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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칼럼] 캄보디아 땅의 희생제물, 한 선교사를 추모하며

▲ 캄보디아 주택 풍경 Ⓒ 복음기도신문 자료사진

1943년생으로 올해로 78세이신 이춘자 선교사님이 지난 7월 8일 프놈펜에 있는 한 병원에서 소천하셨다. 사인이 코로나는 아니었다. 남편이신 임원오 목사님은 병세가 심한 것은 아니지만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고, 다른 병원에 격리하고 계신 상태에서 아내의 임종을 지켜보지도 못했다. 결국 입원한지 이틀째 소천하시고 화장되고 한 줌의 재가 되어 고국의 가족에게로 보내졌다.

노 선교사의 임종

두 부부가 사역하고 계신 곳은 프놈펜에서 가장 먼 곳에 위치한 라타나끼리라는 곳이다. 최근 폐렴 증세가 심각해진 이춘자 선교사님은 프놈펜에 오셔서 코로나 검사에서 음성을 받고 입원했다. 남편 임원오 목사님은 양성이 나왔으나 증세는 심하지 않은 상태로 다른 병원에서 격리 치료를 받았다.

감염의 위험에도 불구, 이들을 도우셨던 한 성도님은 응급실에 입원한 이춘자 선교사님을 간병했다. 이 선교사님은 산소호흡기에 의지해야 할만큼 중증인 상태였다. 간병하던 성도님의 전언에 따르면, 소천하는 그날 오후 4시경 호흡이 곤란한 상황에서, 배게 위쪽을 바라보시면서 간신히 신음하듯 한 마디 했다고 한다.

“예수님이…
예수님이 왜 저기…”

그리고 간병하던 성도님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산소 마스크를 쓰고 있으셨지만 이렇게 두 번 말씀하셔서 당시는 헛것을 보는 것으로 생각하며 지나쳤습니다. 그러나 힘겹게 말씀 하셨지만 분명히 예수님이라고 하셨고, 마치 곁에 오셨다는 듯한 놀라운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그후 말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선교사님은 결국 그날 밤 10시 30분쯤 호흡곤란으로 소천하셨다. 소천 후, 병원측은 다시 한번 코로나 검사를 했고 최종 반응은 양성이었다. 병원측의 설명에 의하면 코로나 양성 판정으로 사망할 경우, 모든 비용은 캄보디아 정부가 부담한다. 대신 화장 절차도 가족 최후 상봉을 제외한 모든 절차를 국가가 정한 절차에 따라 진행한다. 따라서 이 선교사님의 장례 절차에 가족이나 교민사회 및 대사관이 개입할 수 없었다고 한다.

임원오 목사님은 그 이후, 코로나를 극복하고 14일간 격리 상태로 지내야 했기에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간병했던 성도님도 코로나 음성이 나왔지만 자가격리하며 장례절차에는 개입할 수 없었다.

두 분 선교사님과 만남을 추억하며

10년 전 캄보디아에 들어온 나는 프놈펜에서 멀리 떨어진 곳을 찾았다. 그리고 현재 사역하는 곳에 정착한 이후, 함께 사역하는 현지인 사역자의 고향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캄보디아 북동쪽에 위치한 라타나끼리는 베트남과 국경을 가진 산악지역였다. 이곳은 캄보디아 소수민족들이 산속에 많이 살았다.

사역자 형제도 끄릉족이라는 소수민족이었다. 그때 한국 선교사가 있다고 해서 찾아간 곳이 이춘자 선교사님의 선교센터였다. 당시 남편이신 임원오 목사님이 센터에 계시지 않았다. 한국에서 은퇴하고 선교지로 나오셨다고 했다. 사모인 이춘자 선교사님은 한국에서 수학교사로 재직하신 엘리트로 활달하고 의욕이 넘치는 분이었다. 베트남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위치한 선교센터는 숲속 깊은 곳에 위치해 있으며, 주위에는 민가도 없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캄보디아 아이들과 함께 살며, 소수민족 마을을 방문하고 사역하고 계셨다.

당시 50이 안되는 나이였던 나보다 20살이나 많고 70이 다 되신 선교사님의 헌신에 많은 도전을 받았다. 이 만남이 계기가 되어 나는 캄보디아 아이들을 센터에 데려와 함께 사는 학사사역을 시작하게 됐다. 내가 사는 스텅뜨렁은 당시만해도 프놈펜에서 9시간이 걸렸는데 그분들의 사역지를 가려면 내가 있는 곳에서 다시 3시간을 가야할 정도로 멀고 먼 오지였다.

그후에도 지금까지 몇 번을 방문하고 그분들도 우리 센터를 방문하기도 하셨다. 선교사님 부부는 자국어를 모르는 다섯 소수민족들에게 캄보디아어와 복음을 전하며 소수민족마을 4곳에 교회를 개척하고 예배당도 건축하며 선교 사역을 이어오셨다.

갑작스런 죽음과 함께 나를 돌아보다

나는 요즘 지병인 근긴장 이상으로 인해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만큼 통증과 뒤틀림으로 인해 좌절감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 이 선교사님의 소식으로 한겨울에 물벼락을 맞은 느낌이 들었다. 먼저 아프다는 핑계로 또 코로나로 활동이 제한적이라는 핑계로 게으른 생활을 하고 있던 터라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우리 모두 언제든지 아무도 없는 병실에서 불과 며칠새로 한 줌의 흙이 될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잊고 살았던 것 같다. 그리고 이춘자 선교사님이 임종 때 예수님이 찾아 오셨다는 것이 내게 큰 부러움으로 마음에 새겨졌다.

나도 임종 때가 되면 예수님이 찾아 오시려나! 나는 하루하루를 부끄러움 없이 살고 있는가! 생각하며 주님 앞에 두려움이 생긴다. 코로나로 응급실에 들어간 선교사님이 내 주변에 있다면 나도 감염을 무릅쓰고 달려갈 수 있을까!

지금까지 나를 인도해 주신 주님께 순종한다면 나도 단걸음에 응급실로 달려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겼다. 주위의 어려운 사람을 외면하지 않을 수 있도록 기도했다.

캄보디아를 위한 기도

이춘자 선교사님은 수학교사로 정년 퇴직하셨기에 매월 연금을 타서 평안하게 해외여행을 즐기면서 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 오셔서 마지막 인생을 사랑하는 주님께 드렸다. 이것은 주님이 하늘 영광을 버리고 세상 죄를 짊어지고 희생제물이 되신 것을 뒤 따라 가는 삶이라 믿는다.

캄보디아에 오셨다가 희생되신 수많은 한국 선교사들의 기도가 우리의 사역을 지속하게 하는 힘이 되리라 믿는다. [복음기도신문]

정성국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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