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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봄 칼럼] 그래도 새롭게 시작할 용기

▲ 사진: Tyler Nix on Unsplash

시에라리온에서 돌아오고 4번의 계절이 지났다. 그동안 다시 시에라리온에 가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시도를 했지만, 번번이 막혔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막힌 문은 열리지 않은 상태다.

처음에는 좌절하고 서운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모든 것을 맡겼다. 이젠 다시 시에라리온에 가고, 가지 않고는 나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이 가라는 그곳이 어느 곳이든 시에라리온이고, 하나님이 만나게 하신 이는 그 누구라도 복음이 필요한 시에라리온 영혼이라는 것을 막힌 문 앞에서 깨달았다.

그 어느 곳을, 그 누구를 정하는 이는 하나님이지 내가 아니라는 것을 기도와 말씀과 상황들을 통해 알게 해 주셨다. 내가 원하는 답이 없었을 뿐, 응답되지 않은 기도는 없었다. 선하신 하나님은 나의 모든 기도를 전부 듣고 계셨다.

응답되지 않은 답을 기다렸던 시간을 통해 응답해 주신 하나님의 응답이었다. 시간은 정말 어어어 하는 사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시에라리온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던 지난 시간, 8명의 아이와 이집트로 선교를 가시는 선교사님 가정의 키맨(key man)이 되어 함께 선교를 준비하며 파송을 보냈고, 선교 훈련 단체에서 선교의 관점에 대해 강의를 듣고 훈련을 받았으며 그 과정 가운데 선교를 꿈꾸는 동역자들을 만났다.

내가 시에라리온에 있는 동안 치매에 걸리신 아버지를 하늘나라에 떠나보내기도 했다. 마치 내가 시에라리온에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가 떠나신 것처럼 아버지는 주무시다가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몇 달 전, 아버지는 처음으로 내가 전하는 복음을 들었다. 그전에는 복음을 전하는 나를 핍박하고 끝까지 듣지 않으셨는데, 그날은 얌전히 복음을 들으시더니 ‘다음에 또 들려달라’라는 말씀까지 하셨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게 마지막이었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은 우리 집안의 첫 예배가 드려진 장소가 되었다.

그동안의 상처가 회복되고 용서하고 용서받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매일이 아버지의 장례나 선교 파송준비나 훈련의 날같이 분주하고 의미 있는 날은 아니었다. 일기에 기록할만한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날이 더 많았다.

기도와 예배와 말씀을 통해서 매일 새로운 은혜와 깨달음으로 하나님을 알아가는 하루하루가 특별했지만, 가끔은 눈에 보이는 어떤 특별한 것이 간절할 때도 있었다. 시에라리온처럼 말이다.

어떻게 하면 하루하루 특별하고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잘 살았다고 소문이 날까? 이 질문에 나는 하나님이 시에라리온이라고 대답을 해주셨으면 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하나님께 맡겼다고 했지만, 여전히 나는 시에라리온이라는 대답을 원하고 있었다. 물론 머리로나 입으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말이다. 2년 넘게 계속되는 코로나 상황에 다시 새로운 소망으로 시작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나님께 올려드렸지만, 여전히 특별한 일 없이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래도 새롭게 시작할 용기’라는 제목의 어느 목사님의 유튜브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그 목사님의 말을 빌리면 시간은 소중한 인간의 경험이며, 천사들도 유한한 인간을 부러워한다고 했다. 왜냐면 유한함 속에 있기 때문에 그 시간을 의미 있게 살려고 하고, 열정이 생기기 때문이란다. 천사들에게 없는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있는데 그건 유한함이 주는 아름다움란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다는 안타까움이 있는데, 시간은 나에게 속한 것이 아니고 위로부터 주어진 선물이기 때문에 우리는 안타까운 마음보다 그 선물을 잘 살아내야 한단다.

우리에게 새해를 주셨다는 것은 다시 한번 잘살아 보라는 하나님의 초대이며,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우리가 인생에 질문을 던지는 만큼 인생 역시 우리에게 ‘어떻게 살래?’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목사님의 말씀에 ‘내가 왜 의미 있게 잘살고 싶은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전에는 뭔가를 남기고, 누군가의 본이 되고,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잘 살고 싶었는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시간이 하나님의 선물이고 초대이기 때문’이 되어야 했다.

마당 한가득 펼쳐져 있는 토란대 하나하나를 천천히 더디게 벗겨 내는 할머니를 취재하고 있는 기자가 그 어마무시한 토란대의 양과 그 어마무시하게 느리디 느린 작업의 속도에 도대체 저것을 언제 다 하나? 앞이 막막하더란다. 그래서 기자가 물었단다.

“할머니 그 많은 일을 언제 다 끝내세요?”
“일할 때는 산더미여도 말려노문 째까여. 그런 줄 알고 일하는 거야.”

‘잘 산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요?’라는 나의 질문에 하나님의 대답 같았다.‘산더미 앞에 굴하지 않고 째까에도 허망해지지 않는 것.남들이 보기에는 너무 더디지만, 그 일을 꾸준히 해가는 일을 통해서 너의 하루를 나와 함께 채우는 것. 그것이란다’

산더미 같은 일이라고 해도 절망하지 않고, 아주 작게 쪼개서 그 일을 해나가면서 인내할 줄 아는 것. 그것이 아름다운 삶의 일이며, 시간을 견디는 일이었다.

나에게 주어진 산더미 같은 일은 무엇일까? 혹은 작게 쪼개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하루하루 사랑하며 사는 것이다. 하나님과 이웃을. 그게 전부다.

이것저것 해야 할 것도 많고, 이루어야 할 것 한두 가지 정도 있어야 할 것 같지만, 그 모든 것의 목적이 사랑에 닿아야 한다.

내가 했던 사랑이 나의 인생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사역의 열매나 어떤 일의 성취는 사랑만 남으면 되는 것이다. 사랑만 남을 때, 나의 시간은 사멸하는 것이 아닌 탄생한다.

다시 시에라리온의 소망을 품고 그곳으로 달려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중요해 보이는 길이 막혀있을 때, 막아놓으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한다. 지금 나에게 그 길보다 더 중요한 길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 이곳에서 일상을 살면서 사랑을 남기는 것이다.

다투고 갈등하고 반목할 때도 있지만, 더 많은 날을 함께 먹고 마시고,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내 가족. 나의 지체. 나의 동료, 나의 이웃들과 나누었던 사랑들로 나의 하루하루를 덮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함께 나눈 사랑들이 어제 나의 시간을 빛나게 해 주었듯이 오늘도 내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사랑 때문에 견딜 수 있었던 시간 속에서 나 역시 사랑을 배워 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내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시에라리온으로 흘러갈 것이다. 그것이 공간과 시간을 창조하신 하나님 사랑의 방법이며 영광이 될 것이다. <계속> [복음기도신문]

*이 칼럼은 필자의 저서 <작지만 피어있는 꽃들>에서 저자의 허락을 받아 발췌,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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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봄 | 기록하는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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