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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선 칼럼] 30년만에 만남, 그리고 교회의 가라지 문제

ⓒ unsplash

공군목사 이야기(15.끝)

1. 30년만에 만난 최 병장

신학대학원 동기이신 한 목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사실 동기라고 하지만 나는 군목이라 바로 신학대학원에 진학했기 때문에 나이 차이가 25년 이상 나는 분들도 있다. 한 목사님도 내가 알기로는 10년 이상 많으시다.) 목사님 교회의 안수집사인 최 집사가 나를 찾는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름을 기억할 수 없었다. 그러나 곧 부안 의상봉의 최 병장을 기억할 수 있었다. 딱 30년 전이다. 1991년에 내가 처음 공군 목사로 가서 만난 형제이니까.

최 병장은 나의 관사에 와서 종종 함께 식사를 했다. 그는 통신병이었고 처음 만났을 때는 상병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관사의 통신을 담당했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관사에서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집에 와서 라면도 끓여먹고 함께 복음성가도 부르곤 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나를 5년 동안 찾았단다.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었단다. 그럴 수밖에. 나는 중국 선교사가 되어 저 침침한 사회주의의 땅에서 목사나 선교사란 호칭은 말하지도 듣지도 못하고 선생님이란 이름으로 수십 년을 살았다. 한마디로 방방 뛰면서 이름 내며 사는 것을 좋아하던 나의 성격은 조용히 그리고 묵묵히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으로 변해갔다.

최 병장 말로는 내가 영어를 좋아하니 제대하고 미국으로 간 줄 생각 했단다. 최근 그리움이 더해서 나에 대해 신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최 병장 교회의 담임인 한 목사님도 총신 출신이니 물어보면 혹시 알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단다. 주님의 섭리로 생각되는 것은 중국에서 추방된 후에 나는 신학대학원 동기목사님들과 조금 교제를 했다. 그때에 한 목사님도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연결이 되었다.

내가 참 미안하고 감사한 것은 최 병장이 나를 자신의 멘토(mentor)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1991년, 아직 나이 서른도 안 된 내가 어떻게 최 병장의 멘토(mentor)로 여겨질 수 있는가? 아마도 최 병장은 제대한 후에 나를 좋게 생각하고 기억하는 것이 점점 더하여 나를 그의 스승처럼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아직 직접 만나지 못했다. 만나고 싶어도 하는 일들이 있으니 쉽게 만나지를 못하고 토요일로 날을 잡았다. 두려운 것은 최 병장이 나에 대해 하나의 환상을 갖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이 만남을 통해 깨질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최 병장이 기억하는 30년 전의 나와 이제 만나게 될 내가 적어도 같거나 아니면 더욱 존경받을 만한 신앙의 성품으로 그를 만나고 싶다.

최 병장이 나를 스승과 같은 사람이라고 한 것은 내가 최 창업 목사님을 생각하며 쓴 ‘스승의 조언’을 읽고 난 후에 한 말이었다. 나는 내가 제자가 되어 스승을 모시는 일은 있었어도 누가 나를 스승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제까지 없었다. 그래서 그 단어가 생소했다. 아! 내가 제자를 삼은 사람들은 있다. 그들은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선생과 제자의 관계는 있다. 그런데 스승과 제자라는 말을 쓰는 것은 없었다. 나에게 스승이 계셔도 내가 스승인 적은 없다고 생각했다.

선생이나 스승이 같은 것이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이상하게도 나에게 있어서 두 단어는 같은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스승은 신앙의 인품까지도 존경하여 따를만한 분으로 여기는 것이다. 선생은 어딘지 배움의 측면이 더 부각된다. 신학과 선교와 목회에 관한 것 등등. 그러나 스승이란 단어를 쓸 때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품이 분명하게 나타날 때이다. 선생이라고 할 때도 예수님을 닮으려는 성품은 나타난다. 그러나 스승이란 단어보다는 차이가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이 누군가에게 ‘스승’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최 병장과 메시지도 나누고 전화도 했다. 그는 제대 후에 나를 수백 번도 더 생각했단다. 한 마디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목사님을 통해서 신앙의 기본을 잡았어요.”

대단히 황송하고 감사한 말이다. 도대체 그때 30년 전 그 어린 나의 무엇을 보고 그가 신앙의 기본을 잡았다는 것인가? 신자들이 당시의 나를 보고 신앙의 기본을 잡을 만한 그 무엇이 내게 있었던가? 기억하기로는 없다. 그러니까 최 병장, 이 친구가 하나의 환상에 사로잡혀 나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아, 이 환상을 만나서 깨 주어야 하는가? 아니면 만나지 말고 그대로 환상 속에 살게 해야 하는가? 최 병장의 신앙을 위해서는 만나지 않는 것이 유익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궁금하기도 하다. 30년 전의 나의 무엇이 그를 변하게 한 것일까? 내일, 토요일, 나는 최 병장을 만난다. 아니 그를 통해 나는, 30년 전의 나를 만난다.

2. 사장 집사에게 속은 최 병장

30년 만에 만난 최 병장 안수집사는 변한 것이 없었다. 그 때는 청년이라 말랐고 지금은 중년의 남성으로 살이 좀 붙었다.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저녁밥을 먹고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이야기를 듣다가 참 마음이 아팠다.

다 무너져 가는 어떤 회사에 들어갔다. 어차피 문제가 있으니 그 사장이 회사를 넘겨준다고 했다고 한다. 착한 최 병장은 열심히 일했다. 몸이 부서져라 열심히 일해서 수년 만에 매출을 5-6배 정도 올려놓았다. 그랬더니 이 사장이란 인간이 최 병장을 물러나게 했다. 살라고 주었던 아파트도 도로 다 빼앗고 사람 가슴을 찢어놓았다. 그리고 자기와 잠자리를 같이 했던 여직원은 사업구역을 떼어서 독립시켜 주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최 병장이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담임 목사께 하소연을 하고 엉엉 울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사장이란 사람이 큰 교회 집사라고 한다. 어제 토요일에 최 병장을 만났고 오늘 주일 11시 예배를 드리려고 하는데 문득 지금 그 사장이란 인간도 그 큰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장이란 사람은 교회에서 얼마나 연기를 하고 있을까? 대개 그런 사람들이 또 아주 신앙 좋은 것처럼 위장도 잘한다. 또 그런 가라지들이 교회에서 서로 단합하여 세력을 형성하고 교회를 좌지우지 한다. 도대체 이런 것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최 병장 말을 듣고 있다 보니 저렇게 열심히 일했으면 몸이 성할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은 괜찮냐? 고 물었더니 안 괜찮단다. 현재는 척추의 연골중 하나가 강직화 되었다고 한다. 천천히 전체 척추의 연골들이 강직화 되어 나중에는 척추가 움직여지지 않는 병에 걸렸다. 묵묵히 듣고는 있었지만 맘이 정말 좋지 않았다. 왜 이 세상에서는 착한 사람들만 저렇게 당해야 하는가? 글을 쓰는 주일 저녁, 바깥 날씨가 내 맘만큼 안 좋다.

3. 거짓 교인에게 제언하는 진정한 회개

그 사장 집사가 구원 받으려면 현재의 상황으로 볼 때에 반드시 회개를 해야 한다. 만일 회개하지 않는다면 구원은 담보할 수 없다. 죄악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도 천국에 가는 자가 있는가? 혹시 신자는 어떤 죄악을 지어도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해결하셨다고 믿으며 주님이 주시는 평안 가운데 사람을 속여 돈을 떼어먹고 도둑질을 하고 강도짓을 하고 사람을 죽이는 짓을 하고 있는가? 오, 놀라운 복음! 지금 적지 않은 신자들이 이렇게 생각하며 이것을 믿음이라고 하고 있다.

착각하지 마라. 이것은 회개하지 않으면 구원과 천국을 확신할 수 없다. 그것은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에는 들어있지 않고 너의 머리가 만들어낸 ‘내가 복음’이다. 다른 것 말할 것 없이 최 병장을 속인 사장 집사의 문제를 말하자.

그는 회개해야 한다. 그런데 회개가 무엇일까? 그는 죄를 깨닫고 2시간 정도 기도실에 들어가서 주님 이름 부르면서 나는 죄인이라고 하며 펑펑 울고 나서 회개했다고 한다. 회개가 사우나인가?

성경이 말씀하는 회개를 보자. 예수님을 집으로 초청한 세리 삭개오는 자기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남의 것을 부당하게 갈취한 것은 4배로 갚겠다고 했다. 사실 당시 세리는 로마에 세금을 거두어 주면서 부당한 이익을 많이 챙길 수 있었다. 그러니까 삭개오는 꽤 재산을 모았을 것이다. 이 사람이 50억을 모았다고 해보자. 그러면 회개하기 위해 25억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게 된다. 그리고 남의 것을 갈취한 액수가 꽤 될 것이다. 그것이 내가 상상하기로는 약 15-20억은 될 것 같다. 그러면 삭개오는 5-10억 정도 남는다. 삭개오가 회개하기 위해서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았던 재산의 80-90%를 내 놓아야 한다. 이런 삭개오의 선언을 듣고 예수님은 그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씀하셨고 구원이 그의 집에 임했다고 했다.

나는 이것이 성경에서 말씀하는 가장 정확한 회개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으니 이것보다 더 정확한 회개의 방법은 없을 것이다. 최 병장네 사장이었던 집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이 회개의 방법을 실천해야 한다. 2시간 울고 갈취한 재산은 그대로 있으면서 회개했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지 성경이 말씀하는 회개의 방법은 아니다.

사람들은 회개한다는 것을 상당히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 참된 회개는 주님이 주시는 은혜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인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죄를 지은 자가 자신의 기분만 즐겁게 하는 쇼를 행할 뿐이다.

구약 성경에는 속죄제와 속건제가 있다. 속죄제는 하나님께 죄를 지었을 때에 드리는 제사이다. 속건제는 사람에게 죄를 지었을 때에 용서를 구하는 제사이다. 속건제를 드리기 위해서는 피해를 입힌 사람을 찾아가 피해를 보상하고 용서를 구한 다음에 제사를 드릴 것이다. 그러지 않고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영화 「밀양」에서 이와 유사한 문제를 다루었다. 아들을 유괴해서 죽인 살인자가 이웃 사람이었다. 남편 없이 혼자 살던 죽은 아들의 엄마는 예수님을 만나 새 삶을 찾았다. 큰 은혜를 받고 심지어 아들을 죽인 그 살인자도 용서해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교도소에서 면회를 할 때에 그 살인자는 자신도 예수를 믿고 회개했으며 용서를 받고 마음이 평안하다고 했다. 그 엄마는 엄청난 분노에 휩싸였다. 자신이 용서를 하지 않았는데 어디서 그 살인자가 회개하고 죄에 대한 용서를 받고 살인자가 편하게 발 뻗고 잠을 자냐는 것이었다. 물론 그 엄마는 기독교의 교리를 잘못 이해했다. 살인자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가 정말로 예수님을 만났다면 자신이 죽인 아들의 가족에게 진심으로 사죄의 편지라도 보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전혀 없이 하나님께 용서를 받으면 된다는 식으로 상황이 전개될 때에 피해를 당한 가족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다. 아마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일반인들이 기독교인에게 느끼는 감정과 경험이 「밀양」에 나오는 살해당한 엄마의 심정과 비슷할 것이다.

예수님을 믿으려면 제대로 알고 믿어야 한다. 어설프게 알고 믿는다고 하면 의도치 않게 짝퉁신앙으로 잘못된 결과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죄의 문제가 발생할 때는 하나님과 피해를 입힌 사람, 두 방향을 다 보고 회개하고 사죄를 청해야 한다. 물질적으로 갚아야 할 것들과 죄악으로 인한 보상도 진심으로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독교인은 항상 예수님을 욕 먹이게 되어 있다.

한 가지 더 말하자. 신자가 죄를 지으면 먼저 신자 자신의 양심이 견딜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더운 여름날 화로의 숯불을 맨 살 가슴에 넣고 오리털 파커를 입고 다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진짜 신자라면 회개하지 않은 죄악을 품고 살 수 없다. 그러므로 반드시 회개하게 되어있다.

만일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그 신자가 회개할 수 있는 상황을 허락하신다. 그 상황은 질병, 재산, 인간관계, 성공과 실패 등등 삶의 모든 정황을 통해 회개하도록 이끌어 가신다. 그러므로 신자는 회개하게 된다. 그런데 만일 이런 주님의 인도하심이 없다면 그 사람은 신자가 아니다. 교회는 다녀도 사실은 신자가 아니다. 가라지이다.

자 이제 말을 맺자. 신자가 각종 탐욕에 의하여 죄를 짓는다면 그 죄를 회개할 때에 성경이 말씀하는 구원에 이르는 회개는 삭개오의 예가 가장 정확하다. 그렇다면 예를 들어 내가 1억 원짜리 탐욕을 부려 돈을 가졌다면 나중에 회개할 때에 4억 원을 내놓아야 한다. 그러면 성경을 읽어서 아는 사람이 지금 1억 원을 갖고 나중에 4억 원을 내놓을 일을 하겠는가? 이 회개의 원리를 아는 신자는 아마 쉽게 탐욕을 부리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지 않고 1억 원 먹은 다음에 나중에 2시간 펑펑 우는 것이 회개라고 생각하니까 나쁜 짓을 아주 쉽게 하는 것이다. 한국 신자들이 4배로 갚는 회개의 원리를 적용한다면 아마 지금처럼 죄악을 즐겁게 행하지는 못할 것이다. (끝)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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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선 선교사 | GMS(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선교회) 소속으로 중국에서 사역 중 추방된 이후 인터넷을 활용한 중국 선교를 계속 감당하고 있으며 세계선교신학원에서 신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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