해졌다. 할렐루야!

주님 만나고 좋은 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프기도 했고 예전엔 한 번도 겪지 않을 일도 많이 겪었다. 실패하고 넘어져 우는 날도 많았다. 하지만 주님 만난 그날부터 지금까지 예수님만 생각하면 심장이 쿵쾅거린다.

매일 예수님 생각에 눈물이 난다. 내 부족하고 연약한 모습 그대로 받으시는 주님이 감사하다. 주님의 사랑은 나의 그 어떠함도 아니고 아직 내가 죄인이었을 때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사랑을 확증하셨다. 아직도 부끄러운 내 모습이지만 지금까지도 인도해주신 주님이 계시기에 앞으로도 이끌어가심을 믿는다. 난 어릴 적부터 그토록 갈망하던 자유를 점점 더 소유해 나가고 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주님 사랑해요. 영원히.

현재 우리가 겪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견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피조물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피조물이 허무에 굴복했지만, 그것은 자의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굴복하게 하신 그분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소망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곧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영광된 자유를 얻으리라는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신음하며, 함께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뿐만 아니라, 첫 열매로서 성령을 받은 우리도 자녀로 삼아 주실 것을, 곧 우리 몸을 속량하여 주실 것을 고대하면서, 속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바라겠습니까? (로마서 8:18~24_새번역)

[복음기도신문]

정영선 | 두 아이의 엄마이면서 바이올리니스트로 CTS교향악단 총무로 활동하던 중 주님의 부르심으로 우리나라의 낙태의 심각한 현실을 직면, 생명존중운동에 참여했다. 태아생명살리기 대표를 역임하고 현재 다음세대학부모연합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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