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혁로 목사(주님의빛교회, 미주 헤브론원형학교 교장)
271호 / 나눔&나눔
인본주의와 세속화로 벼랑끝 위기로 치닫고 있는 미국 교육현실에서 믿음의 세대를 세우기 위한 한 한인교회의 도전이 주목받고 있다. 무너져가는 미국 교육현장에서 신음하는 다음세대를 위해 성경을 교과서로 채택한 한국의 헤브론원형학교와 동일한 교육과정으로 미주 한인 사회의 다음세대를 양육하고 있는 미주 헤브론원형학교 교장 주혁로 목사(주님의빛교회)를 온라인을 통해 만났다.
–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적다고 하는 광주에서 나고 자랐어요. 그 와중에 저는 믿지 않는 가정에서 태어났어요. 광주시 양림동은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님들 사택도 있고, 오래된 교회도 많았기 때문에, 어릴 때는 친구 따라서 여름성경학교에 가서 정신없이 놀았어요. 그러다 중학교 2학년 때 친구의 전도로 교회에 나가게 됐어요. 그리고 고3 때 광주 사태가 일어났어요. 처음으로 제 인생에서 절망을 경험했어요. 그동안 국가를 위해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거창한 포부가 있었는데, 인생의 목표가 사라졌어요. 광주 사태가 일어나기 며칠 전에 군인들에게 위문편지를 썼는데 그 군인들이 내게 총을 들이대면서 적이 된 것이죠. 예수님을 믿지도 않으면서 교회에 가서 밤마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되느냐고 기도했어요. 그때 기도하면서 주님을 만나서 영접하게 됐어요.”
광주 사태로 현실에 절망하며 기도하던 중 주님 영접
– 절망이 주님을 만나는 계기가 되셨군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했는데 대학 입학 전에 한국대학생선교회(CCC)에 저도 모르게 가입이 됐어요. 교회 선배가 내가 활동해야 할 서클이 있다고 저를 데려갔는데 갑자기 제 이름을 부르더니 일으켜 세워서 CCC 역사상 입학도 하기 전에 CCC 가입한 사람은 없었다며 박수를 치더군요. 그 다음 주에 나가지 않으면 선배 체면이 구겨질까봐 계속 나가게 됐어요. 그곳에서 민족 복음화와 예수 제자화의 비전을 갖게 됐어요. 그리고 대학교 3학년 때 예수 제자화를 교회에서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 신학공부를 하기로 결심을 하고 졸업 후, 한국에서 신학을 했어요.”
– 학교 생활은 어떠셨나요?
“신대원을 다닐 때, 광주민주항쟁 기념식을 하는데 제가 광주 출신이라는 이유로 성명서를 읽게 됐어요. 별 고민 없이 읽었어요. 이 사건을 계기로 저를 진보적인 사람으로 분류해서 제가 친하게 지내고 싶었던 사람들이 저를 피했어요. 그렇게 3년 동안 갈등이 많은 학교 생활을 마쳤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CCC의 영향으로 이런 일에 관심 없는 것이 옳은 줄 알았어요. 삶과 사회가 밀접하게 연관되는 건데 당시 한국교회가 균형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최소한 우리나라의 어려운 상황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중보자 시선을 가졌어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그렇게 신학을 마치고 공부를 더 하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어요.”
– 한국의 격동기에 어려움을 겪으셨군요.
“제가 미국에 왔을 때가 1992년 5월이었어요. LA폭동이 난 한 달 후였어요. 또 얼마 안 있어서 노스리지 지진을 경험했어요. 우여곡절 속에서 신학공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주님이 교회개척으로 인도해주셨어요. 그렇게 1998년에 주님의빛교회를 개척하게 됐어요.”
– 어떻게 다음세대 교육을 하게 되셨나요?
“주님께서 크리스천 학교에 대한 마음을 주셨지만, 목회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당연히 못한다고 생각했어요. 순회선교단 미주지부에서 미주에 헤브론원형학교을 세울 비전을 나눌 때도, 저는 돕겠다고만 생각했지, 제가 할 거라고는 생각도 안했어요. 그런데 버락 오바마가 2009년 대통령이 되면서 동성애 교육의 실상을 알게 되면서 마음의 변화가 생겼어요. 이곳 캘리포니아주는 미국의 50개 주에서도 진보적인 주에요. 동성애를 반대하면 구속을 당할 수 있고 실제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일어났어요. 신앙 때문에 동성 커플 웨딩케이크 제작을 거부하거나 동성 결혼식에 쓰일 꽃 장식을 거부한 사람들이 고소를 당했어요. 그때 동성애 교육을 하는 책자를 입수해서 보게 됐는데, 동성 성관계 하는 방법이 낱낱이 기록돼 있는 것을 보면서 깜짝 놀랐어요. 자연스럽게 안 되니까 인위적인 방법을 동원하는 안내를 일반 성교육 교과서에 실을 수 있다는 게 너무 기가 막혔어요.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받는 성교육이 동성애 교육이었던 것이죠. 한 아이가 동성애 교육을 안 받겠다고 하니까 학교 관계자가 반대하는 건 자유라면서 복도에 서있으라고 했다고 해요. 그게 무슨 자유에요. 벌 받은 거죠. 그렇게 하면서 다른 아이들도 감히 반대할 수 없게 만든 거예요. 이 소식을 듣고 분노했어요.”
미국 학교의 위험한 성교육 보며, 기독학교 설립 결심
– 미국의 교육이 정말 심각하군요.
“이 일이 있은 지 한 달 후에 또 학교에서 성교육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을 교회에 오라고 했어요. 그때 우리 중·고등학생들이 25명 됐는데, 학교에 가지 않도록 학부모들에게 안내를 했어요. 그런데 모인 아이들이 46명이었어요. 우리 교회 아이들 외에도 관심을 갖고 왔어요. 이것을 보면서 학부모들이 이것을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때 우리가 박해를 받을 것을 각오하고 학교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 이렇게 다음세대 교육에 대한 마음을 받으신 거군요.
“먼저 한국에서 진행하는 복음사관학교 훈련을 받고 돌아와 2020년 3월에 미주 헤브론원형학교를 시작하게 됐어요. 한국에 있는 헤브론원형학교에서 모든 커리큘럼을 그대로 받아다가 사실 아무것도 모르고 무작정 시작했어요. 첫 학기에 6명이 들어왔어요. 그런데 3월에 오픈하고 2주 후에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됐어요. 모두 격리를 해야 된다고 해서 교회도, 학교도 격리를 하고 집에서 공부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2주째가 됐는데, 교회 주차장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는 거예요. 부모님들은 아이들을 제발 봐 달라고 했죠. 어차피 이렇게 와서 놀 거라면 학교를 해야겠다고 싶어 3주차에는 학교를 열었어요. 아이들이 코로나에 걸리면 그 때는 한 주 닫고, 그 이후에는 또 수업을 진행했어요.”
– 학교는 어떻게 진행되나요?
“현재 2학년에서 7학년까지 모집하고 있어요. 돈이 없어서 못 오는 사람이 없도록 학교를 운영할 수 있는 등록금을 최소한으로 정했어요. 학생들은 아침에 학교에 오면 말씀 묵상과 말씀 기도를 중심으로 하는 아침 예배를 드리고, 점심 이후에는 열방기도를 하고, 마칠 때는 일기를 쓰면서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요. 처음에 꿈을 가지고 학교를 시작할 때는 아이들에게 복음이 심겨지는 게 쉬울 줄로 여겼어요. 그러나 학교를 하면서 모태신앙인 아이들에게 복음이 들어가는 게 얼마나 힘든지를 절감했어요. 아이들이 복음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는 것을 보면서 낙심하기도 했죠. 그러나 작년 아웃리치를 떠나면서 주님이 위로를 주셨어요. 그 장난꾸러기들이 아웃리치를 가니까 영락없는 선교사더군요. 금년에도 2번째 아웃리치를 떠났는데 일을 시킬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아이들이 잘 했어요. 아이들의 언어가 완전히 변했어요. 너무 행복했어요.”
–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합니다.
“멕시코에서 연합집회가 있었어요. 650명 정도가 모였고 스테이션이 17개가 있었어요. 우리 아이들에게도 하나가 주어졌는데, 아이들이 다른 스테이션을 돕느라고 우리 것은 셋팅하지 못했어요. 참여한 팀들이 각자의 스테이션을 셋팅하느라 사실 전체적인 진행이 잘 안 되는 상황이었어요. 스텝이 없었던 거죠. 그 역할을 우리 아이들이 하고 있는 거예요.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다 보니 다른 곳에서 우리 아이들을 놔주지 않았죠. 결국 우리 스테이션은 철거하고 편안하게 돕게 했어요. 제가 아이들에게 다른 사람들을 도우라고 시킨 게 아니었어요. 자기들이 보고 필요한 곳을 도왔던 거죠. 큰 청년들처럼요.”
장난꾸러기들이 선교사의 모습으로 변화
– 남을 돕는 삶을 어느새 몸으로 익혔나보군요. 기특하네요.
“우리 교회에서 인형극단 팀도 그곳에 함께 참여했었는데, 극단이 준비하는 동안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 아이들이 워십 댄스를 했어요. 사람들이 케이팝 스타가 나타난 것 마냥 모여들었어요. 또 인형극이 끝나고 우리 아이들이 준비한 스킷 공연도 하게 됐어요. 폐회예배를 하는데 우리 아이들이 앵콜 공연을 하게 됐어요. 아이들이 성숙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이 더 이상 장난꾸러기가 아니구나. 복음 들고 나가는 선교사구나.’라는 인식이 분명해졌어요.”
– 성경을 교과서로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데, 학생들이 어떻게 양육 됐는지 궁금합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온 아이들이 있어요. 게임에 중독이 돼서 눈에 초점이 없는 아이도 있고, 주의력 결핍 증후군 진단을 받은 아이도 있었어요. 또 한 아이는 장래 희망이 연쇄살인마였어요. 그리는 그림마다 총으로 사람을 쏴 죽이는 그림만 그렸어요. 저에게 살인마가 되고 싶다는 말을 하는데, 마치 게임 캐릭터인 것처럼 말을 하더군요. 지금 그 아이가 선교사 역할을 감당할지 누가 알았겠어요. 주의력 결핍인 아이는 말끝마다 욕을 하고, 폭력적이었어요. 그런데 아웃리치를 갔을 때는 단 한마디도 욕을 하지 않고 화를 내지 않았어요. 아웃리치 떠나기 전에 약을 끊기로 결단도 했죠. 약을 끊고 정상적으로 아웃리치를 다녀왔는데, 본인도 너무 행복했다고 해요. 발달장애가 있는 줄 알았던 아이가 지금은 모범생 대열에 들었어요. 성경도 전혀 못 외우겠다던 아이가 지금은 성경을 잘 외우고 다른 아이들도 챙겨주는 모습을 보면 너무 감사해요.”
– 아이들의 변화의 이야기만 들어도 감격이 되네요. 이런 일들이 일반 학교에서는 불가능했을 텐데요, 기적이네요.
“최근 우리 교인 중 한 분이 공립 고등학교에 전기 공사를 하러 갔다 와서는 놀라서 이야기를 하더군요. 교실마다 동성애 포스터가 붙어 있고, 게시판에는 남자와 남자가 손을 잡고 있는데 ‘This is my future.(이것이 나의 미래다)’라고 붙여 놓았다는 거예요. ‘이렇게까지 세상이 변하는 동안 교회가 뭐했냐?’고 질문을 하더군요. 그런데 문제는 부모들이 이런 상황을 모른다는 거예요. 헤브론원형학교를 시작할 때, 상황이 이렇게 심각하게 될 줄도 모르고, 우리 교회 아이들의 학교 입학 여부를 부모들에게 결정하게 했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교인들에게 강권할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어요. 공립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공부는 잘할지 몰라도 지금 영적인 감수성은 완전히 퇴보했어요. 청소년부 교역자와 선생님들이 수련회를 갔다 와서 하는 이야기는 아이들이 가치관의 혼돈을 느끼고 있고 우울증을 앓고 있는 아이가 30%나 된다는 거였어요. 학교에서 가르치는 가치관을 인정하려면 아이들은 지금 주님을 떠나야 되는 상황이에요. 아이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선택에 직면했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타협하고 있는 것이죠.”
–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타협을 하게 된다는 게 정말 두려운 일이네요. 반드시 교육 영역을 복음으로 사수해야겠군요.
“목이 터져라 외치고 싶은 게 있어요. 부모들이 공립학교에 자녀를 보낼 때는 아이들이 잘 되기 위해 보내요. 좋은 직업을 가지고, 좋은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보내죠. 그러나 학교에 가면 욕을 배우고, 동성애나 반성경적 가치관을 배워요. 부모들은 그 심각성을 전혀 몰라요. 우리들은 매일 눈으로 보면서 느껴요. 교회 중고등부 학생들만 봐도 심각함이 느껴져요. 우리가 헤브론원형학교를 시작하기 전에 있었던 아이들이 대학을 가면서 교회를 많이 떠났어요. 그 부모가 교인인데도 교회를 떠나더군요. 그 아이들에게 미안해요. 이 일을 10년 전에만 시작했어도 이 아이들이 교회를 떠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돈 들이고 정성들여서 공립학교에 보내면 마귀자녀를 만든다는 거.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아요.”
돈들여 공립학교 보내는 것, 마귀에게 내어주는 일
– 너무 막중한 사명을 감당하고 계시네요.
“제가 아무리 뜨거운 복음의 열정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언어의 장벽을 느껴요. 교육은 선생님들이 담당을 하고, 제가 해줄 수 있는 건 기도와 금요일에 드리는 예배밖에 없어요. 그래도 지금 투자하면 10년 후에는 이 아이들을 건지는 거잖아요. 이것이 교회도 살고 선교지도 사는 길인 것 같아요. 교회의 미래가 위기라고 말하면서도 당장의 현실밖에 보지 못하고 어떻게 하지를 못해요. 그러나 다음세대가 부흥하면 소망이 있죠. 헤브론원형학교 아이들 중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 선교사가 나온다면 그것이 열매잖아요. 아무도 하는 사람이 없어서 무작정 급한 마음에 순종하고 뛰어 들었는데, 지금은 장래의 선교사님들을 날마다 보는 영광에 빠져 있어요. 이런 영광을 모두 맛봤으면 좋겠어요.”
– 이후에는 어떤 계획이 있으신가요?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메시지는 저도 역시 선교지로 가는 것 같아요. 교회에도 선교지로 떠나겠다고 말씀드렸어요. 언젠가는 북한을 위한 중보기도자로 떠난다고 선포하고, 후임 목회자와 헤브론원형학교를 담당할 분을 위해 기도하고 있어요.”
– 이런 결정을 하시게 된 어떤 계기가 있으셨나요?
“2014년도에 복음학교를 하고, 이후 선교관 학교 훈련을 받으면서 북한 사역을 하시는 강사님의 강의를 듣게 됐어요. 강의를 들으면서 북한 선교에 대한 급한 마음이 들어서 무작정 압록강으로 갔어요. 단동에서 압록강 따라 기도하면서 올라갔는데, 그때 만난 북한 사역자를 통해 북한 안에 들어갈 수 있게 됐어요. 북한 안에서 외국인끼리 모여 그 안에서 예배하고 기도하는 것은 허용이 됐어요. 그러다 오토 웜비어 사건이 터지면서 북한에 갈 수 있는 문이 닫혔죠. 아무리 문이 닫혔다 해도 북한에 대한 마음을 포기하지 않았어요.”
– 마지막으로 기도제목을 말씀해주세요.
“제가 하는 사역과 같은 마음을 품은 복음에 확정된 사역자가 제 후임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헤브론원형학교 아이들이 용감한 정예병 과정(졸업 이후 2년간 단기선교 나가는 것)에 대해 약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어요. 감사하게도 아웃리치를 다녀오면서 두려움이 살짝 줄어들었는데, 용감한 정예병 기간이 두려움이 아니라 기대감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또한 우리 선생님들과 학부모들과 아이들이 모두 한 복음 앞에서 마음이 확정되도록 기도해주세요.” [복음기도신문]
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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