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기가 하나님의 속성인 종교는 기독교밖에 없다. 용기가 필요한 신은 다른 어느 종교에도 없다 ”
다음은 팀 켈러 탁월한 저서 <팀 켈러의 예수, 예수: 이 시대가 잃어버린 이름>(Hidden Christmas: The Surprising Truth Behind the Birth of Christ, 두란노 역간) 중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대목들이다.
01
다른 불빛이 다 꺼질 때에도 그분만이 우리를 위한 빛이시다(34).
02
크리스마스의 주제는 단순히 출생이 아니라 강림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오실 일은 창세전부터 미리 계획되어 있었다(43).
03
크리스마스가 정말 실화라면 인류 전체가 기억상실증에 걸려 있다는 뜻이고,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들이 전혀 오락용 현실도피가 아니라는 뜻이다. 복음이 실화이기에 그런 최고의 이야기들도 궁극적으로 모두 실현될 것이다(53).
04
당신의 시간표로 하나님을 판단할 수는 없다. 더디어 보일 수 있으나 그분은 결코 약속을 잊지 않으신다. 일하시는 속도가 아주 느리거나 아예 약속을 망각하신 듯 보일 수 있지만, 그분이 하신 약속은 반드시 실현되며, 그분의 약속이 실현될 때는 언제나 당신의 상상을 초월한다.…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무난하다고 여기는 기간이나 계획대로 움직이는 경우가 사실상 전무하다(62-63).
05
히브리 세계관은 인간이 하나님일 수도 있다는 개념을 철저히 배격했다. 유대인들은 “여호와”라는 이름을 입에 담거나 글로 쓰지도 않았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가장 가까이 따르던 유대인들에게 자신의 삶과 주장과 부활을 통해 이런 확신을 심어 주셨다. 자신이 하나님을 찾는 법을 알려 주는 한낱 선지자가 아니라 우리를 찾으러 오신 하나님 자신이라고 말이다(73-74).
06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주장은 또한 우리에게 최고의 희망을 준다. 이는 우리 사는 세상이 존재의 전부가 아니고 죽음 후에도 삶과 사랑이 있으며, 언젠가 악과 고난이 끝난다는 뜻이다. 끝없는 문제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희망이 있을 뿐 아니라, 끝없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당신과 내게도 희망이 있다는 뜻이다(79).
07
하나님이 거룩하기만 하신 분이라면 굳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내려오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냥 우리 스스로 분발해서 거룩하고 착해짐으로써 그분과의 관계를 얻어 내라고 요구하셨을 것이다. 반대로 하나님이 뭐든 다 받아 주는 ‘사랑의 신’이라면 굳이 이 땅에 오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죄와 악을 묵과하고 무조건 우리를 품어 주는 이런 신은 현대인들이 지어낸 것이다. 도덕주의의 하나님이나 상대주의의 하나님이라면 크리스마스의 수고를 감수하지 않았을 것이다. (79)
08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 삶에 들어오시면 흠 없는 평판과는 작별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아직 마태복음 1장이 그 정도이고, 2장으로 넘어가면 요셉은 더 많은 사실을 깨닫는다. 예수님을 삶에 받아들였다는 이유로 그는 사회적 지위만 훼손당한 게 아니라 목숨까지 위태로워졌다. 우리에게는 이것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가? 예수님을 삶에 받아들이려면 용감해야 한다(92).
09
그리스도께 가려면 당신의 조건을 다 내려놓아야 한다. 그 말은 무슨 뜻인가? ‘만약 ~하면 순종하겠습니다. 만약 ~하면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말할 권리를 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순종에 조건을 다는 순간 그것은 순종이 아니라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주님은 제 주인이 아니라 조언자입니다. 주님의 권유를 기쁘게 받아, 가능하다면 그중 더러는 시행해 보기도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당신과 함께 계시기를 진정으로 바란다면 당신 마음대로 인생을 결정할 권리를 기꺼이 내려놓아야 한다. 자기를 부인하는 일은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후기 현대의 문화와 충돌하지만, 우리는 바로 거기로 부름 받았다. 그 이하로는 안 된다(95).
10
당신이 그분과 함께 있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지만, 그분이 당신과 함께 계시는 데는 무한히 더 용기가 필요했다. 용기가 하나님의 속성인 종교는 기독교밖에 없다. 용기가 필요한 신은 다른 어느 종교에도 없다(98).
11
우리는 종교를 통해 하나님을 길들이려 한다. 온갖 행위를 통해 그분을 우리의 채무자로 만들려 한다. 우리가 바라는 방식대로 그분이 복을 주실 수밖에 없도록 말이다.…신앙을 가졌다고 하는 사람들도 종교가 없는 사람들과 똑같이 하나님의 주권에 적의를 품는다. 다만 그것을 종교적인 방식으로 표출하거나 감출 뿐이다(112).
12
‘왕이 어디 계시냐?’ 그야말로 인간의 마음을 가장 소동하게 하는 물음이다. 우리는 저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기 삶의 왕좌를 지키려 하기 때문이다. 또 종교를 이용해 그 왕좌를 고수할 수 있다. 조건 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게 아니라 내 의를 내세워 그분을 내 말대로 하실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다. 반대로 우리는 종교를 버리고 무신론자가 되어, 신은 없다고 목청 높여 주장할 수도 있다. 둘 중 어느 쪽이든 참되신 왕의 주권에 맞서 본능적 적의를 표출하기는 마찬가지다(112).
13
이렇듯 크리스마스의 사실성 여부에 정말 중립적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나님의 아들이 정말 마구간에서 태어나셨다면 우리는 이미 자신의 삶을 주관할 권리를 잃었다. 어떤 주장이 사실일 경우 당신이 자신의 삶을 통제할 권한을 잃는다고 하자. 누가 그 주장에 객관적일 수 있겠는가? 당신도 객관적일 수 없다. 당신이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 점을 늘 염두에 두기 바란다. 당신의 회의에 의문을 제기하라(115).
14
왜 그들을 택하셨을까? 하나님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누누이 말씀하신다. ‘나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나사렛을 택하겠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소녀를 택하겠다. 모두에게 잊혀진 소년을 택하겠다(120).
15
천사가 나타나 말을 건다면 당신도 마리아와 똑같이 반응할 것이다. 당신과 나는 초자연적 세계를 믿지 않도록 문화적으로 교육받았다. 앞서 보았듯이 유대인인 마리아도 행여 하나님이 인간이 되실 수 있다는 개념을 믿지 않도록 문화적으로 교육받았다. 따라서 천사가 전한 메시지를 믿지 못하게 그녀를 막아 선 장벽은 종류만 달랐을 뿐 당신 앞의 장벽과 똑같이 높았다. 그런데도 증거와 체험이 합해져 그 장벽을 허물었고, 마리아는 결국 믿었다. 믿음의 원리는 지금도 똑같다. 그녀는 회의와 의문을 품었고 이성을 움직여 질문했다. 오늘날 우리도 믿으려면 똑같이 해야 한다(133).
16
기독교 신앙은 흥정이 아니라 순복이다. 당신이 자신의 삶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의미이다(148).…순복의 가장 큰 동기는 그분이 우리에게 해주실 일이 아니라 그분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어야 한다. 그분이 이미 우리를 위해 다 이루셨기 때문이다(154).
17
크리스마스란 하나님의 은혜와 성육신을 통해 그분과 화평해질 수 있고, 일단 그분과 화평해지면 밖에 나가 다른 누구와도 화평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복음을 받아들여 평화를 누리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더 살기 좋은 곳이 된다. 그리하여 크리스마스를 통해 온 세상에 평화가 증대된다. 하나님과도 화목하고 사람들끼리도 서로 화목해진다(172).
18
크리스마스의 구유는 당신도 예수님처럼 살면 웬만한 여관에 당신의 방이 없을 거라는 뜻이다(185).
19
지난 세월 내게 이런 식으로 말한 사람들이 있다. ‘내가 믿는 예수님을 잘 모르겠다. 성육신이나 온갖 교리를 왜 믿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교리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내가 착실하게 사는 것이다.’ 그러나 ‘교리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내가 착실하게 사는 것이다’라는 그 말도 교리다. 이것을 가리켜 은혜 구원이 아닌 행위 구원의 교리라 한다. 거기에 깔린 전제는 당신이 구주가 필요할 정도로 죄인은 아니며, 스스로의 힘으로 바르게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연약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사실상 당신은 하나님과 인간과 죄의 속성을 총망라한 일련의 교리를 주창하는 것이다. 그런데 크리스마스의 메시지는 그게 다 틀렸다고 말한다(200-201).
20
크리스마스가 그럴듯한 전설에 불과하다면 어떤 의미에서 당신은 스스로 살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크리스마스가 사실이라면(사도 요한은 전적으로 실화라고 증언한다) 당신은 은혜로 구원받을 수 있다(203). [복음기도신문]
“ 크리스마스의 구유는 당신도 예수님처럼 살면 웬만한 여관에 당신의 방이 없을 거라는 뜻이다 ”
맷 스맷서스트 Matt Smethurst | 미국 TGC 총괄 에디터. ’Before You Open Your Bible’의 저자. 켄터키주 루이스빌에 위치한 Third Avenue Baptist Church의 장로로 섬기고 있음.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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