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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일 칼럼] 부활에 관한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생각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사진:픽사베이)

밖에서 보는 이슬람(56)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에 대한 묵상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로마서 5:6~8).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실까? 우주의 주인이시고, 세상 모든 만물의 창조주이신 그분의 피조물인 우리 인간을 향한 처절하기조차 한 그분의 끝없는 용서는 도대체 웬일인가? 그 가치도 모르고 그것을 악용이라도 하듯이 제각기 끝없이 죄를 지으며, 지은 죄조차 싫어하지 않으며, 오히려 즐기며 살아가는 우리네 인간들인데 말이다. 정말 우리는 그럴 가치가 있기는 있는 자들이기는 한가?

매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거를 체험하는 고난과 부활 주간을 보내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당하신 고난을 기억하며 어느 시간보다 깊이 묵상하는 시간이다.

그래도 우리는 예수의 십자가 사건 속에서 부활을 모르고 기다렸던 초대교회 성도들보다는 다행인 사람들 아닌가? 왜냐하면, 그 당시 성도들은 예수께서 그토록 여러 차례 자기 죽음과 부활을 직·간접으로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사람도 그분의 십자가 죽음이 얼마나 커다란 사건인지 모르지 않았나? 그러고는 십자가 사건을 실패와 끝이라고만 생각하며 절망과 두려움으로 모두 다 도망가지 않았던가?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정말 얼마나 다행인가?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그 뒤에 일어난 엄청나고도 놀라운 부활 소식을 성경을 통해 접하고 이제 은혜로 믿어 의심치 않게 되었으니 말이다.

인류를 위한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기를 원하셨던 것은 그분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거이다. 또 한편으로는 이런 묵상도 해 본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같은 자들을 위해 왜 그토록 큰 희생을 치르셨을까? 왜 우리 같이 형편없는 자의 죄를 용서하시기를 그토록 원하셨을까?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우리가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할 사건이 절대 아니다. 하나님께서 정말로 그리스도를 통해 죄 용서와 구원, 그리고, 천국과 영생을 허락하신 것이 사실이라면, 그냥 지나쳐 버릴 사건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 사건을 혼자만 믿고 간직해서는 안 되고 적극적으로 전파하고 나눌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단지 하나님의 구속 은혜로 구원받은 것을 믿는 사람이 아니다. 우리 주위에 이 놀라운 소식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결코 없도록 하는 일이 주님께서 구원받은 우리에게 가장 원하는 바이다.

지금부터 2천 년 전에, 자기들의 죄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혹은, 알고 싶지도 않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고, 부활하게 하셨다. 이는 우리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을 확증한 사건이며, 지상 최대의 사건이다. 절대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감격과 감사의 사건이어야만 한다. 이제 우리는 구속의 은혜로 구원을 허락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면서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이 절대 헛되지 않도록 남은 삶을 살아가야 한다.

예수의 죽음에 대한 무슬림들의 생각

무슬림들은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유대인들)이 말하기를, 알라의 사자 마리아의 아들, 메시아 예수를 우리가 죽였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를 죽이지도 않았고 십자가에 못 박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착각한 것이다. 예수 대신에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이 있었다고 풀이한다. 그것에 대해 의견을 달리하는 자는 의심으로 가득 찬 자들이다. 그들은 사실을 잘 모르고 짐작하는 것이다. 확실히 그들은 그를 죽이지 않았다. 오히려 알라께서 그를 그에게로 오르게 하셨고, 알라는 지혜와 권능을 지니셨다. 성서의 백성들은 죽기 전의 그를 믿어야 할 것이다. 심판의 날에 그가 그들을 대해 증인이 될 것이다.”(4:157~159)

이처럼, 이슬람에서는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다뤄지지 않는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이려 하였으나 알라가 개입해서 그들의 계획을 좌절시켰는데, 그것은 알라가 최고의 계획자이시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무슬림들이 얘기하는 구원은 희생의 신비가 아니라 알라의 절대적 주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은 복음의 핵심(고전 15:3~4)이므로, 그분의 죽음을 부인하면 인간의 구원은 성립될 수 없다.

그러므로, 예수의 죽음과 부활 사건은 여지없이 이슬람교와 기독교 사이에 이해가 상충하는 가장 커다란 차이점이다. 무슬림들은 예수의 십자가에서 대속에 대한 가치를 부인한다. 알라가 지상에 예언자로 보내서 알라의 사역을 충성되게 감당한 예수가 당시 가장 수치스러운 십자가에서 죽도록 절대 내버려 두지 않았을 것으로 말한다.

또한, 이슬람 신학에서는 원죄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서, 원죄도 없는데 사람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예수가 죽어야만 할 이유도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불가능한 일이며, 오히려 알라의 신성과 주권을 모독하는 발언이라고 분개한다. 전능하고 정의로운 알라가 보낸 예언자를 위험에서 구해내지 못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슬람의 입장에서는 예수가 아무런 도움도 없이 적의 수중에 내버려져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알라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그런 끔찍한 죽음으로부터 예수를 구해냈다고 말한다. 꾸란에는 예수가 십자가상에서 죽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어떻게 십자가의 고난을 피했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이슬람 전통에서 보는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여러 해석이 있지만, 가장 일반적 견해는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고, 알라가 개입해서 유대인 중 한 사람에게 예수와 같은 형상을 입히고 예수 대신 십자가에 못 박히게 했으며, 예수를 승천시켰다는 것이다.

꾸란에서 부활

꾸란은 부활과 최후 심판의 날에 관해서 ‘일어나는 날’, ‘결정의 날’, ‘결산의 날’, ‘깨우는 날’, ‘심판의 날’, ‘최후의 날’, ‘에워싸는 날’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한다. 그 부활의 때에는 몸이 일어나서 영혼과 결합할 것이고, 몸의 뼈 중에서 천골(척추의 끝부분에 있는 큰 삼각형 모양의 뼈)은 최후의 날까지 썩지 않고 보존되어 그날에 신체의 나머지 부분이 거기서 자라날 것이다.

무슬림들은 꾸란에 따라서, 예수의 부활은 인정하지 않지만, 예수의 승천은 믿는다. “알라가 그(예수)를 오르게 하셨으니 알라는 권능과 지혜로 충만하심이라”(꾸란 4:158)

꾸란에서 부활에 관한 내용은 여러 군데에서 언급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내용은 이슬람 신앙의 핵심인 ‘마지막 심판’에 관한 내용이다. 마지막 심판은 모든 인간이 죽은 후에 이루어지며, 이후에 부활과 함께 영원한 생명이 주어진다.

꾸란은 이 마지막 심판의 일어나는 과정과 그 결과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 심판의 일은 먼저 나팔 소리(trumpet blast)와 함께 시작된다. 그 후에는 모든 존재가 부활하여 심판대 앞에 선다. 이 심판대는 이슬람에서 하늘과 지옥 사이에 있는 지역으로, 모든 인간의 삶에서 행한 선행과 악행에 대해 심판하는 장소이다. 각각의 인간은 자신이 행한 선행과 악행에 대해 직접적으로 심판을 받게 된다. 심판대에서는 선악에 따라 사람들이 영원한 천국 또는 지옥에 들어가게 된다. 천국과 지옥은 모두 영원히 계속되는 곳이며, 마지막 심판 이후에는 모든 인간이 영원한 생명을 가지게 된다.

꾸란에서 부활과 마지막 심판에 관한 내용은 이슬람 신앙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모든 미래의 일들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부여한다. 꾸란에서 심판과 부활에 관련된 내용은 여러 군데에서 언급되며, 다음은 그중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그날, 심판장에서 선악에 따라 인간들이 천국이나 지옥으로 분류될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행한 일들에 대한 완벽한 보상을 받을 것이다”(꾸란 99:6~8)

“그날, 우리는 매우 확실하게 하늘과 지구를 망칠 것이다. 그날에는 모든 인간이 일어나서 그들의 주 앞에 모여질 것이다”(꾸란 14:48)

“그날, 자신의 선행과 악행에 대해 경고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주 앞에서 충격과 놀람에 빠질 것이다”(꾸란 6:31)

“그날, 자신의 주와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모든 인간은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해 책임지게 되며, 그 일에 따라서 자신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꾸란 50:20~21)

“그들은 심판장 앞에 모여질 것이며, 그들은 자신이 행한 일들에 대해 직접적인 증거를 내놓게 될 것이다. 그들은 각자의 삶에서 행한 일에 대해 직접적으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꾸란 18:47~49)

“너희는 어떻게 인간이 자신을 창조한 주의 부활을 부정할 수 있겠느냐?”(꾸란 36:77)

“눈이 덮인 그들은 그것이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것과 같이 그날에 부활할 것이다”(꾸란 20:15)

“언제 하늘이 갈라지며 별들이 흩어지며 바다가 끓어오르며 무더기가 흩어질 때, 그때에 인간이 묻혀 있는 것들이 나오게 되며 그날에 각자의 행한 것에 대해서 경험하게 된다.”(꾸란 82:1~5)

이처럼, 꾸란에 따르면, 무슬림들은 자기의 말과 행위가 기록된 책에 의해서 심판받을 것이다. 의로운 자들은 오른손으로 책을 받을 것이며, 불의한 자들은 등 뒤에 묶여 지게 될 왼손에 책을 받게 될 것으로 말한다. 또한, 인간의 생은 현세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사후에도 계속해서 지속되며, 현세의 생은 유한하고 사후의 생은 영원하며 이 생명은 창조주의 심판을 통하여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생명과 지옥에서 영원히 사는 생명으로 갈린다.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피조물을 창조주께서 소멸할 어느 날이 심판 날이며, 창조주는 모든 피조물을 자기 앞에 모이게 하니 이날은 부활의 날이라 하며, 살아난 인간들은 모두 창조주의 심판 앞에 서게 되니 이때 인간이 현세에서 행하였던 선과 악이 증감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제시되매, 창조주는 인간이 실천한 선과 악의 결과를 비유하시니 선행이 많은 자에게는 관용이 베풀어질 것이요, 악행이 많은 자는 그에 대한 형벌이 있을 것이며, 용서를 받는 자는 곧 천국으로 들어갈 것이요, 벌을 받는 자는 지옥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부활의 날에 창조주의 명령에 따라 무덤에서 부활한 육체에 영혼이 들어오면 다시 생명을 부여받고 인간의 영혼과 육체가 동시에 승천한다. 이 사실을 부정 내지 의심하는 자들은 모두 불신자(까삐르)로 지옥의 불에 떨어지게 된다. 사후의 생명을 부인하는 것은 심판 주로서의 창조주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사실이다

우리와 무슬림들 사이에서 상충하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 사건은 성경과 꾸란 사이에서의 상충을 의미한다. 이는 만약, 성경이 옳다면, 꾸란이 틀린 것이고, 또한, 만약, 성경이 옳지 않다면 꾸란이 옳은 것이 된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보아도,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당시의 증거와 증인들이 존재한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고,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진리에 말씀이다. 성경의 신적 영감의 범위가 성경 전체(완전 영감)와 단어의 선택에까지 미쳤기 때문에 성경의 모든 가르침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신적 권위와 무오성(inerrancy)을 가진다. 따라서, 우리 성경은 그것이 다루는 모든 문제에 있어 언제나 확실하고 완전하며 전적으로 믿을 수 있다. 그리고, 성경은 어떤 인간적인 허위와 기만 그리고, 오류가 전혀 없어 참되다.

물론, 성경이 완전 무오하다는 것은 영감을 받은 저자들의 최초의 자필 원고인 성경의 원본에 대한 것이다. 오늘날 그 원본은 사라졌으나. 원본의 원문은 하나님의 비상한 보호와 섭리로 순정하게 보존됐고, 성경의 사본들에 관한 연구를 통하여 최초의 원문을 충분히 복원할 수 있으므로,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바로 그 정확 무오한 진리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성경의 무오성은 바로 예수님 자신의 견해요, 사도들과 교부들의 주장이었으며, 종교 개혁자들과 개혁주의 신조들 속에 일관성 있게 증거되어온 교회의 역사적 신앙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많은 구약 성경 구절들 속에서 선지자들은 자신들의 전하는 메시지가 바로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이라고 확신하고 증거하고 있다(출 4:10~16, 31:18, 32:16, 사 34:16, 시 19:7-11, 렘 1:7, 암 3:1, 미 3:8). 신약 성경에서 사도들도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구약 성경의 신적 권위를 인정하였고, 자기들의 기록을 구약과 같은 선상에 두고서 그 영감과 무오성에 대한 분명한 증거들을 제시하고 있다(벧후 1:20~21, 3:15-16, 딤후 3:16, 딤전 5:18). 특히, 예수님은 모든 구약 성경의 정확한 무오성과 영원성을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8)는 말씀으로 확증하셨다.

그러나, 무슬림들에게는 성경보다 수백 년 뒤에 기록된 꾸란의 내용이 맞고, 성경이 옳지 않다고 반박할만한 논리적 근거도 없다. 끝으로, 성경이 변했다고 주장하는 모든 무슬림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그들의 주장대로 전지전능한 알라에 의해 보내진 우리 성경이 무가치하고 능력 없는 인간들에 의해 변하도록 알라가 허락했다고 믿기에도 설득력이 없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고전 15:13~17)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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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일 | 장신대 신대원 졸업, 前 중동선교회(MET) 본부장, 現 FOT 선교회 대표. 국내 이슬람권 선교사 네트워크 회장, 저널 ‘전방개척선교(KJFM)’ 편집인, 아신대학교(ACTS) 중동연구원 교수. 저서: ‘밖에서 본 이슬람, 무슬림 이해하기’(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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