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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차이나 통신] 한 베트남 할머니의 천국환송잔치 (1)

사진: Nani Chavez on unsplash

분주한 연말연시에 한 베트남 할머니의 소천 소식을 접했습니다. 고향땅을 떠나 이역만리 한국에서 살다가 이 땅을 떠난 할머니의 사연을 아는 한국과 베트남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 ‘감동’과 ‘은혜’가 넘쳤습니다. 그저 가난한 한 베트남의 촌로로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던 이 할머니를 열방을 섬기는 삶으로 변화시킨 하나님의 은혜를 떠올리며 한국과 베트남에 그녀를 추모하는 빈소는 감동과 추억을 남겼습니다. 이야기는 68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53년 2월 6일 한국이 베트남전쟁에 참여하던 시절, 맹호부대 활동지역에서 예쁜 여자아이 투이(가명)가 태어났습니다. 전쟁이 아니면 시끄러울 것 없는 가난한 시골마을이었습니다. 전쟁상황에 성장한 투이는 간단한 의료 교육을 받고 병원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전쟁이 치열하던 1967년 어느날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 청년이 이 병원에 치료를 받으러 왔습니다.

투이의 친절한 치료로 무좀을 깨끗하게 치료할 수 있었던 한국 청년은 투이의 집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조혼 풍습이 있던 베트남 그리고 전쟁으로 미래를 알 수 없는 때에 투이의 아버지는 문화가 비슷한 한국 청년을 사위로 맞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한국 청년의 부모가 완강하게 반대했습니다.

“외국인 며느리는 안된다. 네가 그곳에 결혼하러 갔느냐. 복무 기간 끝나면 바로 나와라.” 부모의 말이 지엄하던 시절, 청년은 아쉬운 추억만 남기고 이듬해인 1968년에 귀국했습니다. 투이는 한국 청년의 마음에 애틋함을 남기고 잊혀져 갔습니다.

베트남 참전군인의 애틋한 사랑

투이는 1975년 전쟁이 끝나기 전에 결혼하여 자식 셋을 낳았습니다. 투이가 살던 곳은 패전한 지역으로 젊은 과부들이 많았습니다. 힘겹게 살던 중, 남편을 재력있는 이웃 여자에게 뺏기고 홀로 부모를 봉양하고 자식을 기르며 길거리에서 장사로 하루하루를 연명했습니다. 2000년 무렵, 투이의 큰 아들은 이발 가위만 들고 길거리 이발사로 어머니 생계를 돕기 시작했고 다른 두 자식들도 변변찮은 삶을 살았습니다.

한국 청년 한병국(가명)이 베트남에 참전한 것은 그의 삶에서 전혀 뜻밖의 일이었습니다. 대전 출신으로 교육대학를 졸업한 병국은 인천의 한 섬에 있는 국민학교 분교 교사로 발령받았습니다. 그곳에서 호랑이 선생님으로 불리던 병국의 가르침으로 학생들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했습니다. 덕분에 그의 학생들은 두각을 드러내고 각종 경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발휘했습니다. 세상은 칭찬했지만 그의 학생들은 그의 그림자만 보여도 숨어버렸습니다. 마음이 외로웠던 병국은 도망치듯 덜컥 군에 입대했습니다.

일은 잘했지만 상관과 마음이 안 맞아 영창에 갈뻔하는 일을 겪던 그는 월남 파병을 자원했습니다. 월남에 도착한 병국은 연대 본부 작전 상황실에서 편하게 일하다가 갑자기 본부에서 42㎞ 떨어진 민가에 중위 한 명과 곧 제대할 병장 밑에 배속됐습니다. 병장은 곧 제대하고 그는 나이 비슷한 상관과 단 두 사람이 민가 밥을 먹으며 동향과 민심 탐지업무를 맡았습니다.

그 마을에서 동네의 주먹이 공개 싸움 신청했으나, 병국의 상대는 되지 않았습니다. 시장 마당에서 단번에 현지 주먹 세계를 평정, 말은 잘 통하지 않아도 잘생기고 힘 좋은 외국 청년으로 그의 인기는 대단했다고 합니다. 그 무렵 청년 병국이 현지 마을의 병원에 가게 됐고 그곳에서 투이 자매를 만나고 헤어지게 된 것입니다.

베트남에서 시작된 애틋한 첫사랑은 그렇게 끝나고, 1975년 종전과 함께 공산화된 땅에 다시는 찾아갈 수도 없게 됐습니다. 그리고 1976년 병국은 자신을 좋아하던 한국 처녀와 결혼을 하고, 새로운 가정을 꾸렸습니다. 하지만 결혼 이후, 사회활동을 좋아하던 병국의 아내는 가정 살림이 뒷전이었습니다.

방치되는 자녀들, 별거 상태의 부부 관계가 병국의 마음을 어렵게 했습니다. 세상에서는 인기와 실력을 인정받았으나 가정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교사로서 사회적 위신도 있어서 이혼을 결정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슬픔과 외로움에 시달리던 병국은 누군가의 전도로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기도원에 들어가 울며 기도하던 중 인생의 비밀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사람의 인기와 칭찬은 정말 허무하구나!”

지옥과 천국이 있다는 것을 처음 들으며 자기 삶이 지옥이고 죽으면 진짜 지옥에 간다는 것과 그러나 천국에 갈 길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럭저럭 잘사는 인생인 줄 알았던 자신이 죄인이라는 자각과 천국의 실체가 믿어지면서 그의 삶이 극적으로 변했습니다.

그때부터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전도 신문을 들고 길거리와 학교, 병원을 찾아다니며 지옥같던 자기 삶을 고백하며 구원의 길에 대해 전했습니다. 무섭게 했던 제자들을 사랑하기 시작했고 학교 교실에서 찬양으로 주님을 높였습니다. 한번은 작은 사고로 입원한 제자를 찾아가 병문안을 갔다가 기도하고 나오는 길이었습니다. 나오려 할 때 같은 병실의 어떤 여인이 병국 선생에게 말했습니다.

“여보시오. 기도하러 왔는데 옆에 있는 사람은 안보입니까. 나도 기도해주고 가시오.” 병국은 여인의 사연을 듣고 치유 기도를 해주고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잊었습니다.

은혜는 은혜를 낳고

이제 이야기는 병국 선생의 기도를 받은 또 다른 한 여인에게로 이어집니다. 그녀는 간이 나빠 복수가 차고 배 안의 물을 빼러 입원해 있는 중이었습니다. 간경화가 많이 진행돼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한 강한 집념을 보이던 그녀는 용기를 내어 병국 선생에게 기도를 요청한 것입니다.

기도를 받은 이후, 그녀는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 생기고, 그동안 여러 이웃과 친척들이 권하던 오산리기도원에 올라갈 마음이 생겼습니다. 기도원에서 이틀간 금식기도하며 주님께 매달렸습니다.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몸 안의 암덩어리 같은 세포가 떨어져 나가는 일이 벌어졌고, 병원은 그녀의 간경화가 완치됐다는 믿을 수 없는 판정을 내렸습니다.

병국 선생에게 감사도 자랑도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부천 복사골 버스정류장에서 차를 기다리다가 가까이에 있는 학교에서 새어나오는 찬양 소리를 듣게됐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찬양소리가 나오는 곳으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학교에서 그토록 만나고 싶어하던 병국 선생을 보게 됐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간증했습니다. 그녀는 자신보다 나이는 어린 병국 선생을 인생의 스승으로 여겼습니다. 알고보니 그녀의 아들은 자신의 어머니의 회심과 치유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으며, 그녀의 치유는 그 아들의 기도응답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치유를 받은 그녀의 아들은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인도차이나 반도를 대상으로 사역하는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바나바라는 이름으로 그는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를 싫어하며 무명의 인물로 오지의 베트남 그리스도인을 돕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병국 선생은 바나바 선교사에게 월남전 참전 때의 추억을 이야기했습니다. 바나바 선교사는 그런 애틋한 사연을 베트남의 한 지인에게 전했습니다. 라이따이한 형제 1972년생 찌엣(가명)은 그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남처럼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를 그러워하던 자신에게 아버지를 찾는 일에 많은 도움을 준 바나바 선교사의 이야기를 듣고 병국 선생의 첫사랑 투이를 찾아나섰습니다. <계속> [복음기도신문]

*이 글은 생존한 가족을 고려해 등장인물의 이름을 모두 가명으로 처리했습니다. 유가족의 사역과 삶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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