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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 칼럼] 제대로, 마음의 처소 정하기!

사진: Bart LaRue on unsplash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시편 73:22~28)

우리는 우리 마음이 어디에 거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마음이 거하는 처소를 제대로 확증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은 우리 의지와 관계없이 어디로 가기도 하고, 의지를 갖고 움직이기도 합니다. 왜 우리 마음이 어떤 곳으로 가는지, 말씀을 통해 살펴볼 것입니다. 마음이 달라붙어 있는 것에 우리가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 상태가 지속되면 완전히 점령당하는 것입니다. 술을 계속 먹게 되면 술에 취하고, 술에 점령당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실제로 마음에 둔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게 되면 결국 그것에 점령당한 상태로 삽니다. 돈에 마음을 두면 돈으로부터 영향을 받습니다. 영향을 받으면 어떻게 됩니까? ‘돈이 없으면 안 돼, 돈이 없으니까 두려워, 돈이 없으면 낙오자고 실패자야!’ 그런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돈을 마음에 두었기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돌아보는 것은 지혜입니다. 자식이 마음에 있으면 자식으로부터 영향을 받습니다. 조바심이 나서 분노하고, 화를 내고, 조정하려 하고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려 합니다. 자식에게 달라붙어 있는 마음도 정상적인 것인지 성경을 통해 볼 것입니다. ‘이것이 있어야 성공이야!’ 그 마음이 있다면 그것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우리 마음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말씀을 통해 확증하셔야 합니다.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 (시편 73:22)

내가 주님 앞에서 짐승이 된 상태, 이것은 주님께서 나를 짐승이라고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우매는, 어리석고 어두워서 사리가 분별이 안 되는 상태입니다. 그렇게 되면 짐승처럼 여김을 받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나를 향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시편 73:1~3)

이스라엘 가운데 백성입니다. 곧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짐승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교인 가운데, 예배 드리는 사람 가운데 있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중에서 마음이 정결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선을 행하십니다. ‘선’은 히브리어로 ‘토브’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참 좋은 것입니다. 마음이 정결한 자를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참 좋다고 하십니다. 마음이 정결한 자를 아름답고 복되다 하십니다. 정결하다는 말은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청결하다’는 말씀과 같은 뜻입니다. 영어로 ‘pure’입니다. 깨끗하고 맑다는 것입니다.

제가 하나님으로부터 말씀 하나를 받았습니다. 오랜만에 칭찬해 주셨습니다. “영혼이 맑으면 예쁘단다. 네 영혼이 맑으니 네가 참 예쁘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쁘게 여기는 지점이 있습니다. 우리 영이 맑아야 합니다. 우리가 몸을 이끌고 열심을 부리고 나아갈 때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시편 기자가 거의 넘어지고 미끄러질 뻔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하셨고, 마음이 청결하여 주님 보시기에 좋은 길을 가고 있는데 거의 넘어질 뻔했다고 합니다. 그 길에 멈춰서 갈팡질팡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맴돌고 있었는데 우리 마음에 ‘pure’한 마음이 아니라 다른 마음이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그것을 두고 넘어질 뻔하고 미끄러질 뻔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시편 73:3)

마음이 청결, pure한 내가 악인의 형통을 보았습니다. 오만한 자를 질투했습니다. 질투가 우리 마음에 들어온 것을 주님이 보실 때 주님은 우리를 우매하다, 짐승과 같다고 하십니다. 악인의 형통을 보고 우리 마음이 어떠한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 (시편 73:4~5)

악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힘이 강건하다고 합니다. 누구나 그렇게 기도할 것입니다. 죽음을 맞이할 때 고통 없고 찬송하다가, 좋은 유언도 남기고, 축복다운 축복도 남기며 죽는 것을 소원할 것입니다. 그런데 악인이 그렇게 죽는다고 합니다. 보통 사람들이 당할 법한 재앙도 없습니다. 살아있을 때도 행복하게 살고, 죽을 때도 행복하게 죽습니다. 악인이 이렇게 형통의 복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으며 (시편 73:5~7)

삶의 자리가 다릅니다. 그들은 교만을 부릴 만한 자리에 올랐습니다. 보통 어떤 자리에 오르게 되면, 교만이 스며들기 시작합니다. 삶의 위치가 세상 기준에서 볼 때 성공한 자리에 이르면 우리는 갑질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교만해집니다. 악인들이 살 때도 부족함이 없고, 죽을 때도 튼튼하고 풍성합니다. 살찜으로 눈이 솟아난다는 것은 기름기가 넘친다는 뜻입니다.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다고 합니다. 100원을 계획했는데 1000원이 벌린다는 것이니 부러운 마음이 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삶은 1000원이 필요한데 100원만 벌리지 않습니까?

그들은 능욕하며 악하게 말하며 높은 데서 거만하게 말하며 그들의 입은 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시편 73:8-9)

말에는 영향력이 있습니다. 지적인 영역도 갖고 있지만 영향력을 부릴 수 있는 지위와 상황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사회에도 여론을 주도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문화, 미디어, 사회를 움직이는 세력이 있습니다. 3, 5% 정도만 움직여도 여론을 움직입니다. 주도세력입니다. 10%가 움직이면 완전히 장악합니다. 말의 영향력이란 곧 여론을 주도할 수 있는 세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 말씀의 영향력을 펼치고 여론을 주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신학생과 토브원형학교 학생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그런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어른도 주님의 말씀으로 삶의 자리에서 여론을 흔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의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 (시편 73:10)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그것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것에 취했다는 것입니다. 악인이 사는 모습이 근사해 보여서, 나도 그렇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품는다는 것입니다.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존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는도다 (시편 73:11)

비아냥거리고 있습니다. 악인들이 이렇게 성공하고 잘 되는데,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께서 이 땅의 일을 어떻게 알겠느냐고 비아냥거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어떻게 이럴 수 있어, 하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악인의 영향을 받아 이 세상의 가치에 빠진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 어찌 빌빌거리고 볼품 없게 사는 거지?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수 있겠어?”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들이라도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도다 (시편 73:12)

재물이 더 불어납니다. 주변에서 그런 일을 자주 보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이 계시는데 어찌 나에게는 이런 일만 일어나지, 하는 그런 마음 없으십니까? 이야기는 안 해도 얼굴에는 표시 나는 것이 우리 실존입니다.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시편 73:13)

경건하게 주님께 마음 두고 살아봐야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종일 재난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았도다 (시편 73:14)

나는 이렇게 힘든데, 이런 세상의 염려가 나를 옥죄고 있는데, 경건생활 해봐야 무슨 소용 있어! 그렇게 거의 넘어질 뻔했다고 말합니다. 악인의 형통을 본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런 오만한 자를 질투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질투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요? A라는 사람이 갖고 있는 것을 나는 없습니다. A가 사랑을 많이 받고 있고 나는 사랑을 받고 있지 못합니다. A라는 사람이 돈을 많이 벌고 나는 돈이 없습니다. 그 A의 형통을 부러워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질투입니다. 악인들이 누리는 그 형통이 나에게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그 질투 때문에 마음이 정결하지 못하고 거의 넘어질 뻔한 상황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것이 우매함입니다. 그것이 짐승같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이 너무 시원했습니다. 짐승같다고 아예 말씀해주시니까 마음이 너무 시원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시원찮고, 내가 이렇게 보잘것없고,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정말 보잘것없다는 그런 중압감 없으셨습니까? 그런데도 주님을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믿어줄까, 생각하며 뭔가 잘 되면 하나님 살아계시잖아! 하고 말할 수 있을 텐데, 실제로는 늘 빌빌거리는 것 같은 삶.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그런 게 짐승 같다라고 하시니 너무 시원했습니다.

다른 집 자녀가 명문대 가고, 남편이 본부장 된 것 보고 기뻐하면, 그게 왜 기뻐? 하고 말하는 것이 실제가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교통편 시간도 우연히 딱 맞으면 하나님께서 함께하는 것 같고, 뭐가 잘 안 맞아서 빙 돌아가는 것 같으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이 아닌 것 같다는 마음! 그런 마음에서 빨리 깨어나기를 축복합니다. 돈 없어도, 삶의 자리에서 위치가 어찌하든, 사람들로부터 눈총을 받든 존경을 받든 그 눈길에 상관없이, 자부심을 느낄 만한 사회적 위치와 관계없이, 내가 무엇이 있어야 하나님으로부터 ‘토브!’ 하고 좋다 하시는 음성을 듣게 되는가! 그것이 중요합니다.

육신의 아버지가 하나님 나라에 갈 날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모님을 모시는 일에 대해 큰 통찰을 주셨습니다. 어르신들의 삶을 잘 마무리하게 하는 것이 어르신들을 잘 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사탄에게 어르신들을 다 내어줍니다. 부모를 모시다 보니, 항상 마지막이 보입니다. 임진각 가서 연날리기를 하면 이것이 마지막 연날리기구나. 성경필사를 하시면 여기까지가 마지막이겠구나. 음식점 가서 외식하거나, 드라이브 하러 가면 이 식당이, 이 드라이브 길이 마지막이겠구나. 양품점 가서 일부러 옷을 사서 입히는데 이 외투가 마지막이겠구나. 우리 육신의 삶에는 실제로 마지막이 있습니다. 이 걸음걸이가 마지막이겠구나, 이 예배가 마지막이겠구나. 그래서 정말 주님을 잘 섬기고 싶다는 소원이 생깁니다. 돈 없어서 흔들릴 때, 내 육신의 어머니 아버지가 하나님나라에 계신다는 확증이 있을 때는 강물 같은 평강이 밀려옵니다. 그 어떤 에너지보다 큽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주님을 잘 믿으셔야 합니다. 오늘 아침, 아버지랑 찬송을 같이 했습니다. 찬송은 아직 마지막이 아닙니다. ‘내 주를 가까이 하려 함은…’ 너무 좋았습니다. 시편 23편을 함께 암송했습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실제로 경험하며 살아가셔야 합니다. 시편 기자가 무엇 때문에 힘들어 했습니까?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나는 종일 재난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았도다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그들처럼 말하리라 하였더라면 나는 주의 아들들의 세대에 대하여 악행을 행하였으리이다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시편 73:13~16)

악인의 형통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고통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생각해도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 악인들의 종말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 (시편 73:17~19)

80년, 90년도 금방 지나갑니다. 인생 금방 지나갑니다. 아직도 마음은 어립니다. 그래서 아직도 나이가 믿겨지지 않습니다. 제가 하나님께 충심으로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제 인생의 노른자 시간을 주님께 드리고 싶다고 기도했습니다. 유학가는 것도 의미 없으니 40대, 50대를 주님께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음에는 공부를 다하지 못한 것이 늘 남아있었습니다. 40대 때만 하더라도 인생이 길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10년밖에 안 남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악인의 형통함이 무궁무진할 줄 알았는데 그것도 마지막이 있다고 합니다. 아버지를 보니까 선명하게 깨달아집니다. 막판에 가니까 항상 마지막이 있다는 것이 선명해집니다. 성경필사, 연날리기, 외식, 드라이브! 축복하는 시간도, 교제하는 시간마저도 마지막이 있습니다.

오늘 시편은 아삽의 시입니다. 아삽은 찬양 리더로 항상 성소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오늘 깨달았다고 이야기합니다. 평소 성소에 들어갈 때는 못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주님 전으로 와서, 항상 깨달을까요? 오늘, ‘특별히’ 깨닫는 축복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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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 목사 | 하나님이보시기에참좋았더라교회 담임. 다음세대를 위해 토브원형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성도들이 삶에서 믿음의 실제를 경험할 수 있도록 양육하고 있다. 저서로 주께서 피워내시는대로(토브원형출판사, 2020), 예, 주님 제가 순종의 전문가입니다(토브원형출판사, 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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