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 도로에서 차가 멈췄다.
이곳에서 차량 문제는 늘 있는 일이지만, 늘 긴장된다.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고장이 났거나, 부품을 구해야 하는데 정비소나 기술자가 없는 마을이면 난감하다.
다행히 마을 근처에 차량 정비소가 있다고 해서 선교사님이 오토바이를 불러 필요한 부속을 구하러 간 사이 팀원들은 마을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차를 타고 지나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도로가 마을이다. 초가를 얹은 진흙집보다 슬래브 지붕의 벽돌집이 많은 것으로 보아 굶주림은 겨우 면하고 있는 동네인 것 같다.
이방인인 우리를 보고도 동네 아이들은 공터에서 놀고 있었고, 어른들은 무심히 지나쳤다. 관심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우리를 배려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이방인인 우리를 투명 인간처럼 대하는 그 무관심이 신선하고 새로웠다.
조심스럽게 마을을 둘러보고 있는데 한국팀원인 청년 자매가 황당한 표정으로 다가온다. ‘젊은 남자가 자신의 아내가 되어 달라’고 했다며 어이없어하는 자매에게 ‘이곳의 풍습이 그렇다, 남자는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고백하는 경우가 많다.’라는 말로 진정시킨 뒤, 그녀와 함께 마을을 둘러보기로 했다.
좀 떨어진 곳에 젊은 여인 두 명이 카사바 잎을 다듬고 있는 것이 보여 다가갔다. 아는 체를 하면서 영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물었더니 그중의 한 명이 영어는 하지 못한다고, 영어로 대답했다.
그러더니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과 친구의 이름과 나이를 영어로 이야기한다. 나이는 18살. 자신의 이름은 반디. 친구의 이름은 자이납 이라고 한다.
반디의 친구 자이납은 젖먹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데 어딘가 불편해 보인다. 보니 뇌성마비였다. 품 안의 아이가 젖을 빨 때마다 자이납은 몸의 균형을 잡기 위해 온 힘을 쓰고 있었다.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쑥스러운 듯 웃어 보이는 자이납에게 ‘남편은 어디에 있냐?’라고 물었다. 자이납은 힘겹게 고개를 젓는다. 남편이 없다는 뜻인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는 뜻인지, 애매모호한 대답이었다.
그러던 차, 좀 전에 한국의 자매에게 아내가 되어 달라고 했다는 청년의 모습이 보였다. 반디가 그를 가리켜 자이납의 남편이라고 했다. 그는 황당하게도 자신의 아내와 함께 있는 우리에게 윙크하면서 아는 체를 했다.
내가 불쾌함을 감추지 않고 ‘자이납이 당신의 아내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한다.
‘그런데 감히 낯선 여자에게 아내가 되어 달라고 하냐?’라고 따지듯 묻고 싶었지만, 자이납의 상처가 될 것 같아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말을 꿀꺽 삼켰다.
그는 집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걸더니 잠시 후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어디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아내와 아이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밖으로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화가 났다.
이 마을도 예외 없이 여자들만 부지런히 일하고 있다.
여자들이 빨래하고, 청소하고, 요리를 준비하는 동안 남자들은 나무 그늘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이 나라 관습이란다.
무슬림의 일부다처제 영향으로 여러 명의 아내를 둔 남자들이 부지기수였다. 마욜로에도 또 다른 아내와 함께 사는 남편을 기다리고 있는 아내들이 있다.
그녀들은 남편들을 대신해서 아이를 키우고, 남편의 어머니와 남편의 조카들을 돌본다. 망고를 팔고, 야자열매를 따고, 농사를 짓고, 허리 한번 펴지 않고 살림을 꾸려나간다.
그녀들의 과로와 외로움은 그녀들의 몸과 마음을 망가트렸다.
그녀들은 나만 보면 어디가 아프다고 하소연했고, 어떤 이들은 남편이 보고 싶다고 울었다. 브래드의 엄마처럼 우울증에 아이를 방치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결국, 엄마의 아픔과 고통은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그녀들이 처한 환경이 부당하고 안타까워서 이혼해! 라고 하고 싶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가지고 있는 약을 나눠주거나, 안아주거나, 가끔 대신해서 화를 내주는 것밖에 없었다.
이 척박한 땅에서 장애인 엄마로 살아야 하는 겨우 18살이 된 젊은 엄마, 자이납이 짊어진 삶의 무게는 얼마나 나갈까?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는 그녀에게 나는 고작 ‘남편에게 도와달라고 요구해’라는 말만 했다.
그녀가 알아듣지 못할까 봐 최대한 천천히. 몸짓으로. ‘유어 허스번드. 헬프. 오케?’ 라고 말하는 나를 보더니 그녀가 천천히 입술을 움직여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찬양이었다.
tel am tenki tel am tel papa god tenki
하나님이 아닌 너의 남편에게 도와 달라고 조언한 선교사 앞에서 그녀는 하나님께 나의 아버지가 되어주셔서 감사하다는 찬양을 올려드린다.
그녀의 도움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였다.
부당하고 억울하고 힘든 그녀의 삶에 이미 그리스도가 함께였다. 나의 조언은 어리석었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그녀를 안았다.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다’라고 했다. 그리고 말해주고 싶었다.
‘비록, 평생 불치의 병과 차별과 외로움이 당신을 떠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이 너의 아버지니 함께 하실 것이다. 아버지의 사랑으로 지키시고 안아주실 것이다.
그러니 꼭 살아 있으라’고.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기적은 치유도 아니요, 계시도 아니다. 그것보다 더 위대한 기적은 고난을 통하여 연단되는 우리의 인생이다.
“그러니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고.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에스겔 16:6)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살렸듯이, 그 피가 피투성이 인생을 살리고 회복시킬 것이다. 피투성이 인생은 하나님의 영광이 될 것이다. <계속> [복음기도신문]
*이 칼럼은 필자의 저서 <작지만 피어있는 꽃들>에서 저자의 허락을 받아 발췌, 게재합니다.
김봄 | 기록하는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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