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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평세 칼럼] 영미 보수주의의 중심, 미국의 연방대법원

사진: 조평세 제공

며칠 전 연방대법원에 다녀왔다. 별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곳은 관람도 할 수 있다. 재판이 있는 날은 재판 참관이 가능하고, 재판이 없는 날은 건물 내부 관람과 재판장 내부에서 하루 세 차례 대법원에 대한 25분 분량의 공개 강연이 있다. 백악관이나 의회보다 규모는 가장 작지만 개인적으론 셋 중에 이곳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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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대법원 내부. 사진: 조평세 제공

백악관은 절차가 까다롭고 의회는 사람이 너무 많은데, 들어가서도 정해진 동선을 따라다니기 바쁜 곳이다. 그런데 이곳 대법원은 비교적 한가하고, 들어가서도 25분 강연 외에는 자유로운 관람과 사색을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건물 곳곳을 장식한 조각들의 깊은 상징적 의미를 찬찬히 살펴볼 수 있어서 좋았다. 미국뿐 아니라 서구 문명, 아니 인류문명의 법 철학과 사상, 역사를 조각으로 집대성 해 놓았다.

대표적으로 사람들이 거의 잘 안가는 건물 뒷편(동편)을 가보면 박공벽(세모꼴 꼭데기) 중앙에 모세가 십계명을 들고 앉아있다. 그리고 왼편엔 공자가, 우편엔 솔론이 서 있다. 도덕 문명의 근원이 어디인지 잘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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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조평세 제공

대법원을 상징하는 의외의 동물이 있는데, 그것은 거북이다. 잘 드러나게 보이지는 않으며, 바닥이나 동상 아래 등 곳곳에 숨어 있다. 거북이는 느리고 신중한 정의의 속도(slow and deliberate pace of justice)를 뜻한다.

강의가 진행되는 동안 법정 내부의 사진을 찍을 수 없다. 강의는 대법원의 기능과 역할, 사건 채택 기준, 대법 건물 역사, 조각 일부에 대한 설명 등이다. 몇 명의 짓궃은 관광객이 정치적인 발언을 유도하지만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정부의 ‘삼권’ 중 하나를 상징하는 연방대법원은 존 마살 4대 대법원장에 의해 그 기능이 커졌다. 하지만 20세기 초까지만해도 자체 건물이 없었다. 그래서 의회 건물을 빌려서 재판을 하거나 대법관들 사택에서 모이기도 했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영화 <아미스타드>에서 나온 연방대법원 장면도 의회 건물 회의실이 배경이다.

그런데 27대 대통령을 역임한 윌리엄 태프트가 대법관이 되어서야 강력한 로비를 통해 대법원 건물을 위한 예산을 따내고 승인을 받았다.

연방대법원 재판장에서 흥미로운 건 증인석이 없다. 배심원석도 물론 없다. 대법원은 사실관계를 따지는 곳이 아니라 헌법과 법리만을 따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판시 모든 변론은 검사와 변호사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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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조평세 제공

올해에도 중대한 사건들에 대한 판결이 이뤄진다. 이에 대한 변론은 이미 작년 말에 이뤄졌다.

그 중 관심 갖을 만한 첫째는 ‘엘레니스 vs. 콜로라도’ – 콜로라도 차별금지법에 대한 온라인청첩장 제작자 엘레니스의 소송이다. 수정헌법 제1조 표현의 자유에 따라 동성 결혼식에 대한 청첩장은 제작할 수 없다는 소송이다. 지난번 제빵사 관련 판결에서 ‘표현의 자유’ 조항을 우회하는 ‘꼼수판결’을 만회할 지 주목된다.

둘째는 ‘입시공정을 위한 학생들 vs. 하버드 및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이다. 흑인 우대 입시정책 (affirmative action)의 불공정성을 따지는 판결로, 많은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권 입시생들과 직결되는 사건이다. 처음 대법원이 우대정책에 손을 들어줬을 때 당시 진보법관들조차 이런 불공정한 정책은 25년 정도 후에 폐기해야 한다고 했다. 그로부터 지금 23년이 지나고 있다.

그리고 올해 새로 채택될 가능성이 있는 중대 사건 중 하나는, 지금 한참 논란 중인 낙태약 FDA승인 중지 건이다. 텍사스주의 어느 연방 판사가 낙태약의 FDA 승인에 대한 정지 명령을 내렸다. 이에 대해 워싱턴 주의 다른 연방 판사는 낙태약 접근을 제한하지 말라는 상충되는 명령을 내렸다. 이렇게 각기 다른 연방 판사가 거의 같은 내용을 두고 완전히 다른 판결을 내릴 때, 연방대법원의 사건 채택 조건이 충족된다.

물론 채택 여부는 알 수 없다. 연방대법원은 매년 약 7000건의 사건을 받는데, 그 중 1퍼센트인 약 70건만 채택한다.

한 가지 흥미로운 트리비아는 연방대법원 건물 맨 위층에 농구장이 있다는 거다. 일반인들은 못 들어가고, 법관들과 법관 가족들만 가끔 농구 경기 등 오락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그래서 미국 내 최고(highest) 법원(court)은 재판장이 아니라 이 농구장(basketball court)이라는 재밌는 이야기가 있다.

몇 번의 잘못된 중대한 판결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미국 보수주의는 사실상 미국 헌정주의’라고 하듯이 헌법재판소라고 할 수 있는 연방대법원은 영미 보수주의자들에게 뜻깊은 곳이 아닐 수 없다.

현재 대법관은 (대충 보수-진보 순으로) 클라렌스 토마스, 사무엘 알리토, 에이미 코니 배럿, 브렛 캐버노, 닐 코르서치, 존 로버츠(대법원장), 엘레나 케이건, 소니아 소토마요르, 케탄지 잭슨이다.

어쨌든, 언젠가 한국 청년 보수주의자들을 데리고 올 ‘미국 보수주의 여행’ 코스에 꼭지 하나가 늘었다. [복음기도신문]

chops

조평세 | 트루스포럼 연구위원. 영국 킹스컬리지런던(KCL)에서 종교학과 전쟁학을 공부하고 고려대학교에서 북한학 박사 과정을 졸업했다. 현재 트루스포럼 연구위원으로 미국에 거주하며 보수주의 블로그 <사미즈닷코리아>(SamizdatKorea.org)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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