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호 | 독자편지
우리 동네에는 해발 100미터도 안 되는 작은 산 하나가 있다. 산책길이 잘 조성되어 사람들이 제법 있는 길이다. 처음에 우리는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일상의 얘기로 시작해서 예수님을 전하고 복음기도신문을 드리곤 했다. 그 산을 넘으면 개인 전원주택 구역이 있다. 5년 전쯤에는 22채였는데, 이제는 38채다. 보름에 한 번씩 그곳에 있는 우체통에 신문을 넣는다. 그곳에는 점집이 있다. 어느 날 할머니가 현관에 서 계시는데 움찔했다.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인사를 하고 우체통에 신문을 넣으려는데, 할머니가 치우기 힘드시다며 다시 넣지 말라고 하셨다. 웃으면서 “네~” 하고 대답을 하고 “이번에는 그냥 갈게요.”라고 인사를 했다. 이후로 마주친 적은 없지만, 그 집 앞에서는 할머니를 위해 기도한다.
한 집은 엄청 큰 개가 짖으며 달려 나온다. 가끔은 무서워서 그 집은 지나친다. 하지만 2층에서 짖고 있는 큰 개가 있는 집에는 당당하게 신문을 넣는다. 어느 집은 교회 마크가 붙어있는데, 신문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이후로 ‘전단지 금지’라고 써 붙여 놨는데, 신문을 보며 ‘이게 전단지인가?’를 생각했다. 아니라는 결론이 내려져서 그 집에도 한결같이 신문을 넣고 있다.
함께 신문을 접어주시던 아버지도 지금은 천국에 계신다. 사람들과의 직접 대면이 어려워 우체통을 선택한 것이, ‘주님 앞에 너무 수동적인 태도가 아닌가?’라는 공격도 있었다. 그러나 이 구역을 접수하며 주님께 꼭 드리는 기도가 있다. ‘주님, 누군가는 읽게 해주세요. 이후에 천국에서 만나면 꼭 알아보게 해주세요.’ 가끔 미룰 때도 있지만 누군가는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산을 넘고 있다.
우리는 고물상에 오시는 폐지를 줍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도 신문을 드린다. 음료를 드실 때 예수님을 나누고, 신문을 드리면 절대 버리지 않으신다. 종이컵도 신문도 돈이 된다는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지금은 눈에 보이는 가치에 기뻐하시지만, 때가 이르면 폐지 신문 한 장 속에 담긴 복음이 얼마짜리인지, 절대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생명의 값을 치르시기 위해 주님이 어떤 희생을 치르셨는지를 알게 하실 것이다.
얼마 전에는 책장에서 엄청 시간이 지난 빛바랜 신문 몇 장을 발견했다. 몇 장을 깔아놓고 마늘을 까는데 여전한 감동이 있었다. 세상 신문은 새로움이 생명일지 모르나, 복음기도신문은 다르다. 시공을 초월하여 주님이 주시는 감동에 울컥했다. “그 날까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된 지체로 서로 응원하며 갈 수 있도록, 그리고 누군가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하나님 나라의 이렇게 멋진 소식통을 주심에 감사하고 있다.
이번에 실린 사람풍경 예랑이의 이야기도 감동 그 자체다. 우리 교회에서도 함께 기도하던 가정이라 그런지 더욱 마음이 실렸다. 한 작은 아이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부모를 성장시키는 주님은 참으로 놀라운 분이시다. 부모가 아이를 키운 것이 아니라, 아이를 통해 주님이 그 부모를 성장시키셨다. 우리 모두를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시키시고, 계속 이 길을 걷게 하시는 주님의 신실하심과 선하심을 그저 찬양할 뿐이다. 주하! [복음기도신문]
윤영순 집사
(인천풀뿌리산곡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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